또다시 문 닫은 학교
일 년 만이었다. 아들은 학교를 갈 수 없었다. 아직도 사라지지 않고 더 강해진 코로나 녀석 덕분이다. 시드니, 멜버른 같은 대도시의 이야기로만 치부하고 있었는데 이곳도 안전하지 않았다. 주변에서 하나 둘 확진자가 생기더니 결국 지난 토요일부터 꽁꽁 걸어 잠그기, 락다운이 시작되었다. 처음엔 3일, 그리고 다시 5일 연장. 이번 주 내내 세 가족 모두 꼼짝 마다.
우리 부부야 현재 공식 백수니 밖에서 노나 집에서 노나 상관없다. 하지만 아들은 학교에 못 가는 대신 집에서 홈스쿨링을 해야 했다. 선생님은 일 년 전의 그 사람, 바로 나였다. 둘 다 해본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이번엔 당황하지 않았다. 손발도 척척 맞았다. 서로 욕심내지 않았고 지치지 않게 리듬을 조절했다. 학교의 지침대로 배우는 것이 아닌 우리의 기분과 행복에 중점을 두었다. 3일을 함께 보냈는데 서로 기분 좋게 깔끔하게 성공했다. 많이 쉬고 놀며 중간중간 배움을 끼워 넣었다.
놀라운 점은 아들의 성장이었다. 한글이야 내가 가르치니 이미 알고 있었지만 영어를 가까이서 본 것은 오랜만이었다. 내 기대가 5였다면 아들은 늘 10을 뛰어넘었다. 아들이 학교에서 얼마나 즐겁게 온몸으로 배워나가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다시 한번 학교와 선생님께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세 가족이 잘 지내고 있지만 아직은 갑작스러운 락다운이 어색하기만 하다. 그전까지만 해도 우리는 최고의 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아들 학교에서 올림픽 시즌에 맞게 드레스 코드를 정해준 날이 있었다. 호주 대표팀의 색인 골드와 그린으로. 한국인이니 태극 색깔 블루와 레드로 꾸밀까 하다가 취지에 맞지 않아서 꼬리를 접었다. 그 전날 파랑이 힘들게 힘들게 고민하고 돌아다닌 끝에 겨우 마련했다. 초록 티셔츠에 노란 헤어밴드와 손목 아대를 장착했다. 포인트 아이템으로 축구공 무늬 호루라기를 목에 걸었다. 학교 문 앞에 갈 때까지 어찌나 어색해하던지. 다른 친구들이 더 화려하게 차려입은 모습을 보고는 그제야 안심하고 들어갔다.
락다운 바로 직전 우리는 축배의 날을 맞이했다. 축하할 일이 한꺼번에 많이 생겼기 때문이다. 열심히 공부했던 파랑이 취업에 성공했다. 졸업 후 2달 넘게 마음고생을 많이 했었는데 그녀답게 해냈다. 놀라운 쾌거였다. 집에 오래 있는 모습에 내심 이젠 나갈 때가 되었는데 하고 있었다. 분명 나에게도 좋은 일이 맞았다. 이에 맞춰 우리의 두 번째 차량을 맞이했다. 지금의 빨강이는 파랑의 출퇴근용으로 사용하기 위해서였다. 차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우리는 몇 가지 놓칠 수 없는 조건들만 붙들고 며칠을 헤맸다. 결국 운명적으로 하양이를 만났다. 중고차 업체에 입고되지 마자 아직 사진도 찍기 전인 녀석을 만나서 반해버렸다. 이유는 순전히 외모가 예뻐서. 내가 이렇게나 겉모습을 따지는 지 몰랐다. 가격도 후하게 쳐주어서 예산보다 훨씬 아래로 구매했다. 싸서 좋았는지 멋져서 그랬는지 아무튼 그렇게 새 식구를 맞이했다. 아들의 요즘 주요 일과는 하양이 안에서 즐기는 디스코 타임이다. 깜깜한 차고 안의 차에 올라타서 불을 켜고 라디오 음악을 들으며 신나게 춤을 춘다. 물론 우리도 옆에서 함께 해야만 한다. 그렇게 새로 만난 친구를 격하게 환영하고 있다.
이런 시간들이 무색하게 지금은 모든 것이 멈춰있다. 아들의 배움은 집 안으로 제한되었다. 학교는 물론 미술도 수영도 축구도 모두 취소되고 미루어졌다. 새 식구 하양이도 밖에 나가 달릴 일이 없다. 원래도 잘 나가지 않는 우리지만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상황은 많이 다르다. 믿을 수가 없다. 시작된 지 2년이 다되어 가는 데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이 코로나라는 녀석과 함께 살아가는 생활에 익숙해져가고 있을 뿐이다. 한국의 그것과 정도의 차이가 있어서 안일하게 지낸 것도 사실이다. 가끔 이렇게 찾아와서 뒤통수를 때려주면 정신이 번쩍 든다. 모두가 안전해질 때가 되어야 이 시대가 끝나게 됨을 실감한다. 지난 일상의 소중함을 추억하며 좀 더 집에 머물러 본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어느 날 아침, 나와 함께 등교하면서 남긴 말. '아... 비가 오면 헤어지기 싫은데...' 유난히 더 센티해지는 아들이다.
교회 성경학교 상품으로 고래밥 과자를 받아왔는데 거기에 아들 이름이 적혀있었다. '오잉? 여기 내 이름이 쓰여있네? 내가 유명한가?' 푸하하. 유명해지고 싶냐고 물으니 그저 웃는다.
아들은 가끔 내가 해주는 본인 옛날이야기를 좋아한다. 한 번은 전설적인 이무기 이야기, 욕조에서 목욕하다가 응아 했던 이야기를 꺼냈다. '음... 기억나지. 흥미진진했지.' 한 마리 뱀을 건져냈던 그 사건을 아들은 그렇게 기억하고 있었다.
락다운 기간에도 다행히 운동, 산책은 허용된다. 우리 부부는 아직도 어색한 마스크를 쓰고 에너지 넘치는 아들을 데리고 하루에 한 번은 나선다. 사랑하는 동네 호수도 한 바퀴 돌고, 파랑 학교에 가서 캥거루도 만나고 한다. 나갈 수 있을 때는 집에서 하루 종일도 지내는데 이제 나갈 수 없게 되니 꼭 한 번씩 나간다. 원하지 않는 구속은 이렇게 움직일 동력을 주나 보다. 어제까지도 확진자 추세가 가라앉을 기미가 안 보인다. 이 기간이 더 늘어날 수도 있겠다는 아쉬운 예상을 하게 된다.
어쩔 수 없는 환경에 대해선 포기하되 우리의 일상은 제대로 남기려 한다. 잘 먹고 잘 웃고 잘 사랑하며 보내려 한다. 돌아보면 내게 남은 것은 무엇을 어떻게 했냐가 아니었다. 어떤 마음으로 지냈는지만 오롯이 남아있었다. 즐겁고 행복했다면 다른 것은 상관이 없었다. 오늘도 내일도 내 마음이 좋았던 날이 되길 바란다.
하루라도 쓰지 않으면 허전하고 답답하다. 하얀 바탕에 검은 글자를 채우는 새벽을 좋아한다. 고요하지만 굳센 글의 힘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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