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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Joon Aug 15. 2021

크지 않았는데 컸네

아기와 아이가 함께 있는 아들

아들은 여전히 아기 같은 면이 많다. 우리 부부가 하도 만지작댄 덕분인지 스킨십을 좋아한다. 예전 어린이집에서 다 같이 앉아 모이면 아들은 어느새 선생님 다리 사이에 엉덩이를 넣고 앉아 있었다고 한다. 너무 자연스럽고 순식간에 벌어지는 일이라서 놀라곤 하셨다는 말씀이 기억난다. 요즘도 필요한 만짐이 있으면 과감하게 요구한다. 특히 잠들기 전에는 여러 가지 터치가 필요하다. 감은 눈꺼풀을 손으로 살살 돌려서 만져달라고 하기도 하고 토닥토닥 배나 등을 가볍게 두드려 주길 원하기도 한다. 요즘엔 좀 신선하게 발을 조몰락 대 달라고도 한다. 이런 요구 없이도 붙어 있으면 껴안고 비비고 그러는 데 아직까진 도망치진 않는다.


며칠 전부터 시작된 파랑의 출근으로 아들이 하교하면 엄마가 없었다.  달을 함께 신나게 지내다가 없으니  엄마 사랑이 샘솟는 아들이다. 나와 지내면서도 중간중간 엄마를 찾는다. 이런 모습이 오랜만이라  갑자기 많이 아기로 보인다. 이젠 직접 엄마에게 메시지를 보낼  있는 능력을 갖출 만큼 컸는데도 한없이 어려진다. 자고 일어나면 옆에 있어달라는 뜻의 '내일  !' 밤에 오면 자기를 깨워 달라는 '소리 질러조!' 톡으로 전했다.


꿈을 꾸고 나면 꼭 이야기를 전해준다. 그럴 때도 한없이 순수한 아기로 보인다. 상상도 하기 어려운 다채로운 스토리를 듣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빠져든다. 얼마 전엔 무지개 기차를 타고 내 고향 천안을 다녀오는 여행 이야기를 들려줬다. 많이 생생했다. 나에게도 꼭 밤에 다녀오라고 신신당부했다. 가는 길도 자세히 알려주고 맛집이 있는 위치도 알려줬다. 다음날 아침이면 꼭 확인한다. 다녀왔는지, 무엇을 보았는지, 무엇을 먹고 무슨 맛이었는지. 요즘엔 친구들하고 꿈에서 만나는 '나이트 미팅'을 한다고 한다. 장소는 학교. 하루 종일 일주일 5일을 만나서 노는 데도 부족한가 보다.




이런 면이 있는 반면 갑자기 커버린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예컨대 진짜 아기나 동생을 만나서 옆에 두면 확 그 자람이 느껴진다. 얼마 전에 갓난아기를 보는 아들을 관찰했었다. 아들은 뭐가 그리 재밌고 우스운지 하염없이 바라보며 웃었다. 작디작은 아기를 바라보는 아들의 모습은 영락없이 많이 커버린 어린이였다. 이 둘을 보는 내 시선은 그 중간의 과정을 복기하느라 바쁘다. 언제 저기서 이렇게 커버렸을까 하면서.


한글이 늘어버린 결과를 접할 때마다 또 놀란다. 락다운 기간 동안 꼭 붙어서 열심히 한글을 사용한 덕분인지 확 늘었다. 하는 말의 수준도 그렇고 쓰고 읽는 게 확실히 달라졌다. 내가 기대하는 것보다 항상 몇 단계 위였다. 요즘 부쩍 한글 책을 재밌게 많이 읽더니 생긴 변화인가 싶다. 이제 말로는 잘 상대가 어렵다. 대충 뭉개고 넘어가는 일은 불가능하다. 나만 점점 힘들어지는 느낌이랄까.


다행히 다시 락다운이 해제되고 학교가 문을 열었다. 바뀐 방침에 따라 교문에서부터는 혼자서 등교해야 했다. 아직 교실 문까지 함께 가는 게 필요하던 아들은 완전히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 상황을 이해하기도 했고 제법 익숙해져서 자신감이 생겼다. 교문부터 교실까지 걸어가는 모습을 학교 담장에서 바라봤다. 처음 며칠은 아무리 불러도 아들은 앞만 보고 걸어갔다. 아마 긴장한 탓에 집중하고 있었을 테다. 며칠이 지나자 그제야 이쪽을 바라보고 손을 흔들어줬다. 해맑게 웃는 아들의 얼굴을 보고 나면 마음이 편했다. 걱정 없이 멋지게 혼자 등교하는 아들을 볼 때 온갖 감정이 한 번에 올라온다. 대견함. 뿌듯함. 섭섭함. 아쉬움. 기쁨. 안심. 그리움. 해방감.




아기 같은 면과 아이 같은 면을 함께 가지고 있는 아들의 지금이 소중하다. 아기 같은 면이 영원히 사라지지 않기를 바란다. 아직 아들은 내 눈에 작은 아기와 다름없다. 커버리는 순간들을 마주할 때마다 가슴이 철렁거린다. 또 한 부분이 성장했구나 하면서. 점점 한 손으로 한 팔로 아들을 안고 품기가 어려워진다. 막을 수 없는 자람을 아쉬워하는 내 마음이 낯설고 어색하다. 이런 날이 올 줄 몰라서 일 테다. 지금보다 더 커도 여전히 내 손 안의 자식이겠지만 그렇다고 지금의 이 슬픔에 가까운 마음이 옅어지진 않는다. 조금이라도 더 작을 때 한 번 더 얼굴을 보고 한 번 더 살을 맞대어야겠다. 괜히 새벽 감성에 파묻혀 글썽이고 울먹이는 이 순간을 잊지 않는다면 절대 욱하고 짜증 내지 않아야겠지만... 바보 같은 나는 정신을 차리고 나면 또 그 짓을 반복하고 말 것이다. 최소한 오늘은 그러지 말기를. 지금 이 순간을 그렇게 물들이지 않기를.






아들의 학교


1.

아들 학교 시간표에는 시도 때도 없이 쉬는 시간(플레이 타임)이 있다. 사실상 놀고먹다 온다. 노는 시간에 아들은 머릿속에 BTS 노래를 떠올리며 춤을 추고 다닌다고 고백했다. 알아서 친구들 시선을 잘 피해 다니겠지?


2.

아들은 친구들 얼굴만 보면 이름은 몰라도 어느 반인지 안다고 한다. 놀다가 각 반으로 헤어질 때 어디로 가는지 눈여겨보았을 테다. 혼자서 등교하는 첫날 어떤 친구가 자기 반이 어딘지 아들에게 물어봤다고 한다. 얼굴을 보자마자 교실 위치가 생각나서 신나게 알려주었다고 한다. 적당히 자신감 넘치는 뻥카가 나를 쏙 닮았다. 그래 그렇게야. 바로 확인할 길이 없는 것에는 자신 있게 내뱉는 거다.


3.

같이 노는 친구의 생일 파티 초대를 못 받아서 속상하다고 전했다. 그 친구가 원래 제일 주로 함께 노는 무리는 아니어서 나는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 보다. 파랑이 그런 속상한 마음에 대해 잘 알려주고 했는데 얼마나 전해졌으려나 모르겠다. 그런 일이 있으면 '뭐 그런가 보다. 나도 너 그 정도는 아니었어!'라고 돌아서는 나와는 달랐다. 섬세하고 부드러운 녀석. 상처 받는 일 많을 까 봐 걱정이기도 하다.




아들이 개최한 우리 집 그림 그리기 경연대회가 열린 적이 있었다. 락다운 기간에 집에 갇혀 있으면서 이것저것 많이 하고 놀았다. 아들은 벌써 마구마구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난 어떤 그림을 그릴지 아직 고민하고 있었다. 딱 떠오른 생각이 있어서 '나 아이디어 있어!'라고 외쳤다. 아들이 한 눈은 그림에 고정하고 다른 눈으로 나를 보며 말했다. '아빠, 아이디어가 있어도 직접 그리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지!' 이거 어디서 누가 많이 하던 말인데... 생각보다는 행동이라고 지겹게 하는 내 말이 아들 입에서 나왔다. 어쩌면 아들은 이미 다 큰 건지도 모르겠다. 사랑해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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