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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Joon Aug 09. 2021

그냥 친해지는 방법은 없다

아들 4돌 & LAST 이사회

때론 엉터리 같이 굴고 혼자 기분에 취해서 오르락내리락 거리는 내가 변하려고 노력했던 시점이다. 그때 뭐라도 느끼고 움직였으니 지금의 내가 있는 거라고 혼자 추억한다.


아들은 컸고 나도 좀 컸다. 아들은 그때 본인과 친해지려 했던 내 변화의 시작을 눈치챘을까 모르겠다. 요즘도 툭하면 열이 올라 삭히는 내 나름의 노력을 알까 모르겠다. 알아줄 필요도 의무도 없지만 그냥 궁금하다. 너무 티가 나는지 안 나는지. 아니면 그냥 이게 원래 아빠라고 생각하는지.


자주 쓰는 '원래'라는 말을 이젠 잘 모르겠다. 원래가 원래 있어서 원래라고 쓰는 건지 원래가 없어도 원래를 정해 놓기 위해 쓰는 건지. 나의 원래는 희미하다. 하지만 지금은 뚜렷하다. 내가 보여주는 모습이 아들에겐 아빠 그대로다. 그때를 충분히 기억하지만 지금도 확실히 명심한다.


마음이 싱숭생숭 글도 뒤죽박죽인 것은 드디어 아들이 학교를 다시 가기 때문이다. 나도 좀 쉬어야겠다.






20181209


4돌 잔치


굴렁쇠에서는 아이들 생일 때, 잔치를 벌인다. 잔칫상은 터전에서 준비해주시고, 아마들은 그동안을 돌아보면서 생일판을 만들어서 잔칫상을 장식한다. 생일판은 인상 깊었던 사진들과 아이들이 좋아하는 무늬, 색감, 모양 등으로 꾸미고 간단한 소개글을 적는다. 작년에 처음 했을 때는 너무 막막하기도 하고 그동안 찍은 사진을 처음 정리하느라 힘들었었다. (파랑이 밤을 새웠었지) 이번에는 미리미리 사진을 내가 골라놓았다. (1년 치 중에 고른 게 400장!) 그중 파랑과 베스트 샷을 10장 정도 골랐다. 


생일 당일에는 평소처럼 아들에게 인사를 하고 출근을 했는데, 갑자기 영상통화가 와서는 아빠 얼굴 못 봤다고 하면서 인사를 해주었다. (감동!) 하원 해서 미리 예약해두었던 식당에서 파랑과 준영이를 만났고 케이크에 촛불도 켜고 축하했다. 커다란 블록 선물도 받아 집에 돌아와 오랫동안 가지고 놀다 잠들었다.


그렇게 아들에게 오래 기억되었으면 하는 생일날이 지났다. 다음날 아침에 출근하려고 인사를 하는데 아들 이마가 따끈따끈한 게 심상치 않았다. 우선 파랑에게 맡겨두고 출근하면서 아들이 일어날 즈음에 전화했다.


[나] '준영이 괜찮아?'

[파랑] '준영아 아빠가 괜찮냐고 연락 오셨네~'

[아들] (옆에서) '괜찮다고 해.'


ㅋㅋ 그는 시크하게 답했다. 그렇게 4돌을 신명하게 보냈다.





방모임&연석회의&이사회


11월 마지막 날 방모임을 담임 선생님 '비행기'와 진행했다. 즐방 아이들이 성장하는 게 보이며, 예전에는 관계가 가족인 엄마, 아빠뿐이었는데 이제 다른 친구들과 선생님으로 확대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말씀해 주셨다. 사회생활을 통해서 얻어가며 커가는 모습이 참 대견하다. 언제나 엄마 아빠만의 아이로만 있을 줄 알았는데 벌써부터 다른 세계가 생기고 있다고 하니 신기하면서도 살짝 아쉽기도 하다.


올해 마지막으로 교사회 전체 선생님들과 이사회 전원이 함께 식사를 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연석회의를 진행했다. 특히 이번에는 연말 임단협을 앞두고 서로의 생각을 나눠보는 시간이었는데 참 어려웠다. 나도 피고용인 입장만 해보았지 고용주로서 협상을 한다는 것이 너무도 어색하고 서툴렀다. 그리고 여긴 아이들이 지내는 곳이 아닌가.


며칠 뒤 12월 마지막 이사회를 진행하며 한 해를 마무리하며 내년을 맞이하는 여러 안건을 다루었다. 신입원아 충원, 임단협, 내년 방구성, 공공교 회원 유지 등등. 매월 해온 회의였지만 역시나 이번에도 해답이 없는 어려운 의견 나눔이 이어졌다. 1월 초에 있을 간담회와 총회를 위해 12월에는 주기적으로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어야 할 것 같다. 내 맘같이 딱 부러지는 일은 세상에 별로 없다.





아빠랑 놀기


아빠랑 친해지기 위해 아빠랑 놀기&대화하기를 적극적으로 시행했다?!



1. 마술 뮤지컬 관람과 번개 마실


미리 예매해둔 마술 공연을 나와 아들 단둘이 다녀왔다. 호기심에 찬 얼굴로 집중해서 1시간 남짓한 공연을 잘 소화했다. 그날은 마침 굴렁쇠 엄마들 모임이 있는 날이었다. 공연 마치고 다른 아빠들 2가구와 급 번개 나들이를 서울대공원으로 갔다. 갑작스러운 동물원 방문과 친구, 동생을 만나자 아들은 엄청 신나 했다. 저녁에는 모두 우리 집으로 초대해서 급 마실을 했다. 결국 나중에는 엄마들도 모여들었고 아이들에겐 하루 종일 신나게 논 추억이 되었다. 아직도 아들은 그날 마술 -> 동물원 -> 우리 집 초대한 일을 가끔 이야기하며 즐거워한다.



2. 아침 인사


어느 날 아침 아들이 내가 한 인사에 답장으로 '아빠도 회사 잘 다녀와~'라고 했다. 나중에 파랑에게 들어보니 파랑과 잘 때 아빠랑 준영이랑 잘 지내보자고 의기투합을 했다고 한다. 서투른 아빠를 위해 서로 노력해보기로. 하하. 고마워 파랑!



3. 아들 말말말


아들은 감을 좋아하는데 '이렇게 맛있는 감을 왜 나만 줘? 아빠도 먹어봐~'라며 내게 주었다. 오잉? 이렇게 우리 관계의 변화가 시작되는 건가?


자기 전에 아동용 사도신경 노래를 부르는데 사실 난 다 외우질 못해서 대충대충 따라 뭉개며 불렀다. 어느 날 딱 걸렸다. '아빠가 엉터리로 불렀어~'라고 아들이 파랑에게 일러바쳤다.


아들은 꿈을 자주 꾸는데 어느 날 일어나서 꿈을 풀어놓았다. '보라색 캐리어에 나를 넣어서 엘베 태워서 보냈어~ 엉엉 ㅜㅜ' 그건 꿈이라고 아무리 설명해도 소용이 없어서 아들의 말투로 다시 알려줬다. '그런 꿈은 엉터리야~' 그제야 웃으면서 기분이 풀어진 아들이었다.


* 아빠로서 모자라고 부족한 저에게 큰 가르침을 준 공동육아 어린이집과의 인연은 믿기지 않는 행운이었습니다. 함께하는 육아를 알아가는 여정을 담은 '공동육아일기'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모든 것의 시작을 전 소중하게 여깁니다. 처음 아빠로서 스스로를 자각하고 돌아보게 만든 그곳이 그렇습니다. 그 이후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이어진 변화의 일대기는 제 책 <아빠 육아 업데이트>에 담겨있습니다. 변화를 원하신다면 권해봅니다. 또 누가 변할지 모르니까요.

※ 2022 세종도서 교양부문 선정 『아빠 육아 업데이트』를 바로 만나보세요!



공동육아 어린이집이 도대체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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