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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Joon Aug 14. 2021

고래를 보려면 멀미약을 먹어라

호주 고래 여행 - 레드클리프, 브리즈번 웨일 와칭

드디어 고래를 만났다. 호주 살기를 시작하면서 꼭 보고 싶었던 고래를 일 년 만에야 만날 수 있었다. 내 평생 두 번 다시 갈 수 없을 것이 분명하다. 그 이유는 곧 확인할 수 있다. 앞으로 오지 않을 그 대단했던 순간을 남겨둔다.






사전 예약 - 브리즈번 웨일 와칭


파랑과 아들의 방학을 맞이하여 1박 2일 고래 여행을 계획했다. 우리가 사는 곳에서 1시간 정도 내려가면 고래를 보러 갈 수 있었다. (레드 클리프 Redcliffe) 아침 9시부터 오후 2시까지 5시간 정도의 반나절 일정이었다. (점심 식사 포함) 객석은 3단계 등급(VIP/프리미엄/일반)이 있었고, VIP는 매진이어서 할 수 없이 프리미엄으로 예약했다. (가격은 성인 기준 165불/150불/135불 - 마냥 적은 금액은 아니다) 다른 업체가 있는 줄 모르겠지만 요 사이트에서 직접 예약했다. (Brisbane Whale Watching)




당일 아침 - 주차&조식


사전에 안내받은 대로 출발지 바로 근처의 시간제한 없이 무료로 주차할 수 있는 공원에 주차했다. 차에서 내리자 바로 우리가 탈 커다란 배가 멀리 보였다.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걸어갔고 출발지 근처에 모여있는 식당 중 한 곳에 들어가서 식사를 했다. 구글 평은 모두 괜찮았다. 하지만 실제 맛과 가성비는 여행지라서 그런지 좋은 편이 아니었다.


설레는 출발


캡틴 쿡 공원 (Captain Cook Park)

Redcliffe Parade, Redcliffe QLD 4020

https://goo.gl/maps/fX3dkN5baXa9CatA6




탑승 및 출발 전 돌고래 구경


아침을 먹고 화장실을 다녀온 뒤 배가 정박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사람들이 하나 둘 모이기 시작했다. 대부분 가족단위였다. 9시가 되어 선장님과 직원분이 오셔서 설명을 시작하셨다. 코로나로 서로 조심하자, 날씨가 좋다, 고래를 신나게 볼 거다 등. 그리고 VIP 손님들 먼저 호명했다. 10명 남짓한 무리의 사람들이 먼저 입장해서 2층의 선장석 뒤에 마련된 VIP석으로 향했고 그곳에서 별도의 안내를 받았다. 매진되어서 못 누린 호사가 아쉬워지는 순간이었다. 곧 나머지 사람들도 체크인 프로세스를 통해 승선했다.


Redcliffe Jetty

https://goo.gl/maps/FXzgMbC15uSYy4Hw6


넓은 창가쪽 우리 자리


우리의 프리미엄 자리는 1층의 창가 테이블 자리였다. 예약자 이름으로 미리 지정되어 있었고 코로나 때문에 6명 자리에 우리 세 가족만 앉을 수 있었다. 생각보다 쾌적하고 넓은 환경에 만족했다. 그러다 갑자기 창 밖에서 커다란 물고기가 보였다. 많이 커서 무언가 했는데... ‘돌고래’였다! 아직 배가 출발 전이었기 때문에 해변 육지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다. 이렇게 쉽게 돌고래를 만나게 되니 그날의 운이 좋음을 느끼면서 어렵게 다녀왔던 시드니의 돌고래 투어가 아쉬워지기도 했다. (2시간 넘게 타고 가서 보고 왔는데...)


이렇게 쉽게 볼 수 있다니




고래와 멀미


돌고래와 인사를 나누며 곧 출발했다. 배는 자동차 보다도 흔들림 없이 아주 평온하게 나아갔다. 멀미약을 먹겠냐는 승무원의 제안에 우리는 당당하게 괜찮다고 했다. (곧 불어닥칠 재앙을 모르고...) 레드클리프에서 가까운 커다랗고 긴 섬, 모레톤 아일랜드까지는 정말 아무렇지 않았다.


고래 만날 생각에 골똘


섬을 지나서 ‘진짜 바다’로 나아가자 배와 우리 몸에 큰 변화가 생겼다. 진짜 파도를 만난 배는 규칙적으로 큰 폭의 오르락 내리락을 반복했다. 파랑은 바로 멀미약을 요청했고 승무원은 약과 진저비어(탄산음료), 그리고 구토 봉지를 가져다주었다. 멀미와 함께 고래도 나타났다. 파랑은 고래보다 멀미가 먼저 나타나서 제대로 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나마 나는 멀미가 오기 전이어서 고래를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촬영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시간이 그리 길지 않았다. 고래가 점점 더 가까이 더 많이 나타날수록, 내게 멀미도 그렇게 다가왔다. 파랑은 이미 사경을 헤매고 있었다.


고래는 나타났는데


나는 더 심해지기 전에 아들을 데리고 배 앞쪽 트여있는 곳으로 향했다. 최악의 상황은 아들까지 멀미를 하는 것이었는데 천만다행으로 아들은 멀미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졸려했다. 아마 아이들의 멀미는 잠이 오기도 한다던데 그것 같았다. (어린아이들이 차 타면 자는 것처럼) 시간이 흘러가면서 고래들은 점점 더 커다랗고 활기차게 우리 배를 맴돌며 자신을 드러냈다. 배 위에서 그들의 거대한 몸놀림을 보는 것은 충분이 경이로운 것이었지만 난 내 멀미와의 싸움이 먼저였다. 졸려서 자리로 가서 쉬고 싶다는 아들을 달래며 가장 나은 곳인 배의 뒤쪽으로 향했다. (덜 흔들리고 밖을 볼 수 있는 곳)


고래 보러 나온 거 아님. 살려고 나온 거임


배 뒤에 도착해서 보니 그곳은 마치 ‘타이타닉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모두 구토 봉지를 부여잡고 있었고,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사람들이 널브러져 있었고, 몇몇은 고통의 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 파랑도 있었다. 그간의 일들에 대한 자세한 설명 없이도 어떤 시간을 보냈는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그곳에서 우리 세 가족은 서로의 몸을 달래며 한 동안 머물러 있었다. 그때도 지구 상에서 가장 큰 동물 들은 우리에게 모습을 드러내며 뽐내고 있었다. 손을 내밀면 닿을 정도로 가까이 그들이 숨 쉬고 있었지만 이미 우린 그것을 느끼기엔 너무 많이 와있었다.


고래는 계속 나왔지만


아들이 잠이 들려고 하자 우리 세 가족은 실내 좌석으로 돌아왔다. 아들은 편안하게 두 발 뻗고 잠에 빠졌고, 파랑은 아예 옷을 뒤집어쓰고 엎드렸다. 멀미약을 먹고 조금 나아진 나는 애써 정신을 차리고 창밖의 고래를 바라봤다. 선장님의 방송은 끊임없이 방향을 가리켰다. 3시, 1시, 12시, 9시,... 가끔 우리 창문 방향이 흘러나오면 파랑은 이따금 고개를 들어 창밖을 바라보았지만 대부분 조금씩 늦었다. 바다 거북이 나타났다는 방송도 나왔지만 우린 움직일 수 없었다. 마치 가위에 눌려 정신이 멀쩡한 상황에서 손가락 하나 꿈쩍할 수 없는 것과 같았다. 그러는 동안 점심 식사가 나왔다. 언제 우리 테이블에 누가 가져다 놓았는지도 몰랐는데 우리 눈앞에 나타났다. 하지만 곧 사라졌다. 지나가던 승무원이 우리 가족 상태를 보고는 냉장고에 넣어두겠다고 한 것이다. 고맙다는 인사도 겨우 하고는 우리는 남은 시간을 보냈다.


고래고 뭐고 일단 살자


그 1시간 남짓한 멀미와 싸우는 시간이 고래들의 응원을 받으며 드디어 끝이 났다. 다시 잔잔한 바다로 배는 들어왔고 우리는 헤어진 고래를 아쉬워하기보다는 더 먼저 헤어졌던 단단한 땅을 그리워했다. 곧 ‘침몰하는 타이타닉’의 모든 것을 포기했었던 사람들의 표정이 땅을 밟는 순간 즐거운 여행객으로 돌아왔다. 2시가 넘은 시간이었지만 우리는 배가 고프지 않았다. 다시 만나지 못할 선장과 승무원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전했다. 그 인사가 고래를 보게 해 줘서가 아니라 무사히 돌아오게 해 줘서에 가깝다는 생각을 했다.




편안했던 숙소와 쏘쏘 했던 저녁


아주 가까운 곳에 있는 미리 예약해둔 숙소로 향했다. 오래돼 보이는 저택이 눈에 들어왔고 친절만 주인 할머니의 안내로 방에 들어섰다. 우리가 아는 일상과 가까워서 그랬는지 모든 게 만족스럽고 좋았다.



Ainslie Manor Bed & Breakfast

42 Steven St, Redcliffe QLD 4020

https://g.page/ainslie-manor-bed-breakfast?share


배에서 챙겨준 점심 도시락을 꺼내서 테라스에 앉아서 먹었다. 맛있었다. 사실 이 여행에서 최고 맛있었던 식사이기도 했다. 그리고 몸과 마음을 달랠 시간이 필요했던 우리는 아주 편안하게 몇 시간을 쉬었다. 넷플릭스, 독서 등 각자의 취향에 맞춰 어두워질 때까지 늘어졌다.



그날의 대미를 장식하기 위해 저녁 식사 장소를 파랑이 골랐다. 아침 멀미의 여파로 차를 타고 멀리 갈 수는 없었다. 다시 배를 탔던 그 거리로 향했다. 우리가 갈 식당은 겉에서 보기에 예뻤고 맛집답게 사람이 많았다. 안쪽 자리는 예약을 만석이었고 외부 자리에 앉게 되었다. 많이 배가 고프지 않은 탓이었는지 음식 맛은 그저 그랬다. 생각해보니 이곳도 관광객들이 휴가 철마다 찾는 한철 장사를 하는 곳이었다. 엄청난 가성비의 맛집을 기대한 것이 잘못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숙소에 도착해서 다 같이 영화 보며 잠이 들었다. 가장 멀쩡했던 아들이 끝까지 보고 잠들었다고 한다.



The Rustic Olive Italian Kitchen

79 Redcliffe Parade, Redcliffe QLD 4020

https://goo.gl/maps/i3Ly57Yr4cmL4yhE8




다음날 아침과 쇼핑몰


푹 자고 일어나서 숙소에서 제공하는 아침을 가볍게 먹었다. 토스트, 시리얼, 요거트, 우유, 주스 등 기본적인 식사였다. 체크 아웃 후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곳을 향했다. 커다란 대형 쇼핑몰, 많은 가게가 있는 편안한 그곳이었다. 필요한 물품을 잔뜩 사서 허기진 마음을 채우듯이 차의 빈 공간을 가득 채웠다. 점심을 먹을 몸과 마음의 여유가 없었기에 집으로 바로 향했다. 돌아보니 맛있는 여행이 아니었기에 집에서 밥을 먹고 싶었던 것 같다. 곧 우린 집에 도착했고 매번 느끼는 감정을 다시 한번 느꼈다. 와~ 우리 집이 이렇게 좋았구나! 흔들리지 않고 맛있는 음식이 있는 이곳이 천국이었다.




후기와 팁


분명 고래를 보는 것은 일생에 한 번쯤 꼭 하면 좋을 경험이다. 이를 좀 더 편안하게 즐기려면 꼭 2층 덜 흔들리는 VIP석을 예매하길 권한다. 그리고 멀미약을 승무원이 주면 무조건 먹자. 멀미에 장사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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