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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Joon Sep 22. 2021

아이는 잘 크는 데 아빠가 안 크네

이별하고 싶은 분노와 욱

내 기억이 맞다면 오랜만이 맞았다. 한동안 이럴 일 없이 잠잠했었다. 내가 잘해온 건지 주변이 도운 것인지 모르겠지만. 지난 일주일을 돌아보니 많이도 버럭 거렸다. 그럴듯한 이유는 늘 존재했다. 차에서 하지 말아야 할 장난을 쳐서, 아침을 안 먹고 늦장 부려서, 저녁을 안 먹고 떠들고만 있어서, 신발 속 모래를 차고에 쏟고 다시 손으로 만져서. 순간의 분노는 잠시도 날 가만두지 않았다. 아이의 입장을 들어주는 것도 잠시 멈추는 것도 어려웠다. 시간이 지나 반복적으로 후회하고 사과하고 반성하는 일은 고정 패턴이다. 같은 해가 떠 있는 하루에도 여러 번 벌어지는 게 어색하지 않다. 이러지 말아야지 하는 다짐은 선거 후보의 '열심히 하겠습니다!'만도 못했다.


한 방 크게 맞은 날이 있었다. 장면은 우리의 주 전쟁터 '밥 먹는 시간'. 놀러 온 옆집 누나와 아들에게 점심을 차려 주었다. 놀다가 갑자기 먹자고 하면 멈추기를 어려워하는 아들을 위해 1시간, 30분, 10분, 5분 전마다 알려주었다. 드디어 0분이 되었다. '아들 이제 밥 먹자~' 딱 그 시간을 기다렸다는 듯이 소파에 등을 돌리고 누워서 지금은 안된다고 했다. 이게 또 무슨 일일까 싶어서 벌써부터 답답해지려는 가슴을 누르고 다가갔다. 손에 3X3 큐브를 쥐고 애를 쓰고 있었다. 밥 먹고 난 뒤에 하자고 타일렀다. 울상이 된 아들은 지금 당장 해야 한다고 했다. 참고 조금만 더 하고 와달라고 했다. 식탁에서 누나와 마주 앉아 잠깐 기다려 주었다. 식어가는 밥과 국을 보다가 다시 말했다. '모두 기다리니 이제 와서 먹으면 좋겠어.' 아들은 그럴 수 없다고 했다. 내 한계는 거기까지였다.


이해할 수가 없었다. 밥 먹는 시간에 다른 것을 멈출 수 없는 게. 처음이 아니고 늘 밥 먹는 시간이 되면 조금이라도 늦추려고 한다. 목소리가 높아지고 당장 자리에 앉기를 강요했다. 지금 오지 않을 거면 먹지 않아도 좋다고 협박했다. 그제야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자리에 억지로 앉았다. 이번에는 어떤 사정이길래 또 그러는지 궁금했다. 묻고 또 물었으나 한 마디도 대답하지 않았다. 그때 옆에 있던 한 살 많은 누나가 조용히 말했다. 내가 너무 엄격한 태도로 대해서 아들이 아무 말도 못 하는 것 같다고. 부끄러움과 당황으로 온몸에 식은땀이 흘렀다. 곧바로 '맞아.'라고 하릴없는 인정을 했다. 그리고는 그 식사자리에서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두 어린 친구는 제 몫의 양을 야무지게 먹고 떠났다.


시간이 흐른 뒤 아들과 내가 서로 가라앉고 난 뒤 말을 나눴다. 아들은 사정이 있었다. 나름의 방식으로 3X3 큐브를 맞춰 놓았었는데 그걸 누나가 모르고 이리저리 돌려두었던 것이다. 놀러 와서 같이 가지고 노는 게 당연한 것을 이해했으나 속상했었다고 한다. 그래서 원래의 상태로 바로 돌려놓고 싶었다고 한다. 난 아들이 속상해하는 상태인 줄도 몰랐다. 그저 또 밥 먹기 싫어서 만들어 낸 색다른 핑계로만 알고 화가 났었다. 설명받지 못해서 욱했다고 합리화 하기에는 설명할 기회를 제대로 주지 못했다. 전하고 싶은 일이나 감정이 생기면 언제든 이야기해달라는 내 말을 내가 지키지 못하고 있었다.


굳이 이렇게 펼쳐보지 않아도 크고 작은 이런 일은 계속된다. 좁고 얕은 내 마음 때문인 것도 안다. 아이가 크느라 나도 같이 커가고 있다고 착각을 한다. 아이가 커가는 노력만큼 나도 무언가 하지 않는다면 변할 이유가 없는데도. 이런 이야기를 남길 일이 없도록 나도 좀 크면 좋겠다. 아이 앞에 부끄러움보다는 이해를 쌓는 아빠가 되길 바란다.


절로 화가 나는 아들 방 / 체스 삼매경 / 충동 구매한 체스판






잘 크고 있는 아들



1. 완성된 대형 프로젝트

2주간 작업을 끝내고 실체를 드러냈다. 이름하여 바다 해양 디오라마. 파랑과 사전 기획부터 준비를 마친 뒤 실제 실행은 아들 혼자 학교에서 해냈다. 꼼꼼하게 배치하고 붙여둔 솜씨가 빛났다. 보지 않았지만 얼마나 집중해서 해냈는지 느낄 수 있었다.



2. 두 번째 선생님 인터뷰

굉장한 이야기가 많았다. 그저 놀랄 뿐이었다. 친구들에게 좋은 롤모델이라고 하셨다. 전방면에서 열심히 배우고 익히는 올라운더라 칭하셨고, 유머도 즐기며 남녀 친구 가리지 않고 잘 어울린다고 말씀하셨다. 인터뷰 마치고 나서 아들은 선생님께 수학 문제 선물을 받았다. 학기 마지막 날 감사 편지에 아들이 이렇게 적어 보냈었다. '어려운 수학 문제 내줘서 고마워요~' 인터뷰 중에 우리가 한 번 더 아들의 마음을 전했었다. 아들이 선생님이 내주는 고 난이도 수학 문제를 좋아하는 데 요즘 많이 안 주신다고 하더라 라고. 학생 하나하나 신경 써 주시는 모습에 다시 한번 놀라며 감사했다.



3. 직접 잡는 플레이 데이트

이젠 친구와 미리 약속을 척척 잡는다. 당일에 급하기 전하지 말아 달라는 이야기를 이해하고 전날 미리 알려준다. 그날이 되어 놀이터로 가면 나와 같은 사정으로 오게 된 친구 엄마를 만난다. 서로 사정을 알기에 어깨를 으쓱할 뿐이다. 짧고 굵게 놀고 돌아가는 친구와 아들은 바로 다음날 만날 것은 기약하고 돌아선다. 노는 게 제일 좋을 때다. 



4. 책을 읽어주는 아들

아들은 요즘 밤에 내게 책 읽어주는 재미에 빠졌다. 꽤 어렵고 글자가 많아 보이는 책을 한 번 다 읽더니 재밌다고 내게 들려주고 싶다고 해서 시작했다. 나름 연기도 넣어가며 읽어주는 데 듣고 있으면 흥미진진하다. 'ㄱㄴㄷ'도 몰랐던 그때를 돌아보면 기특하다. 여기까지 데려 온 내가 먼저 그렇고 즐기며 책을 읽는 아들이 다음으로 그렇다. 아들에겐 기특한 내가 없을지도 모른다. 나에겐 내가 먼저 더 기특한 마음처럼.


대형 프로젝트 완성 / 아들 자화상






2주 간 방학이 시작되었다. 시작과 동시에 2박 3일 뮤지컬 여행도 다녀왔고 옆집 누나도 놀러 왔다 갔다. 동생도 놀러 왔었으며 추석맞이 윷놀이 잔치도 다녀왔다. 아직도 남은 스케줄이 가득가득하다. 우리 집으로 와서 한 밤 자며 놀다가는 형님들과 친구가 있고 올해 첫 친구 생일파티도 있다. 놀고 놀고 또 노는 아들은 신이 난다. 요즘 괜히 살이 좀 빠진 느낌이다. 이제 곧 일어나 어제 하나도 못 논 것처럼 또 놀테다. 방학 땐 나도 괜히 신나는 기분이다. 기운찬 친구와 가까이 지내면 나도 힘이 난다. 오늘도 내일도 함께 크며 살아가기를.


* 매일 쓰는 진짜 일기도 아니고, 그렇다고 고급 정보가 있지도 않은 아이와 지내면서 겪는 온갖 후회와 반성의 잡생각 뭉탱이 '육아 생존기'를 애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빠로서 기록하는 글을 쓰고 나면 자주 듣는 말이 있어요. 어떻게 아빠가 이런 육아 일기를 쓸 수 있냐고요. 부럽고 신기하다고요. 정말 그런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전혀 관심 없던 전과 달라진 건 사실입니다. 그 변화의 일대기는 제 책 <아빠 육아 업데이트>에 담겨있습니다. 변화를 원하신다면 권해봅니다. 또 누가 변할지 모르니까요.

※ 2022 세종도서 교양부문 선정 『아빠 육아 업데이트』를 바로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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