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난꾸러기 배틀
아들은 나를 2가지 버전으로 부른다. 하나는 필요할 때 찾는 '아빠~', 또 하나는 조용히 해달라는 '아빠!' 후자의 부름은 원래 없었는데 최근 급속도로 늘고 있다. 이유는 내가 장난꾸러기라서 그렇다. 장난을 정말 좋아해서 시도 때도 없이 친다. 제일 가까이 있는 사람이 파랑이었는데 그녀는 이제 일일이 반응하지 하지 않는다. 원래도 그녀는 내 유머에 가장 웃지 않는 사람이었고 뻔한 레퍼토리가 이젠 식상해진 것이다. 반응이 없는 자에게는 장난이 통하지 않고 나도 재미가 없다. 이제 붙어 있는 사람이 아들인데 최근까지는 그 신선함이 좋아서 신나게 즐기고 있다. 주로 이런 식이다. (허무&황당 주의) 간식을 다 먹기도 전에 '맛있지?', 게임 하기도 전에 '재밌지?', 만화 보기도 전에 '재밌지?' 그때마다 아직 즐기기도 전인데 끝난 척 물어보는 아빠에게 아들은 '쫌!' 하는 의미로 '아빠!'라고 입술을 굳게 붙이며 말한다. 서로 좋지 못하고 나만 재밌으면 장난이 아니지만 그 모습이 괜히 좋아서 멈추지 못한다.
내 장난은 점점 더 유치하게 흘러한다. 우리는 하루를 서로의 향기를 맡으며 시작하는데 내가 가끔 '킁킁'거리며 '음... 이건 좀 좋지 않은데.' 하면, 아들도 바로 '아빠도 땀 냄새나거든!' 이런다. 그 덕분인지 어려서는 말이 없던 요즘 방귀, 응아 냄새가 나면 아주 난리를 피운다. '아빠! 살려줘~' 라며. 내가 네 것을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지금까지도 열심히 뒤처리를 해주고 있건만... 가족들의 엉덩이를 귀엽다고 만지며 인사하는 게 버릇이다. 아들에겐 이게 때리는 것으로 보였는지 내게 와서 자주 철썩철썩거린다. 점점 크면서 손이 매워져서 이제는 좀 아프다. 아프다고 그러면 아빠도 그러잖아라고 하니 할 말이 없다. 나는 그 버릇이 더 오래되어 당장 고쳐지지가 않는다.
아들과 나만의 특별한 의식 같은 장난도 있다. 공중 화장실에 가면 꼭 손 비누 냄새를 함께 맡아본다. 향기를 좋아하는 아들은 이건 어떤 것이며 저건 어떤 것이라며 함께 맡아 보길 원한다. 옆에서 얘네가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황당해하며 바라보는 분들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냉정하게 '그만하고 손 씻는데 집중해!'라고 하진 않는다. 어쩐지 그러기가 싫다. 뭔가 아들과 나만의 비밀 같아서 계속 이러고 싶은 마음이다. 아들이 내게 다가와 손에 묻은 비누 향기를 맡으라며 초롱 거리는 눈망울을 보이는 데 어찌 떨쳐내랴.
최근엔 좀 걱정이 되었다. 세 가족이 차를 타고 이동 중에 아들 친구의 엄마 '사라'라는 분에 대해 말이 나왔다. 그 친구의 생일 파티에 가는 길이어서 이름을 기억하기 위해서였다. 갑자기 아들이 뜬금포를 날렸다. '사라? 나 여기서 1년 더 살아?' 아들의 표정을 살피니 명확하게 의도한 아재 개그였다. 아들아... 벌써부터 그러면 큰일 나. 아빠처럼 유머의 신선한 감각을 놓치면 안 된단다. 걱정이 커진 나는 그 이후로도 장난을 멈추지 못한다. 아들의 미래를 위해서. 덕분에 아들의 '아빠!'는 하루에도 여러 번 울려 퍼진다.
아들의 방학은 화려했다. 본인도 아주 만족스럽다. 결국 끝까지 고민하던 친한 여자 친구의 생일파티에 가기로 마음먹었다. 커다란 실내에서 체육 활동을 하며 즐기는 곳이었다. 아들은 친구들과 놀고 우린 좀 떨어져서 음식을 먹으며 쉬다 왔다. 다녀오길 잘했다는 아들의 후기다. 아들의 첫 슬립오버가 훌륭하게 마무리되었다. 아들과 제일 친한 반 친구가 우리 집에 와서 하룻밤 자며 놀다 갔다. 1분 1초를 허투루 쓰지 않고 불태우며 놀았다. 심지어 밤 10시까지 놀다가 잤다. 뭐가 그리 할 말이 많고 장난칠 게 많은지. 하하. 바로 연이어 두 번째 슬립오버도 이어졌다. 이번엔 교회 형님들이 와서 놀고 갔다. 한국 형아들과의 놀이는 또 다른 방식으로 흘러갔다. 이 또한 잠시도 쉴틈 없이 움직이며 시간을 보냈다. 역시 또래와 노는 게 최고의 놀이인가 싶었다. 이렇게 꽉 찬 방학이 끝났나 싶었는데 월요일이 호주 휴일이었다. 하루가 더 생긴 아들은 또 하루를 불태웠다.
아들 곁에 붙어 있던 나에게도 몇몇 일들이 있었다. 첫 책이 세상에 나온 것을 기념한 출간 기념 파티를 파랑과 아들이 열어줬다. 두 분이 없었다면 없었을 그 책의 탄생을 축하하는 자리에 걸맞은 호스트였다. 고맙습니다~! 저만 더 잘하면 되는 거 맞죠? 하하. 코로나 백신 2차 접종도 맞았다. 아직까지 몸이 완전하지 않다. 시간이 가면 나아질 것으로 믿으며 지금의 건강함에 감사하다. 그리고 드디어 아들의 개학이다. 첫날 등굣길에 아들이 걱정이 많았다. '큰일이네. 방학 때 뭐 했는지 써야 하는데 한 게 너무 많아!' 이 정도면 후회 없는 방학을 만들어 주지 않았나 싶다. 올해 마지막 학교 생활을 더 많은 추억으로 새기기를 바라며.
* 매일 쓰는 진짜 일기도 아니고, 그렇다고 고급 정보가 있지도 않은 아이와 지내면서 겪는 온갖 후회와 반성의 잡생각 뭉탱이 '육아 생존기'를 애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빠로서 기록하는 글을 쓰고 나면 자주 듣는 말이 있어요. 어떻게 아빠가 이런 육아 일기를 쓸 수 있냐고요. 부럽고 신기하다고요. 정말 그런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전혀 관심 없던 전과 달라진 건 사실입니다. 그 변화의 일대기는 제 책 <아빠 육아 업데이트>에 담겨있습니다. 변화를 원하신다면 권해봅니다. 또 누가 변할지 모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