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이런 사람이 있다
'뭐 하시는 분이세요?'라는 질문에 '일 쉬면서 애 봐요.'라고 대답하며 지낸다. 그러면 대부분 여성분들은 '아이가 참 좋겠어요.'라고 한다. 남성분들은 좀 다르게 움찔한다. 바로 말을 잇지 못하고 당황하기도 하고 뭔가 잘못 들은 것처럼 내 눈을 뚫어져라 쳐다보기도 한다. 처음엔 뭐가 이렇게 다를까 싶었는데 이젠 그러려니 한다. 많이 익숙해지기도 했고 내가 변하기 전을 떠올려 보기도 하면서 이해하고자 한다. 최근엔 좀 색다른 반응을 접했다. '와, 나도 집에서 애보고 살림하고 싶다. 얼마나 편할까?' 이건 확실한 빈정거림이었다. 진짜로 부러워하는 속내가 아니었다. 어쩌다 팔자 좋게 그렇게 놀고 자빠져있냐는 비하를 꾹꾹 눌러 담은 말이었다. 나보다 훨씬 젊은 친구의 말이라서 더욱 놀랐다. 요즘엔 꼰대가 나이 상관없이 출몰한다더니 정말 그랬다. 그가 나를 신기해하는 만큼 나도 그를 수십 년 만에 발견한 멸종된 종처럼 놀랍게 여겼다.
육아와 가사를 세상에서 가장 편한 일로 생각하는 남자들. 이러니 육아휴직을 하는 동료들이 마냥 부러워 보이는 것이다. 집안일하고 아이를 길러내는 정성과 노력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해보지 않았고 신경 쓰지 않았기에 모른다. 그래서 집에 있는 사람은 맨날 편하게 노는 사람으로 여긴다. 나도 좀 일 쉬고 집에서 몸과 마음 편하게 놀아보자고 투덜댄다. 물론 밖에서 남의 돈 받으려고 하는 일이 쉽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건 그거대로 스트레스가 넘치는 일인 것을 잘 안다. 어떤 일이든 마냥 쉬운 일은 없다. 둘 다 해본 입장으로 명확하게 말할 수 있다. 단지 한쪽만 경험하고 반대쪽을 마음껏 폄하하는 짓은 하지 말아야 한다. 원래 사람은 자기가 처해있는 상황이 제일 힘들다. 군대든 직장이든 어느 꿀보직으로 있어도 자신이 제일 힘들다고 하는 게 우리다.
주부로서 지내는 시간이 단순히 물리적, 정신적으로 괴로워서 힘든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자기 공간에서 남들 눈치 안 보고 편하게 지낼 수 있으니 직장 생활보다 나은 점이 분명히 있다. 아마 위의 젊은 꼰대도 그 점이 도드라져서 부럽다고 이야기했으리라. 사람마다 적성이 다르니 누구는 밖에서 부대끼며 일하기 좋아할 수 있고 누구는 안에서 조용히 챙겨가길 좋아할 수 있다. 어느 일이 객관적으로 더 쉽네 마네는 결국 그 일에 대한 가치를 어떻게 두냐의 차이로 결정된다. 세상에 없으면 안 되고 빠질 수 없는 일이 가정살림과 육아다. 그런데 이 '일'에는 직장인의 '일'과 명확한 차이가 있다. 바로 눈에 보이는 대가나 보수가 없다. 누구도 월급을 주지 않는다. 물론 이를 넘어서고도 남는 보람과 뿌듯함이 있다. 집안을 돌아가게 만들고 아이를 자라게 하는 역할은 중요하고 귀중하다. 그 차이를 뼈저리게 느끼는 순간은 처음의 그와 같은 사람의 반응이다. '하는 거 없이 탱자탱자 노는 주제에 그것도 일이라고 말할 수 있나?' 주부의 힘든 점은 이런 쓸모없음을 기반으로 던지는 무례한 시선과 압박의 견딤에 있다. 보수가 없는 일이라서 그 가치도 함께 없다고 여기는 주위 분위기를 이겨내야 한다.
처음의 그는 그것을 모르고 말했다. 지금 하는 일에 대한 물리적, 정신적 힘듦이 집안일과 육아의 그것보다 커 보이기 때문에 그런 말을 던졌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그에겐 실제로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그는 이것을 놓쳤다. 바로 당신이 쉽게 뱉어낸 그런 말. 본인의 일을 하찮게 여기는 사람을 견뎌야 하는 점은 생각지 못했다. 시도 때도 없이 들어오는 '놀면서 애 보니 좋겠다.'라는 지뢰가 사방에 깔려있는 무거운 안갯속에서 살아야 한다. 주부에게는 이게 포함되어 있음을 그는 모른다. 우리가 일을 할 때 다른 게 힘든 게 아니다. 내 노력과 정성을 몰라줄 때, 인정받지 못했을 때, 무시당했을 때. 바로 그때 무너진다. 막말로 밖에서 하는 일은 돈이라는 숫자라도 남는다. 거지 같아서 못해 먹겠어도 그걸로 밥이라도 먹을 수 있으니 욕하고 버틴다. 주부는 그것도 없다. 아니 거기에 더해 살을 후벼 파는 '너만 편하네?'라는 송곳 질문이 들어온다.
물론 그도 직접 해보면 이해할지도 모른다. 지금은 아무 경험이 없어서 무지의 상태로 던지는 말일 테니. 나의 놀람은 아직도 여전히 이런 의식이 많구나라는 데 있다. 내가 역할을 바꿔 살다 보니 세상이 다 변한 것처럼 느껴졌다. 내 일이 살림과 육아로 바뀌어도 충분히 보람과 성취를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중간중간 이런 깔아뭉개는 사람들을 만나고 나면 흔들린다. 이젠 나아질 법도 한데 가끔씩 '그러게. 나 혼자 편하게 뭐 하는 거지?'라며 돌아본다. 결국 주부로서의 고통은 하는 일에 있지 않다. 그 가치를 인정해주지 않는 사람들 속에서 꿋꿋이 맡은 바를 해내는 어려움에 있다. 어디에나 필요하고 누구나 하고 있다는 생각에 쉽게 본다. 이상한 건 직접 하는 사람이 아닌 안 하는 사람이 꼭 뭐라고 한다. 장담컨대 그들은 그들이 던지는 말 한마디와 눈초리를 조금도 견디지 못할 것이다. 밖에서 힘들게 일해 버는 돈의 가치를 가장 크게 두고 있기 때문에 본인이 무보수의 자리에서 받는 빈정거림을 버티기 어려울 테다.
이런 사람들은 키워주신 부모, 아마도 어머니의 고생과 정성은 어떻게 여길까? 어려운 것 없이 편하게 생각하는 만큼 혼자 저절로 컸다고 여기지 않을까? 집에 있는 사람은 밖에 나가 사회 활동도 안 하고 맨날 늘어져 논다고 볼 게 분명하다. 그 생각과 시선이 지금 커서도 이어지고 있는 것을 보면 확실하다. 이는 부모에 대한 불효에서 끝나지 않는다. 나중에 아내가 혹시라도 전업주부가 된다면 어떨까? 내게 건넨 그 표정과 말투로 매일 던지지 않을까? '넌 집에서 애 보고 밥 하느라 편하겠다. 난 밖에서 개고생 하는데.' 이게 과거의 일이 아닌 예정된 미래의 일이라고 하니 소름이 돋는다. 이 사회는 어쩌다 이런 사람을 만들어냈을까? 애 낳고 키우는 게 세상에서 가장 쉽고 가치 없는 일이라고 인식하는 괴물을 탄생시켰을까?
어디선가 아이와 씨름하고 있는 주부를 보면 잠시 멈춰보자. 방금 안에서 솟아난 그 생각이 내게 돌아온다고 입장을 바꿔보자. '와~ 나도 편하게 애나 보며 지내고 싶다!' 앞에 있는 그 사람은 당신이 던지는 가시 돋친 말을 수도 없이 견디며 지내온 강하고 귀한 사람이다. 집안을 돌아가게 만드는 일의 특징은 편한 옷차림과 부스스한 머리 모양에 있지 않다. 당신이 하려던 그 깎아내림에 대항하고 버티면서도 꼭 필요한 일을 해나가겠다는 뚝심에 있다. 우리는 모두 그런 분들의 견딤으로 이 세상에 나와 자라 이 자리에 있다.
* 주부를 집에서 놀아 재끼는 사람으로 보는 시선을 걷어내기 위해 필요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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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제가 쓴 책이 나왔습니다. 애만 만들고 아빠인 척하던 제가 변해가는 이야기입니다. 아닌 척 모른 척했지만 저도 그저 엄마가 애를 키우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저 같은 사람이 많아져서 함께하는 육아가 당연해지는 날을 꿈 꿉니다. 책 표지에 적어 둔 것처럼 인세 수익은 모두 필요한 아이들에게 기부합니다. 다른 욕심 없이 오로지 더 많은 이들에게 전해져서 세상이 변하길 바랍니다. 아이가 있거나 아직 없거나 다 컸거나 심지어 없을 예정이어도 읽으면 좋습니다. 엄마 아빠가 함께하는 육아를 아이와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이해해야만 바뀌기 때문입니다. 관심과 사랑 부탁드립니다. 필요한 분들에게 전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 순간을 나눌 수 있어서 기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