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과 만남
울리지 않던 단톡방이 울리면 마음이 좋지 않다. 평소에는 따로 연락을 하지 않지만 과거의 시간에 함께 묶여 있는 그곳에 알려질 소식은 하나뿐이다. 경조사. 정확히는 조사다. 며칠 전에 정확히 그런 일이 벌어졌다. 이제는 서로의 얼굴과 이름이 희미해져 가는 그곳에 새로운 메시지가 올라왔다. 그 방에 들어가며 생각해보니 가장 최근에 그곳에 연락을 던졌던 사람은 나였다. 작년 말 아버지의 소천 소식을 전했었다. 아직 새로운 소식을 읽을 마음의 준비가 되기도 전에 아무리 오래 들어도 익숙지 않은 말이 채팅창에 솟구쳤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지레짐작으로, 아니 당연히 어느 지인의 부모님께서 하늘나라에 가셨구나 싶었다. 아직 대낮이었지만 내용을 확인하자마자 갑자기 주변이 어두워졌다.
배우자
순간 내가 어떤 표정을 지으며 휘청거렸는지 모르겠다. 잠시 균형을 잡지 못하고 주변 아무것에나 기대 다시 섰다. 그러는 동안에도 한 글자도 빠짐없이 똑같은 말들이 계속 복사되듯 이어졌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못 볼 것을 본 것처럼 그 방을 뛰쳐나왔다.
앞에 있던 거울을 바라보았다. 방금 운동을 마친 후 샤워 하기 직전의 알몸이었다. 눈에 보이는 맨살과 꿈틀 되며 움직이는 근육을 살폈다. 거울 안에 들어있는 그것들이 정말 살아 있는 건지 유심히 눈으로 좇았다. 쓸데없이 그 짓을 몇 번을 반복하다가 샤워기 아래 서서 물을 틀었다. 평소보다 오래 씻었다. 그 친구, 친구의 배우자, 나, 내 배우자, 부모님, 부모님의 배우자. 따로 머리를 굴린 것은 아니었지만 비슷한 생각들이 계속 뽑혀 나왔다.
물을 끄고 나와 다시 거울 앞에 섰다. 아까와 다름없는 맨몸을 보며 조금 가라앉았음을 느꼈다. 머리와 마음이 식었는지 멀리 있던 이성이 찾아왔다. '기껏해야 내 또래일 텐데, 이렇게나 젊은데...' 그러면서 순간 내 나이가 스쳐갔다. 모두가 함께 들어있던 그 단체방이 향했던 시간은 20대의 우리였다. 지금 우리의 시간은 그렇지 않았다. 지금도 젊지만 그때의 파릇한 그것은 분명히 아니었다. 다시 정신을 차려보니 혼자 남은 그 친구가 떠올랐다. 개인 채팅창을 열었다. 잘 보지도 않던 남의 프로필 사진을 열심히 넘겨봤다. 다행히 없었다. '아이' 사진이 어디에도 없었다. 두 명의 부부를 보여주는 사진들 뿐이었다. 그리곤 우리의 마지막 대화를 들여다봤다. 내 아버지 조문을 못해 미안하다며 집에 걱정거리가 있다는 친구의 인사였다. 조금 더 위로 올려 보니 내가 호주로 떠나기 전에 나눈 말들이 있었다. 그때도 인사를 나누지 못해 미안해했고 집에 일이 있다는 말이 남아있었다. 그게 벌써 2년 전인데 그동안 그렇게 오래 끙끙 싸매고 있었던 말인가...
몸이 식어 소름이 돋았다. 옷을 챙겨 입고 거실로 향했다. 씻으러 가기 전과 똑같이 그대로 아내가 앉아 있었다. 내 표정을 본 아내는 바로 무슨 일이냐고 놀라며 물었다. 옆에 앉아 이야기를 전했다. 그녀가 내 손을 잡아주었다. 식은 내 몸과 달리 따뜻했다. 우린 서로의 온기를 괜스레 확인했다. 그날 아침에 나눈 이렇고 저렇고 툭툭대며 했던 이야기들이 다 쓸데없어졌다. 건강만 하자고 새해 아침에나 나눌 덕담을 주고받았다.
다시 친구가 떠올라 폰을 켰다. 오래된 단톡 방에는 여전히 찍어낸 듯한 부고 답장이 꼬리를 물고 있었다. 그곳에 같은 말을 나까지 남기기 싫어 더 이상 쳐다보지 않았다. 그 방을 나와 친구와 단 둘이 있는 방으로 향했다. 오래 고민했지만 결국 짧게 친구에게 말을 전하고 폰을 껐다. 그리고 그날 남은 하루를 평소처럼 보냈다.
자기 전 아들과 함께 기도를 했다. 전날과 같은 기도 말속에 그 친구와 그 친구 배우자를 위한 말을 섞었다. 다 듣고 난 아들이 물었다. 누가 하늘나라에 간 거냐고. 간단히 답하고는 누구나 이 세상을 떠난다는 진부한 이야기를 덧붙였다. 많이 들어 익숙한 아들은 별말 없이 눈을 감았다. 괜히 반응 없는 반응에 겸연쩍어진 나도 곧 눈을 감았다. 이번엔 생뚱맞은 생각이 튀어나왔다. 그날 저녁 다른 단톡방에서는 경사 소식이 올라왔었다. 첫 아이가 태어났다는 기쁜 이야기였다. 어느 시절 어느 곳에서는 사람이 떠나면 다시 다른 사람으로 태어난다고 믿었다고 한다. 오늘 떠난 그 사람과 오늘 태어난 그 사람. 그날 하루 종일 가지고 있던 살아있다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고민. 풀리지 않는 마음에 괜히 그 사람들을 연결 지어 버리고 잠들었다.
어제 하루는 몸과 마음이 좀 그랬습니다. 특별한 일이 없다면 매일 씁니다. 그렇지 못하다면 무슨 일이 있나 보다 해주시면 됩니다. 쓰고 보니 괜히 무서운 말 같습니다. 하하. 모두 어디서나 건강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