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스 기타 입문
난 진중함과 거리가 멀다. 가볍고 무게감이 없다. 점잖고 중심을 지키는 사람의 모습과는 반대의 삶을 산다. 천성을 잘 알고 있고 또한 바라는 바가 그렇기에 내게 어울리는 모습으로 지낸다. 최대한 편하게 때론 날아갈 듯 나풀대며 흘러간다. 이런 나와 완전히 반대편 극단에 있는 모습을 요구받게 되어 혼란스럽다. 얼마 전부터 맡은 이 역할은 그동안, 그리고 앞으로도 살아갈 나와 많이 다르다. 한 번도 입어보지 못한 옷을 입는 기분은 어색하다. 어딘가의 맨 아래에서 전체를 지탱하는 일은 해본 적이 없는 낯설음이다. 내 자리가 아닌 자리에 서 있게 된 지 한 달이 훌쩍 지나버렸다.
일주일마다 공개된 자리에 오를 무대를 준비한다. 곡이 정해지면 익숙해질 때까지 계속 돌려가며 듣는다. 어느 순간 저절로 흥얼거리게 되면 그제야 새로 만난 파트너를 꺼내 잡는다. 악보를 뚫어져라 살펴보며 하나씩 연주할 음을 정한다. 어쿠스틱 기타를 치던 때와는 달리 각 코드의 손가락 조합은 관심사가 아니다. 오로지 난 하나만 집중하면 된다. 바로 '근음', 해당 코드의 기본이자 중심이 되는 그 하나의 음만을 정확히 소리 내는 것이 내 할 일이다. 준비가 끝나면 노래를 틀어놓고 내가 낼 소리가 어울리는지 연주해본다. 시작부터 끝까지 전체적으로 깔려서 기반을 잡아주는 소리를 만들어 내기 위해 애를 쓴다. 그렇게 하루하루 조금씩 음 하나하나를 몸에 박아 넣고 외워간다. 합주 날이 되면 연습한 그대로 충분히 저 밑으로 내려가서 아래를 가득 채운다. 단단한 밑받침이 되는 그 느낌은 매주 나를 새로운 세계로 인도한다. 그동안 해보지 못한 이 기분은 묘한 짜릿함을 준다.
혹시 기타 좋아하세요?
주장 여동생의 이런 애끓는 권유는 아니었다. 주장의 직접적인 요청에 가까웠다. 어느 날 주일 목사님이 내게 건넨 찬양팀에서 기타 한 번 쳐보지 않겠냐는 질문으로 시작했다. 누군가 나를 찾으면 나를 알아준 고마운 마음에 반해 버선발로 달려 나가기에 냅다 수락했다. 기타라면 일 년 넘게 통기타를 즐기고 있었기에 바로 무대에 설 수도 있다고 자신하고 있었다. 그러나... 삶은 언제나 우리에게 변화구를 던지기에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베이스 기타요? 통기타랑 거의 비슷하겠죠?' 아니었다. 완전히 새로운 악기였다. 첫 만남 때 그 육중함에 감탄했던 순간이 떠오른다. 줄이 굵고 마디가 넓은 베이스 위에서 작고 뻣뻣한 내 손가락은 민망하게 꾸물거렸다. 왜 나는 화면 속의 그들처럼 유연하게 넘나들지 못하고 찢어질 듯 아픈 고통만을 느껴야 하는지 안타까웠다. 남들이 하면 나도 할 수 있다는 어지간한 자신감으로 똘똘 뭉쳐있는 나는 오랜만에 허탈했다. '하아... 이거 괜히 한다고 했나.'
애쓰고 답답해하는 시간이 쌓여갔다. 혼자서는 답이 없겠다 싶어서 준비는 안되었지만 함께 연습하고 싶다고 전했다. 첫 합주 연습에 참여했다. 어찌 된 일인지 거기서 끝나지 않고 본 무대에 곧장 오르게 되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모든 게 끝나 있었다. 갑작스러운 내 모습을 발견한 분들의 칭찬이 이어졌다. 없던 베이스 음이 갑자기 '부웅'하고 들어와서 놀랐다고 했다. 나도 딱 거기까지 전율을 느꼈던 게 기억났다. '봉사'라는 특성을 띄기에 어지간하면 모두 잘한다 잘한다 해주시는 것을 감안하고 받아들였다. 응원과 따뜻한 말들로 어리벙벙했던 첫 무대를 마쳤다. 그날의 저릿한 손가락의 아픔은 잠들 때까지 남아서 계속 그 순간으로 나를 되돌려 놓았다. 묵직하게 공간을 채우는 순간의 울림은 쉽게 가슴을 떠나지 못했다.
처음엔 통기타와 다음엔 건반, 그리고 이젠 드럼까지. 함께하는 악기가 많아질수록 소리는 풍성해졌다. 다양해질수록 그 안에서 각자의 소리가 해야 할 역할은 더욱 명확해졌다. 난 여전히 아래를 단단하게 채우며 흔들리지 않도록 힘을 쓴다. 처음의 일주일이 하나씩 늘어가면서 보다 다채로운 경험을 얻어갔다. 초심자의 행운을 벗어나 실수를 연거푸 하며 보다 더 많은 연습을 다짐하기도 했다. 통기타와는 다른 베이스의 타격감을 가미한 연주법도 배워 실전에 써봤다. 화면에 띄운 가사가 뻔히 보이는 데 왜 인도자가 다음 소절을 미리 외쳐주는지 이제야 알았다. 뒤에서 연주하는 나 같은 사람 들으라고 하는 거였다. 다음 부분 여기라고 집중하라고. 악보를 그대로 외워오는 나에게 쥐약인 연주 당일 갑자기 요구되는 음정과 박자의 변동도 견뎌내 보았다. '베이스 치는 분'이라는 소개가 세상에서 당장 사라져 버리고 싶을 만큼 창피하지만 또 듣다 보면 기분은 좋았다.
매주 반복되는 실전이 나를 키운다. 그동안 해왔던 모든 일이 그랬다. 결국 본 무대를 통해 실력이 늘었다. 백날 방구석에서 혼자 준비만 하다간 평생 뭐가 뭔지 알 수 없이 지내기 십상이다. 잘 되고 있는지, 맞게 가고 있는지 꺼내서 보여야 단련되고 나아진다. 남에게 평가받고 남과 비교하는 시간을 가지라는 말이 아니다. 진짜 무대에 섰을 때의 나를 스스로 보고 느껴야 한다. 무엇이 부족하고 무엇을 더 잘하고 싶은지 직접 판단하고 나아가야 한다. 그러려면 공개해야 한다. 글이든 운동이든 악기든 발표든 무엇이든. 난 그렇게 믿는다. 비록 그 순간순간이 괴롭고 비참하고 쓸쓸할 지라도. 더 잘하고 싶으면 그 방법밖에 없다.
든든한 뿌리가 되는 기분은 나쁘지 않다. 그동안 살아온 내 삶과 전혀 다른 모습이 신선하다. 무대에서는 내가 아닌 나로 지내다 내려온다. 익숙지 않은 옷을 입었다 벗었다 번거롭지만 변화의 즐거움이 더 크다. 혹시 또 모른다. 이렇게 안 하던 자리를 지켜 가다 보면 원래의 자리와 경계가 사라질지도. 어느 순간 헷갈려서 진짜 삶에서 누군가를 뒤에서 받쳐주고 싶을지도. 아빠로 작가로 연주자로 오고 가는 지금 묘한 생각도 떠오른다. 어쩌면 우리에게 '정말 나'라는 것이 딱 하나로 정해질 수 없는 것은 아닌지. 그때그때의 상황과 역할을 수행하고 그것이 모여서 나를 만드는 게 아닐지. '나는 원래 이래.'라는 말만큼 말이 안 되는 말은 없는 게 아닐까? 우린 그냥 순간순간이 그 자체이지 않을까? 깊은 아래의 음을 연주하는 그 순간 난 다른 나를 잊어버린다. 그 순간은 그때의 나일뿐이다.
베이스 기타를 라이브로 연주합니다... 는 아니고요. 하하. '꿈꾸고 기록하는 꿈푸언니'님의 <꿈터뷰>에 초청되어 인스타 라이브 방송을 하게 되었습니다. 돌아오는 일요일(11월 7일) 밤 9시(한국시간)에 인스타 꿈푸언니 계정(@ggum_pooh)에서 진행됩니다. 깜짝 놀랄 인연과 배경은 요기 공지 글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놀라운 책 <아빠 육아 업데이트>에 대한 내용을 포함해서 '지금 무슨 정신으로 살고 있나요?' 등 재밌는 수다를 나누게 될 거예요. 매일 어딘가에서 글만 써대는 제가 궁금하다면 그때 만나보아요! (참고로 인상이 참 무섭습니다. 첫인상은 언제나 나빴어요.) 저도 제가 그때 무슨 말을 할지 정말 궁금하답니다. 하하. 하나는 확실해요. 전 늘 머리를 거치지 않고 성대에서 바로 말을 한다는 평을 받아왔어요. 글은 그나마 한번 걸러졌는데 입에서 나오는 말은 거침이 없어서 저도 늘 신기해한답니다. 함께하는 시간을 원하는 분은 그때 만나요! 언제나 멀지 않은 곳에 머물러 주셔서 감사합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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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제가 쓴 책이 나왔습니다. 애만 만들고 아빠인 척하던 제가 변해가는 이야기입니다. 아닌 척 모른 척했지만 저도 그저 엄마가 애를 키우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저 같은 사람이 많아져서 함께하는 육아가 당연해지는 날을 꿈 꿉니다. 책 표지에 적어 둔 것처럼 인세 수익은 모두 필요한 아이들에게 기부합니다. 다른 욕심 없이 오로지 더 많은 이들에게 전해져서 세상이 변하길 바랍니다. 아이가 있거나 아직 없거나 다 컸거나 심지어 없을 예정이어도 읽으면 좋습니다. 엄마 아빠가 함께하는 육아를 아이와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이해해야만 바뀌기 때문입니다. 관심과 사랑 부탁드립니다. 필요한 분들에게 전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 순간을 나눌 수 있어서 기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