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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Joon Aug 22. 2021

그때까지 피할 수 없고 헤어질 수 없는

어릴 적 기억은 대부분 해맑고 행복한 기억뿐이다. 근심거리가 적었고 부족함이 없었다. 그저 아침에 깨어 자기 전까지 즐겁게 지내다 잠들면 그만이었다. 그중 기분이 지나치게 기분 나빴던 순간이 가끔 끼어있는데 이는 대부분 주말이었다. 놀다 지쳐 피곤해지는 오후가 되면 자리에 누워 휴식을 취하기도 했다. 종종 잠이 들어서 원치 않는 낮잠을 자버리는 경우가 있었다. 의도치 않은 낮잠을 자다 깨고 나면 그렇게 억울했다. 자고 나서 개운한 마음보다는 그 시간에 놀지 못한 서운함이 더 컸다. 조금만 버텼으면 밤에 어차피 잘 거였는데 중간에 날려버린 시간이 너무 아까웠다. 깨어있었다고 뭔가 특별한 것을 하진 않았겠지만 눈 뜨고 코 베인 것처럼 당한 기분이었다. 이렇게 '잠'은 내가 어떻게 손 쓰기 어려운 존재임을 일찍부터 깨달았다.






난 언제 어디서나 누우면 잘 수 있다. 흔히 말하는 머리만 닿으면 잘 수 있는 사람이다. 이미 익숙한 내 공간이 아니더라도 쉽게 잠든다. 환경이 바뀌는 여행이나 친척, 친구 집에서도 별 차이 없이 바로 잠든다. 자야겠다고 마음을 먹으면 바로 잠들고, 이게 아니라도 잠깐 누워볼까 해도 잠든다. 잠을 바로 못 드는 사람에겐 이게 건강한 표식이라서 부럽다고도 한다. 잠을 제대로 못 자는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에 감사하게 여긴다. 하지만 이건 잠을 자도록 합의된 밤의 잠자리가 아닌 곳에서도 적용된다.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적당한 환경이 만들어지면 잠이 든다. 즉, 시도 때도 없이 졸기 선수다. 앉아 있든 서 있든 자세가 잡혔다 싶으면 눈이 감기고 고개를 떨군다. 이 원치 않는 '졸기'는 평생을 우습게 따라다녔다.


학창 시절 학교에서는 거의 절반 이상을 졸았다. (나머지는 떠들기?) 수업시간은 물론이고 야간 자율학습 시간에도 끊임없이 졸았다. 그 당시 수험생용으로 유행했던 아이템이 있었는데 '눈 밑에 바르는 물파스'였다. 진짜 물파스는 아니고 시원한 느낌이 들어서 눈을 감기 어려워지는 효과였다. (지금 생각하면 좀 비인간적이다. 거의 고문 수준이 아닌가!) 처음에는 놀라웠고 실제로 잠이 달아났다. 하지만 곧 적응해버려서 아무리 발라도 오히려 더 시원하고 쉽게 잠이 들곤 했다. 버스와 지하철에서는 자동이다. 자리에 앉아 엉덩이를 붙이든 기둥에 기대어 서든 졸음이 쏟아진다. 옆사람과 고개를 꽝꽝 부딪히는 경험은 너무 많아 셀 수가 없다. 졸다가 목적지를 놓치는 일이 너무 자주라서 약속 시간보다 항상 일찍 넉넉하게 나선다.


군대를 가서도 변하지 않았다. 한 번은 야간 초병 근무를 선임과 함께 설 때였다. 다행히 각각 위아래 초소를 지키는 형태여서 바로 옆에서 나를 볼 수 없었다. 여지없이 졸다가 메고 있던 총이 초소 기둥에 부딪혀서 '깡! 깡!'대며 큰 소리를 냈다. 떨어져 있던 선임이 무슨 일이냐고 다급하게 물었다. 순간적인 기지로 대답했다. '아닙니다. 총검술 연습 중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대단한 임기응변) 남의 돈을 벌어먹는 회사에 가서도 변하지 않았다. 신입사원 연수기간에는 늘 눈을 감고 있는 것으로 유명했다. 사장님과의 대화 때도 나를 포함한 많은 동기들이 졸다가 단체로 강력한 호통을 들어야 했다. 팀에 배치되어 첫 번째 회의에 참석해서도 졸았다. (내 일도 아니고 하나도 못 알아듣겠더라) 졸다 끝난 회의 끝에 한 선배에게 끌려가 '많이 피곤한가 봐? 집이 좀 사나?'라며 한 소리 들었다.






지면이 부족할 정도의 일련의 사건들을 보면 내가 의지가 부족해서 조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름 열심히 졸음을 쫓으려고 애를 쓴다. 막 요상한 생각도 하면서 정신을 차리려 하기도 한다. 평소엔 잘하지도 않는 기가 막힌 상상의 나래를 펴면서 스스로를 놀라게 하려고 한다. 그 생각들이 어느새 꿈으로 연결되면서 잠이 드는 것이 문제지만. 스스로를 때리고 꼬집기도 정말 많이 한다. 허벅지 안쪽은 멍이 항상 들어있다. 그나마 효과가 있는 것이 그곳을 꼬집을 때라서 자주 이용한다. 안타까운 것은 이곳도 너무 오랜 기간 단련되어 점점 감각이 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동안 얼마나 열심히 꼬집어 댔는지 예상이 되는 대목이다. 절대 막무가내로 무방비 상태로 당하고 있지 않다. 그저 언제 어디서나 쉽게 잠이 드는 탁월한 능력이 이를 뛰어넘을 뿐이다.


살면서 가끔 이렇게 조절이 안 되는 잠 때문에 속상한 순간들이 있었다. 원하는 시간과 장소에서만 딱 정확하게 자고 싶었다. 몸이 닿으면 잠이 드는 나를 보면서 어머니가 자주 하신 말씀이 있다. '어차피 죽으면 평생 잘 건데 뭘 지금 그렇게 많이 자니?' 이런 생각을 가지신 덕에 본인께서는 잠이 많이 없으시다. 그렇다고 내가 막 잠을 많이 자거나 하진 않는다. 아침에는 벌떡 벌떡 잘 일어난다. 그냥 깨어있는 중간중간 스르르 눈이 감기는 경우가 잦다. 요즘엔 아들과 8~9시면 잠이 드는 생활이 오래돼서 그 이후 시간을 버티지 못한다. 지인들과 저녁 모임을 하다가도 그 시간이 되면 정신을 잃는다. 내가 혼이 나갈 때쯤 되면 자리를 파할 시간이 된 거다. 무엇이든 천천히 꾸준히 해나가면 불가능한 일이 없다고 믿는 내게 '밤새기'는 예외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인생의 3분의 1을 잠을 자며 보낸다이렇게 숫자로 놓고 보면 많이 아깝다. 하루 24시간을 온전히 사용해도 모자랄 판인데 한두 시간의 휴식도 아니고 대부분을 눈을 감고 가만히 있다니. 억울한 생각에 잠을 줄여 볼까도 하지만 그러면 깨어있는 시간도 내 것이 아니게 되므로 마음을 닫는다. 어설프게 욕심을 내다가 이것도 저것도 아니게 되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어쩌면 잠은 무모하게 달려가는 인간을 위해 정해놓은 신이나 자연의 섭리가 아닐까 싶다. 모든 사람이 죽음을 맞이하듯이 잠을 자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몸과 마음을 내려놓는 시간을 아주 규칙적으로 자주 가져야 나머지 삶을 기운차게 살아가게끔 설계되어 있다. 


어릴 적 낮잠을 자고 나서의 그 언짢은 기분을 여전히 기억한다. 잠이 잘 드는 나는 아이러니하게도 잠자는 시간이 늘 아깝다. 그래도 충분한 잠이 다른 순간의 삶을 건강하고 풍성하게 해 줌을 잘 알고 있다. 아까워하기보다는 오히려 이젠 머리만 대면 바로 잠이 들 수 있음에 감사해본다.





오늘은 글을 쓰면서도 졸리네요. 잠에 대해 쓰니 점점 잠이 드는 것 같아요. 하하. 글이 끝나고도 말이 길어지게 된 이유가 있어요. 내일은 오랜만에 <출산, 아니 출간 도전기>로 돌아올게요! 탱자탱자 쉬며 놀며 지내는 것 같아도 나름 고민을 많이 하며 지내고 있었어요. 새벽마다 써온 글이 책으로 만들어지는 과정은 놀라워요. 그 순간의 스스로를 잊지 않기 위해 남겨요. 내일 만나요! 언제나 멀지 않은 곳에 머물러 주셔서 감사해요 :)


한 글자도 빼기 어려운 초보 작가의 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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