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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Joon Nov 23. 2021

아이가 바라지 않는 모습으로 살게 된다면

최고의 교육은 부모의 행동

집에 아이가 있으면 어른은 뭐라도 하나 가르치려고 애쓰게 된다. 이건 나쁘다, 저건 좋다 등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아이를 볼 때마다 한 마디씩 한다. 한두 번 말해서는 전혀 변화가 없기에 조금 지겹지만 작은 사람을 이해하며 반복한다. 분명히 저번에 하지 말라고 했던 행동을 또 하고, 해달라고 했던 행동을 하지 않으면 뭘 더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에 잠긴다. 올라오는 욱과 화를 참으며 조곤조곤 다시 일장연설을 시작하다가 턱 하고 막히는 순간이 있다. "아빠도 그렇게 하잖아. 아빠도 그렇게 안 하잖아." 여기서 더 말이 길어져 봤자 모두 쓸모없는 핑계임을 아이도 나도 잘 안다. 한 방 먹은 게 억울하고 아쉽지만 이를 꽉 물고 하릴없이 대답하며 대화를 마무리한다. "맞아. 아빠부터 그렇게 할게."


코로나로 묶여있던 우편물이 약 반년만에 한국으로부터 도착했다. 아들 선물이 한가득인데 대부분 여기서 귀하디 귀한 한글책이다. 집에 있던 책을 읽고 또 읽어서 지겨워질 즈음이었는데 새로운 책이 오니 눈이 커지고 몸이 바빠졌다. 포장을 뜯어 정리하더니 곧 눈에 띄는 한 권을 집어 들었다. 쉬지 않고 뚝딱 읽더니 재밌다고 외치고는 다음 권을 집어 들었다. 그날 아들은 생전 처음 맛 본 한문을 구사했다. 백김치의 백이 하얗다는 뜻이라느니 하면서. (마법천자문 대단해요) 그런 아들에게 '역시 책이 재미있지?' 하고 확인받고자 물으면 쉽게 안 넘어온다. "나는 아빠만큼 책에 관심이 없어." 사실 아들은 책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노는 시간의 비중은 그림 그리기가 훨씬 높다. 몇 번 책 읽기를 종용해보려고 했지만 역시나 남을 움직이는 것은 쉽지 않았다. 먼저 나서서 즐기진 않지만 아들은 책과 꽤 친하다. 이유는 항상 붙어있는 내가 책을 읽기 때문이다. 같은 장소에서 각자 따로 놀 땐 늘 책을 읽고 있는 내 모습이 아들은 익숙하다. 본인 취향에 맞는 책을 만나면 금세 빠져들 준비를 그동안 알게 모르게 해왔던 게다.


아들이 홀로 글쓰기를 시작했다. 백지에서 'ㄱ ㄴ ㄷ'으로 시작하던 2년 전을 생각하면 기적이다. 한국이 아니다 보니 배우는 시간은 오로지 나와의 30분 남짓한 한글 놀이 시간이 유일하다. 그것도 매일도 아니고 이리 빼고 저리 빼면 일주일에 3~4번이 전부다. 그럼에도 꾸준히 따라와 준 아들은 결국 해냈다. 아들의 첫 글은 일기다. 일기 쓰는 방법을 천천히 연습해왔었는데 이제 백지를 스스로 채운다. 어떤 일을 주요 소재로 삼아서 자신의 느낌과 감정을 남긴다. '내일도 똑같은 날이 되면 좋겠다.'는 첫 일기 마지막 문장의 감동이 생생하다. 아들은 평소에도 늘 궁금해했다. 도대체 아빠는 매일 새벽에 일어나서 무슨 글을 쓰는 거냐고. 쉽게 말해서 '일기'라고 이야기해줬었다. 기억나는 일들과 내 생각을 섞어서 남겨둔다고 설명했었다. 이제 본인도 내가 쓰는 그 '일기'를 쓴다고 하니 신이 난 모양이다. 이제 매일 일기를 쓰겠다고 신나게 말하는 아들이 예뻐 죽겠다. 늘 뭔가 쓰고 있던 나를 보며 닮고자 하는 모습이 신통하다.



이렇게 뛰면서 놀면서 배우는 글자 놀이에요. 언제까지 속일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책 육아, 초등 글쓰기> 온통 세상에 차고 넘치는 화제다. 내 자식이 책도 많이 읽고 글도 잘 쓰면 좋겠다는 염원이 담겨있다. 따로 들여다보진 않았지만 어마어마한 방법과 규칙들이 그득그득할 게다. 다른 건 모르겠지만 억지로 아이의 행동을 바꾸는 건 불가능하다고 결론을 내렸다. 알려줄 수는 있지만 그것을 행하느냐 마느냐는 부모라도 어쩔 수 없다. 허탈함이 몰려오는 순간이지만 그 와중에 난 한 가지 가장 확실한 꿀팁을 깨달았다. 부모가 직접 행하면서 보여주는 것은 아이에게 제대로 전달된다. 반대로 말로 이래라저래라 하지만 본인이 그렇게 하지 않으면 역효과가 더 커진다. 최고의 교육은 부모의 행동이다. 엄마 아빠가 책을 읽고, 글을 쓴다면 따로 설명하고 알려줄 필요가 없다. 아이가 먼저 이건 무슨 책이냐며 어떤 내용을 쓰냐고 다가와서 물을 테다. 어릴 때는 부모가 롤모델 그 자체다. 어떤 좋은 말과 교육법을 가져와도 앞에 있는 사람과 동 떨어져 있으면 아이는 갸우뚱거린다. 나한테 책 읽으라면서 왜 핸드폰이랑 티브이를 보지? 나한테 글 쓰라면서 일기도 안 쓰지? 당연한 의문이 아닐까? 딱 우리가 하는 만큼이 아이가 배울 수 있는 최대치다. 아이가 책을 읽기를 바란다면 책을 사주고 손에 쥐어줄게 아니라 부모가 먼저 읽으면 된다. 아이가 글을 쓰기를 바란다면 일기 검사를 매일 할 게 아니라 부모가 매일 쓰면 된다. 나머지는 다 억지다.


내겐 책 읽기와 글쓰기는 그냥 좋아서 하는 취미다. 아들이 따라서 하길 기대하거나 바라서 한 건 아니다. 2년을 함께 지내면서 이제와 돌아보니 아들이 책과 글에 그나마 친해진 게 이 때문인가 싶은 거다. 옆에서 꾸준하게 나를 관찰하고 크는 아들을 확인할 때면 겁도 난다. 요즘도 그분께 지적받는 '극단적인 말투'라든지. (이거 아니면 저거야. 늘, 항상, 매일) 부모를 닮아가는 자식의 모습은 기쁨이자 경각이다. 어느 날 아들이 미래의 본인 아이(내겐 손주)에게 쓴 편지가 떠오른다. "나는 아빠한테 글자를 배웠어. 너도 아빠처럼 나랑 같이 배우자." 이게 뭐라고 괜히 눈물이 핑 돌던지. 감정의 노예가 되어 태도와 말투가 공격적으로 변하고 나면 속상하다. 옆에서 그만큼 영향을 받았을 아이가 떠올라서. 내가 되고 싶은 사람으로 살아가자. 그렇지 않으면 내 아이가 바라지 않는 모습으로 살게 된다. 이 아찔한 미래는 최소한 피해야 하지 않을까.



우리의 책으로 가득찬 책장. 파랑과 아들




끼워 넣지 못했지만 남기고 싶은 에피소드



1. 마지막 음식의 맛

먹는 데 관심이 없는 아들을 꾀어내는 유일한 방법이 있다. 바로 '마지막 남은 음식'이라는 말. 어디서 듣고 배웠는지(아마도 우리 부부겠지) 제일 끝에 남은 게 가장 맛있다고 알고 있다. 그래서 '이거 마지막인데 먹을래?' 하면 득달같이 달려와서 입에 넣는다. 심지어 여러 개가 남았으면 자기 꺼 하나 빼고 다 먹으라고 난리다. 자기 게 제일 마지막이 되어야 한다고. 그 마지막 조각을 입에 넣으면 '음~!!'이라는 괴성과 함께 얼굴이 커지며 감탄하며 먹는다. 매번 이게 뭐 하는 건가 싶다가도 뭐라도 먹으니 다행이다 싶다.



2. 추운 게 싫은 아들의 꼼수

학교에서 두 달 가까이 주 1회 수영 수업을 했다. 마지막 수업은 부모가 참관할 수 있었다. 늦지 않게 찾아가서 아들과 눈을 맞췄다. 수준에 따라 아이들이 갈라졌는데 아들은 실내의 조그만 풀로 들어갔다. 수영 학원에서 배우는 것과 차이가 많아서 끝나고 물어보니 대답이 대단했다. "처음에 레벨 테스트를 하거든. 그때 잘하면 밖의 차가운 물에서 하더라고. 그래서 일부러 못해서 따뜻한 물로 들어왔지~" 자신의 기지가 지금 생각해도 기발한지 눈에서 웃음이 떠나질 않았다. 나와 파랑은 얼굴을 마주 보며 그저 따라 웃을 뿐이었다.





우리를 닮아가며 자라는 아들이 한 번 더 외박을 했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놀러 간 아들에게 서운한 만큼 우리도 신나게 놀았다. 보고 싶었던 영화도 보고 가고 싶었던 식당에도 갔다. 정말 오랜만에 술 한잔과 밤 산책을 즐겼다. 그럼에도 엄마 아빠가 보고 싶지 않았다는 아들을 다시 마주했을 땐 어쩐지 진 느낌이 들었다. 우린 종종 아들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아들 이겨서 뭐하겠냐는 파랑의 말에 끄덕이며 괜한 마음을 접는다. 


이제 일주일도 채 남지 않았다. 일 년 중 가장 중요한 날, 아들의 생일파티다. 생각보다 높아지는 참석률과 아들의 기대에 부담이 크다. 이렇게 언제까지 해줘야 해?라고 서로에게 묻다가, 나중엔 해주고 싶어도 못 해줄 거니 우리도 즐기자며 돌아선다. 그래. 아이가 좋다는 데 우리가 안 좋을게 뭐냐. 그래도 어서 끝내고 쉬고 싶다. 하하.


* 매일 쓰는 진짜 일기도 아니고, 그렇다고 고급 정보가 있지도 않은 아이와 지내면서 겪는 온갖 후회와 반성의 잡생각 뭉탱이 '육아 생존기'를 애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빠로서 기록하는 글을 쓰고 나면 자주 듣는 말이 있어요. 어떻게 아빠가 이런 육아 일기를 쓸 수 있냐고요. 부럽고 신기하다고요. 정말 그런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전혀 관심 없던 전과 달라진 건 사실입니다. 그 변화의 일대기는 제 책 <아빠 육아 업데이트>에 담겨있습니다. 변화를 원하신다면 권해봅니다. 또 누가 변할지 모르니까요.


외박과 데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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