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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Joon Dec 05. 2021

아직 생일 앓이 중

풀려버린 흥분과 긴장

아들이 아팠다. 많이 나았지만 완전한 상태는 아니다. 불안했던 시간은 11월 한 달을 통과해서 12월 초까지 계속 이어졌다. 일 년 동안 기다리던 그 하루에 모든 신경과 마음을 쏟아부어서 일 테다. 하루하루 날짜를 세어가며 흥분하고 초조해하는 아이는 그 뒤는 없을 것처럼 굴었다. 오로지 그날만을 바라보며 손꼽아서 기다렸다. 파랑과 나도 이유는 달랐지만 결국 바라는 바는 똑같았다. 어서 빨리 그날이 되어 상황이 종료되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혹시나 해서 물어본 아들에게 돌아온 대답은 확고했다. "나 이번에도 생일 파티하고 싶어!" 작년 처음으로 큰 일을 치른 우리는 그게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바로 접었다. 한 번 겪어본 경험은 우릴 저절로 움직이게 만들었다. 준비물을 사고, 생일 케이크를 주문하고, 생일 초대장을 보냈다. 참석 여부 답장(RSVP)은 여전히 제 날짜에 잘 도착하지 않았다. 초조한 우리는 아들에게 주문했다. 친구들에게 꼭 이야기해 달라고. '친구야, 네가 내 생일 파티 오려면 너희 엄마가 우리 엄마한테 문자 보내야 해!' 어찌나 꼼꼼하게 맡은 바를 수행했는지 결과적으로 1명 빼고 모두 참석 의사를 밝혀왔다. 예상외의 결과에 우린 부들부들 떨었다. 이유 하나는 10명이 넘는 초대 인원에 대한 부담이었고, 다른 하나는 계속해서 비가 오는 날씨 때문이었다. 생일 파티 장소는 야외 수영장이었다.





밤마다 빌고 또 빌었다. 나도 빌고 파랑도 빌고 아들도 빌었다. 제발 비가 오지 말게 해 달라고. 준비해둔 프로그램도 모두 백지가 되고 그 많은 인원이 집 안에서 지낸다는 상상은 충분히 끔찍했다. 생일 이틀 전까지 계속 비가 왔다. 거의 포기 상태의 마음으로 빗줄기가 약하기 만을 바라는 지경에 이르렀다. 일기 예보상으로 확실한 비가 예정되어 있었다. 생일 하루 전날 우리는 가족끼리 가까운 놀이 공원으로 향했다. 아들이 한 번쯤 학교를 쉬고 이렇게 놀러 가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이것도 비가 오면 말짱 꽝이었지만 신기하게 그날은 비가 안 왔다. 비가 오지 않는 생일 기념 테마 파크 여행은 즐거웠다. 아침부터 밤까지 놀고먹으며 날씨에 대한 걱정을 덜어냈다. 혹시 다음날도 이렇기만 한다면 최고의 생일을 지낼 수 있다는 기대가 양쪽 귀까지 올라왔다.



아침부터 꾸부정했다. 아무 때라도 물방울이 떨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날씨였다. 온도와 습도는 높고 하늘은 흐린 그런 물에 뛰어들고 싶어지는 날이었다. 아들과 친구들은 2시간을 꽉 채워 놀았다. 하늘이 도운 덕에 비는 한 방울도 오지 않았다. 준비했던 게임도 생일 케이크도 답례품도 모두 계획대로 잘 마쳤다. 한껏 긴장해왔던 탓에 욱과 짜증을 낸 것만 빼곤 다 좋았다. 모든 일은 언제나 같은 결론에 도달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내가 하는 일이고, 한마디로 나만 잘하면 된다. 나를 빼곤 모든 게 완벽했던 아들의 7번째 생일날이었다.





생일이 지나고 나서의 내 주변 아들 학교 풍경은 많이 바뀐다. 학교에 아들을 데려다주고 데리러 가는 길에 더 많은 이와 인사를 나눈다. 알게 된 부모들과도 그렇고 아들 친구들과도 그렇다. 한 친구는 내게 달려와 즐거운 생일 파티에 열어주고 초대해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어찌나 감동적이든지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영어로 더 적절한 대답을 찾다가 그랬을지도) 아들의 학교와 좀 더 가까워지는 이 맛에 힘들지만 해내고 마는 게 아닐까 싶기도 했다. 아들 생일을 지나고 나면 한 해가 마무리된다. 딱 2주가 남고, 그동안 아들은 생일날의 추억을 돌아보며 친구들과 시간을 보낸다. 연말의 생일이 어쩌면 아주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해동안 알아가며 친하게 지내다가 함께하고 싶은 친구들과 생일을 함께한다. 그리고 그 마지막 잔칫날을 추억으로 간직하며 그 해를 보내준다. 태어난 날짜에게까지 이처럼 감사해한다면 너무 억지스러운 자기만족이려나. 하하.





조금씩 아팠던 아들은 결국 앓아누웠다. 학교를 이틀이나 가지 못했다. 배도 조금 아프고 열도 조금 났다. 그리 심각하진 않았는지 나와 바닷가에 가서 놀기도 했다. 학교 땡땡이를 친 셈이다. 일 년 내내 긴장하며 기다리더니 탈이 난 모양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일주일 뒤에 있던 다른 친구 생일엔 못 갔다. 열이 나는 아이를 데리고 갈 수 없었다. 주말 상관에 더 아프면 마지막 주에 친구들과 선생님께 인사를 못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도 앞섰다. 집에서 쉬며 살살 놀며 지냈다. 학교를 과감하게 안 보낸 덕인지 이젠 많이 회복되었다. 



내년이 시작되고 또 생일날이 잡힐 듯하면 다시 시작될 테다. 어느 날 알아서 친구들과 나가서 노는 날까진 이렇겠지. 한 손으로 셀만큼 남은 연말 행사를 기꺼이 영광으로 받아들이리라. 그날이 다가오면 머리가 자연스럽게 지끈거리겠지만.





많이 커버린 아들


1. 아빠, 병원 가자

신경을 다른 곳에 쏟고 있을 때 훅 들어오는 아들의 말을 자세한 부분까지 듣지 못할 때가 있다. 대충 넘어가려고 얼렁뚱땅 대답하면 아들이 바로 알아챈다. 그날도 대세에 지장 없다는 판단으로 건성으로 포괄적인 답변을 했더니...


"아빠, 병원 가자!"


귀가 잘 안 들리니 고치러 가자는 말이다. 하늘에서 떨어진 표현을 아니다. 우리가 아들이 안 듣거나 딴짓할 때 장난치며 놀리던 말이다. 내 귀를 잡고 이리저리 살피면서 병원 가자는 아들의 웃는 얼굴에 뜨끔했다.



2. 협상의 달인


아들이 가장 애정 하는 미술학원을 그만 다니겠다고 했다. 생존을 위한 수영과 최근 흥미를 붙인 축구까지 모두 하느라 힘들다는 이유였다. 사실 빼고 싶어 한 것은 수영이었으나 안전을 위해 어쩔 수 없으니 미술을 가지 않겠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물이 흔한 이곳에서 수영은 필수라고 여러 번 강조해서 필요성은 이해했으나 상급반으로 올라간 후 체력적으로 힘들어 해왔다. 그럴 수도 있겠다 싶어서 원하는 대로 하자고 했다. 아들 말대로 수영을 없앨 수는 없으니까.


궁금한 마음에 혹시 미술 수업 자체에 문제가 있는지 물었다. 지겨운지, 재미가 없는지, 어려운지, 같이 하는 친구들과 트러블이 있는지 등. 기다렸다는 듯이 자연스럽게 답했다. '선생님이 그리라는 것만 그려야 해서.'


이게 무슨 말이냐면 수업 시작 전에 정해진 주제로 할지 자유 주제로 할지 묻는데 아들은 거의 늘 자유 주제를 골랐다. 한두 번이면 그러려니 하려고 했는데 우리 입장에서는 집에서 그리는 것과 다르지 않게 놀다 오는 느낌이 컸다. 한 일 년을 지켜보다가 이젠 선생님이 그리자고 하는 것을 배워오자고 설득했다. 그게 한 달 전쯤인데 많이 답답했었나 보다. 결국 한 번은 정해진 주제로, 다른 한 번은 자유 주제로 하면 어떠냐고 했더니 냉큼 알겠다고 했다. 


아들은 미술을 그만두겠다는 게 이 대화의 목적이 아니었던 거다. 힘들어하는 수영으로 우리를 한눈팔게 한 뒤, 진짜 원하는 자유 선택 그리기를 취했다. 기분 좋게 돌아서는 아들을 보며 우리는 아차 싶었다. 이 녀석 보통내기가 아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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