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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Joon Dec 21. 2021

또다시 아들과 헤어진 밤

그립고 아쉽고 불안해서

어두운 다리 밑을 지나 좁은 골목을 힘겹게 빠져나왔다. 숨을 몰아쉬는 아내 손을 잡고 확실하지 않은 길로 이끌었다. 분명 여기쯤이라고 했는데 사방의 풍경이 비슷비슷해서 알기가 어렵다. 'OO상회'라는 간판을 찾아야 하는 데 시장엔 그런 가게가 수두룩했다. 한참을 두리번거리며 어기적대며 걷는데 뒤통수쯤에서 반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아빠~!" 뒤뚱뒤뚱 아장아장 대는 아들이 두툼하게 껴입은 채 다가와 안겼다. 드디어 만났다는 반가움에 꼬옥 안고 얼굴을 부볐다. 기다리고 있는 아내에게 자리를 내주고 옆에 서서 바라봤다. 둘의 애틋한 포옹을 멍하니 보다가 그제야 무표정으로 서있는 아들 뒤의 아주머니를 발견했다. 서로 어색하게 인사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눈물이 가득한 아내가 힘들게 아들과 떨어졌다. 아들 손을 붙잡고 돌아서려는 아주머니에게 애처로운 눈빛으로 '한 번만 더'라고 말했다. 멈춰 선 발걸음을 말없이 떨어진 허락이라 여기고 아들을 와락 다시 안았다. 영문도 모르고 내 품에 세게 갇힌 아들이 발버둥 친다. 좀 갑갑하겠다 싶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마지막 만남이었기에 양보할 수 없었다.



'헉!' 하며 뱉었는지 삼켰는지 모를 신음을 안고 눈을 떴다. 또다시 같은 꿈이다. 아들을 다른 곳에 보내는 이야기. 매번 등장하는 모습은 딱 4~5살 때의 아기스러울 때다. 팔을 뻗어 옆에 누운 아이를 주섬주섬 만져본다. 꿈 속보다는 좀 더 길쭉한 지금의 아들이 맞다. 새근새근 자는 숨소리를 듣고 나서야 마음을 놓는다. 바로 다시 잠들지 못하고 생각에 빠진다. 뭐가 불안해서 이런 꿈을 꾸는지. 가만히 속을 들여다보면 알 것도 같다. 그때가 그립고 지나가는 지금이 아쉬워서 그렇다. 놀이터에 아들을 풀어놓으면 더 커다란 아이들에 치일까 불안했었다. 이젠 더 작은 아이들이 많아지면서 걱정은 사라지고 괜히 어색한 느낌이다. 수영장에 넣어두면 혼자서 삐죽삐죽 얌전히 노는 아들이 안쓰럽기도 했었다. 지금은 처음 보는 친구들과도 바로 신나게 어울려 노느라 나올 생각을 안 한다. 이 모든 변화가 쌓이면서 마음속으로 간직하던 '아기와 같던 시절'과 이별하고 있는 모양이다. 순간순간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을 무의식에서부터 거부하고 있는가 보다. 그 심리적 경계와 같았던 초등학교 1학년을 마치면서 마음이 울컥 터져 나왔다.





내가 1학년에 들어갈 땐 아주 작고 여윈 아이였다. 혼자서 책가방을 메고 갈 수 있을까 부모님께선 걱정이 많았다고 한다. 그랬던 여린 시절을 아들이 지나고 있다. 아빠를 닮아 깨지고 날아갈 것 같았던 아들은 한 해를 야무지게 꽉꽉 채웠다. 걱정할 틈도 없이 단단해져 가며 훌륭하게 첫 학교 생활을 마쳤다. 아들의 학교 마지막 주는 무척 바빴다. 가장 기다리던 '컬러런 데이' 행사를 날씨가 도와 무사히 치렀다. 모든 분야의 노력이 매우 높으며 회복력과 자신감을 꽃피우는 성장이 눈부셨다는 리포트도 받았다. 헤어지기 하루 전날은 졸업 파티가 있었다. 음식도 나눠먹고 장기자랑도 했다는데 5명 그룹을 만들어서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나름 그룹 리더에게 목소리 테스트도 통과해서 합류한 거라고 자랑스럽게 알려줬다. 귀여운 녀석들. 마지막 날은 정성스럽게 준비한 선물을 선생님께 전했다. 며칠 전부터 선생님께서 좋아하는 동물을 알아내서는 꼼꼼하게 그림을 그려서 카드에 넣어 드렸다. 그렇게 아들의 1학년이 끝났다. 아들을 데리고 나오며 물었다. '아들~ 친구들하고 선생님이랑 헤어져서 아쉽거나 슬프지 않아?' 해맑게 웃으며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이 대답했다. '내년에 계속 같이 인사하고 놀건대 왜?' 감상에 빠져 혼자 짠하고 있던 나는 덕분에 풀어졌다. 네 말이 맞네!



홀가분하게 긴 여름 방학을 맞이했다. 방학 기념으로 열심히 놀았다. 바닷가도 틈만 나면 갔고 나간 김에 맛집도 찾아다녔다. 크리스마스트리도 작년보다 더 예쁘게 꾸몄다. 그렇게 쉬고 놀고 또 늘어졌다. 한 번은 아들과 손잡고 가면서 이야기를 나눴다. 우리 처음 이곳에 왔을 때가 기억이 나냐고 물었다. 그땐 친구들과 영어로 이야기를 못해서 불편했었단다. 예상치 못한 가슴 아픈 고백에 뜨끔하며 마음이 착 가라앉았다. 이젠 호주도 한국만큼 익숙해져서 좋다고 했다. 어딜 가든 엄마와 아빠랑 같이 있으면 좋다고 했다. 그 말에 마음이 다시 올라가며 잡은 손에 따스하게 힘이 들어갔다. 어디 가지 않고 내 옆에 꼭 붙어있는 아이를 보면서 느낀다. 불안해하고 아쉬워하는 꿈은 어쩌면 스스로 잘하지 못한 지난날 때문에 계속 꾸게 되는 건 아닌지. 


* 매일 쓰는 진짜 일기도 아니고, 그렇다고 고급 정보가 있지도 않은 아이와 지내면서 겪는 온갖 후회와 반성의 잡생각 뭉탱이 '육아 생존기'를 애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빠로서 기록하는 글을 쓰고 나면 자주 듣는 말이 있어요. 어떻게 아빠가 이런 육아 일기를 쓸 수 있냐고요. 부럽고 신기하다고요. 정말 그런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전혀 관심 없던 전과 달라진 건 사실입니다. 그 변화의 일대기는 제 책 <아빠 육아 업데이트>에 담겨있습니다. 변화를 원하신다면 권해봅니다. 또 누가 변할지 모르니까요.

※ 2022 세종도서 교양부문 선정 『아빠 육아 업데이트』를 바로 만나보세요!





*오랜만입니다. 그동안 아들과 잘 먹고 놀았습니다. 하하. 전하고 싶은 재밌는 소식이 하나 있어요. 내일도 만나요! 항상 멀지 않은 곳에 머물러 주셔서 감사합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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