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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Joon Jan 09. 2022

아픈 내게 내려진 최종 진단

방학해서 그래

이제 그만 이야기하자. 말하면 슬퍼지니까.

선잠이 든 나를 서둘러 깨운 뒤 아들이 통곡을 시작했다. 얼마 전에 잃어버린 인형 '양순이' 때문이었다. 어두운 밤에 가만히 누워있으니 헤어진 예전 친구가 떠오른 모양이다. 최근 몇 년 사이 이렇게 가라앉아서 운 적이 없었기에 놀랐다. 잠든 후엔 어지간하면 그럴 일이 없는 내가 벌떡 깨서 우는 아이를 온몸으로 안아 달랬다. 학교에 들어가고 나서는 내 배 위로 올라온 적이 없는 아들은 길쭉해진 몸을 힘없이 늘어뜨렸다. 위로받고 싶다는 강한 의사 표현이 분명했다. 한참을 쓰다듬고 토닥이며 감정을 따라가려 애썼다. 중간중간 서러움이 새어 나왔지만 조금씩 약해졌다. 그리곤 저 말을 끝으로 마음을 단단히 잡은 아들은 새근새근 잠이 들었다.





해가 바뀐 것을 보여주려는 듯 못 보던 아들의 모습을 보았다.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도 세밀해졌다. 어찌 된 일인지 그 아들의 아빠는 바뀐 게 없는 듯했다. 그날은 아들이 가고 싶다고 했던 '키즈 비치 캠프'가 있었다. 낯선 환경을 어려워하는 녀석이 어쩐 일로 새로운 곳에 가보고 싶다고 해서 놀랐었다. 역시나 바로 전날 아들답게 '그게 도대체 뭐야?'라며 자신의 결정을 처음 듣는 사람처럼 놀랬다. 상황 설명을 듣고는 전날 밤 잠을 설쳤다. 두려운 모양이었다. 자신이 한 말과 가기 싫은 마음 사이에서 이리저리 헤매며 힘들어했다. 당일 아침부터 아들은 최선을 다해 긴장을 표현했다. 밥도 제대로 못 먹고 가는 차에서 내내 머리 아프고 속이 안 좋다며 토할 것 같다고 했다. 한참을 찡찡대는 녀석을 오래 견디지 못하고 난 폭발했다. '네가 가자고 했던 거 기억해?'로 시작한 긴 잔소리는 분위기를 단숨에 험악하게 바꿨다. 울며 겨자 먹기로 들어간 아들은 1분도 채 안되어 해맑게 웃으며 친구들과 어울리며 놀았다. 한나절 내내 우리를 찾지 않고 신나게 보냈다. 아이에게 필요한 아주 짧은 준비 시간을 잘 알면서도 변함없이 참지 못하고 정색한 나만 덩그러니 남은 하루였다.



꾸준하게 모자란 성격 때문인지 연말 내내 입병으로 고생했다. 거의 2주가 넘도록 입 밖과 안이 부르트고 헐어서 힘들었다. 제대로 먹는 것도 어려웠고 온 이빨에 충치라도 생긴 것처럼 고통스러웠다. 뛰어난 의료 지식으로 적절한 약을 처방해서 발라준 아내 파랑이 최종 진단을 내렸다. '방학해서 그래.' 처음엔 무슨 말인가 싶어서 아픈 입을 살짝 떼어내다가 이내 다물며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그랬다. 입이 아프고 난 시점에 생긴 변화는 그것뿐이었다. 달라진 건 학교를 가지 않고 나와 붙어있는 아들 하나였다. 학교 간 사이 누렸던 자유롭고 독립적인 시간이 사라지자 바로 몸의 이상이 찾아왔다. 나약하고 연약한 이 몸뚱이를 앞으로 잘 간직하고 살아갈 수 있으려나.





화려했다. 아니 여전히 화려하게 보내는 중이다. 6주간의 여름방학이 절반 흘렀다. 코로나 따윈 껌이라는 듯 변함없이 산타가 왔다 갔다. 이번 크리스마스가 특별했던 이유는 용돈을 모아 우리 선물을 사준 아들의 기특함 덕분이었다. 크리스마스 선물처럼 아들이 사랑하는 삼 형제가 놀러 와서 자고 갔다. 4명의 아이는 우리 부부의 추천으로 생전 처음 보는 '나 홀로 집에'를 흥미진진하게 시청했다. 적절한 영화로 크리스마스가 완성되는 기분이었다. 다른 한쪽에서는 우연히 이어진 인연이 찾아와 나와 아들에게 새로운 만남을 선사했다. 놀 수 있는 기회가 다양하게 열린 다는 건 우리에게 행운이 맞다. 세 가족 다 같이 출동했던 전자오락실에서는 엄마와 아들의 빼어난 댄스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펌프라니. 고등학교 시절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같은 놀이를 자식과 즐기는 순간이 앞으로 얼마나 될까.



노는 와중에도 성장을 계속했다. 스르륵 빠지던 이를 이번에는 직접 뽑았다. 실로 걸어둔 네 번째 흔들리는 이를 용감하게 쑥 당겼다. 자랑스러워하는 아들에게 그날 밤 투스 페어리는 까먹지 않고 칭찬 용돈을 내려놓고 갔다. 날씨가 왔다 갔다 하는 틈을 타서 밖으로 일탈을 시도했다. 조개 잡으러 나서기도 했고 파도를 타러 가기도 했다. 처음 타보는 트램펄린도 시도해서 성공했다. 가는 해의 마지막 날엔 갑작스럽게 반가운 얼굴들과 모여 밤늦게까지 수다를 떨었고 새해에는 한복 입고 세배하고 세뱃돈을 받았다. 정신없이 놀다 한 살을 더 먹은 아들은 확실히 컸다. 몸집뿐만이 아니라 마음의 크기도 달라진 게 느껴진다. 





커버린 아들이 대견하지만 딱 하나 슬픈 게 있다. 좀 더 어릴 적엔 내가 피하고 싶은 상황이나 질문이 찾아오면 대충 넘기는 게 가능했다. 갑자기 딴 소리를 한다든지 다른 곳을 가리키며 화제를 전환한다든지 다양한 기술이 통했다. 이젠 모두 막혔다. 도대체 넘어오질 않는다. 정신을 아무리 팔아넘기려 해도 꼭 잡고 흔들리지 않는다. 장렬하게 포기하고 물어보니 자신 있게 답했다. '이제 더 똑똑해져서 그렇지!' 새해답게 더욱 쉽지 않은 육아의 길이 펼쳐지고 있다.




입 병은 많이 나았습니다. 하하. 제 탓인지 아들도 입병이 생겼네요. 아마 녀석은 숨도 쉬지 않고 놀아서 그런 걸 테지요. 그 장단에 맞추느라 수고한다고 스스로를 쓰다듬어 봅니다. 하나 알리고 싶어서요. 저쪽 아래 작가 소개 밑에 보면 '이 작가의 카카오 뷰 큐레이션 보기' 버튼이 보일 거예요. 그동안 써 온 수많은 글을 그때그때 기분에 맞춰 골라서 올리고 있어요. 재미있어 보이면 채널 추가도 해주시고요. 푸핫. 읽어주시는 모든 분들께 즐거운 나날이 계속되길 바랍니다. ^_^



* 매일 쓰는 진짜 일기도 아니고, 그렇다고 고급 정보가 있지도 않은 아이와 지내면서 겪는 온갖 후회와 반성의 잡생각 뭉탱이 '육아 생존기'를 애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빠로서 기록하는 글을 쓰고 나면 자주 듣는 말이 있어요. 어떻게 아빠가 이런 육아 일기를 쓸 수 있냐고요. 부럽고 신기하다고요. 정말 그런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전혀 관심 없던 전과 달라진 건 사실입니다. 그 변화의 일대기는 제 책 <아빠 육아 업데이트>에 담겨있습니다. 변화를 원하신다면 권해봅니다. 또 누가 변할지 모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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