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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Joon Jan 27. 2022

꿈인 줄 알았다

연장된 방학



아빠 놀자 ~


이상하다. 학교 갈 시간인데 아들이 따신 밥 먹고 나서 흰소리를 한다. 얼마나 아쉬우면 그럴까 싶어서 같이 놀기로 했다. 어차피 길지 않은 시간이니까 선심 쓰듯이. 이상하다. 시간 맞춰 가야 하는 사람 같지 않게 너무 여유롭다. 마치 아무 약속이 없는 것처럼. '아들, 이제 그만 놀고 교복 입고 학교 가야지.'라고 하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어이없어하며 대답한다. "아빠 왜 그래~ 방학 연장되었다며~" 이건 또 웬 개꿈인가 싶어서 볼을 있는 힘껏 꼬집는다. 이상하다. 아픔은 선명하고 잠에서 깰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거친 손자국이 붉게 나타나며 갑자기 머리에 피가 돈다. 맙소사. 이거 꿈이 아니구나.


끝나가던 방학이 기적처럼 2주일 늘어났다. 이유는 지금 이 세상 모든 것의 원인 '코로나'. 악화되는 상황 속에서 교육청에서 내린 특단의 조치였다. 이 소식을 전해 듣는 순간 겨우 가라앉았던 입병이 당장이라도 재발하는 기분이 들었다. 벌어진 일은 어쩔 수 없다며 스스로를 달래고 정신을 붙들었다. 세상 어떤 소식보다 즐거워하는 아들 앞에서 티를 낼 순 없었다. 세상일은 마음먹기 나름이라고 그 누구보다 내가 외치고 다니지 않았던가. 나는 즐거웠다. 아들과 붙어있는 소중한 시간이 늘어나서 기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미리 알차게 준비했던 원래의 방학 계획을 실행에 옮겼다. 여름 성경학교에 열심히 참여시키고 목사님 댁에 자고 오는 슬립오버도 보냈다. 형들이랑 노는 데 푹 빠진 아들은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왜 성경학교는 여름과 겨울에만 있는가!) 반년을 제대로 쉬지 못한 파랑이 낸 연차 덕분에 세 가족이 좋아하는 호캉스 여행을 떠났다. 언제나 그렇듯이 먹고 마시고 놀고 자고 훌륭했다. 에너지 넘치는 아들은 눈부신 성장을 실감 나게 보여줬다. 낮잠 같은 건 안중에도 없었고 눈을 뜨자 마다 한 순간도 빠짐없이 같이 놀기를 원했다. 두 명인 우리 부부는 때론 번갈아가면서 아들과 맞섰지만 30살의 나이 차이 때문인지 쉽지 않았다. 돌아오기 전엔 시원하게 머리를 정리하고 멋지게 스크래치도 새겨 넣었다.


예쁘게 자른 머리를 보면 아직 작은 아이 같은데 부쩍 머리가 커진 요즘이다. 길어진 방학 덕분인지 스스로 할 수 있는 게 점점 늘고 있다. 책을 읽고 남기는 독서 일기를 척척 쓰고 있다. 물론 용돈이라는 미끼를 내 보인 건 우리였지만 선뜻 물 줄은 몰랐다. 하기 싫고 관심 없는 건 쳐다도 안 보는 아들이었기에 적절한 흥밋거리를 찾아주었구나 싶었다. 자기만의 언어로 이야기를 전하면서 느낌과 생각을 남기는 모습은 놀랍다. 어쩌면 세상을 살아가면서 단 하나의 능력이 필요하다면 이거 하나 아닐까 싶다. 수많은 정보 속에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지키는 것. 머리만큼 몸도 자라고 있다. 어느 날 갑자기 티브이 속에 나오는 자전거 타는 아이를 보고는 연습을 하고 싶다고 했다. 그전엔 내가 몇 번을 이야기해도 미루기만 했었는데. 먼저 하고 싶어 한 만큼 집중해서 조금씩 배우고 있다. 내게 혼자서 타는 모습을 보여달라고 하며 관찰도 하면서. 축구에도 관심이 있는 아들과 종종 유명한 축구선수들의 영상을 함께 보곤 한다. 성경학교를 다녀온 날 아빠가 보여준 기술을 하나 선 보였다고 자랑했다. 다른 쪽 쳐다보면서 은근슬쩍 공을 전달하는 '노룩 패스'를 시전 했단다. 놀라서 칭찬하니 한 마디 더 한다. '내가 제대로 안 보는 줄 알았지? 다 보고 있었거든~'





물론 모든 일에는 좋은 현상만 따라오지 않는다. 머리가 커지면 험한 일도 생긴다. 우선 말싸움이 심각해진다. 얼렁뚱땅 넘어가던 시절은 지났다. 한마디도 지지 않고 논리적으로 응대한다. 얼마 전엔 장난감을 정리하자는 말에 자신이 기억하는 장난감의 이름을 모두 나열하고 정기적으로 가지고 놀고 있음을 차근차근 설명했다. 나랑만 붙어 있는 방학이 길어지면서 엄마가 아쉬워졌는지 아빠도 번갈아 가면서 일을 나가면 좋겠다며 합리적인 주장도 했다. 게임을 해도 이젠 꽤 고난도라서 머리도 써야 하고 시간도 오래 걸린다. 대충대충 쳐내던 과거는 지났다. 요즘 꽂힌 게임은 '이미지 게임'이다. 이런 사람 손가락 접어, 저런 사람 손가락 접어하는 그거 말이다. 내버려 두면 아마 하루 종일도 할 기세다. 우리와 같이 동등하게 머리를 굴리며 벌칙을 주고받는 게 그렇게도 즐겁나 보다. 간지럽던 딱밤도 이젠 꽤나 아파서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않다간 크게 혼이 난다.


함께하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추억은 저절도 쌓인다. 얼마 전엔 몸치인 내게 춤을 가르쳐 주겠다며 '댄스 레슨'을 해주었다. 도무지 제대로 못 따라 하는 내게 끈기를 가지고 천천히 반복해서 알려주는 통에 결국 몸에 익혔다. 영 마음에 들지 않은 눈치였는지 다음 강의는 당분간 보류 상태다. 잠자리에선 꿈에서 만날 장소와 놀이를 정해준다. 요즘엔 어느 어느 기차역에 있는 롤러코스터와 사탕 매점에 들리는 게 약속이다. 자고 일어나면 다녀왔냐고 물으며 몇 번 탔냐고 어느 과자를 먹었냐며 서로 묻고 답한다. 땀이 많은 아들은 여름이면 땀띠로 고생을 하는데 간지러워서 힘겨워한다. 몸이 길어진 탓에 등 쪽은 이제 손이 닿지 않아 내게 부탁을 한다. 그럼 어릴 적 부모님께 내가 하던 '등 긁어줘~ 조금만 위, 조금만 오른쪽, 잠깐잠깐 그것보다 아래. 간지러워~'를 아들이 내게 하며 옛날 추억에 빠지기도 한다. 





장난기 많고 솔직한 아이는 말도 시원시원하다. 언제나 유머와 개그를 구상하며 다닌다. 번뜩 떠오른 게 있으면 만사를 제쳐두고 달려와서 바로 전한다. 그런 경우가 너무 많아서 모두 기록으로 남기질 못해서 아쉬울 뿐이다. 지금 떠오르는 인상 깊은 이야기는 '제일 차가운 싸움은 뭐게?'다. 정답은 바로 '추워(War)'. 영어와 한글, 그리고 콩글리쉬까지 섭렵하고 있는 녀석이 놀랍다. 조금 지저분할 수 있지만 더 커버리면 못할 것 같아서 남기는 에피소드가 있다. 한 번은 큰일을 보러 화장실을 갔는데 기분 좋게 외쳤다. '이만한 게 한 번에 빠져나가서 너무 시원해!' 하하. 이렇게나 솔직할 수가. 속으로 느끼는 감정을 그대로 꺼내놓을 수 있는 깨끗함이 부러운 순간이었다. 학교와 선생님이 그립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맑고 발랄한 아들과의 시간도 선물이라고 여기며 남은 방학을 즐겨보자. 말년 병장 때도 세지 않던 D-day를 하나씩 지워가면서.





* 매일 쓰는 진짜 일기도 아니고, 그렇다고 고급 정보가 있지도 않은 아이와 지내면서 겪는 온갖 후회와 반성의 잡생각 뭉탱이 '육아 생존기'를 애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빠로서 기록하는 글을 쓰고 나면 자주 듣는 말이 있어요. 어떻게 아빠가 이런 육아 일기를 쓸 수 있냐고요. 부럽고 신기하다고요. 정말 그런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전혀 관심 없던 전과 달라진 건 사실입니다. 그 변화의 일대기는 제 책 <아빠 육아 업데이트>에 담겨있습니다. 변화를 원하신다면 권해봅니다. 또 누가 변할지 모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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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제가 쓴 책이 나왔습니다. 애만 만들고 아빠인 척하던 제가 변해가는 이야기입니다. 아닌 척 모른 척했지만 저도 그저 엄마가 애를 키우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저 같은 사람이 많아져서 함께하는 육아가 당연해지는 날을 꿈 꿉니다. 책 표지에 적어 둔 것처럼 인세 수익은 모두 필요한 아이들에게 기부합니다. 다른 욕심 없이 오로지 더 많은 이들에게 전해져서 세상이 변하길 바랍니다. 아이가 있거나 아직 없거나 다 컸거나 심지어 없을 예정이어도 읽으면 좋습니다. 엄마 아빠가 함께하는 육아를 아이와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이해해야만 바뀌기 때문입니다. 관심과 사랑 부탁드립니다. 필요한 분들에게 전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 순간을 나눌 수 있어서 기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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