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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Joon Feb 09. 2022

모른 척하고 싶은 아이의 성장

몸, 머리, 마음

불과 작년까지만 해도 새벽이면 잠든 아들 가슴에 귀를 대고 숨을 쉬고 있는지 수시로 확인했었다. 2.26킬로그램으로 작게 태어난 아들이 무사히 살아있는지 걱정되는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한 습관이었다. 새근새근 오르락내리락 거리는 가슴이 볼에 닿았다 떨어지고 나서야 편하게 다시 잠이 들었었다. 언젠가부터 점점 확인하는 버릇이 줄더니 이젠 아예 사라졌다. 훌쩍 자란 아들의 넘치는 에너지를 깨어있을 때 감당하느라 다시 일어날 힘이 없어지고 난 후부터다. 확실히 나보다 건강하다는 판단이 들고 나자 괜한 걱정이 사라졌다. 


얼마 전엔 기도를 많이 했었다. 다름이 아닌 아들의 건강을 위해서. 갑자기 겁이 나서 그랬다. 뜻밖의 일정이 생기면서 아들이 다시 연약한 아이로 보이기 시작했다. 자식이 아픈 것보다 부모가 무기력할 때가 없다더니 온갖 나쁜 상상이 와락 몰려왔다. 그 전날에도 당일 아침에도 혼자 눈물을 참으며 별일 없을 거라고 다독였다. 당사자인 아들은 멀쩡한 데 나만 그랬다. 그날 씩씩하게 아들은 아동용 코로나 백신을 맞았다. 정말 내 아들이 맞나 싶을 정도로 아무렇지 않게. 당분간 집에서 쉬자는 설명도 잘 듣고 이해했다. 학교에 가기 전, 점점 심해지는 코로나의 영향으로 우리 부부는 어려운 결정을 내렸다. 따로 칸막이 책상 같은 거 없이 살 부대끼고 어울려 지내는 이곳의 교실에서 아들의 건강을 지키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접종센터에서 만난 아들 또래 아이들을 보며 안도했다. 마음이 약해질 때 같은 상황의 사람을 보며 달래지는 흔한 기분을 즐겼다.


영원해 보이는 전염병은 우리와 아주 가까이에 있다. 아들이 첫 번째 접종을 하는 날 난 세 번째 주사를 맞았다. 예정되어 있지 않았지만 온 김에 맞을 수 있다고 해서 얼떨결에 그러겠다고 했다. 덕분에 하루 만에 멀쩡해진 아들 옆에서 일주일을 골골댔다. 확실히 이젠 아들 건강보다는 나를 챙길 때가 맞나 보다. 파랑의 일터에서는 매일 코로나 검사를 한다. 심지어 이번엔 확진자가 생겨서 집안에서 자체 격리 생활 중이다. 밥도 따로 먹고 화장실도 침실도 따로 쓰고 있다. 어이없는 생이별도 아들은 이해를 해주고 있다. 코로나 때문에 식당에 앉아서 못 먹는다는 설명에 '그럼 서서 먹으면 돼?'라며 해맑게 굴기도 한다. 세상 모든 곳의 사람들처럼 현재 우린 아주 가까이서 그것과 함께 지내고 있다. 조금만 더 지나면 곧 출구가 보일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은 지 오래다. 





책 읽어달라고 조르던 아들이 가끔은 솔직히 귀찮을 때도 있었다. 내 책 읽기도 바쁜데 끝이 없는 요구를 다 받아줄 수 없었다. 어쩌면 그래서 한글을 열심히 알려줬는지도 모르겠다. 어젯밤 내 옆에서 혼자서 책장을 넘기는 녀석을 보니 문득 그때가 좋았구나 싶었다. 더 이상 내게 책을 가져오지 않는다. 읽고 싶은 책을 골라서 옆에서 혼자 읽는다. 귀찮을 땐 언제고 아쉬워하는 날 보면 인간은 참으로 간사한 존재로구나 싶다. 한글 만화책을 보며 깔깔대고 한글 게임 주제가를 목청 높여 진지하게 부르는 아들은 우리보다 즐길 게 더 많다. 차 타고 듣는 영어 라디오를 들으며 낄낄대고 흘러나오는 영어 노래를 흥얼거린다. 남들보다 두 배로 흥겹게 살아가는 아들이 보기 좋다.


특별히 요즘 빠져 있는 분야는 '과학'이다. <놓지 마 과학> 만화 시리즈를 혹시나 해서 손에 쥐어주었더니 놓질 않는다. 코드에 딱 맞는지 하루 종일 붙들고 살면서 탐구를 한다. 아는 것도 많아져서 설명이 무척 상세해졌다. 아침 먹고 졸리다는 나에게 음식이 몸에 들어오면 그리로 에너지가 모두 흘러가서 그렇다고 하고, 우연히 발견한 아들 새치를 뽑아주니 흰머리는 나이가 들거나 스트레스가 있을 때 생긴다는 데 자기는 혹시 '한글 놀이' 때문이 아닐까라는 합당한 추측을 하기도 한다. 더불어 질문도 많아졌다. 이건 뭐야 저건 왜 그래는 기본이고 내 행동 하나하나에 의문을 제기한다. '아빠는 어떻게 밥 먹고 머리만 닿으면 잘 수 있지?'라고 물어서 안 먹고도 언제든 잘 수 있다고 알려줬다. 직접 관찰하고 실험하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온 집안은 더욱 난장판이 되어가고 있다. 잠시 휩쓸고 나면 미치광이 과학자의 실험실로 변하기 일쑤다. 


머리가 자라는 만큼 몸도 자랐다. 다섯 번째 이가 빠졌는데 내가 씻어서 휴지에 감싸 놓은 걸 파랑이 열심히 주어다 버려서 큰 소동이 벌어졌다. 투스 패어리한테 줘야 용돈을 받는 데 어떡하냐는 눈물에 비닐장갑을 끼고 쓰레기통을 열심히 뒤졌다. 작디작은 아들의 앞니는 끝끝내 보이지 않았다. 하필 최근에 먹은 팝콘 낱알과 섞이면서 더욱 어려웠다. 최선을 다한 우리의 노력을 보곤 포기하고 잠이 들었다. 다행히 투스 패어리는 빠진 이 없이도 왔다 갔다. 몸만큼 마음도 자랐다. 뒷좌석에 태우고 차로 이동하고 있던 중 눈물을 꾹 참으며 아들이 말했다. '나 괜찮아. 양순이도 어디선가 잘 지내면 돼.’ 최근에 헤어진 애착 인형이 종종 생각나는 모양이었다. 딱딱한 나로선 가지기 어려운 섬세한 감정을 옆에서 느끼며 괜히 울컥했다. 모르는 걸 아이한테 배워가고 있다.





늘어난 방학 덕에 안 올 것 같았던 2학년 첫날이 밝았다. 같이 놀던 친구들이 우르르 한 반이 된 걸 확인한 아들은 이미 신나 있었다. 학교에 가까워지자 조금 긴장이 되는 모양인지 화장실을 가고 싶다고 했다. 교실 안까지 데려다주고 힘껏 안아주고 헤어졌다. 첫날의 어색함과 낯섦은 여전했지만 다른 때와 다르게 눈물을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아들의 멋진 성장을 확인하고 기분 좋게 돌아섰다. 둘째 날은 가방을 메고 혼자 등교했다. 평소보다 가방이 가벼워졌다는 씩씩한 말과 함께 성큼성큼 걸어가는 아들의 뒷모습이 시원했다. 뒤 한번 안 돌아보고 앞만 보며 가는 아들의 의지를 느끼며 작년과 재작년의 울고 매달리던 짠함이 거짓말 같았다. 인정하고 싶지 않은 건지 눈치채지 못한 건지 헷갈리지만 아이는 훌쩍 커 있었다. 새로운 환경을 매년 받아들이는 녀석이 대견하고 놀라웠다. 올해는 또 어떤 색깔로 물들어 갈지 기대가 많다. 몸과 마음의 체력이 줄어가지만 어딘가 숨어 있을 노련함을 살려 너와 함께 잊지 못할 한 해를 만들고 싶다.





* 매일 쓰는 진짜 일기도 아니고, 그렇다고 고급 정보가 있지도 않은 아이와 지내면서 겪는 온갖 후회와 반성의 잡생각 뭉탱이 '육아 생존기'를 애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빠로서 기록하는 글을 쓰고 나면 자주 듣는 말이 있어요. 어떻게 아빠가 이런 육아 일기를 쓸 수 있냐고요. 부럽고 신기하다고요. 정말 그런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전혀 관심 없던 전과 달라진 건 사실입니다. 그 변화의 일대기는 제 책 <아빠 육아 업데이트>에 담겨있습니다. 변화를 원하신다면 권해봅니다. 또 누가 변할지 모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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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 첫날이면 글썽이던 친구의 과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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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제가 쓴 책이 나왔습니다. 애만 만들고 아빠인 척하던 제가 변해가는 이야기입니다. 아닌 척 모른 척했지만 저도 그저 엄마가 애를 키우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저 같은 사람이 많아져서 함께하는 육아가 당연해지는 날을 꿈 꿉니다. 책 표지에 적어 둔 것처럼 인세 수익은 모두 필요한 아이들에게 기부합니다. 다른 욕심 없이 오로지 더 많은 이들에게 전해져서 세상이 변하길 바랍니다. 아이가 있거나 아직 없거나 다 컸거나 심지어 없을 예정이어도 읽으면 좋습니다. 엄마 아빠가 함께하는 육아를 아이와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이해해야만 바뀌기 때문입니다. 관심과 사랑 부탁드립니다. 필요한 분들에게 전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 순간을 나눌 수 있어서 기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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