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리즈번 호캉스
금요일 오후, 학교를 마친 두 학생을 납치하듯 차에 실었다. 한적한 시골의 일상을 떠나고 싶었다. 신경 쓸 일이 많진 않았지만 더더욱 아무것도 하지 않기 위해 집을 나섰다. 마침 한국에서 오랫동안 골치 썩이던 일도 해결된 참이었다. 그렇게 한 시간 넘게 달렸다. 아들이 화장실을 가고 싶어 했지만 실수 반 고의 반으로 목적지까지 내리꽂았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이름만 들어도 편안해지는 곳. 바로 '남의 집', 즉 호텔이었다. 직접 치우지 않아도 되는 남의 공간에서 남이 해주는 음식을 먹기 위해 이곳에 왔다. 제법 큰 아들은 본인을 싣고 다닐 유모차도 곧잘 스스로 몰았다. 그 공간은 쾌적했고 여유로움이 묻어났다. 우리는 잠시 그 기분을 만끽하며 한없이 널브러졌다.
Alcyone Hotel Residences
Alcyone Hotel Residences, 35 Hercules St, Hamilton QLD 4007
금요일 저녁을 채울 우리의 스케줄은 단 하나였다. 바로 공연과 음식을 마음껏 즐길 수 있는 그곳, '잇 스트리스(Eat Street)'. 2년 전 호주에 놀러 와서 감동했던 음악과 먹거리가 한없이 어울렸던 그곳! 호텔에서 걸어갈 수 있는 거리였기에 완벽했다. 우린 그곳에서 계속 먹었다. 앞에 놓이는 대로 모두 먹어치워서 사진도 남아있지 않다. 이탈리안 통 치즈 바질 파스타, 타즈메이니아 굴, 오코노미야키, 치킨 치즈 빠에야, 페일 에일, 플라멩코 과일 차 까지. 울려 퍼지는 음악도 느끼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마지막 하이라이트는 역시 이것. 아들은 사실 이거 때문에 여기 왔다. '자이언트 플래싱 솜사탕' 어마어마한 사이즈와 반짝이의 조합에 무척이나 만족스러워했다. 집으로 오는 어두운 밤길도 광선검 전사 덕분에 무사했다.
Eat Street Northshore
221D MacArthur Ave, Hamilton QLD 4007
다음날 일어나자마자 아들은 티브이부터 켰다. 아들의 2번째 목적은 바로 '넷플릭스' 집에서는 볼 수 없고 보여주지 않기에 아들은 이제 깨달았다. '아 호텔에 가면 넷플릭스를 볼 수 있구나!' 요즘 꽂힌 포켓몬부터 시작해서 나름의 호텔 라이프를 즐겼다. 호텔 1층 카페에서 간단하게 아침을 먹고 주변에 어마어마한 장소가 있다는 소문을 확인하러 떠났다. 이름부터가 심상치 않았다. '헤라클레스 놀이터' 곧 웅장한 광경이 우리 눈앞에 펼쳐졌다. 2년 전 야리야리하고 소심한 아들은 그곳에 없었다. 과감하게 놀이 시설을 탐닉했다.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모든 구석구석을 누볐다. 따라다니는 우리가 지칠 지경이었다. 쉬지 않고 오전을 보냈다. 이제 남의 집에서 나올 시간이었다. (완벽한 호텔이었는데 냉장고에 있던 누가 봐도 공짜 물이 유료였다는 사실에 놀랐다.)
Hercules Street Park Playground
40 Remora Rd, Hamilton QLD 4007
배가 고팠다. 먹을 시간이었다. 어제 봐 둔 근처 강가에 있는 으리으리한 식당을 예약해두었다. 일식을 종종 먹는데 지금 지내는 곳에는 제대로 된 곳이 없어 늘 아쉬웠었다. 이곳은 좀 달랐다. 2층에 위치한 만큼 품격도 그 정도 올라와 있는 듯했다. 생 초밥, 구운 초밥, 야채튀김, 미소 수프, 유자&매실 셔벗. 언제 다시 올지 모른다는 생각에 많이 시켰다. 맛은 훌륭했다. 여행 기간에 먹은 것 중 제일이었다. 하지만 그만큼 가격도 제일이었다. 평소 가는 식당의 2배가 훌쩍 넘었다. '이러려고 온 여행이지!'라며 넘겼다.
저녁에도 먹을 일정이 있어서 남은 시간에는 소화를 시켜야 했다. (쓰고 보니 정말 먹기만 했구나) 도시로 나와야 볼 수 있는 매장들을 두루두루 들렸다. 다이소, 하나로 한인 마트, 럭키 한인 마트. 가게에서 계산을 하고 나올 때마다 우린 여기 다시는 못 올 것처럼 사댔다. 마치 브리즈번을 모두 사겠다는 것처럼. 늘 이랬기에 그러려니 했다. 열심히 사고 나니 배가 슬슬 고파졌다. 약속된 장소로 기대를 가득 품고 이동했다.
Sono Japanese Restaurant Portside Wharf
39 Hercules St, Hamilton QLD 4007
와... 이곳은 말이 필요 없다. 분위기, 맛, 가성비, 친절 모두 최고였다! 메뉴는 백만 년 만에 맛보는 간장 게장과 양념 게장. 호주에서 이 가격에 이렇게 나올 줄 꿈에도 몰랐다. 맛도 좋고 양도 많고 맛집이 확실했다. 서로 좋아하는 게장(나는 간장, 파랑은 양념)을 앞에 두고 먹으면서 다음에는 이 근처에 숙소를 잡자고 의견을 나눴다. 먹어도 먹어도 남아있는 게장을 결국 밥을 추가해서 모두 해치웠다. 다른 일정은 모두 기억 속으로 날아가고 배 속 가득 찬 게장만 남았다. 배를 두드리면서 '이번 게장 여행 참 좋았다'라며 차에 올랐다. 먹고 자고 놀고 먹고 하던 호캉스를 마쳤다. 파랑은 이미 그 게장집 근처의 괜찮은 후보 숙소 2곳을 골라두었다. 다음이 벌써 기대되는 성과가 많았던 여행이었다.
Manok Park
15 Kingston Rd, Underwood QLD 4119
* 아빠로서 아들을 기록하는 글을 쓰고 나면 자주 듣는 말이 있어요. 어떻게 아빠가 이런 육아 일기를 쓸 수 있냐고요. 부럽고 신기하다고요. 정말 그런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전혀 관심 없던 전과 달라진 건 사실입니다. 그 변화의 일대기는 제 책 <아빠 육아 업데이트>에 담겨있습니다. 변화를 원하신다면 권해봅니다. 또 누가 변할지 모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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