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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Joon Feb 22. 2022

그곳에서 살이 쪘다

호주 - 선샤인 코스트 누사

오랜만에 살이 쪘다. 예민하고 적당히 먹는 탓에 살 찔이 없는데 이번엔 달랐다. 늘 하던 운동도, 항상 가지고 있던 걱정도 없이 지냈더니 변했다. 무엇보다도 먹고 자고만 반복했더니 몸이 부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겨우 2박 3일의 일정이었지만 충분히 변화를 느끼기 충분했다. 그렇게 다녀왔다. 오랜만에 그곳으로 돌아가서 편안한 휴식을 가지고 왔다. 그땐 아무것도 정해지기 전의 두근두근 여행자의 마음이었다면 이번엔 호주 살이 3년 차의 여유로운 현지 생활자의 나들이였다.


종종 그리운 마음에 누사를 자주 다녀갔었다. 이번처럼 숙박을 하며 머무른 것은 2년 만이었다. 호주에 온 것만으로도 늘 여행을 하고 있다고 여기는 나와는 그들은 생각이 달랐다. 파랑과 아들은 언제나 여행을 꿈꾸고 바랐다. 살기 시작한 이상 우리가 머무르는 곳은 더 이상 여행지가 아니었다. 이번 여행을 고대하던 아들은 전날 밤부터 신났다. 여행 때마다 본인 짐을 스스로 싸 두는 데 이번에는 특히 더 신났다. 가방을 2개나 챙겼는데 뭐 그리 짐이 많은지 모자랄 지경이었다. 더 이상 들어갈 자리가 없을 때까지 챙겨 넣고는 겨우 잠이 들었다. 





여행 첫날 학교를 마친 아들을 데리러 갔다. 이미 많이 흥분한 눈치였다. 학교 친구들에게도 놀러 간다고 이야기를 다 했단다. 어디로 가는지 몇 밤 자는지도 모르고 그냥 호텔 간다고 했단다. 하하. 아들을 태우고 바로 출발했다. 거듭된 일정에 쌓인 피로로 파랑은 몸 상태가 좋지 않았다. 두통이 사라지지 않는다고 호소했고 여행지에서 낫길 바라며 천천히 목적지로 향했다.


대단한 곳이었다. 역시나 파랑의 사전 설명을 제대로 안 듣기를 잘했다. 아무런 정보와 기대 없이 방문했더니 그 놀라움과 기쁨이 배가 되었다. 세 가족이 다 쓰기 민망할 정도의 훌륭한 숙소였다. 우리 취향의 인테리어에 있을 것이 다 있었다. 2층 베란다 우리만의 공간까지 완벽했다. 아들의 익숙한 침대 인형 놀이와 자연스러운 넷플릭스 시청이 이어졌다. 어쩐지 이곳을 많이 떠나지 않겠구나 싶은 생각을 했었다.



L'Auberge Noosa

34-38 Katharina St, Noosa Heads QLD 4567




여행 첫날의 하이라이트이자 유일한 일정. 바로 정통 일식 식당 코스요리 저녁. 전부터 오고 싶어 했으나 저녁 시간에만 영업을 해서 올 수 없었다. 미리 예약을 해두었고 6코스와 키즈 메뉴(메인+디저트)를 주문했다. 친절한 설명과 함께 음식이 나왔고 그때마다 즐겼다. 나는 사케 한 잔을, 파랑은 유자주와 매실주를 시켜 마셨다. 파랑의 졸업을 축하하며 건배했다. 평을 하자면 우린 4코스면 충분했을 것이다. 세 번째(새우 계란찜), 네 번째(오리고기 완자탕)는 우리에게 과했다. 첫 번째, 두 번째 코스는 훌륭했고 메인과 디저트도 아주 맛있었다. 이런 식당이 흔하지 않은 이곳에서 축하, 기념을 위해 올 만한 곳이었다. 2시간에 걸친 배부른 식사 뒤에 밤 산책을 가볍게 돌았다. 금요일 밤에 걸맞은 적당히 소란스러운 거리였다. 숙소로 돌아와서 2층 베란다에서 맑은 하늘 속 별을 바라봤다. 포근한 소파베드에서 책도 읽고 넷플릭스도 시청하다가 첫날밤을 맞이했다.



Sumi Open Kitchen

Shop 4 The Pavilion, 19-21 Sunshine Beach Rd, Noosa Heads QLD 4567




둘째 날 아침부터 대참사가 일어났다. 아들이 침대에 실수를 거하게 했다. 어제 전날 자기 전 꼭 쉬야하고 자라는 파랑의 말을 나와 아들이 대답만 하고 안 지키고 잠든 탓이었다. 모두 걷어서 빨래했다. 다른 것 보다도 전날 밤 우리 부자의 넘겨버림 탓에 파랑은 분노로 많이 힘들어했다. 겨우겨우 힘들게 뒷정리하고 느지막이 아침을 먹으러 나왔다. 그날은 알디 마켓에서 겨울 용 라디에이터 기획 판매가 시작되는 날이어서 가까운 알디에 주차를 하고 주변 카페를 찾았다. 마침 그럴듯한 곳이 바로 옆에 있었다. 아침부터 한 바탕한 덕에 배가 많이 고팠다. 남들보다 2배는 더 주문해서 다 먹고 나왔다. 배를 채우고 아주 잠깐 산책 후 라디에이터를 구매하러 이동했다.



the bakers pantry noosa

6/205 Weyba Rd, Noosaville QLD 4566




무사히 이번 겨울을 도와줄 소중한 녀석을 차에 실었다. 다음 장소는 점심을 위한 곳이었다. (이쯤이면 눈치챘겠지만 모두 먹는 일정뿐이다) 숙소 2층 테라스에 바비큐 시설과 버블 욕조가 있는데 그곳에서 해산물 파티를 할 예정이었다. 가까운 해산물 가게에 들러 적당히 이것저것 사 왔다. 다시 숙소에서 늘어졌다. 낮잠, 책, 넷플릭스 달라질 게 없는 휴식 시간을 보냈다. 밥시간이 되어 2층으로 올라갔다. 아들은 버블 목욕을 파랑은 해산물 바비큐를 각각 즐겼다. 마무리는 당연히 새우 라면! 먹고 나서 다시 낮잠, 책, 넷플릭스가 계속되었다.



Noosa Junction Seafood Markets

Cnr. Cooyar Street And, Lanyana Way, Noosa Heads QLD 4567




또 식사 시간이 되었다. 이번 저녁은 좀 어려웠다. 안일하게 예약을 안 하고 간 한식당에는 자리가 없었다. 소화시킬 겨를이 없었기에 배가 계속 불러있던 난 별로 아쉽진 않았다. 가볍게 피맥을 하기 위해 근처에서 피자와 음료를 사서 숙소로 돌아왔다. 그런데 이런 적이 없던 파랑이 피자를 홀라당 태웠다. 다시 식당으로 나갈까 하다가 숙소의 마력 덕분에 배달음식을 시켰다. 피자 한판을 우버 이츠로 시켰는데 별로 중요하지 않은 손님이었는지 계속 시간이 늘어졌다. 나와 아들은 배가 고프지 않았으나 파랑은 연속된 엎어짐 때문에 마음이 편치 못해 동동거렸다. 가까스로 전달받고 세 번만의 도전 끝에 저녁을 먹을 수 있었다. 먹고 다시 변함없이 비슷하게 휴식을 취하다 잠들었다.





마지막 날 아침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끝까지 머물며 늦잠 자고 겨우겨우 정리해서 체크아웃 시간에 맞춰 나왔다. 다음 장소는 당연히 아침 식사를 위한 곳이었다. 자주 가던 누사 해변의 햄버거집으로 향했는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차와 사람이 가득했다. 알고 보니 음악 축제가 있는 기간이었다. 결국 주차에 실패하고 좀 더 내려와서 한 카페에 들렀다. 자주 지나다녔던 길에 있었지만 눈치채지 못했던 곳이었다. 많이 늦어버린 아침 덕에, 그리고 맛있는 음식 덕에 훌륭한 식사를 할 수 있었다.



Chalet & Co

1 Tingira Cres, Sunrise Beach QLD 4567




아들은 갑자기 답답함을 호소했다. 여행 내내 제대로 뛰어놀지 못해서였다. 집돌이 아들이 이럴 정도니 이번 여행의 휴식이 어느 정도였는지 깨달았다. 카페 앞 해변으로 나섰다. 한참을 바다에서 놀다가 왔다. 그렇게 이번 여행을 마쳤다. 거짓말 없이 숙소에서 98% 머물렀던 진짜 호캉스였다. 점점 이런 여행이 더 좋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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