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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Joon Mar 02. 2022

홍수가 나면 모두 잊어버려!

자연재해 앞의 무기력함

끼이익~!

여기도 막혔다. 이미 눈앞의 도로는 넘실대는 흙탕물로 채워져 있다. 경찰이 막아서며 돌아가라고 하지만 않았더라면 아까처럼 무리해서 물로 가득 찬 도로를 건넜을 테다. 우박 같은 빗줄기가 앞유리를 때려대자 와이퍼는 힘겹게 겨우겨우 오간다. 뒷좌석의 아내는 급하게 다른 도로를 찾는다. 멀리 돌아가더라도 이곳만 빠져나갈 수 있다면 상관없다. 새로운 경로를 설정하고 급하게 핸들을 틀어 차를 돌린다. 아직 늦지 않았다는 생각에 헤맨 지 벌써 몇 시간이 지났다. 이제 이곳마저 막혀있다면 우리는 집으로 돌아갈 수 없다. 멀리서 빨간 불빛과 파란 불빛이 겹쳐 보인다. 한 발 늦었다.


사실 전날 밤부터 이상했다. 국외부재자 투표를 하러 금요일 일정을 마치고 떠날 때부터 비가 많이 왔다. 아무리 그래도 고속도로로 다니면 문제가 없겠거니 했다. 중간에 잠깐 막히는 곳을 피해 국도로 향했었는데 물에 잠긴 곳이 몇 군데 있었다. 스릴 있게 물줄기를 뿌려가며 건넜다. 그러다 만만치 않은 웅덩이를 만났고 무리하게 건너던 차량이 도로 옆에 비상등을 켜고 세워져 있었다. 이건 아니다 싶어서 다시 고속도로로 돌아왔다. 평소보다 정체된 이유는 한쪽 차선이 물에 잠겨 사용하지 못해 다른 쪽 차선을 나눠 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쯤 되면 심각성을 깨닫고 돌아왔어야 하는 데 어쩐지 다음날이면 모든 게 해결될 거라고 믿었다. 1시간 거리를 3시간이 넘어 도착했지만 만족스러웠다. 실제로 계획된 일정을 모두 잘 소화했다. 도착한 날 저녁 예약한 식당에서 배부르게 잘 먹었고, 다음날도 일찍부터 투표도 하고 맛있는 빵집도 갔고, 한인마트에 들러 김치와 떡도 챙겼다. 마지막으로 집으로 돌아와 저녁에 초대한 손님들과 먹을 감자탕 10인분도 포장해서 차에 실었다. 비는 여전히 왔지만 재빨리 움직이면 무사히 복귀할 수 있다고 천연덕스럽게 믿었다.


올라탄 고속도로는 한산했다. 전날부터 여기저기서 물이 넘쳤다는 소식과 함께 집에 머물라는 권고가 있었던 덕분이었다. 우리도 그 안내처럼 빨리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절반 이상을 아무 이상 없이 달렸다. 이제 30분만 더 가면 집이었다. 갑자기 고속도로가 끊겼다. 돌아가라는 경찰관의 안내에 따라 돌아가는 국도로 향했다. 좀 더 오래 걸려도 할 수 없지라는 생각에 경로를 다시 설정했다. 가는 곳마다 물에 잠긴 곳이 있었고 다른 차들이 건너듯이 엑셀을 힘껏 밟아 물 위를 달렸다. 하지만 결정적인 구간마다 길은 막혀있었다. 마지막 경로가 막혔음을 눈으로 확인하고도 한참을 헤맸다. 혹시 일시적인 잠김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차를 타고 도로에 나온 지 4시간이 넘어서야 포기했다. 도로를 굳게 막고 있는 경찰에게 물었다. 우리 집으로 오늘 돌아갈 수 있냐고. 대답은 단호했다. 'Not today.'


포기하고 나니 마음은 편했다. 여행 하루 더 온 걸로 치자며 숙소를 물색했다. 문제는 바리바리 싸들고 온 음식이었는데 커다란 냉장고가 있는 곳이 필요했다. 근처에는 마땅한 곳이 없어 다시 시내로 차를 돌렸다. 이미 검증된 곳으로 향했고 도착해서 모든 짐을 다시 방안에 올려 풀었다. 그때까지도 희망을 놓지 않았다. 밤늦게라도 길이 뚫리면 언제라도 튀어나갈 준비를 했다.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식량은 충분했다. 2년 만에 만난 감자탕을 후후 불어 먹으며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하지만 뉴스를 통한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고 우린 떠날 수 없었다. 다음날 아침이 되어서야 포기하고 숙소를 연장하기로 결정했다. 희망을 내려놓은 가벼운 마음으로 안내데스크 직원에게 갔던 아내는 어두운 낯빛이 되어 돌아왔다. '방이 없대!'


급하게 풀었던 짐을 다시 쌌다. 정확히는 냉장고에 넣었던 음식을 상하지 않게 포장해서 차에 실었다. 적당한 도심의 숙소를 예약하고 달렸다. 마음이 풀어지는 데 며칠이 더 필요할지 모르는 하늘은 한 시도 쉬지 않고 비를 내렸다. 아마 그날이 가장 참담했을 테다. 가졌던 희망이 완전히 꺾였을 때. 아들 학교에서는 다음날 월요일 휴교 소식을 알려왔다. 같은 날 예정되었던 아내의 교육도 연기되었다. 따지면 여행 와서 비가 오는 바람에 밖으로 나서지 못하고 방에서 노는 상황이었지만 기분이 그렇지 못했다. 몸은 편했지만 기약이 없는 휴식은 마음의 피로를 풀어주지 못했다. 처음으로 맞닥뜨리는 자연재해는 닿을 수 없는 크기의 막막함이었다.


방 안에 갇혀 방 밖의 소식을 접했다. 위험천만하고 어려움을 겪는 소식은 안타까웠다. 그곳에 있을 뻔한 우리가 떠올라 소름이 돋으면서 편안히 피해 있는 지금을 감사했다. 이 와중에도 역시나 정신 나간 사람들은 있었다. 그들은 유머로 승화시킨다고 한 행동이었지만 이해할 수 없었다. 물이 가득 찬 도로나 공원에 나와 물놀이를 즐기는 자들이었다. 그걸 재밌다고 찍어서 온 동네 소문을 내고 있었다. 내 집 방구석에 편안히 있었다면 그럴 수도 있겠네 했을 텐데 눈으로 참사를 보고 나니 웃음기가 사라졌다. 곳곳엔 많은 이들이 수해로 고통을 겪고 있고 이를 구제하고 돕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책임감 많은 분들이 밖에 여전히 있다. 함께 걱정하지 못할 망정 웃고 즐기는 모양이라니. 사실 여기까진 그러거나 말거나 개인 자유다. 내가 생각이 미친 건 '그들이 좋다고 놀다가 만약에 위험에 빠지면 어쩔 것인가?'였다. 남의 손을 빌려도 모자랄 소방관, 경찰관, 구급대원을 부르려고 전화해서 절박하게 도와달라고 할 것 아닌가? 하도 심심해서 놀다가 다쳤다고, 빠져서 위험에 쳐했다고, 구해달라고. 쓸데없는 짓으로 발생할 인력 낭비는 생각을 하고 저러는지 모르겠다. 오락은 자신이 책임질 수 없는 범위에서 즐겨야 한다. 사고가 나도 도움을 청하는 전화 걸지 않고 알아서 처리하겠다는 다짐을 한 사람만 놀아야 한다. 그럴 자신이 없다면 조용히 집에 가서 다른 수해 피해자를 위해 기도하는 게 맞다. 무식한 자신의 미련함을 만천하에 드러내며 민폐를 끼칠 때가 아니다.


세 번째 밤이 지나서야 드디어 해가 떴다. 오랜만에 보는 햇빛은 반가웠다. 창가에서 보이는 불어난 강물은 여전히 빨랐지만 점점 아래로 내려섰다. 여행 중 처음으로 우산 없이 밖으로 나섰다. 많은 곳이 닫혀있었다. 도로는 중간중간 잠겨있었고 복구 작업으로 바빴다. 어제와 다른 오늘에 감사하며 파란 하늘을 생경하게 바라봤다. 회복되어가는 주변을 눈으로 보고 귀로도 열심히 들었다. 하룻밤이 더 필요했다. 가벼운 하룻밤 일정이 결국 네 번째 밤을 지나게 되었다. 처음에 샀던 빵과 음식은 많이 줄어있었다. 마지막 날 거짓말처럼 완전히 개인 푸른 하늘 아래를 통과해서 집으로 돌아왔다. 익숙한 공간은 포근했고 뽀송뽀송했다. 그제야 참았던 안도의 한숨을 길게 늘어놓았다. 


살며 홍수, 태풍 같은 자연재해는 남의 일이었다. 그런 일도 있구나 했지 이렇게 피부로 느낀 건 처음이었다. 인간이 할 수 있는 건 그저 지나가길 기다리는 것 밖에 없었다. 멋 모르고 이리저리 뛰어다녔던 도로에서의 추한 객기가 부끄러워졌다. 확실하게 하나는 배웠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발생하면 무리하지 말자. 우리는 해당되지 않을 거야라고 넘겼던 곳곳에 넘치던 안내 문구가 똑똑히 뇌리에 박혀있다.


If it's flooded, forget it!


피해 입은 모든 생명의 안전과 회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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