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드 코스트 락다운 여행 (상)
여행 전날이면 언제나 아들은 흥분을 주체하지 못하고 날뛰기 마련이다. 이상하게도 이번엔 아들이 진지했다. 다음날이 여행의 첫날이자 우리 집의 첫 'YES DAY'였기 때문이다. (*YES DAY : 육아를 하며 항상 'NO'를 외치는 부모가 한 달에 한번 'YES'만을 하는 날) 이 날을 위해 아들은 열심히 생활해왔고 당당히 획득했다. (밥 잘 먹기, 한글 놀이, 정리하기) D-Day 전날 밤, 아들은 수첩에 하고 싶은 일들을 열심히 적느라 바빴다. 미리 생각해 둔 게 많았는지 꽤 길었다. 대망의 당일 아침, 일어나자마자 우리는 아들의 소원을 하나씩 이루어갔다.
첫 번째 소망은 '여행 가기'였다. 그래서 우린 떠났다. 떠나기 전에 할 일이 많았다. 아들의 위시 리스트에는 '옷 안 갈아입고 잠옷으로 차 타기'가 있었고 또한 '아침으로 간식 먹기'가 있었다. 원하는 대로 해 주었다. 첫 행선지는 여행 목적지가 아니었다. '용돈 30불'을 받은 아들이 당장 장난감을 사기 원했기 때문이었다. 장난감 가게로 가장 먼저 향했고 아들은 소원을 이루었다.
어느 정도 아들의 욕구를 만족시킨 우리는 드디어 집 근처를 떠날 수 있었다. 아들이 바라는 또 다른 YES DAY 리스트는 '놀이동산'이었다. 자기는 그냥 공원(=Park)라고 했는데 우리 부부가 테마 파트로 알아듣고 일이 커져버린 비하인드 스토리가 남았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우리도 즐기자는 속셈으로 2년 전에 와서 가장 재밌게 즐겼던 곳으로 다시 돌아왔다. 바다 생물이 곳곳에서 반겨주는 '씨 월드(Sea World)'! 이곳에서도 아들의 한풀이는 계속되었다. 쉬지 않고 간식을 먹었고 가고 싶은 방향으로 마음껏 향했다. 우리 부부는 마음을 내려놓고 마음대로 하게 두었다. 타고 싶은 놀이기구도 즐기고 보고 싶은 바다 동물도 마음껏 보았다. 기억에 강력하게 남은 놀이는 '물 대포 쏘기'였다. 배를 탄 팀과 배 밖에 있는 팀이 서로 신나게 물을 쏴대는 놀이 시설이었다. 생전 처음 본 사람들이 서로 편을 갈라서 죽자고 물을 퍼붓는 모습이 재밌었다. 아들과 파랑도 한 몫하겠다며 덤벼들었다. 유쾌한 순간이 산뜻하게 기억되었다.
씨 월드 (Sea World)
씨 월드 탐험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 되었지만 아직 끝나지 않은 YES DAY라 쉽게 도착하기 어려웠다. 아들이 원하는 대로 차를 모는 '펀(FUN) 드라이브' 덕분이었다.(왼쪽으로! 오른쪽으로!) 여행 내내 무척 인기 있었다. (안전운전 필수!) 한참을 헤매다가 첫 숙소에 도달했다. 그동안 호주 여행에서는 아파트먼트(주방, 세탁시설 완비)에 항상 묵었었다. 이번엔 동남아에서 즐기던 호텔, 리조트로 파랑이 준비했다. 숙소를 둘러보며 놀라고 흥분했다. 바로 이런 곳이 휴양지에 걸맞은 곳이라고 외쳤다. 저녁도 숙소를 떠나지 않고 해결했다. 룸 서비스를 별 기대 안 하고 시켰는데 맛도 양도 가격도 훌륭했다. 점점 이곳이 난 좋아졌다. 아들은 저물어 가는 YES DAY를 불살랐다. 마인 크래프트 게임을 원 없이 했고, 해가 진 뒤에도 티브이를 보았다. 저녁을 먹은 뒤에도 간식을 원해서 아이스크림을 시켜줬다. 아쉬운 하루를 밤늦게까지 즐기던 아들은 결국 지쳐 잠들었다. 그렇게 여행 첫날이자 우리의 첫 YES DAY가 끝났다.
RACV 로열 파인스 리조트 골드 코스트
다음날 아침부터 우리는 바빴다. 전날 저녁에 본 리조트와 아침에 드러난 모습은 확연히 달랐다. 멀리 끝까지 펼쳐진 광경은 어느 쪽을 바라보든 시원했다. 오랜만의 그럴듯한 조식 뷔페도 훌륭했다. 이쯤 되면 숙박비가 궁금해질 텐데 별로 비싸지 않았다. (세 가족 기준 조식 포함 1박에 300불 이하 - 우리나라 돈 24만 원) 물론 비성수기, 해변에서 먼 골프 리조트라는 것을 감안해야 한다. 우린 겨울에 왔기에 이보다 더 좋은 장소는 없었다. (파랑 칭찬해!) 아침을 먹고 리조트 곳곳을 둘러보았다. 산책코스, 놀이터, 수영장, 운동시설까지 없는 게 없었다. 난 이곳에 영원히 살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숙소에 계속 머물고 싶었지만 그렇다고 그럴 순 없었기에 힘겹게 발을 떼어냈다. 미리 예약해 둔 반딧불 동굴 체험이 기다리고 있었다. 30분 정도 차를 타고 '탬보린 마운틴 예술 거리'에 도착했다. 신기하고 예쁘고 맛있는 것들을 보고 먹고 즐겼다. 한인 사장님이 운영하시는 카페에서 요기도 했다. 시간이 되어 투어 장소로 갔는데 내 맘대로 기억한 '반딧불'을 보는 곳이 아니었다. 정확히는 글로우 웜(Glowworm)이었고 개똥벌레류의 유충이 빛을 내고 있는 동굴을 다녀왔다. 아쉽게 사진 촬영은 못 했지만 놀라운 체험이었다. 우리 가족은 짧지만 아주 강렬하게 새로운 세계를 다녀왔다.
탬보린 마운틴 갤러리 워크
글로우 웜 케이브즈
이때부터였을 것이다. 라디오와 트위터에서 심상치 않은 뉴스를 연거푸 전했다. 우리가 있는 지역에 코로나 확진자가 속출하고 있었다. 결국 둘째 날 저녁 6시부터 3일간 락다운이 시작되었다. (락다운 : 이동제한령, 봉쇄령. 시행된 지역에서는 야외 활동이 금지되고 오도 가도 못하게 됨)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 생수와 맥주, 와인을 구매했다. (갇혀서 놀기 위한 필수품) 사랑하는 숙소에 돌아온 덕분인지 아직 사태를 실감하지 못했다. 아들과 파랑이 잠든 고요한 밤을 즐겼다. 그동안 내겐 없던 술과 밤이었다. 혼자서 마시고 생각하는 시간은 낯설었다. 취해가며 맑은 밤하늘을 보는 기분은 설레었다. 다음날이 예상도 걱정도 되지 않았다. 그때를 즐길 뿐이었다. 오랜만에 어떻게 잠들었는지 기억을 못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