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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Joon Apr 20. 2022

그곳이 없었더라면 없었을 지금

갑자기 찾아온 굴렁쇠와의 이별

그때 우린 많은 것을 결정했고 많은 것을 내려놓았다. 아들의 ‘엄마 아빠, 이제 고민 끝난 거야?’라는 놀라운 반응처럼 그 이후엔 어떤 고민도 하지 않았다. 우리에게 없던 이런 엄청난 용기는 원래 우리 것이 아니었다. 그곳에 많은 빚을 지고 왔다.


어지러운 세상 속에서 맑은 기운을 넘치게 북돋아 주었던 ‘굴렁쇠’와 이별한 것도 벌써 2년이 훌쩍 넘었다. 시간이 빠르다는 말은 그만큼 잊고 지냈다는 말이 아닐까 싶다. 강렬했던 과거도 가까운 지금의 거리에 밀려 희미해진다. 문득 깨달을 때만 가끔 아련해지곤 한다.


아빠를 전보다 많이 찾는 아들을 볼 때면 으쓱대며 '나 그동안 잘 지냈구나'라고 스스로 칭찬을 한다.


모두 덕분이야. 굴렁쇠, 많이 보고 싶어.






20190619


아들은 터전에 복귀하자마자 다양한 일정을 소화했다. 그 어렵다는 불곡산 정상을 동생들을 도우며 올랐고, 5월이면 빠지지 않고 찾아오는 ‘단오잔치’도 3번째로 즐겼다. 이제는 7세가 되어 형님만 할 수 있다는 활동들을 기다리며 꿈을 키워가고 있었다.


그러던 6월 초 어느 날... 파랑과 내가 고민하고 있던 우리의 다음 인생을 실천해 볼 발판이 될 기적이 일어났다. 쉽지 않은 일이기에 내년이나 내후년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보다 빨리 찾아왔다. 찾아온 기회를 잡을지 말지 고민했다. 최종 결정을 내리기 전날 밤늦게까지 나눈 이야기 끝에 떠나기로 마음을 정했다. 다음날 아침 가장 먼저 굴렁쇠에 알렸다. 이사회와 교사회와 면담을 가졌고, 사정을 전했다. 많이 아쉬워했지만 우리의 결정을 존중해주었고 응원해줬다. 그 뒤에야 비로소 각자의 회사와, 양가에 설명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렇게 우리는 휴직을 하고 ‘호주’에서 지내보기로 했다. 이게 불과 2주일 전의 일이다. 어쩌면 너무 단기간에 빠르게 결정된 것으로 보일지도 모르지만 오래전부터 고민해 왔고, 조금씩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랬기 때문에 찾아온 기회를 맞아 좀 더 쉽게 결정할 수 있었다.


우리 가정과 닿아 있는 인연들이 많았다. 공통된 반응은 ‘부럽다, 축하한다, 어렵고 큰 결정 했다’였다. 어쩌면  모두 할 수 있고, 하고 싶지만 쉽게 정할 수 없기 때문에 그랬던 것 같다. 이해가 된다. 나도 아들이 태어나고 3개월만 육아휴직을 사용해달라는 파랑의 말에 세상이 끝날 것처럼 엄청난 피해가 올 것 같아서 차마 그러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도대체 무엇이 더 중요하길래 그랬나 싶다. 가장 중요한 우리를 위해 시원하게 육아휴직을 시작했다.


집에 쌓인 짐을 정리해 나가던 중, 작은 이벤트를 기분 좋게 치렀다. 굴렁쇠 아마(아빠 엄마)들을 집으로 초대해서 이별의 인사를 나누며, 집안의 물건들을 필요하고 원하는 사람들이 가져갈 수 있도록 ‘드림’을 했다. 그전에 가장 먼저 터전에 필요한 물건들은 미리 의견을 받아 모두 드리기로 했다. 원래는 중고로 가전, 가구, 의류를 판매해서 수입이 없는 1년 생활비에 보태 볼까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먼저 떠나는 아쉬움과 미안함도 있었고, 서로 나누는 기쁨이 더 클 것 같아서 파랑과 함께 준비해서 즐거운 금요일 밤을 보냈다. 마침 아이들이 터전에서 1박을 선생님들과 하는 ‘터전 살이’가 있어 날짜를 맞췄고 그날 아마들의 자유로운 시간을 이용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소중한 데이트 시간에 방문해주신 모든 아마들께 감사드린다.


어제는 ‘아름다운 가게’에 의류와 잡화를 기증하고 왔다. 세 가족이 함께 다녀오고 나니 기분이 상쾌했다. 물리적인, 경제적인 부분을 내려놓고 보니 마음이 이렇게 편할 수가 없었다. 오늘을 참으면서 돈을 더 벌며 나중을 기약하기보다는 당장의 행복을 위해 절약하고 나누는 삶이 훨씬 만족스럽다. 우리에겐 쉽게 결정을 내리고 편하게 할 수 있는 행동들이 다른 이들에게는 많이 낯설게 보였는지, 정말 그냥 받아도 되냐고 걱정 반 고마움 반의 말씀을 하는 분들이 많다. 파랑과 내게 지금 겪는 새로운 출발은 직장생활 11년 차, 결혼생활 8년 차가 되어 지난 생활과 삶을 한번 정리하며 돌아보는 뜻깊은 순간이다. 그 시간을 나눔으로 채우니 보다 더 마음이 뿌듯하고, 아들에게도 자연스럽게 전하게 되어 기쁘다.


어쩌면 생애 첫 커다란 변화를 겪는 아들은 대견하다. 우리의 결정을 처음 듣고 보인 반응은 정말 놀라웠다. ‘엄마, 아빠 이제 고민 끝난 거야?’ 그동안 우리가 나누던 고민을 옆에서 듣곤 했었기에 누구보다도 가장 쉽게 이해했다. 어디라도 잘 지낼 수 있을 거라고 서로를 다독여 왔기에 아들도 ‘난 할 수 있어’라는 자신감을 가졌다.


새로운 시작을 위한 준비로 바쁜 6월을 보내고 있다. 그리고 굴렁쇠와의 이별도 함께 준비하고 있다. 이렇게 결정을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굴렁쇠였다. 아들을 보내면서 보다 자유롭게 커가는 모습이 너무 좋았다. 덕분에 자유로운 우리의 삶에 대해 고민을 시작했고 이를 위한 결정을 보다 쉽게 내렸다.


앞으로의 새로운 시간이 어떤 의미를 줄지 사실 잘 모르겠다. 변화를 위해 실천하고 경험해본다는데 큰 의미를 두고 있을 뿐이다. 이를 위한 용기를 북돋아 준 곳이 바로 굴렁쇠였다는 것에 나와 파랑은 깊이 동의한다. 아들은 굴렁쇠 덕분에 아가에서 형님이 되어가고 있고, 나와 파랑은 초보 신혼부부에서 아빠, 엄마가 되어가고 있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이곳에서 얻은 모든 인연과 깨달음에 많이 감사하다.




집 정리 에피소드


꽁꽁 넣어두었던 앨범을 꺼내다 파랑의 대학 졸업 사진을 본 아들이 놀라며 외쳤다.


[아들] '이거 엄마야?’

[파랑] ‘응~ 엄마지~’

[아들] ‘음... 확실히 말해봐~!’


상처받은 파랑, 힘내.


* 아빠로서 모자라고 부족한 저에게 큰 가르침을 준 공동육아 어린이집과의 인연은 믿기지 않는 행운이었습니다. 함께하는 육아를 알아가는 여정을 담은 '공동육아일기'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모든 것의 시작을 전 소중하게 여깁니다. 처음 아빠로서 스스로를 자각하고 돌아보게 만든 그곳이 그렇습니다. 그 이후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이어진 변화의 일대기는 제 책 <아빠 육아 업데이트>에 담겨있습니다. 변화를 원하신다면 권해봅니다. 또 누가 변할지 모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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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제가 쓴 책이 나왔습니다. 애만 만들고 아빠인 척하던 제가 변해가는 이야기입니다. 아닌 척 모른 척했지만 저도 그저 엄마가 애를 키우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저 같은 사람이 많아져서 함께하는 육아가 당연해지는 날을 꿈 꿉니다. 책 표지에 적어 둔 것처럼 인세 수익은 모두 필요한 아이들에게 기부합니다. 다른 욕심 없이 오로지 더 많은 이들에게 전해져서 세상이 변하길 바랍니다. 아이가 있거나 아직 없거나 다 컸거나 심지어 없을 예정이어도 읽으면 좋습니다. 엄마 아빠가 함께하는 육아를 아이와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이해해야만 바뀌기 때문입니다. 관심과 사랑 부탁드립니다. 필요한 분들에게 전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 순간을 나눌 수 있어서 기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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