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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Joon May 19. 2022

진상은 이렇게 탄생하는가

호주 여행 환불 성공기

현금을 주고받던 시절에는 거스름돈을 잘못 받기 쉬웠다. 더 주면 더 준 만큼 돌려주고 나오면 끝이라서 편했다. 문제는 덜 줄 때다. 그땐 찌푸린 주인아저씨와 함께 힘겨운 확인 작업을 해야 했다. 추가로 받아내는 과정이 잘못한 것도 아닌데 찝찝했다. 어린 나이에 그 기억이 싫었는지 그 이후로는 덜 받아도 말을 안 하기 시작했다. 대세에 지장이 없으면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그게 몸에 배었는지 커서도 특별히 세상이 끝나는 게 아니면 불만을 표현하지 않았다. 식당에서 음식이 잘못 나와도 그냥 먹었다. 사 온 물건이 좀 아니어도 대충 썼다. 사장 입장에서는 가장 편한 고객이 아니었을까 싶다. 불만 가득해서 격하게 들이대는 진상 손님과는 거리가 멀었으니까.


나와 다른 사람 파랑을 만나서 많이 놀랐다. 소비자의 권리를 제대로 배운 그녀는 당당했다. 필요한 목소리를 내었고 받아야 할 것을 받아냈다. 딱 선을 지키며 이루어내는 그녀는 내겐 신기한 존재였다. 나는 왜 그러지 못하고 거부감이 있을까 따져보니 이래서였다. 그 과정을 겪는 게 귀찮았던 것이다. 다른 이에게 옳은 소리를 하며 상황을 바로잡는 건 품이 들었다. 옆에 살아있는 소비자의 수호자가 척척 해결해주는 덕분에 고객불만제기는 더더욱 내 역할에서 멀어져 갔다.


그랬던 내가 제대로 고객 불만을 제기했다. 이번엔 파랑이 아닌 내가. 오히려 파랑은 나를 '워워'하며 자제시켰다. 하지만 난 참을 수 없었다. 한국도 아닌 타국, 이 호주에서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난 뜨거워졌다. 역할이 바뀌어 살림을 맡고 있어서 그랬던 걸까? 아니면 이방인이라는 생각에 괜히 더 욱했던 걸까? 아무튼 이번에는 그냥 넘어가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불타올랐다.






길게 여행 다녀온 적이 있다. 여행 중간에 코로나 상황이 심해져서 락다운이 시작되었다. 예약해 둔 여러 볼거리와 먹거리를 취소해야만 했다. 우리의 안쓰러운 마음을 이해하며 모두 흔쾌히 환불해주었다. 딱 한 곳만 빼고. 계획이 모두 어그러져서 가뜩이나 기분이 별로였는데 이곳은 그런 나를 자극했다. 이번에 못 가게 돼서 너무 아쉽다며 환불을 부탁한다는 내 요청에 그들이 자동 응답을 보내왔다.


'우리 티켓은 환불 불가임! (이미 쓰여있는 거 알지?) 그 대신 너무도 기쁘게 나중에 쓸 수 있는 크레디트를 줄 수 있으니 연락해~'


복붙만 아니었다면 그냥 넘어갈 수 있었다. 난 이미 홈페이지의 해당 안내를 확인했고, 그 크레디트는 우리에겐 아무 소용없다고 보낸 내용에는 말이 없었다. 그러든지 말든지 자기들 하고 싶은 말만 하고 기계적으로 대응했다. 순간 자리에 정자세로 앉아서 분노의 영어 글짓기를 시작했다.


"너네 환불 불가 문구 나도 읽었어. 그러나 이 상황은 내가 선택한 게 아니니 적용될 수 없는 특별한 상황이야. 결정적으로 이번 여행이 우리에겐 그곳에 가는 마지막 여행이야. 우린 너희에게 나쁜 감정과 기억을 가지고 싶지 않아."


일주일 동안 답이 없었다. 다시 허리를 더더욱 곧추세우고 영작에 뛰어들었다.


"여행에서 방금 돌아왔는데 너희 빼고 모두 환불해주더라. 물론 걔네들도 환불불가라는 조건을 가지고 있었지만 아무런 취소 비용, 협상과정 없이 바로 해주었어. 왜냐하면 걔네들은 이 상황을 이해했고 무엇보다도 우리의 기분을 신경 썼기 때문이야. 이미 너희에게 개떡 같은 기억만 남아있는 상태야. 뭐라고 말 좀 해봐."


며칠 안돼서 드디어 제대로 된 답장이 왔다. 이번엔 사람이 쓴 메일이었다.



손을 뻗어 연락을 취해줘서 고맙다니... 이렇게 안 하면 대충 넘어가려고 했구나. 역시 호주스럽게 바로 되지 않고 담당부서에 넘겼고 승인되더라도 한 달은 걸릴 거니 알고 있으라고 했다. 큰 변화였다. 내심 포기하고 있었다. 그래도 답답함과 억울함에 뱉어본 것도 있었다. 일주일 뒤 환불금이 입금되었다. 내 작은 움직임이 결과를 만들어냈다.






우는 아이 떡 준다는 말을 싫어한다. 운다고 다 해주면 안 울고 참고 있는 사람은 뭐가 되나 싶어서. 이번엔 내가 우는 아이였다. 떡 가지고 있는 사람이 너무 미워서 울어재꼈다. 영어로 소통하는 것을 가능한 최소화 하고 있지만 그땐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제한된 실력이 화난 마음을 옮기기에 적절했는지도 모르겠다. 역시 모든 일은 직접 상황에 처해서 빡이 좀 쳐야 집중할 수 있는 법이다. 이제 저곳은 다신 내 이름으로 예약할 수 없다. 이미 블랙리스트에 올라가 있을 테니까. 그때 일은 그때 생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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