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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Joon May 24. 2022

아들이 다른 사람과 잤다

슬립오버(Sleepover)

그날은 유독 아들이 안절부절못하며 오두방정을 떨었다. 전에도 친구가 놀러 오는 날이면 붕붕 뜨긴 했었는데 이 정도는 아니었다. 시계를 매분 매 초마다 확인하며 "언제 올까?"라고 혼잣말도 아니지만 질문도 아닌 말을 반복했다. 결국 우리는 집 안에서 기다리지 못하고 손을 잡고 밖으로 나섰다. 혹시라도 친구가 길을 헤맬까 봐 걱정하는 아들을 안심시키기 위해서. 멀리서 엄마와 손을 잡고 걸어오는 아들 친구가 보였다. 드디어 역사적인 순간이 시작되었다. 그 친구는 그날 자기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시작은 이러했다. 합이 잘 맞는 아들과 그 친구는 종종 학교 마치고 근처 놀이터에서 노는 약속을 잡곤 했다. 여기 말로 플레이 데이트(Play Date), 우리말로 부모 동반해서 놀기. 아직 초등학교 저학년이기에 부모의 보살핌이 필수다. 어느 날 잘 놀고 헤어지려는 데 그 친구 엄마가 내게 말했다.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내 아들이 준이랑 슬립오버(Sleepover)를 하고 싶어 해. 괜찮을까?" 오호! 이게 바로 말로만 듣던 남의 집 가서 자고 오는 거구나 싶었다. 나 없이 혼자서 친구네 놀러 가는 일도 세상에 없을 일로 알고 있는 아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했다. 결과는 대실패. '무슨 말도 안 되는 말이야'라는 표정으로 불가능하다고 대답했다. 혹시나 싶어서 반대를 제안해봤다. "그럼 친구가 우리 집 와서 너랑 같이 자면?" 잠시 생각을 해보더니 덥석 물었다. 이거다 싶었다.


다소 바뀐 대답을 친구 엄마에게 전했다. 쿨하게 어디든 상관없다고 했다. 아니 오히려 좀 더 좋아하는 눈치였다. 생각해보니 우리 부부에게 예정돼있던 하룻밤의 자유가 그쪽으로 넘어간 순간이었다. 잠시 아까워했지만 내 아들을 알기에 바로 내려놓았다. 이렇게 놀라운 결정으로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는 것만 해도 충분했다. 사전에 물어보고 맞춰볼 것들이 좀 있었다. 언제 데려다주고 데리러 갈 것인지. 첫날 오후 3시와 다음 날 오후 12시로 정했다. 식사 시간을 저녁, 아침만 넣은 합리적인 일정이었다. 좋아하는 음식과 알레르기도 확인했다. 잠잘 때 특이사항이 있는 지도 물어봤다. 꽤나 많은 경험을 가진 그 친구는 손쉬운 타입이었다.



친구를 초대한 첫 번째 슬립오버



그렇게 아들의 첫 슬립오버, 밤샘파티가 시작되었다. 따로 챙겨 줄 것도 없이 소년 둘은 종횡무진 시간을 보냈다. 중간중간 에너지를 채워줄 식량을 공급해주는 게 어른과의 유일한 만남이었다. 밤이 되어 두 친구의 자리를 펴주었다. 경험 많은 그 친구는 센스 있게 밤 기저귀도 착용했다. 우린 방에 누워 멀리서 그 친구들의 밤샘 수다를 엿들었다. 나는 곧 정신을 잃었고 파랑에게 들어보니 거의 10시까지 까르르 대며 놀았다고 한다. 아들의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는 기분은 신기했다. 나도 저 맘 때쯤 친구와 둘이 놀며 잠들었다면 더 했으리라 싶었다. 마음껏 친구와 보내는 그 순간이 얼마나 흥분되었을까?


다음날도 그 열기는 계속 이어졌다. 헤어질 시간을 아쉬워하며 쉬지 않고 두 친구는 불태웠다. 다시 못 볼 것처럼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며 놀았다. 약속된 시간이 되어 친구 엄마가 찾아왔고 둘은 최고의 시간을 보냈다고 전했다. 우리 부부는 이번엔 너희가 잘 쉬었으니 다음엔 우리도 좀 쉬자고 다음을 기약했다. 그렇게 아들의 하룻밤 일탈은 끝이 났다. 아니, 끝이 아니고 시작이었다.


무슨 일이든 시작이 어렵다. 아들은 다음 손님을 초대했다. 이번엔 한 명도 아니고 세명이나. 교회에서 함께 노는 형님들과 잊을 수 없는 추억을 만들었다. 새벽에 잠자리를 찾지 못하고 우리 침대로 돌아오는 일이 있었지만. 단련이 되고 준비가 되면 다음 성장이 있는 법이다. 아들은 우리 집을 떠날 채비를 갖추었다. 자고 갔던 형님들 집에 가서 자겠다고 선언했다.



트렁크를 챙겨 집 나간 첫번째 남의집 슬립오버



스스로 남의 집에 가서 자겠다고 한 건 아들 인생 처음이었다. 우린 적잖게 놀랐지만 일단 보내고 나면 돌아올 자유가 떠올라 마음 바뀌기 전에 약속을 단단하게 잡았다. 거사 전날 아들에게 짐 싸는 것을 부탁했다. 가서 놀거리를 원하는 대로 챙겨 넣으라고 했다. 신나고 흥분된 아들은 여행 가는 기분으로 작은 트렁크를 채웠다. 우리가 받아낸 약속은 늘 하는 잔소리와 같았다. 어른 말씀 잘 듣고, 밥 잘 먹고, 다치지 말고 등등. 듣는 둥 마는 둥 응응 거리며 형님들 집에 도착한 아들은 바로 시야에서 사라졌다. 잘 부탁드린다고 인사를 나눈 뒤 마지막 뽀뽀를 하려고 했는데 아들이 보이지 않았다. 이미 밤샘파티 모드로 형님들 사이에 쏙 들어가 있었다. 노는 건 역시 또래가 최고구나 싶어서 아들을 이해했다.


제보에 따르면 원 없이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돌아와서도 요즘엔 매번 조른다. 다음엔 또 언제 가서 자고 올 수 있냐고. 잘 때 옆에 엄마나 아빠가 없을까 봐 깨서 확인하며 꼭 붙어 자던 아들이 변했다. 집에서 잘 때는 여전히 그런 상태다. 하지만 때론 바깥 생활을 꿈꾼다. 우리에게도 아들에게도 첫 경험이었던 슬립오버(Sleepover). 문득 아이의 독립을 위해 생겨난 놀이 방식이 아닐까 상상해봤다. 부모라면 누구나 한 번쯤 신음과 함께 뱉는 말을 나도 해봤다. "우리 아이가 이럴 줄은 몰랐어요!"


* 아빠로서 아들을 기록하는 글을 쓰고 나면 자주 듣는 말이 있어요. 어떻게 아빠가 이런 육아 일기를 쓸 수 있냐고요. 부럽고 신기하다고요. 정말 그런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전혀 관심 없던 전과 달라진 건 사실입니다. 그 변화의 일대기는 제 책 <아빠 육아 업데이트>에 담겨있습니다. 변화를 원하신다면 권해봅니다. 또 누가 변할지 모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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