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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Joon Jun 14. 2022

셋 중에 둘이 걸리면 누굴 격리해야 하는가

코로나 역격리의 기록

드디어 마지막 날이다. 오늘 한 명은 갇혀있다 나오게 되고 남은 한 명은 오늘만 버티면 된다. 일주일이 짧지 않았다. 한 지붕 아래 살지만 접촉이 금지된 시간은 불편했다. 마스크를 더 쓰고 있다간 스스로의 냄새에 견디지 못해 쓰러질 듯했다. 확진자가 되어버린 아내와 아들과 함께 보내는 기간은 쉽지 않았다. 이럴 바엔 아예 아빠도 걸리면 좋겠다는 아들의 외침에 일부 고개를 끄덕일 정도였다. "다 같이 죽는 거지!" (안 죽어 아들아. 그리고 산 사람은 살아야지.)


며칠이 지나 집에 틀어박혀 있는 게 익숙해진 아들은 웃으며 말했다. "코로나로 좋은 게 하나 있네! 쇼핑을 안 가도 돼!" 자기랑 언제 그렇게 물건을 사러 다녔다고 그러는지. 기껏해야 식료품 마트인데. 전부 나 닮아서 그렇다. 나도 쇼핑은 별로다. 그냥 처음 간 곳에서 처음 눈에 띈 거 사는 걸 좋아한다. 사고 나선 뒤도 안 돌아보고. 다른 곳이 더 싸든 다른 물건이 더 좋든 신경 안 쓴다. 구매 완료에만 의미를 둔다. 나 혼자 자야 하는 잠자리를 공부방에 마련하니 아들이 부러워했다. 남의 떡이 더 커 보이는 건지 바닥에 손님용 매트리스로 대강 만들어 놓은 게 그렇게 포근해 보여서 탐난다고 했다. 한참을 아쉬워하더니 아빠 냄새나는 걸 하나 내놓으라고 했다. 전날 베고 잔 베개를 건네주니 엄마에게 달려가 이렇게 말했다고. "아빠 냄새가 끝내주거든!" 언제까지 내 냄새를 사랑해줄진 모르겠지만 무척 감동이었다. 네 엄마 파랑도 가끔 힘들다고 하는데. (정작 난 아무 냄새도 안 나던데...)


생활패턴이 완전히 달라졌다. 어디에도 나가지 못하는 둘은 항상 붙어 다닌다.  필요한 물건이나 음식을 사러 혼자 나갔다 온다. 햇볕을 쬐지 않으면 힘들어하는 우리는 각자의 방식대로 즐긴다. 엄마와 아들은 그동안 쓰지 않던 2 테라스에 돗자리를 펴서 눕고, 나는 혼자선 하지 않던 산책을 다닌다. 돌아오는 길엔 파랑의 커피를   와서 지친 마음을 달래준다. 호주에 와서 이렇게 오래 연속으로 단둘이 아들과 지낸 적이 없는 아내의 소감은 이랬다. "분명히 요양을 했는데 하나도 쉬지 못한 느낌이야." 에너지 넘치는 아들은  테스트가 나온 날에도 컨디션은 정상이었다. 지금도 누가 봐도 아픈 애가 아니다. 내가 돕고 싶지만  기본적으로 함께   없으니 어쩔 수가 없네.


이렇다 보니 하루 종일 나 혼자 있는 시간이 부쩍 늘었다. 가급적 거리를 두어야 하니 내 방으로 정해진 책상이 있는 서재에 주로 콕 박혀있다. 물론 혼자 즐기는 내가 얄미워서 둘이 번갈아가면서 방문을 두드리지만. 둘이 잠든 새벽만을 이용했던 글쓰기와 책 읽기를 원 없이 하고 있다. 여유 덕분인지 안 풀리던 글도 어떻게든 써지기까지 하고 느낌이 좋다. 갑갑하게 막혀있던 글과 책 관련된 일도 갑자기 술술 진행되기도 했다. 전화위복, 새옹지마라더니 지금이 딱 그렇다. 어서 함께 글 쓰고 읽어주는 이웃들에게 알리고 싶은 마음이다.





코로나가 찾아오기 전까진 무척이나 바쁜 나날이었다. 5월에 있는 파랑의 생일을 무사히 잘 치렀다. 아들과 눈이 빠지도록 골라서 주문한 '넘버스 바이 페인팅(Numbers by painting)'은 성공했다. 자꾸 비밀을 발설하고 싶은 아들을 말리느라 힘든 것 빼곤 모두 만족스러웠다. 8살 이하 막내 친구들을 모아서 하는 '언더 8 행사'도 함께 즐겼다. 저학년 친구들이 먹고 노는 날이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고학년(0, 1, 2학년)인 아들이 많이 큰 게 보였다. 이곳에서 쑥쑥 자라는 아들이 대견한 하루였다. 교회 수련회도 즐겁게 다녀왔다. 공식 일정 후 즐겼던 비공식 일정에서 좋아하는 미술관에서 살금살금 다니며 아들이 조용히 말했다. "그거 있잖아. 참새발. 도서관 같은 데서는 이렇게 다녀야 해." 파랑이 웃으며 까치발이라고 알려줬다. 난생처음 노래방에 다녀온 아들의 소감은 화려했다. "너무 재밌었어! 아는 노래가 많이 없어서 아쉬웠어. 더 많이 알아서 다음에 또 가자~ 그리고 아빠 랩 잘하더라!" (사실은 아빠가 대단한 래퍼야. 엄마랑 싸울 때 보면 쉬지 않고 쏟아내잖아. 옆에서 봐서 잘 알지? 실력이 녹슬질 않네. 계속되는 실전 같은 연습 덕분인가.)


아는 게 많아지고 하고 싶은 게 생기는 아들은 그때그때 본능에 충실하다. 어느 날은 학교에서 배운 '타코 만들기'를 직접 해보고 싶다고 했다. 좋아하지도 않는 쇼핑을 열심히 했다. 그날 간식은 덕분에 수제 오리지널 멕시칸 타코로 즐겼다. 나중에 알고 보니 교실에서 만들기를 직접 했던 건 아니고 쓰기 시간에 재료 준비부터 과정을 적는 수업이 있었다고 한다. 이렇게 즐겁게 쓰고 배우고 실행하는 아들이 나와 하는 한글 글쓰기는 재미없다고 했다. 내용인즉, 틀린 글자를 고치는 게 주목적이라서. 깜짝 놀라며 반성했다. 누구보다도 아들의 일기 쓰기, 독후감 쓰기를 재밌게 읽고 감탄하는 나였는데 정작 전해진 건 빨간펜 선생님으로서의 지적질이었다니. 내용을 중심으로 함께 느끼고 맞춤법은 가볍게 터치하는 정도로만 해야겠다. 가끔 무심코 던지는 아들의 질문은 어렵다. "아빠 소원이 뭐야?" 진지하게 "옛날엔 날 수 있는 거였는데 지금은 잘 모르겠네." 했더니 아들이 하는 말이... "아빠만 혼자 좋은 거 말고 세상 전체가 좋은 걸 생각해 봐. 난 코로나 없어지는 거야!" 그렇게 난 나만 아는 바보가 되어버렸다.


오래된 인연과의 연락과 만남도 있었다. 먼저 호주에 1년 동안 공부하러 시드니에 있는 입사 동기. 잠시 온 거지만 호주가 너무 좋아졌다며 고백하는 마음이 이해가 되었다. 한국에서만 있다가 오면 겪는 초기 호주병이다. 어디라고 완벽한 곳은 없겠지만 잘 따져서 원하고 바라는 바를 이루기를. 지내는 동안 동선이 겹치면 얼굴을 보기로 했다. 무엇보다도 내가 쓰는 글에 대한 칭찬과 격려가 고마웠다. 같은 회사에 들어갔지만 이젠 완전히 다른 방향을 향해 사는 우리를 응원한다. 다른 하나는 아끼는 동생. 여러 사람을 이곳에서 봤지만 남다르다. 예의 바르고, 배려심 있고, 자기 말만 하지 않고 이야기 잘 들어주고, 도움에 감사해하고, 공감과 리액션 좋고, 아들과 잘 놀아주고, 본인이 한 말을 지키고. 도덕책에 나오는 기본적인 부분이지만 신기하게 부족한 사람이 더 많았다. 그러면 결국 다 인연으로 오래 이어지지 못했다. 무엇보다도 내게 둘 다 좋은 사람인 이유는 결정적으로 내 책을 사주는 사람이라 그렇다. 꼭 사서 보겠다는 둥 말만 하고 아무 행동 없는 사람은 어쩔 수 없이 끝까지 기억에 남는다. 아마 본인은 말을 했는지조차 잊고 있을 테지만. 기승전책이 되었지만 아무튼 내게 좋은 사람은 내가 좋아하는 걸 바라봐 주고 존중해 주는 사람이다.


혼자만의 세계에 파묻힐 수 있었던 일주일이 선물 같았다. 누구도 뭐라 할 수 없던 나만의 뚝 떨어진 시간. 많이 상상했고 그만큼 남겼다. 어쩌면 앞으로 이런 날은 다시는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오지 않아야 하기도 하고. 보내고 맞이하는 모든 순간을 감사해 할 수 있기를. 거짓말처럼 우리가 갇혀있는 동안 날이 좋았다. 내일이면 다 같이 나설 수 있을 테니 계속 좋았으면 좋겠다. 정말 오랜만에 가까운 이들의 손을 잡고 걸을 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 매일 쓰는 진짜 일기도 아니고, 그렇다고 고급 정보가 있지도 않은 아이와 지내면서 겪는 온갖 후회와 반성의 잡생각 뭉탱이 '육아 생존기'를 애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빠로서 기록하는 글을 쓰고 나면 자주 듣는 말이 있어요. 어떻게 아빠가 이런 육아 일기를 쓸 수 있냐고요. 부럽고 신기하다고요. 정말 그런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전혀 관심 없던 전과 달라진 건 사실입니다. 그 변화의 일대기는 제 책 <아빠 육아 업데이트>에 담겨있습니다. 변화를 원하신다면 권해봅니다. 또 누가 변할지 모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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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제가 쓴 책이 나왔습니다. 애만 만들고 아빠인 척하던 제가 변해가는 이야기입니다. 아닌 척 모른 척했지만 저도 그저 엄마가 애를 키우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저 같은 사람이 많아져서 함께하는 육아가 당연해지는 날을 꿈 꿉니다. 책 표지에 적어 둔 것처럼 인세 수익은 모두 필요한 아이들에게 기부합니다. 다른 욕심 없이 오로지 더 많은 이들에게 전해져서 세상이 변하길 바랍니다. 아이가 있거나 아직 없거나 다 컸거나 심지어 없을 예정이어도 읽으면 좋습니다. 엄마 아빠가 함께하는 육아를 아이와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이해해야만 바뀌기 때문입니다. 관심과 사랑 부탁드립니다. 필요한 분들에게 전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 순간을 나눌 수 있어서 기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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