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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Joon May 17. 2022

잘못 알고 있는 우선순위

나와 가족은 동등한가

같이 사는 사람 중 누가 아프면 두 가지 걱정이 함께 찾아온다. 하나는 아픔에 대한 것, 다른 하나는 변할 상황에 대한 것. 둘 중에 뭐가 더 먼저인지 어느 것이 더 크게 다가오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다만 "괜찮아?"라는 말보단 찡그린 얼굴로 '골치 아프네'를 열심히 뿜어대는 습관으로 짐작할 뿐이다. 지난 한 달 동안 아내와 아들이 마치 짠 것처럼 2주씩 바통 터치하면서 아팠다. 아내는 손에 화상을, 아들은 콧물감기를. 아픈 모습을 처음 보면 가슴이 철렁하지만 안타까워하고 보듬어 주는 건 생각처럼 쉽지 않다. 이미 머릿속이 돌아가면서 일과 학교에 생길 일정 변경에 지끈거리기 시작했으므로. 심지어 다 큰 어른 파랑은 혼자 알아서 다 할게 분명한데도. 이러니 아픈 사람은 아픈 것도 서러운 데 혼자서 삐죽삐죽 예민해진 내 눈치까지 봐야 한다. 나도 결국 툴툴대며 가족들을 위해 안 하던 일까지 챙겨가며 애를 쓰지만 본전도 못 찾는다. 그놈의 쭈그려진 인상과 마음 때문에.


가족들과 서로 부딪히고 나면 내 기분이 우선이 된다. 메인 스파링 상대인 파랑과는 레퍼토리가 끊이지 않는다. 한 번씩 다 해본 싸움이라서 더 이상 할 종류가 없을 법도 한데 한계를 모른다. 뿌리를 찾아가면 그놈이 그놈이겠지만 변주가 다양하다. 알고 보면 순간의 기분 나쁨이 휘두르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패턴이 대부분인데 계속 무너진다. 익히고 개발한 온갖 방법론을 써보면서 시간을 끌어보지만 그래 봤자 폭발은 시간문제다. 아들과도 별반 다르지 않다. 한 없이 받아주다가도 나만의 기준에 의해 정색을 시작한다. 모드 변화를 인지하지 못한 아이는 뭔가 싶어 하는 표정으로 멍해진다. 한 번은 이러다 안 되겠다 싶어서 양해를 구하고 잠깐 자리를 비운적도 있었다. 함께하고 있던 잠자리였는데 혼자 살겠다고 빠져나온 나 없이 아들은 먼저 혼자서 잠이 들었다. 한없이 미안해진 밤이었다. 세 가족이 한 곳에 있어도 기준은 변하지 않는다. 내가 억울하고 불쾌하면 그 자리에서 표현을 멈추질 않는다. 그 덕에 생긴 불편해진 공기는 집 안을 가득 채우고도 쉽사리 빠져나갈 줄을 모른다. 내가 만족하고 끝내기 전까지는.


함께 살아가면서 동등하다고 믿었다. 나도 아내도 아이도. 우리는 같은 선에 있기 때문에 누군가의 손해나 희생 같은 거 없이 살아야 한다고. 각자 하고 싶은 거 원하는 거 하면서 지내면 된다고. 평상시에는 문제없는 교과서 같은 이론이다. 결정적인 순간은 변칙적인 상황이 벌어졌을 때다. 누가 아프거나 누구랑 싸우거나. 그 순간에도 난 나를 챙겼다. 무엇보다도 스스로가 먼저여야 한다는 생각에. 나 말고도 모두 그렇게 하면 상처받거나 기분 나쁠 일은 없을 테니까. 근데 나 말고는 달랐다. "괜찮아?"가 먼저 튀어나오고 쏟아내는 말을 조용히 듣고 있어 준다. 그들은 그들 스스로가 중요하지 않아서 그러는 게 아니다. 그 순간 나만 남는 나와 다르게 그들은 그들만큼이나 나를 생각해줘서 그렇다. 난 아직도 서툴다. 그렇게 많이 받아먹으면서도 삐뚤게 박힌 정신이 틀어지질 않는다. 같은 어른이라 파랑에겐 너는 나보다 나은 사람이라 그럴 수 있다고 둘러대지만 절반밖에 되지 않는 아이에겐 할 말이 없다. 내겐 사랑이 부족하다. 받는 사랑은 넘치지만 주는 사랑엔 인색하다. 하하호호 거릴 땐 다 줄 것처럼 하다가도 웃음기가 가시면 칼같이 선을 긋는다. 과연 우린 정말 동등한가. 우선순위에서 변하지 않는 내 위치는 내려올 줄을 모르는데. 언제든 앞자리를 양보하는 옆의 가족은 어떻게 가능한 걸까. 위기에 드러나는 모습이 진짜라던데 어쩌면 내가 하는 사랑은 그들과 좀 다른 지도 모르겠다. 진실로 내가 가족을 나와 같다고 생각하고 있는지 돌아볼 때다. 나만큼 사랑하고 있는지.





아들의 방학과 이어진 가정의  행사로 지루할  없이 보냈다. 갑자기 원어민이 되어버린 아들 덕분에 극장에  같이   있었다. 놓치지 않고 웃어대는 아들을 부러워하며 중간중간 적당히 즐겼다. 가족 영화인 <소닉 2>와 <배드 가이즈> 보았는데 추천한다. 아들은  떠나고 싶어 하는 엄마를 닮아서 차를 타고 나가는  좋아한다. 어느 날도 드라이브를 나섰는데 다짜고짜 '브리즈번' 외쳤다. 1시간 거리에 있는 도심지에 가고 싶다고 했다. 이유는  시끌벅적 휘황찬란 분위기가 좋아서. 어려운 것도 아닌데 그러자며 달리고 있는 와중에 아들은 오랜만에 차에서 잠이 들었다. 중간에 그냥 집으로 돌아가자는 파랑의 권유에 깨고 나서 기분 좋을  있게 약속대로 가자고 하고 도착했다. 휑한 공휴일 저녁에 딱히    없었지만 아들은 그냥 좋아했다. 덕분에 우리도 그냥 좋았고.


"아빠는 나랑 잘 안 놀아줘." 전업육아하는 아빠에게 떨어진 사형선고 같은 말을 들었다. 처음엔 불끈했다. 너를 먹이고 데리고 다니고 재우고 하는데! 게임도 하고 축구도 하고 말이야. 그러다 아들의 설명을 듣고 찔끔거렸다. 요즘 부족했던 부분이 있었다. 옆에서 같이 그림 그리면서 봐주길 바라는 아쉬운 게 있다고 했다. 이것도 해주고 저것도 해준다고 설치던 나는 '그래, 사랑은 원래 배고픈 거야. 이렇게 아이가 놀아달랠 때 감사하게 생각하고 같이 더 놀자!'로 태세를 전환했다. 이곳엔 없어서 대충 넘어가려던 어린이날도 급 챙겨주기까지 했다. 그 덕분인지 아들은 한국의 어버이날과 비슷한 시기의 '마더스 데이(엄마의 날)'를 각별하게 챙겼다. 직접 그리고 쓴 카드와 고르고 고른 선물, 교회에서 만들어온 심부름 카드, 처음으로 돌린 청소기, 처음 다녀온 음식 배달 심부름, 잠들기 전 스페셜 마사지 서비스까지. 어린이날을 먼저 챙긴 건 난데 왜 엄마만... '파더스 데이(아빠의 날)'는 아직도 멀었는데. 그때 가면 이 녀석 다 까먹을 텐데...


전형적인 코리안 보이, 아들은 한국문화에 심취해있다.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미역국과 김치. 미역국만으로 일주일을 먹을  있으며 '호주 사람들은 김치 없이 어떻게 밥을 먹지?'라는 걱정에 진심이다.  오는 날엔 커다란 김치전이 정말 맛있다고 말하며  맛도  맛도 아닌 한국  '콕콕콕 스파게티' 컵라면을 나만큼 좋아한다. 보드게임, 카드게임을 즐기는 아들은 얼마 전부터 고스톱을 배우고 있다. 아니 이미  배웠다. 바로 적응해서 착착 짝을 맞추는 모습에 놀란다. 차에서 듣는 라디오 팝송을 줄줄이 외는 아들이  번은 낄낄대며 말했다. "아빠 지금  가사가 ', 이놈아!'같이 들려서 너무 웃겨!" 영어 귀가 어두운 한국 사람만 알아들을  있는 유머에 통달한 아들영락없는 한국인이.





올해 초 제안받아 진행한 뜻깊은 온라인 강연(뜨거웠던 현장!)으로 인연을 맺은 밀레니얼 부모를 위한 힙한 커뮤니티 <패런트리(Parentree)>와 한 번 더 만났다. 주양육자로서 지내는 나에 대한 인터뷰로. 제목도 의미심장한 '전업아빠하고 있습니다!'. 한 시간도 넘게 떠든 이야기를 정성스럽게 담아서 <매거진 P>에 실어주셨다. 내가 한 말을 다시 읽으면 놀라고 부끄럽다. 정말 이런 생각을 하고 사는지, 그리고 근데 왜 그렇게 살지 못하는지. 현실을 파고들면 쓰라림이 끝이 없으니 나아가는 방향으로 내보였다고 믿고 다짐한다. 내뱉은 말과 박힌 글을 기억하자. 무엇보다도 나에 대한 사랑만큼이나 가족에 대한 사랑을 잊지 말자. 내일도 잊겠지만 돌아와 다시 보고 되새기자.


<매거진 P> 인터뷰 



*덕분에 잘 마무리해서 두 번째 책을 위한 추가 원고를 넘겼습니다. 좋은 책으로 만들어지면 좋겠네요! 기대해주세요. 하하.


* 매일 쓰는 진짜 일기도 아니고, 그렇다고 고급 정보가 있지도 않은 아이와 지내면서 겪는 온갖 후회와 반성의 잡생각 뭉탱이 '육아 생존기'를 애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빠로서 기록하는 글을 쓰고 나면 자주 듣는 말이 있어요. 어떻게 아빠가 이런 육아 일기를 쓸 수 있냐고요. 부럽고 신기하다고요. 정말 그런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전혀 관심 없던 전과 달라진 건 사실입니다. 그 변화의 일대기는 제 책 <아빠 육아 업데이트>에 담겨있습니다. 변화를 원하신다면 권해봅니다. 또 누가 변할지 모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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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제가 쓴 책이 나왔습니다. 애만 만들고 아빠인 척하던 제가 변해가는 이야기입니다. 아닌 척 모른 척했지만 저도 그저 엄마가 애를 키우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저 같은 사람이 많아져서 함께하는 육아가 당연해지는 날을 꿈 꿉니다. 책 표지에 적어 둔 것처럼 인세 수익은 모두 필요한 아이들에게 기부합니다. 다른 욕심 없이 오로지 더 많은 이들에게 전해져서 세상이 변하길 바랍니다. 아이가 있거나 아직 없거나 다 컸거나 심지어 없을 예정이어도 읽으면 좋습니다. 엄마 아빠가 함께하는 육아를 아이와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이해해야만 바뀌기 때문입니다. 관심과 사랑 부탁드립니다. 필요한 분들에게 전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 순간을 나눌 수 있어서 기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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