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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Joon Apr 17. 2022

언젠가 놓아줘야 할 너

느껴지는 성장의 경이

아빠~ 아빠~~! 아! 빠!

또 시작이다. 도대체 무슨 일인지 한밤중에 가끔 애걸복걸 날 찾는다. 눈도 꼭 감고 입으로만. 괜히 나만 눈을 떠서 다시 잠든 아들 얼굴을 확인하고 돌아온다. 언제부터 이랬나 생각해 보니 떨어져 자면서부터다. 그래 봤자 같은 방 바로 옆 침대지만. 그전까진 무슨 일이 있어도 같은 침대 바로 옆에서 엄마든 아빠든 붙어 있어야 잠이 들던 아가였다. 어느 날부턴가 큰 침대는 우리 부부에게 양보하고 작은 침대에 자기 친구들(애착 인형 집단)을 끌고 가서 혼자만의 잠자리를 꾸미고 잠이 들기 시작했다. 허전함과 아쉬움이 있었지만 언젠가 독립을 해야 하기에 별소리를 하지 않았다. 아, 처음엔 가끔 둘만 남은 침실에서 '옆에 와서 같이 잘래?'하고 꼬셔봤지만 안 통해서 포기했다. 이렇게 혼자 자길 즐기는 새침한 아들이 간밤엔 무슨 꿈을 꾸는지 종종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댄다. 아침에 깨서 물으면 잘 기억이 안 난다고. 악몽에 시달리나 걱정하다가도 이렇게라도 밤에 찾아주니 마음이 놓이는 묘한 심보다.


밤엔 드물게라도 날 찾지만 낮엔 혼자서 씩씩하게 잘 지낸다. 물에 들어가기 싫다고 발버둥 치던 2년 전이 무색하게 이젠 아무 도움 없이 긴 레인을 혼자서 수영한다. 초급 1 해마반에서 이젠 상급 2 악어반까지 올라갔다. 본인도 기특한지 입이 씰룩씰룩 올라간다. 한글과 영어를 섭렵해서 활발하게 오가며 즐기다 못해 이젠 한문으로 넘어갔다. 만화로 된 천자문 책을 재미로 대충 보나 싶었는데 어느 순간 노트에 꼼꼼하게 적으면서 익히고 있다. 평소에 쓰던 한글 단어가 한문으로 이루어졌다는 게 신기한 지 꼭 뜻을 풀어서 사용하고 있다. 가령 '비 우 + 겨울 동 = 우동!' 이런 식으로 장난까지 치면서. 유튜브의 효과로 혼자만의 채널을 개설했다. 일명 '땅콩 티브이.' 혼자 북치고 장구치고 하면서 영상을 찍고 있다. 물론 어디에 올리진 못하고 엄마 아빠 핸드폰에 고이고이 모셔두는 중이다. 나름 콘셉트와 주제를 정하고 진지하게 임하는 모습이 귀엽다. 언제 이렇게 자랐나 싶었는데 이번에 눈으로 제대로 확인했다. 거의 3년 전에 사진을 찍었던 같은 장소를 방문해서 비교 체험을 했다. 어리벙벙한 아기가 또렷한 어린이가 되어 있었다.




초등학교 2학년을 여전히 그때의 아기로 기억하려는 내가 문제일지도 모른다. 품 안의 자식이란 생각을 떨치지 못해서 일 테다. 내 어린 시절 국민학교 2학년엔 스스로 다 큰 줄 알고 살았었는데 말이다. 부쩍 커버린 아들은 2학년 첫 Term 마지막 주가 되어서야 앓던 감기를 떼고 겨우 등교했다. 우리로 치면 오래 달리기였던 '크로스 컨츄리' 행사에서도 끝까지 열심히 달리는 끈기를 보였고, 딱 올해까지만 참가할 수 있는 부활절 모자 퍼레이드도 가까스로 참여해서 뽐냈다. 선생님과의 첫 인터뷰에서도 옆에서 조용히 책 읽으며 기다려주는 집에서는 볼 수 없던 모습을 시전 했다. 아들에 대한 코멘트도 그 모습처럼 언제나 열심히 집중하는 좋은 학생이라고 하셨다. 밖에서 혼자 살아가는 아들을 확인하는 경험은 늘 어색하다. 직접 보지 못하는 아들이라서 그럴까. 앞으로 점점 그 균형은 깨지고 기울 텐데 걱정이다. 놓아주고 인정하는 연습은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올해 첫 번째 방학은 아들의 울음으로 시작했다. 1차 코로나 백신 접종은 멋 모르고 후딱 맞았었는데 아픔을 알고 맞는 2차는 쉽지 않았다. 단호하신 간호사분 덕분에 질질 끌지 않고 끝났으나 오히려 뚝하고 끝난 억울함이 컸던 아들은 눈물이 났다. 내가 맞는 백신이야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생각을 하지만 아이가 맞는 건 완전히 다르다. 그놈의 혹시나 때문에 끝까지 마음을 졸였다. 무사히 넘어간 덕분에 야심 차게 준비했던 방학 계획을 하나 둘 실행했다. 빅 이벤트였던 좋아하는 형님들 가족과의 2박 3일 골드코스트 여행은 성공적이었다. 아이들, 부모들 모두 만족했다. 아쉬움이 크다는 건 그만큼 좋았다는 말이니까. 우리 가족끼리도 짧은 여행을 다녀왔고, 곧 아들이 그토록 기다리던 영화의 후속편도 극장에서 관람할 예정이다. 짧지만 자주 찾아오는 방학이 꽤 익숙하다. 하루 종일 붙어있던 아들이 잠시 학교에 다녀오다가 다시 꼭 붙어있기를 반복한다. 좋다가도 아쉽다가도 다시 그리워진다.




심오한 농담이나 질문을 던지는 횟수가 점점 늘어난다. 대충 듣다 보면 못 따라가기 일쑤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아들의 말을 다시 곱씹어 뜯어서 살피면 깜짝 놀랄 때가 여러 번이다. 4월 1일 만우절엔 갑자기 군인이 오늘 왜 힘든지 아냐고 물었다. 군인은 원래 맨날 힘든데라고 속으로 구시렁거리며 머리를 굴려봤다. 멍하니 있던 두뇌를 잠깐 움직인다고 나올 대답이 아니었다. 모르겠다 물으니 예의 그 환한 미소로 설명을 했다. "3월이 31일까지 있잖아. 그렇게나 오래 행진(March=3월)을 했기 때문이야!" 이런 고품격 조크는 도대체 어디서 타고난 걸까? 파랑은 아닌 게 확실하니 역시 나인가? 한 번은 파랑이 아들에게 '플라시보 효과'를 설명해준 적이 있었다. 아픈 사람들에게 가짜 약을 진짜라고 속여서 주면 효과가 있기도 하다고. 며칠이 지난 뒤에 아들이 진지하게 의문을 제기했다. "혹시 실험한 사람들의 아픈 정도가 달라서 그랬던 게 아닐까?" 귀를 의심했다. 어떻게 이런 논리로 접근할 수 있을까? 이것도 물론 나를 닮아서겠지? 원래 자식의 좋은 건 나고 나쁜 건 남이니. 잘 크고 있어 아들. 그렇게 나만 따라와.


머리의 성장만큼이나 육체적 에너지가 넘쳐 한시도 가만히 있질 못하는 아들이다. 틈만 나면 축구 하자, 핸드볼 하자, 팔씨름 하자, 춤 추자, 산책 하자. 아직은 팔팔한 나라서 최대한 맞춰 주지만 점점 쉽지 않다. 어젠 두통이 좀 있어서 기대에 부흥하질 못했다. 오늘은 이렇게 머리를 굴려 글도 쓸 수 있으니 같이 밖으로 나가봐야겠다. 어쩐 일인지 아직 곤히 자고 있다. 일부러 깨우진 말아야지. 잠은 보약이니까. 좀 더 자두길. 절대 귀찮아서가 아니란다.



* 매일 쓰는 진짜 일기도 아니고, 그렇다고 고급 정보가 있지도 않은 아이와 지내면서 겪는 온갖 후회와 반성의 잡생각 뭉탱이 '육아 생존기'를 애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빠로서 기록하는 글을 쓰고 나면 자주 듣는 말이 있어요. 어떻게 아빠가 이런 육아 일기를 쓸 수 있냐고요. 부럽고 신기하다고요. 정말 그런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전혀 관심 없던 전과 달라진 건 사실입니다. 그 변화의 일대기는 제 책 <아빠 육아 업데이트>에 담겨있습니다. 변화를 원하신다면 권해봅니다. 또 누가 변할지 모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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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제가 쓴 책이 나왔습니다. 애만 만들고 아빠인 척하던 제가 변해가는 이야기입니다. 아닌 척 모른 척했지만 저도 그저 엄마가 애를 키우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저 같은 사람이 많아져서 함께하는 육아가 당연해지는 날을 꿈 꿉니다. 책 표지에 적어 둔 것처럼 인세 수익은 모두 필요한 아이들에게 기부합니다. 다른 욕심 없이 오로지 더 많은 이들에게 전해져서 세상이 변하길 바랍니다. 아이가 있거나 아직 없거나 다 컸거나 심지어 없을 예정이어도 읽으면 좋습니다. 엄마 아빠가 함께하는 육아를 아이와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이해해야만 바뀌기 때문입니다. 관심과 사랑 부탁드립니다. 필요한 분들에게 전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 순간을 나눌 수 있어서 기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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