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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나로 살아남는 외면 0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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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초록Joon Oct 01. 2022

미움의 첫 경험

용서할 수 없어 피하기

지금 누군가를 미워한다. 첫 경험이다. 거슬리고 싫어하는 사람이야 늘 있었지만 미워한 적은 없었다. 귀찮은 짓이기 때문에. 효율을 삶의 지상과제로 장착한 내겐 쓸데없는 일 중 하나다. 마음에 대상을 담아둔 채 보고 있을 때도 보고 있지 않을 때도 악감정을 풀풀 풍기는 건 비효율적이다. 그래 봤자 나아지는 게 도무지 없으니까. 누구로 인해 화가 나거나 서운하다면 풀 수 있는 여지가 있다. 솔직히 털어놓아 사과받고 앞으로 조심하면 되는 거니. 미워하는 상황은 개선의 기회가 없다. 미움이 종착점이며 다음은 막혀있다. 수단과 목적이 정확히 일치하는 몇 안 되는 경우다. 미워하기 위해 미워한다. 영양가라곤 찾아볼 수 없는 시간 낭비를 내가 하고 있다.

당연해 보이는 지금도 처음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나름의 이유가 존재한다. 다짜고짜 보자마자 미워했을 리는 없으니까. 이 사람 저 사람 별사람 살고 있는 이 땅 위에 숨 쉬다 보면 온갖 관계를 맺게 된다. 애초에 남에게 심드렁해서 직접 해만 안 끼치면 즐겁게 구경하는 편이다. '와, 이럴 수도 있구나. 오, 저럴 수가 있다니.' 하고 놀라면서. 내가 공통된 정답이라 믿고 싶지만, 모두 각기 다른 남을 보며 그럴 수 없다는 걸 배워간다. 유독 나와 정반대 편에 서 있는 자를 보면 신기해하는 만큼 조심한다. 혹시 부딪히면 큰 오해가 생길 수 있으니. 다른 걸 이해하는 것과 갈등이 터져 속상한 건 서로 영향을 줄 수 없는 별개의 독립적인 사건이다. 그렇게 몸을 사리고 피해 다녔건만 결국 터졌다. 그는 그때도, 지금까지도, 앞으로도 영원히 모를 치명적인 말실수 하나로 우리 사이의 끈을 깔끔하게 제거했다.

잘 모르고 시작했다. 미워해 본 적이 없다 보니 뭐가 뭔 줄 몰랐다. 대화 중에 그의 이름이 나오면 흠칫했고, 과거의 기억이 떠오르면 불쾌했다. 나중엔 지나가는 소리만 들어도 얼굴이 찡그려졌다. 뭐가 이렇게 날 괴롭히나 했더니 그게 미움이었다. 명확하게 확인하고 나니 방어기제가 총동원되어 날 보호했다. 우선 그가 궁금하지 않게 되었다. 남이 어떻게 지내는지 원래도 관심이 없었지만, 이건 좀 특별한 요구사항이었다. 어떤 소식도 내 귀에 들어오지 않았으면 했다. 그게 뭐든 간에 신경이 쓰이고 마음이 가라앉았기 때문에. 듣고 싶지도 알고 싶지도 않아졌다. 더 나아가 그도 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길 바랐다. 그의 입에 아는 사람으로 오르내리고 싶지 않았다. 그의 지인이 되기 싫은 초조함은 철저한 단절을 희망했다. 불편한 소통이 상쾌한 불통이 되길 원했다. 제멋대로 곡해하고 다른 곳에 퍼트리는 특기가 발휘될까 두려웠다. 나를 안다고 떠드는 모습이 악몽처럼 덮칠 때면 온몸의 털이 바짝 섰다. 내게 들어선 미움은 온 신경을 잡아채 한 곳에 꾸역꾸역 밀어 넣었다.

미워하는 건 괴롭다. 짝사랑의 막막함을 넘어선다. 그건 연인이 되는 꿈같은 목표라도 있지만 이건 끝이 없다. 미워하고 또 미워해도 갈증이 해소되지 않는다. 주제넘게 화수분을 바란 적도 없었는데 졸지에 품은 셈이다. 처음에 넣어둔 미움이 줄어들 줄 모르고 마를 새 없이 샘솟는다. 어이없는 짓에 퍼뜩 놀라며 그만두자 다짐하고 정신을 차리면 다른 과제가 남는다. 멈추기 위해선 그와 닿으면 안 된다. 어떤 식으로든 얽히면 잡아놓은 정신의 끈이 바로 풀려버리니까. 내 안의 그는 몰아낼 수 있지만, 현실의 그는 지울 수 없다. 그러다 보니 잘못한 것도 없는데 피하게 된다. 대화는 절대 먼저 시작하지 않고, 답변은 최대한 느리고 짧게, 인사는 나눌 수 없게 돌아가는 경로를 고수. 누굴 이렇게 보고 싶지 않아 한 건 처음이다. 미워하기 전까진 상상도 할 수 없던 기묘한 상황. 끝을 알 수 없는 미로에 던져진 기분으로 지낸다.

타인을 미워하다 보면 어느덧 자신에게 화살을 돌린다. 이제 그만할 수 없냐고. 달라지는 게 없는 무의미한 감정 소모를 멈추지 못하는 이유가 뭐냐고. 단순하다. 그때 그 순간이 잊히질 않는다. 표정과 말투, 뱉은 말의 토씨 하나까지 박제되어 머릿속에 고스란히 새겨져 있다. 그는 내게 어떤 사람이 아니다. 그 장면일 뿐이다. 상처 가득한 기억이 성큼성큼 다가오는 걸 도저히 반길 수가 없다. 억지로 짓누르며 미워하길 멈추다가도, 방심하면 그새 떠올라 미워지길 반복한다. 수정될 수 없는 광경을 마음에 지고 사는 느낌. 내가 겪어본 최고의 증오다. 박혀버린 사무침은 까닭 없이도 쉽사리 작동한다. 과거를 떠올릴 필요 없이 저절로 미운 경우도 생긴다. 술과 담배의 해악을 잊고 습관적으로 이어 가듯이. 맹목적인 미움은 결국 나 자신을 의심하는 지경까지 흘러간다. 혹시 못된 마음을 놓치지 않는 게 일부러인지.

아마 벌어지지 않을 해결도 상상해봤다. 어느 날 갑자기 모든 걸 뉘우친 그가 사과한다면 받아들일 수 있을까. 무조건 잘못했다며 후회하고 있고 되돌리기 위해 뭐든지 하겠다고 털어놓는다면 마음을 풀 수 있을지. 어찌 된 일인지 가능성은 둘째 치고, 아예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내겐 이해의 여유가 사라졌다. 미워진 걸 되돌릴 의지가 없다. 다만 미워하는 자신을 보는 건 슬픈 일이라 멈추려 한다. 그를 미워하지 않는 방법은 용서가 아닌 절단이다. 미움이 새어 나오지 않게 인연이 겹치는 순간을 자르고 베어서 끊는다. 미워하지 않을 생각은 없지만, 미워하는 건 지쳤다. 앞으로도 영원한 회피를 통해 스치고 싶지 않다. 미워하지만 더 이상 미워하기 싫어 도망치는 말도 안 되는 심정. 지금 내 사정이다.

이 글은 미워하지 않기 위해 쓰지 않았다. 다른 글과 같이 나를 알기 위해 썼다. 파악하기 어려운 찜찜함을 글이라는 물감에 찍어 그대로 드러냈다. 어떻게 생긴 모양이고 무슨 색인지 알고 싶었다. 직접 눈으로 보고 나면 혹시 손써볼 방법을 찾을 수 있을까 해서. 해괴망측한 자태를 뽐내는 속내를 마주하자 고민이 깊어진다. 속 좁게 굴고 있는 내 모습이 훤하다. 잘못하고 있는 걸 충분히 안다.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그분의 말씀도 떠오른다. 다음은 이어지는 변명이다. 아는 잘못을 쉽게 멈출 수 있다면 법이나 경찰이 왜 있겠냐고. 그리고 난 그를 내 이웃으로 인정하지 않겠다고. 잡히지 않던 속을 한정된 글자로 담고 나니 더욱 편협해졌다.

누가 묻는다면 그렇다고 할 테다. 모두를 사랑으로 품고 싶냐고. 그럴 수 없는 걸 아느냐고 묻는다면 다시 그렇다고 할 테다. 노력으로 안 되는 게 있다고. 미워하는 일은 힘들다. 미워하는 것도, 미워하는 날 보는 것도. 그저 또 다른 누군가를 미워하지 않기를 바라며 산다. 마지막이라 믿고 싶은 굳어버린 미움의 대상이 조금도 닿지 않게 잘 피하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최선이라고 덤덤히 받아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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