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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Joon Sep 09. 2022

더 이상 낭비되고 싶지 않아서

관계를 정리합니다

남자 고등학교 3년 내내 모아놓고 공부시키는 기숙사에 살았다. 혈기 왕성한 청춘이 한곳에 모여있으니 공부를 했을 리가 만무했다. 놀고 또 놀았다. 어느덧 고3이 되어 수능 날이 다가오면서 한 번은 쳐다보고 시험을 봐야겠다며 정신을 차렸다. 나처럼 하나둘 자리에 앉는 친구가 늘어났지만 이해하지 못하는 녀석도 있었다. 모이면 뭐 하고 놀까 궁리하고 이리저리 천방지축처럼 굴던 인원이 줄어들자 남은 사람의 입지가 좁아졌다. 각자의 판단과 결정이긴 해도 같은 공간에 있다 보니 꽤 영향을 끼쳤다. D-day가 얼마 남지 않는 주말, 집에 있으면 퍼져있을 것 같아 학교 기숙사로 향했다. 귀에 음악이라도 꽂아 넣고 한 글자라도 들여다보기 위해 억지로 책상에 앉았다. 얼마 되지 않아 '쿵쿵', '쾅쾅' 소리가 진동과 함께 울려왔다. 무슨 일인가 싶어 옆을 돌아보니 한 친구가 책상 정리를 하고 있었다. 그즈음 공부에 집중하지 못하고 슬럼프를 겪던 친구였다. 그 공간엔 둘 뿐이어서 내가 공부하려 앉아 있는 걸 모를 수가 없었다. 적당히 조용하게 할 수도 있었지만, 온갖 책과 문제집, 필기도구를 사방으로 튀기고 떨어뜨리며 낼 수 있는 소음을 모두 냈다. 귀를 막은 이어폰의 볼륨을 키워봤지만 이미 정신이 팔려 무방비 상태였다. 결국 녀석의 기운찬 청소가 끝날 때까지 아무것도 제대로 읽지 못했다. 분명히 알았고 느꼈다. 날 신경 쓰게 만들려던 그의 의도를. 하지만 오래 같이 놀던 우리의 관계와 힘들어하던 친구의 입장을 알기에 별다른 소리를 하지 못했다. 싫어도 내가 조금 참고 말지 했던 어린 날의 찜찜한 기억이다.


 나이의  배가 되고 나니 싫은  극명해졌다. 그때로 돌아가면 따져볼 필요도 없이 바로 조용히 해달라고 외쳤을 정도로 달라졌다. 지나온  동안 싫은  참고 살아온  억울했다.  한마디, 싫은    제대로  해서 바보 같았다. 남은 삶에는   있는  싫은   빼내고 싶다. 사회에서 인정한 어른이 되어 20년을 살아보니 좋은 것만 하며 살기도 모자란  인생이라는  알았다.  해야 하는  좋고  감정을 빼고 하릴없이 대하지만, 나머지는 명확하게 갈라서 싫은  제외한다. 도무지  귀중한 시간을 싫은  하는  써야 했는지 안타까워하며. 혼자서 하는 일은 간편해서 마음만 먹으면 된다. 문제는 함께 사는 세상에서 발생하는 '관계'. 의도치 않고 원하지 않는 관계는 곧잘 문제를 일으킨다. 관계할수록 싫어지는 마음이 강해지면 끊어내려 한다. 어쩔  없이 엮여있다면 고개를 저만치 돌리고 형식적인 태도만 취한다. 그냥 적당히 대하면 되지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을 수도 있는데, 그랬다간 내가 낭비되는 느낌이다. 상대방은 자기 편한 대로 마음대로 구는데, 그거 눈치 보고 기분 나빠도 참으려는 노력이 허망하다. 꾸역꾸역 버텨내는  의미가 없으면 피한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싫은 사람은 보고 싶지 않다. 감정이 소모되고 빼앗기는 관계는 용납이 어렵다.


겉도는 관계가 있다. 마주 보고 이야기하고 연락도 주고받는   맞지 않는다. 딱히 악한 사람도 아닌데 뭐가 이렇게 가까워지지도 어울리지도 못하나 싶다. 따져보면 관심사가 전혀 달라서 공감대가 부족하다. 서로 좋아하는  다르니 한쪽이 눈을 반짝이며 이야기를 해도 제대로 전해지기 어렵다. 어느 정도는 예의 차원에서 들어주고 맞장구도 쳐주고   있다. 하나 이것도 한두 번이지 진짜로 관심이 없는  계속 받아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 이거  좋아하는데'라는 표정의 상대와 좋아하는 것을 나누는 일은 곤욕이다. 형식적인 대화를 주고받다 보면 양쪽  기운이 빠진다. 요즘 빠져있는  글쓰기,  읽기, 운동, 베이스 기타인데 말을 꺼내면 잠깐은 흥미를 보이지만  수그러든다. 좋아하지 않으니 아는  없고, 아는  없으니 궁금한 것도 없다. 설명해도 알고 싶어 하지 않고, 심지어 별로 듣고 싶어 하지도 않는 극심한 간극을 느끼는 시간은 괴롭다. 대화거리가 사라진 관계는 사실상 끊어진 다리다. 오고  거리가 없으니 가까워질 수가 없다. 한쪽의 노력으로 끌어들일 수도 있겠지만, 머리가 무거워진   어른을 이리저리 와라 가라 하긴 어렵다. 정성을  해봤자 대부분 기대에 정확히 반대되는 실망으로 끝나기 쉽다. 어쩌다 발동이 걸려서 기운차게 힘을 내어 알려보지만,  마주한 자의 멍한 눈동자를 눈치채고 기겁하며 내려놓는다. 괜히 그랬나 싶은 평소에 잘하지도 않는 후회를 늘어놓으며. 서로 데면데면 미지근하게 마지못해 귀를 여는 의미 없는 시간만 쌓여간다. 가끔 소중한 시간을 흘려보내는  알아채면 소스라치게 놀란다.


가볍고 가벼운 사람이 있다. 좋게 말해서 유쾌하다고도 하는데 어쩐지 얕은 말은 아무리 쌓여도 믿음이  간다. 입이 가벼우면 마음이 가벼워지기 마련인데, 흔히 말하는 오지라퍼와 빅마우스다. 남의 일에 지나치게 관심이 많고 상관하고 싶어 한다. 원체 말이 많은 수다쟁이일 수밖에 없다. 사적 영역으로 남겨 두어야  가십에 지독하게 열을 올리며 알려고 한다. 누가 누구랑 무엇을 하고 다니는지 궁금해하고 재밌어한다. 혼자알고 말면 딱히 눈에 띄진 않을 텐데, 기를 쓰고 전파하려는 못된 습관 때문에 골치다. 마치 고귀한 의무이자 책임으로 여기며  명에게라도  열심히 전하려고 수고를 마다하지 않고 애를 쓴다. 아무 의도가 없다고 해도 말이 많아지면 실수하게 된다. 만유인력 같은 불변의 법칙이다. 여기저기 말을 옮기다 보면 누구에게 같은 말을   하고 있는지, 어떤 식으로 이야기했는지 기억할  없다. 그때그때 꼬인 말을 전하다 보면 기어코 오해와 곡해를 낳는다. 허황한 소문이 돌만큼 돌다 당사자에게 전해지고 만다. 말의 근원이   사람임을 알게 되면 그럼 그렇지  뿐이다. 엮이면 좋을 일이 하나도 없다. 물어도 대꾸하지 않고, 전해줘도 흘려보내는  정답이다.  입이 원하는 대로 말해주고 들어주다간 정신만 사나워진다. 또한  이야기만 다루다 보니 정작 본인 이야기가 없다. 다루기 쉬운 남의 말만 앵무새처럼 반복하다 보니 생각하는 법을 잃어버린다. 스스로 고민하고 이해해서 자신의 의견이나 생각을 전하는  서툴다. 매번 'ㅎㅎㅎ, ㅋㅋㅋ' 남발하는 사람을  지켜보자.  진지할 필요는 없지만 꺼내는 말마다 깊이가 없다면 가까이하고 싶지 않다. 가볍기만  사람과의 가벼운 관계는 모두 날려 보내려 한다.


함께 할 때 기분이 나빠지면 피하고 싶다. 대놓고 욕을 하거나 상처 주는 말을 하면 선명하기 때문에 돌아서면 된다. 별거 없는데도 답답하고, 헤어지고 나서야 축 가라앉으면 애매하다. 따로 못되게 군 것도 아닌데 묘하게 불쾌하다. 대화를 나누었는데 뭐하나 통한 기분이 없다. 열심히 전달한 내 의도는 하나도 닿지 않았다. 돌아오는 엉뚱한 반응과 딴소리를 가득 듣고 왔을 뿐이다. 일부러 그런 건 아니어도 어긋난 대화가 계속되면 힘이 쭉쭉 빠진다. 기승전 자기 할 말인 경우도 마찬가지다. 무슨 이야길 해도 '나는 말이야'로 반응이 시작하면 후회된다. 이럴 바엔 각자 연설문을 다듬으면 차라리 편했을 텐데, 왜 굳이 모여서 서로 듣지도 않을 웅변을 하고 있을까. 어떤 소재도 본인으로 통하게 하는 재주도 가끔 보면 신기하지만, 매번 그러면 이게 뭐 하고 있는 짓인가 싶다. 어쩌다 조언을 요청받으면 나만의 경험에 따른 의견일 뿐이라고 조심스럽게 전한다. 가끔 당황스러운 황당함이 몰려올 때가 있다. 큰 개념이나 방향을 제시하면 너무 추상적이라고 지적하고, 상세하게 들려주면 너무 구체적이라서 케바케라고 튕겨낸다. 고민한 나만 모자란 사람으로 덩그러니 남아서 멍해진다. 처음부터 이러려고 물었나 싶어서 물은 자가 미워지기까지 한다. 오랜 친구라는 이유로 선을 넘는 부탁을 하고 안 들어주면 그게 친구냐며 비난하며 긁는 녀석도 있고, 새로 만난 사람이 알고 보니 자기만 맞는다고 믿는 진지한 설명충인 경우도 있다. 이 모든 게 뭐가 그렇게 힘든가 가만히 내 속을 살펴보니 갖가지 이유 같았지만, 결국엔 하나로 통했다. 한쪽만 노력하는 관계였다. 상대를 이해시키거나 이해해보려는 둘 사이에 필요한 애를 쓰는 게 양쪽이 아니었다. 애쓰는 나와 상관없이 본인 입장만 처음부터 끝까지 고수하는 자와 있으면 기분이 더러워졌다. 나만 멍청이처럼 힘 뺀 것 같고 힘을 아낀 상대는 승자로 보였다. 접하고 나면 알 수 없는 패배감에 젖어 상쾌하지 않았다. 자기 마음대로 듣고, 하고 싶은 대로만 하는 이를 상대하는 일은 지뢰밭 걷기와 같았다. 노력과 무관하게 예측할 수 없이 여기저기서 펑 하고 터지는 것처럼. 기분이 터질 게 뻔한 곳엔 발걸음을 뚝 끊게 된다.


존중받고 싶다. 좋아하는 것을 인정받고 싶고, 진중한 말을 주고받고 싶고, 유일한 나를 이해받고 싶다. 앞으로 이어갈 관계는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기를 바란다. '이거 관심 없어서 대충 들을 텐데,  딴소리할 텐데, 기어이  말만  텐데' 하며 만나기 전에 걱정부터 하는  지긋지긋하다. 진정으로  알고 싶어 하지 않은 상대는  이상 만나고 싶지 않다. 공감대 없이 가벼운 입만 살아 멋대로 구는 사람은 지겹다. 반드시 놓치지 말아야 하는 , 원하는 상대의 모습이 내게도 있어야 의미가 있다는 점이다. 한쪽에게만 요구하면  된다. 나도 그의 취향을 존중하고 입은 무겁게 다루며 상대를 이해하려 노력해야 한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문제처럼 누가 먼저 그래야 하냐고 묻는다면, 솔직하게 상대가 먼저이길 바란다. 반대로 내가 먼저 다가섰다가 된통 당한 경험 때문이다. 상대에게 없는 공감대를 억지로 만들어  수도 없었고, 다물어지지 않는 입을 닫아줄 수도 없었고, 듣지 않는 이에게 귀를 펼쳐서 설명할  없었다. 이런 연유로 먼저 다가서지 못하고 망설이길 자주 하는데, 다행히 곁에 원하 이상적인 관계가 존재한다. 적극적으로 이어가는 현재의 관계가 모두 그렇다. 아니라면 전혀 힘을 쏟지 않으니 명확히 구분된다.


예전엔 에너지가 많았다. 중요하지 않은 것까지 펼쳐서 모두 챙겨갈 여력이 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능력이 되는대로 최대한 많은 걸 가져가고 싶었다. 이 사람도 맺어두면 나쁠 것 없을 것 같았고, 저 사람도 알아두면 좋을 것 같았다. 애초에 가벼운 관계라 그랬는지 기분이 별로여도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모든 사람은 원래 다 다른 거니까 이 정도는 감내해야지 하며 참았다. 이제 기력이 줄었다고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신경 쓸 수 있는 범위가 확실히 좁아졌다. 어설픈 관계를 억지로 이어가지 않는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내가 관심 있는 부분을 알아주고, 쓸데없이 입 놀리느라 시간을 허비하지 않고, 하고 싶은 말을 이해해주는 사람만 만나고 싶다. 이런 모임 저런 모임 만들어서 나가는 걸 보며 뭘 저렇게까지 하나 싶었는데 이제 이해가 된다. 나같이 엄한 사람들에게 지쳐서 애초에 최소한의 필터로 걸러내고 좀 더 맞는 사람을 만나고 싶은 희망 때문이었다. 만나면 좋은 사람만 알고 지내기도 시간이 부족하다. 꼭 뭔가 얻을 수 있고 남는 게 없어도 상관없다.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편해지고 따뜻해진다면 충분하다. 귀중한 삶과 한정된 마음을 낭비하고 싶지 않다. 싫은 사람을 억지로 만나지 않겠다. 서로 이해하지 못하고 다가서려 하지 않는 관계는 이미 관계라 부를 수 없는 사이가 아닐까. 용량만 차지하는 잘못 찍힌 사진처럼 모두 깔끔하게 지우고 여유가 생긴 공간을 좋은 관계로만 채우겠다. 지금은 정리가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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