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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Joon Oct 15. 2022

선입견 차단하기

직접 느끼며 살기 위해

그 친구 아직 모르지? 나중에 만나면 알게 되겠지만 미리 알려줄게. 걔는 말이야...

'아아아.  들린다.  들려!' 차마 어릴  장난치듯 손바닥으로 귀를 막진 못한다. 들어오는 소리를 차단할  없지만 아쉬운 대로 다른  귀로 모조리 빠져나가게 활짝 열어둔다. 마주하지 않은 인물에 대한 어떤 정보도 남지 않도록. 내용이 사라진 음소거 상태로 입술을 열심히 움직이는 상대가 미워서 그러는  아니다. 단지 원하지 않는 데이터가 들어와 판단에 영향을 주는  싫어서다. 단순 참고 차원이라며 따로 담아두고 꼬리표를 달아두어도  결정적일  흘깃 쳐다보게 된다. 애매한 상황이라 고민하다 보면 어느새 먼저 들어와 있던 기준에 맞춰 결론을 내리곤 한다. '아하! 그래서 그때 이런 말을 해준 거구나.' 간편할  있지만 무언가 제대로 느끼지 못한 찝찝함이 별로다. 마치 내가 집은 음식을 남의 입에 넣어준 뒤  입에서 나온 맛의 표현을 듣고 이해한 기분이랄까. 건강한 관계 형성에 방해가 되어 남이 주는 귀한 귀띔을 귓등으로 듣는다.


어떤 대상의 인식은  바뀌지 않는다. 순식간에 박혀버린 첫인상을 떠올려보자. 대반전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어지간하면 변하지 않는다. 어쩌면 처음에 들어앉은 정도의 제곱 이상의 충격이 필요한지도 모른다. 이미 마음속에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 다른 말로 선입관이라고 하는  녀석은 뿌리가 깊고 단단하다. 사람을   배경에 얼마나 휘둘리는가. 출신, 학력, 직업, 외모만 보고도 오래 알고 지낸  뻔뻔하게 평가한다. 누구나 흔들리지 않는 객관적 시선을 갖출  있다면 이력서에서 사라진 부모 직업, 고향, 학교, 증명사진은 어떻게 설명할  있을까. 어쩌다 명성에 낙인이 찍히면 모든 이의 머릿속에 똑똑히 기억된다. 슬프게도 사후에 벌어지는 해명의 과정엔 아무도 관심이 없고, 설사 깨끗해졌더라도 거짓된 인식을 되돌릴 방법은 사실상 없다. 이만큼   씌워진 색안경은 벗겨지기 어렵다.


먼저 자리 잡은 관점이 말도  되게 유리한 포지션이라는  깨닫고는 조심한다. 성급하게 검증되지 않은 사전 지식을 쌓지 않도록. 잘못된 위치에 끼워 넣은 테트리스 조각처럼 움직일  없는  알았다. 내가 아직 모르는 누구를 향한 타인 왈가왈부에 귀를 닫는 이유다. 물론 친절한 마음으로 전하는 그들에겐 정확한 정보일지도 모른다. 그들이 겪은 내용일 테니. 하지만 내겐 아직 아니다.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일단 챙겨두고 나중에 참조만 하라지만 그게 쉬울  없다. 이미 핸디캡을 크게 안고 시작하는 경기나 마찬가지라서. 일찍 버티고 있는 녀석이 압도적으로 승산이 높다. 무엇이  내게 옳은지 알기도 전에 승부는 결정된다. 아는  독이라는 말을 이럴  쓴다. 백지가 훨씬 낫다. 사람 바꾸기 어려운 것만치 힘든  선입견의 변경이다.


미리 유용한 정보를 흘려주는 이에겐 답답하게 보일 수 있다. 똥을 먹어봐야 아냐고, 폭탄은 알고 피해야 하지 않겠냐고. 신기하게도 더럽지 않은 적도 있고 터지지 않은 적도 있다. 오히려 나와 잘 맞는 경우에 놀라기도 했다. 굳이 확률을 따지지 않아도 단 하나의 예외만으로도 가치가 높다고 여긴다. 괜스레 남의 말만 덜컥 믿고 평생의 인연을 놓친다면 무엇이 더 손해일까. 전해 들은 이야기와 다를 때마다 선입감이 밉상으로 보인다. 하마터면 내게 맞지 않는 허구에 깜빡 속아 넘어갈 뻔했으니. 직접 느끼는 게 옳다는 경험치가 쌓일수록 사전 파악을 소홀히 한다. 괜한 부지런함이 올바른 판단을 흐릴 수 있다고 믿어서. 백그라운드에 훤할수록 좁은 틀에 갇힌다면 없는 게 낫지 않을까. 이것도 하나의 선입관념일지 모르겠지만, 벌써 성립돼버려서 누군가를 알기 전에 관련 소식을 가급적 무시한다. 어차피 내가 겪을 사람은 다를 거라는 확신으로.


'알고 보니 괜찮다'는 말이 빈번하게 쓰이는 까닭이 있다. 잘 모른 채 남이 그렇다는 대로 그런가 보다 했지만 실제로 접하니 달랐다는 고백이다. 접하지 않은 채 계속 몰랐다면 떠도는 평판을 진실로 여기고 살 테니 꽤나 두려운 무지가 아닌지. 시시각각 변해 한 길 속을 좀처럼 알기 어려운 사람을 떠나서 도통 변하지 않는 물건으로 고개를 돌려도 마찬가지다. 어떤 상품을 구매하기 전에 찾아보는 후기가 내게 꼭 들어맞진 않는다. 남긴 자와 나의 기호가 다르고 처한 환경이 달라서. 영화나 책을 즐기기 전에 눈에 들어오는 평점도 언제나 맞아떨어지지 못한다. 취향은 설명할 수 없이 복잡하니까. 하루에도 몇 번씩 확인하는 음식점 리뷰는 또 어떤가. 입맛을 획일화할 수 있다면 지금처럼 다양한 메뉴 홍수에 살지 않았을 테다. 몸소 써보고 즐겨보고 맛보고 나서야 비로소 나만의 감각이 완성된다. 손수 알기 전엔 괜찮은지 알 수 없다.


일찌감치 짜인 틀은 감각의 크기도 헷갈리게 만든다. 설정된 기대치가 실제의 느낌을 간섭한다. 흔히 내뱉는 '기대치가 너무 높았어'와 '기대를 전혀 안 했거든'이 확실한 증거다. 전작이 훌륭한 감독과 배우의 신작에 실망하고, 무명작가의 데뷔 소설에 경탄한다. 블라인드 테스트같이 편견 없이 즐길 기회를 놓친다. 아무것도 모른 채 받아들였다면 보다 깨끗한 감상이 되었을지 모를 아쉬움이 남는다. 알게 모르게 침투해 내 안에 도사린 수많은 백데이터가 미칠 폐해를 경계한다. 고유한 느낌을 희미하게 만들고, 유일한 사고를 방해할지 몰라서. 최대한 멀리하고 어쩔 수 없이 닿더라도 순순히 인정하지 않는다. 듣는 둥 마는 둥 하다가 너는 그렇냐로 반응하고 만다. 이어지는 상대의 너도 그럴 거래도에 맞서 그건 내가 알아서 할 게로 되받아친다.


철저하게 거부하는 만큼 남에게도 선입관을 심어주고 싶지 않다. 편하게 담소를 나눌 땐 으레 개인 의견인 줄 알겠거니 하고 돌아서지만, 나중에 내 이야기가 꽤 큰 영향을 끼친 걸 종종 발견한다. 진작에 들이닥친 앞선 체험 소감이 쉽게 방치되긴 어려운 모양이다. 타인의 독립적인 사고를 막았다는 죄책감에 말을 아낀다. 묻기 전엔 입을 다물고, 물어도 나에게만 이런 거라는 말에 절반 이상을 할애한다. 경험은 나누지만 가이드라인을 치는 건 피하고 싶다. 내 것에 불과한 소회가 누군가의 스스로 판단할 자유를 침범하는 건 막아야 하니까. 특히 부정적인 생각은 되도록 내보이지 않으려 애를 쓴다. 좋은 것보단 나쁜 데 보다 쉽게 물들어서. 의지는 이렇지만 쌓인 악감정에 흥분해서 이성의 끈을 놓치고 쏟아붓는 인간다운 면을 잃지 않아서 탈이다.


나만의 무언가를 가지기 어려운 세상이라 부리는 고집에 가깝다. 가만히 있어도 남을 통과한 생각과 의견이   없이 들이친다. 오는 대로  받아주면 나중엔 뭐가  것이고 남의 것인지 온통 섞여 구분할  없다. 내가 느껴서 정한 관념인지 그가 그렇다고 해서 따르고 있는 건지. 대부분이 향하는 방향과 크게 달라도 순수한  입장을 가지고 싶다. 눈치   가뜩이나 많은  경험의 결과마저 고개를 삐쭉 내밀고 이거 맞나 하며 갸우뚱거리고 싶진 않다. 멋대로 담아둔 나만의 선입견일지라도, 나에게만 유리한 해석이 가득 담긴 편견일지라도  혼자 결정한 거라면 만족한다. 누구나   사는 인생 멋있게 살기를 바란다. 멋진  남이 좋다는 대로 사는  아니라, 내가 좋은 대로 사는 거라고 믿는다. 기왕에  사람으로서 우뚝  이상, 삶의 기준은 내가 되려 한다. 미안하지만 오늘도  주변 이러쿵저러쿵을 외면한다. 혹시 아프고 따가워도  살로 직접 느끼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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