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 속에 바로 서기
한 시라도 어울려 놀지 않으면 죄를 짓는 기분이었던 대학 시절, 열심히 모임 일정을 잡고 참석 여부를 묻는 게 일상이었다. 다들 똑같은 마음이라 누가 모아만 주면 건수 잡은 것처럼 빠짐없이 모여들곤 했는데, 단 한 명은 예외였다. 그는 늘 이렇게 되물었다. "누구누구 오는데?" 처음엔 궁금할 수도 있겠다 싶어 정성껏 대답했다. 답변에 따라서 오기도 하고, 오지 않기도 했다. 점점 경험이 쌓이면서 검은 의도가 드러났다. 바로 여학우의 비중이었다. 냄새나는 남성보다야 이성이 더 끌리겠지만 매번 이런 식이니 밉상 맞았다. 정체를 파악한 뒤로는 전매특허 멘트에 곧이곧대로 답하지 않았다. 되려 "직접 와서 확인해!"라고 한 방을 날려주곤 했다. 사전 인원 파악에 실패한 그는 주섬주섬 챙겨 왔다가, 아니다 싶으면 중간에 몰래 돌아가곤 했다. 끝까지 일관적인 매력을 뽐내던 그는 원하던 천생연분을 만났으려나.
그땐 그렇게 싫었다. 이리 재고 저리 재며 등장의 타이밍을 가늠하던 그의 태도가. 철저하게 자신의 입맛에 맞춰 선택하는 방식을 이기적이라며 낮춰 보았다. 어떻게 바라는 대로만 사람을 만나고 어울릴 수 있을까 싶었다. 이런 사람 저런 사람 겪으면서 사는 게 자연스러운 사회생활이라고 여기면서. 나중에 알고 보니 사정이 있긴 했다. 모태솔로를 벗어나기 위해 확률 싸움을 하는 중이었다고. 만나는 이성의 비율을 늘려서 기회를 잡고자 했던 나름의 전략적 접근이었다. 그렇다고 쓸모가 있으면 취하고, 아니라면 외면하던 습관이 다른 인간관계라고 달랐을까. 아마 모르긴 몰라도 그는 여전하리라. 이어지면 확실한 이득이 예상될 경우에만 품을 들이고 있지 않을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수많은 사람과 부대끼며 살아간다. 그 안에선 어떤 것도 똑같이 오고 가지 않는다. 시간도 노력도 물질도 감정도 상처도. 여기에선 주고, 저기에선 받는다. 총량이 마이너스가 아니면 다행이지만, 그렇더라도 하릴없이 지낸다. 선택할 수 없기도 하고, 예측할 수 없기도 하고. 발이 커지는 동안엔 같이 어울린다는 건 원래 이런 거라 배웠다. 집과 학교에서 만난 가족과 친구를 끝으로 저절로 맺어진 관계는 동이 났다. 더 이상 키가 자라지 않는 어른이 되자, 관계의 자유가 펼쳐지며 골치가 아프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누굴 만나고 사귈 건지는 오롯이 내 몫이 되었다. 한 사람으로서 인연의 혼란 속에 내던져지며, 내가 중심이 되기란 얼마나 어려운지 알아갔다.
언젠가부터 누군가를 알아갈 때 먼저 주는 쪽을 택했다. 인사든 연락이든 선물이든 마음이든. 양쪽에 오고 가는 것이 있어야 유지되는 원리를 알고는, 굳이 받을 때까지 기다리지 않았다. 고민은 답장이 바라는 만큼 돌아오지 않을 때 생겼다.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얼마나 더 애를 써야 하는지 결정해야 했다. 항상 기준은 상대방이었다. 그에겐 그럴 만한 사정이 있을 거라는 나를 위한 합리화로 질질 끌었다. 공동 주연인 드라마에서 어쩐지 난 분량이 적었다. 조연을 자처했고 주인공을 내려놓았다. 균형을 유지해야 할 무대는 쉽게 기울었고, 쏠린 무게에 짓눌려 아파했다. 중심축을 나에게 돌려놓으려는 시도는 하지 못했다. 잘못된 태도를 고치지 않은 채, 아린 추억만 차곡차곡 쌓아갔다.
불꽃같이 타오르며 내어주는 사이가 있었다. 맞닿자마자 화르르 붉어지며 속을 보이는 뜨거움을 나누는. 일찍이 다 타버린 탓인지 오래되지 않아 불이 붙지 않았다. 애꿎은 자세로 혼자 비벼봐도 연기만 날 뿐, 다시 뜨거워지는 일은 없었다. 회색빛 재만 서로의 피부에 남긴 채 멀어졌다. 자신이 원할 때만 밝아지는 사람도 있었다. 종잡을 수 없는 그의 개인플레이에 휘둘렸다. 뾰로통할 땐 언제고 금세 환해지며 따끈한 마음을 나눴다. 눈치 보며 신경 쓰다가도 장단 맞춰 웃고 있는 내 모습이 어색했다. 이유도 모른 채 지쳐가며 가늘어지다 끊어졌다. 상대 쪽으로만 향해있는 기억은 비슷하게 닮아있다. 까닭을 물어도 대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혼자 삭히다 포기하길 반복했다. 감정을 소진하며 나가떨어지는 마지막이 똑같았다. 영원히 이해하지 못한 채 사라진 인연을 보며 궁금했다. 도대체 뭐가 문제고 누구의 잘못인지.
사람 사이의 일방적 과정과 마무리에 괴로워하던 시절, 얄밉던 대학 친구의 이기적 관계 맺기가 문득 현명함으로 떠올랐다. 그는 철두철미하게 자신의 사정을 최우선시했다. 수많은 눈치와 괄시 속에서도 중요한 점을 포기하지 않았다. 본인이 바라는 대로 관계를 시작하는 주도권을 놓지 않았다. 여자에 미쳐있구나 싶던 시선을 거두고 살펴보니 이해가 쉬웠다. 자신의 기분을 중시했고, 필요한 사람을 만나려고 했을 뿐이었다. 한정된 에너지를 원하는 곳에 쓰려던 처절한 몸부림을 그땐 몰랐다. 주변에서 뭐라 해도 꿋꿋하게 입장을 고수한 뚝심이 보통이 아니었다는 것도. 그가 오래전에 던졌던 타인과 쌓아가는 관계 속에 가져야 할 자세, 결정적 힌트를 뒤늦게 건져냈다.
나에겐 내가 우선이 되어야 한다. 타인과 맺는 관계의 기준은 나에게 있는 게 옳다. 나를 내팽개친 채 남을 좇는 자세는 건강하지 않다. 혼자 바로 서지 못한 채 상대방을 맞추느라 동동대면 늘 탈이 났던 이유다. 남을 어찌하지 못하는 걸 인정하고, 집중해야 할 곳은 나라는 걸 깨달았다. 나는 나를 신경 쓰면 된다. 제 발로 바로 서서 내 안의 감정을 느끼고 표현한다. 밖으로 보내고 되돌아오는 건 그대로 받아들인다. 관계 속의 독립, 홀로 설 수 있다는 건 혼자만을 위해 남을 무시하거나 무례하게 굴고 이용해 먹으란 의미가 아니다. 나에게 주인공인 자신을 이해하는 만큼, 상대도 이해할 수 있다. 왜 저렇게 반응하는지 내가 아닌 그의 입장에선 그럴 수 있다고 받아들일 수 있다. 서운해하고 기대며 매달리는 일이 사라진다. 자신에게 충실하게 지낼 뿐이라는 걸 알게 되었으니.
가까운 곳부터 적용했다. 오랜 시간 알고 지낸 가족과 친구부터. 깊은 관계일수록 기대가 높아 실망하기 쉬웠는데, 이 또한 치우친 태도였다. 그들이 내게 그래야 할 이유는 없었다. 내가 줄 수 있는 만큼만 주고, 얼마나 돌아오든 그러려니 했다. 더 받으면 좋지만, 덜 받고도 서운하지 않은 수준을 유지했다. 어른이 되어 만난 인연과도 비슷하게 지냈다. 생각나면 연락하고, 반대로 날 찾으면 고마워하고. 소원해지며 가라앉는 사이를 무리해서 잡아 올리지 않았다. 직접 보지 않아도 만남의 장이 되는 SNS도 마찬가지다. 쉽게 만나고 표현할 수 있어서 마음이 오락가락하기 쉽다. 왜 이 정도밖에 안 돌아오는지로 시작하면 끝이 없다. 의무감에 방문하지 않았고, 불쾌하면 과감히 빠졌다. 안 가고 안 보면 만날 일이 없는 게 그곳의 장점이다. 대신 저절로 우러나오면 기대 없이 표현했다. '소통해요!'라는 억지 기브 앤 테이크 문화는 따르지 않았다.
기분이 멀쩡해졌다. 아니, 오히려 좋아졌다. 사람 사이에 서 있을 때 이런 적이 있었나 싶은 정도로. 주변 눈치, 다른 이의 감정을 살피던 모든 신경을 나로 돌리니 변했다. 여유가 생기고 자신이 넘쳤다. 나를 바로 세운 것만으로도 세상은 날 바라봤다. 좋은 관계의 척도는 다름 아닌 나의 기분이었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의 이유처럼 타인과 살아가는 것도 기분이 좋아지려는 거다. 일하든 운동하든 놀든 다 자기 좋자고 하는 게 아닌가. 그게 안정감이든 만족감이든 유쾌함이든 말이다. 누군가 알고 지낸다는 건 좋아서 그렇다. 돌아보니 언제나 쾌활하게 지내던 그도 관계의 중심을 꽉 잡고 지냈기 때문이었을 테다. 물론 목적은 여전히 찝찝하지만, 원리는 같으니.
부작용도 있다. 완벽은 이 세상에 없듯이. 똑같이 감정이 상한 부부 관계에서 물러서질 않는다. 누군가는 먼저 상대의 기분을 풀어줘야 하는데, 새로 얻은 깨달음이 굳건해서 틈을 주지 않는다. '네 마음이 이렇겠구나'보단 언제나 '내 마음을 몰라주나'가 우선이다. 한 번씩 돌아가면서 져주는 규칙을 정해야 할 판이다. 가장 가깝고도 독특한 관계는 아직 연구할 부분이 많다. 나를 놓치지 않으면서 아내를 위하는 방법이란 게 있으려나. 있어야 하는데.
풀지 못한 숙제를 제외하곤 관계 속의 내 자리를 찾았다. 바로 주인공. 총알이 빗발쳐도 다치지 않고, 결국에는 다 잘되는 이야기의 수혜자. 해피엔딩으로 흘러가려면 내가 즐거워야 한다. 어떻게 나만 좋을 수 있냐는 의문도 들지만, 각자 좋으면 해결되지 않을까. 너도 좋고 나도 좋고 이렇게. 나보다 세상을 위하는 범접할 수 없는 성인이 아닌 이상, 우린 일개 범인으로서 나 먼저 바라보는 게 옳다고 믿는다. 자신의 감정을 우선시하고 흔들리지 않도록 지키며 살아간다. 맞는 사람과 지내고, 거슬리고 힘들면 돌아선다. 결정적인 순간, 나에게 집중하지 못하고 삐걱거리다 부서지지 않도록. 사는 게 다 좋자고 하는 일이라면 나는 꼭 좋았으면 한다. 가급적 나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