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몽 전자책 입점 제안
속 안에 쌓인 걸 신나게 내뱉다 보면 결국 다시 밖에 쌓인 걸 목격한다. 안에 있을 땐 나만 모른 척하면 아무도 몰랐는데 이젠 내가 모른척해도 남은 알 수 있다. 글자로 남은 생각과 마음은 더 이상 추적할 수 없는 경로로 날아다닌다. 답답해서 쏟아낸 행위가 날개를 달아준 셈이니 환영해야 마땅하다. 조금 아쉬운 건 누가 어디서 무엇을 읽고 어떤 느낌이 들었는지 알 수 없어서다. 아주 드물게 읽은 소감을 어렵게 전해주는 경우를 빼고는 도통 아무것도 알 수 없다. 숫자로만 다가오는 글의 조회수와 책의 판매 부수로는 그 안에 담긴 어떤 것도 짐작할 수 없다. 계속 써도 되는 건지 헷갈릴 때면 더욱 읽은 이의 마음을 훔쳐보고 싶다.
글이 늘어날수록 허황된 꿈도 함께 커진다. 바로 기가 막힌 출간 제의를 언젠가 받게 되지 않을까 하는. 물론 무척 어려운 확률을 뚫어야 가능하다. 내 글을 읽는 사람 중에 우연히 출판 관계자가 들어 있어야 하며, 읽은 뒤 한정된 자원을 사용해서 책으로까지 내고 싶다는 엄청난 기분이 들어야 한다. 없다고 해야 할 미친 가능성을 염두하고 글을 쓰는 건 사실 불가능하다. 그냥 가끔 재미로 상상만 하는 거다.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미리 단념해두고. 그동안 수많은 공모전 출판의 기회가 손에 잡히지 않고 모두 지나간 것처럼.
도무지 기다릴 수 없겠다는 조바심에 먼저 제안해서 책을 내기도 한다. 스스로 본인의 원고를 들고 하드캐리하는 광경이 벌어진다. 마음 같아서는 써둔 모든 글이 가치가 있다고 우기고 싶지만 여력이 없다. 빠짐없이 귀한 자식 같은 글이지만 전부 챙겨 살리긴 어렵다. 글이 느는 과정이라고 여기면서 등 뒤로 넘기곤 종종 힐끗거릴 뿐이다. 가까이서 돌아보면 좀 어설퍼도 풋풋한 내음이 물씬 풍겨서 상쾌하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있을 수 없나 보다. 어쩌다 나 말고도 알아주는 이가 있으면 그렇게 반갑다. 써 둔 글의 향기가 다시 살아나는 순간이다.
아마 두 번째 책을 한창 만드느라 바빠 죽을 때쯤이었을 테다. 그때로부터 일 년 전에 써둔 예전 글 뭉텅이를 보고 연락이 왔다. 공감을 강요받는 사회에 <공감받지 않고, 공감하지 않고> 브런치북에 담긴 신선한 시각을 모두에게 나누고 싶다고. 가슴이 두근거렸다. 여기에 담긴 글은 내게 의미가 크다. 아빠로서 육아하는 이야기를 마치고 무언가 나만의 것을 글에 담고 싶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어려운 공감과 위로에 치여 지치던 날 구해낼 솔직함을 표현하고 싶었다. 뻔하지 않고 다소 특이한 시선을 풀어냈다. 처음으로 나를 온전히 담았던 경험으로 소중히 남아있다.
엮어낸 마음을 콕 집어서 알아주며 제안을 해왔다. 없는 시간을 만들어서라도 응해야 했다. 작가님처럼 좋은 콘텐츠를 가진 분이 꼭 입점해주길 바란다는 입에 발린 말에 알면서도 홀랑 넘어갔다. 몸이 두 개여도 버거운 상황이었지만 버선발로 달려 나가 반기며 작업을 시작했다. 두 권의 종이책을 내 본 내게 전자책을 만드는 과정은 생소했다. 종이책이 어느 정도 팔려야만 만들 수 있다는 단호한 출판사의 입장에 말도 꺼내지 못하고 조용히 지내던 중이기도 했고. 언젠가 한 번쯤 다듬어서 어떤 식으로든 출간에 도전해보고 싶었던 글 뭉치를 덕분에 들여다보게 되었다. 집중해서 여러 번 읽고 판매 가치가 있도록 고치고 또 고쳤다.
정성을 다해 올라간 내 첫 번째 전자책은 외롭게 둥둥 떠 있다. 홍보가 안 되면 판매가 안 되는 게 당연한 세상이라. 두 번째 종이책 출간과 맞물려서 제대로 알린 적이 없다. 하나도 멀쩡히 팔리질 못하는 상황에 주의를 분산시키는 짓을 할 순 없었다. 타이밍을 재다가 결국 놓치고 까맣게 잊고 지내왔다. 초반엔 가끔 생각나서 찾아갔지만 휘황찬란한 판매량 제로는 좀처럼 변하지 않았다. 종이든 전자든 유명작가가 아니면 소용없다는 걸 굳이 또 확인했다. 누구는 전자책이 널리 알려져서 종이책이 되기도 했다는데. 성공한 남의 소식은 훌륭한 옆집 남편만큼이나 많고 멀다.
작년 크리스마스 즈음 희한한 알림을 받았다. '체계적인낙타8814님이 주문하셨습니다.' 스팸일 수밖에 없는 메시지를 지우려다 눈 딱 감고 링크를 눌렀다. 계획을 좋아하는 나에게 체계적이란 단어는 너무 치명적이었다. 정신을 차리고 살펴보니 반년 만에 처음으로 전자책이 팔려있었다. 낙타님이 없었다면 평생 떠올리지 못했을 텐데 매우 고맙다. 혹시 이 글을 보고 계신다면 꼭 연락을 주시길. 큰돈을 낸 동기와 투명한 후기가 듣고 싶다.
첫 판매에 기운을 얻어 뒤늦게 알린다. 글을 쓰기 시작한 처음의 생생한 날것이 넘치는 작품이다. 쉬지 않고 계속 써오길 참 잘했다며 여러모로 자신이 대견하다. 대충하다 관뒀다면 이런 일이 벌어질 리 없었을 테니. 이참에 종이책이 나올 때마다 도망가려고 전자책은 없냐고 묻던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할지 알아볼까. 이번엔 또 다른 핑계를 대려나. 남이 그러거나 말거나 자신 있게 공개한다. 제목부터 공감받지 않겠다고 하지 않는가! 마음이 당기시면 즐겨주시길. 아니면 지은 다른 종이책도 있으니 그쪽을 둘러봐 주셔도 좋고. (질척 질척)
공감을 '강요'받는 이 시대의 우리에게 꼭 필요한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