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초록Joon Dec 29. 2021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 탈락병'을 피한 방법

2주 자가격리 조치

야심 찬 계획이 있었다. 을 출간하고 3개월이 다되어 첫 끗발이 다되어 갈 즈음에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에 선정되면 저절로 홍보가 될 것이라는. 작가가 할 수 있는 최고의 마케팅은 다음 책 출간이라 했으니 예정된 신간은 이목을 사로잡기 충분했으리라. 심지어 모두가 바라 마지못해 안달인 대상이 되면 효과가 대단할 거라고 예상했다. 정말 바랐던 게 대상인지 홍보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타고난 계획 쟁이답게 공모전 수상에 뒤따른 알려짐을 기대하고 또 기대했다. 어디에 어떤 순서로 어떻게 전할지를 미리 그리고 또 그렸으니 말 다했다.


수상자가 발표되고 나면 비슷한 양상이 벌어진다. 상을 받는 사람 중 받을 거라고 여겼던 자는 아무도 없다. 하나같이 기대하지 않았다. 그 기대가 희망인지 예상인지 궁금하다. 희망이 전혀 없이 응모할 수 있는지, 반대로 예상이 조금도 안 되는 데 왜 응모를 한 건지. 반대로 받지 못한 사람도 애초에 받을 거라고 여긴 자가 없다. 이것도 이상하다. 받지 못할 게 분명한데 무슨 마음으로 지원을 했을까? 그냥 경험 삼아서? 혹시 모르니까? 단언컨대 받을 거라 여기지 않았던 자도 상을 받게 되면 분명히 다른 수상자와 같은 말을 하고 말 것이다. '전혀 기대하지 않았어요!' 스스로 이해할 수 없는 정리되지 못한 상황을 앞에 두면 죽을 듯이 답답하다. 깔끔하지 못한 분위기 속에선 오히려 시원하게 마음을 접고 지원하지 않은 분이 멋있다. 보란 듯이 마음과 행동을 일치시켰으니까. 건너 들은 이야기로는 책을 냈다 하면 베스트셀러가 되고 마는 유명 작가들 모두 한국 문학계의 아웃사이더라 자칭한다고 한다. 주류 중의 주류가 다 밖에 나가면 안엔 누가 남는 걸까. 꼭 글이 넘치는 곳 만의 일은 아니다. 연말 시상식이면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판박이 같은 상황이다. 기대했던 마음을 조금이라도 표현하면 겸손이라는 미덕을 갖추지 못한 자로 치부되는 어쩔 수 없는 유교사상 아래의 사회이기 때문일까. 잘났고 받을 만해서 받은 거라고 밉상 맞게 뽐내진 않더라도 왜 간절히 바라 왔고 그러길 희망했고 예상 확률을 높이기 위해 애써왔다고 말하지 못하는 걸까. 이 사회의 별종 같은 나는 언제나 적절한 희망과 예상을 섞은 기대를 가지고 임한다.


기분이 안 좋을게 뻔하면 취하는 방법이 있다. 안 보고 안 들으면 된다. 이보다 확실하게 영향받지 않는 태도는 없다. 얼핏 비겁해 보이지만 어쩌랴. 무엇보다도 중요한 건 나, 내 기분이기에 나름 당당하다. 마음을 정하고 나면 그럴듯한 이유는 저절로 생긴다. 주양육자로서 아들이 방학을 해서 함께 시간을 보내야 했고 때마침 소소한 도전을 하느라 다른 곳에 글을 써야 했다. 잠시 떨어져서 멀리하며 마음을 정돈할 수 있는 적절한 타이밍이었다. 그럼에도 발표 당일엔 좀 궁금했다. 누가 되었을까? 딱 10명만 좋고 나머지 모두 쓸쓸해지는 분위기에 괜히 매달려보고 싶은 마음도 조금 있었다. 일단 하루를 참았다. 별 이유는 없었다. 그날은 눈과 귀를 피하고 싶었다. 다음 하루가 지나고 또 하루가 지나고 나니 편안해졌다. 매일 찾아가던 곳이 마음을 끊어두니 쉽게 잊혔다. 그동안 많이 불편했었나 싶을 정도로 편했다. 여유가 생긴 참에 멍하니 머리를 비우며 지냈다. 릴레이 서평을 쓰느라 아예 쓰지 않고 지낸 것도 아니었으니 쓰는 목마름은 충분히 해소됐다. 쉬어가는 며칠이 일주일이 되고 열흘이 넘어가니 불안해졌다. 굳이 다시 안 돌아가도 되겠는데 하는 생각이 스멀스멀 피어올랐기 때문에.


돌아온 건 순전히 꿈 때문이다. 간밤에 꾼 아들 꿈 이야기를 담아두고 싶어서 오랜만에 들렀다. 아마 그 꿈이 아니었다면 아예 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실망해서가 아니라 편해서 그랬을 테다. 궁극적으로 편함을 좇는 인간답게 다시 귀찮아지기는 참 어렵다. 잠깐 쉬어야지 했던 이들도 결국 쭉 편한 상태로 있느라 못 돌아오는 걸 테다. 혹시 모르겠다. 매일 빠짐없이 뭐라도 써서 올리던 녀석이 갑자기 오래 비우니 얘도 이 맘 때쯤 유행하는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 탈락병'에 걸렸구나 싶었을지도. 그 병에 걸리면 대부분 접고 떠나거나 '미워요 미워 브런치'하며 툴툴대며 방황을 시작한다. 다행히 약 2주간의 적절한 격리조치 덕분이었는지 유행병엔 걸리지 않았다. 후련하게 변하지 않고 돌아왔다.




12월에 접어들고 나니 종종 '제안하기'를 통해 들어오던 쓸데없고 생뚱맞은 홍보 요청마저 뚝 끊겼다. 아마 그들도 이맘때의 분위기를 잘 알지 않았을까 싶다. 괜히 기대하고 있는 사람 엄한 광고로 싱숭생숭하게 만들면 욕을 바가지로 먹고 본전도 못 찾았을 테니까. 발표날이 지나고 난 뒤 미련을 완전히 날려버리고 작년 이맘때 썼던 탈락 후기 글을 읽었다. 그땐 그랬구나 하면서도 일 년이 지난 지금도 별로 달라지지 않아서 신기했다. 되면 분명히 좋겠지만 안 되었더라도 쓰지 않을 이유를 잃은 건 아니구나. 요즘엔 그동안 모르고 지낸 나를 발견하면서 자주 생경하다. 뭐가 그렇게 할 말이 많은지 틈만 나면 글자 속으로 파고드는 내게 놀란다.


한 가지는 작년과 크게 달라졌다. 그 사이 출간을 해본 경험이 나를 도왔다. 책이 만들어지려면 인연이 필요하다. 물론 어디에 내놓아도 '이건 무조건 된다'는 글을 쓰면 되겠지만 그런 건 있어도 없다고 믿고 싶다. 이번 탈락을 인연의 부재로 치부했다. 참여한 10개 출판사와 인연이 닿으면 좋겠다고 바랐지만 안되더라도 크게 쭈그러들진 않았다. 누군가는 팔릴만한 자극적인 소재, 그리고 특별한 경험과 화려한 경력이 있어야 된다고 투덜거린다. 해마다 나오는 '나 같은 신인은 그럼 어디서 경력을 쌓나?' 불만도 등장하지만 데뷔한 가수도 오디션에 나오고 심지어 해당 오디션 우승자와 심사위원도 다시 나와 경쟁하는 영원한 경합의 시대에 걸맞은 불평인가 싶다. 실력이 부족하다고 인정하고 쪼그라들면 스스로가 불쌍해진다. 자신감을 잃고 나면 앞으로 한 글자도 쓸 수 없을 테니 내 방식대로 이해한다. 취업이든 소개팅이든 맞는 짝이 있다. 때론 남이 보기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연인도 많다. (예를 들면 나와 파랑) 인연은 한눈에 파악하기 어렵고 수없이 엇갈린다. 인연의 어려움을 인정하는 게 다음 희망을 가지기 수월하기에 모든 실패를 그렇게 믿고 만다. 한 번의 어긋남을 영원한 무너짐으로 여겼다면 그동안 경험했던 인연의 성공은 아무것도 없었을 테다. 이번 공모전도 그리 여겼다. 겨우 10군데 출판사와 안 되었을 뿐이라고. 물론 마케팅이 겁나게 중요한 책이라는 상품을 판매하는 이 판에서 화려하게 조명을 받을 수 있다면 큰 영광이었을 거다. 이미 안된 건 할 수 없는 거니 다른 인연이 있다고 믿으며 애를 써보는 수밖에.


쉬면서 40대로 넘어갈 준비라도 하듯이 왕년의 스타들이 나오는 영상을 기웃거렸다. 가수 박진영이 선배 김건모의 백댄서 하던 시절, 가수 비가  박진영의 백댄서 하던 시절을 돌아보는 장면이 있었다. 이십 , 삼십  동안  길을 걷고 있는 그들을 보며 내가 한심해졌다.  얼마나 해봤다고 기대했다 실망했다 쉬었다 피했다  난리를 쳤을까. 노력이라고 부를 수도 없는 시간과 정성이 부끄러웠다. 분명히 한다고는 했다.  적당히   있는 정도로만 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지금 가지고 있는 생각과 경험을 글자에 담아서 모았다. 썼다고 해봤자 1 조금 넘게  봤다. 물론 기가 막히게 바로바로 되고 싶은  팍팍되는 사람도 있지만  그런 적이 없다. 금방  되는  아는데도 혹시나 해서 매번 기대를 하는 모양이다. 바라는 마음은 자연스럽지만 현실을 자각하지 못하고 무조건  거라고 믿는 무모함도 좋지만은 않다. 삐딱하게 작용되면 괜히 오해나 만든다. 이번에만 해도 다른 응모 작품을 둘러보며 '그래도 내가  낫지.'라며 안도했다. 자기 것을 냉정하게 바라보고 나아갈 점을 찾아도 모자랄 판에 주변을 보며 자신감을 흡수하려 했다. 이런 쓸데없는 짓은 기분은 잠시 좋게 한다. 발전이 없어서 문제지.




기다리고 포기하고 돌아보면서 평소엔 하지 않던 생각과 고민을 했다. 기분도 고조되다 나빠지다 평온해지며 굴곡을 겪었다. 머릿속 가득했던 당선 소감은 진작에 온 데 간 데 없이 사라졌다. 미친놈 같지만 미리미리 준비하는 게 버릇이다. 내버려 두면 지가 세상에서 제일이라고 여기는 내겐 가끔 이런 게 필요하다. 오해는 말자. 정말 최고라고 생각하는 자뻑은 아니다. 그때그때 내 기분이 제일 좋으려고 하다 보니 그렇다. 혼자 만족하고 즐기기를 좋아해서 남이 인정하고 판단하고 등수 매기는 곳엔 최대한 멀리 떨어져 있으려고 한다. 여긴 글이라는 걸로 엮여서 어쩔 수 없이 붙잡혀 있는 느낌이다. 처음엔 글만 쓸 수 있고 그 글을 누군가 읽어줄 수만 있다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다. 공모전이 있는 줄도 몰랐기에 그걸 바라고 온 게 아니었다. 지금도 다르진 않다. 이런 공모전이 없었어도 여기 남아서 쓰고 있을 거라고 믿는다.


아직 확인하지 못한 인연에 다가가 볼 생각이다.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으로 모은 글을 던져보려 한다. 품 안에 간직만 하고 있으면 알 수 없으니 물어봐야겠다. 책으로 낼 만 하겠냐고. 인연을 만나면 좋을 것이고 아니면 아닌 대로 다시 계속 써보는 거고. 해를 마무리할 때마다 이곳은 또 한차례 실망과 아쉬움으로 다시 오기 힘들어하고 불평과 비난으로 떠난 이가 한가득 생기겠지만 아직은 그쪽에 갈 마음은 없다. 남에게 이유와 보상을 찾고 인정과 결과를 바라다보면 끝이 없다. 밖에서 원동력을 찾기 시작하면 아무것도 계속할 수 없다. 글이 좋아서 쓴다. 싫어지면 가차 없이 놓을 테다. 정 아니꼽고 배 아프면 10명이 되도록 또 도전하면 되는 거고. 이것도 싫고 저것도 싫고 다 꼴 보기 싫으면 그냥 좀 쉬면 되는 거고. 글이야 당장 안 써도 안 죽으니까. 안 쓰면 죽을 것 같을 때 다시 쓰면 된다. 안 그래도 세상엔 하기 싫어도 해야 할 일이 많다. 굳이 기분 나빠하면서까지 매달리지 않겠다. 앞으로는 좋은 것만 하고 살고 싶다. 이거 하나는 분명하다. 무엇을 바라든 계속 쓰면 뭐라도 될 거고 안 쓰면 안 될 거다. 아마 난 그게 궁금해서라도 쓰고 말 테다.




* 올해 마지막 글입니다. 뻔한 연말 인사나 새해 인사를 드리려고 덧붙이는 건 아닙니다. 괜히 그러면 지난 글에서 토로했듯이 글과 관련 없는 '엉뚱한 리플'만 달릴까 봐 걱정이라서요. (다짜고짜 '올 한 해 수고하셨어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이런 거요. 하하.) 내년부턴 글을 매일 올리지 않으려고 합니다. 쓰긴 매일 쓰겠지만 발행하는 시기를 조절하고자 해요. 좀 더 고민하고 생각하고 살펴보고 둘러보고 돌아보며 나은 글을 써보려고 합니다. 안부인사 금지라고 잘라버리는 매정한 변태지만 감사 인사는 꼭 전하고 싶어요. 한결 같이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항상 멀지 않은 곳에 머물러 주셔서 든든합니다. 고맙습니다.






<브런치를 시작하며 읽으면 좋은 글 모음>


글쓰기에 진심인 사람들

구독자는 그저 과거의 영광이 누적된 것

글의 힘을 보여주는 이곳

쓰는 우리가 이곳에 계속 남기를

다시 읽고 싶지 않은 작가와 글

독자로서 사랑하는 브런치

브런치 중독자라면 꼭 읽자

구독에 대한 입장 정리

댓글을 대하는 다른 생각

브런치 중독 탈출하기

나만의 브런치 이용법

라이킷, 댓글 그리고 구독에 대한 생각

이곳에 글을 쓰는데 걸린 시간, 1년





이 브런치는 이런 곳입니다.

이 작가와 책을 만나보자!

매거진의 이전글 모두 숨 죽이며 지나간 시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