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원고 청탁, 첫 원고료, 첫 기부
어느 날이었다. 출판사 원고 투고, 두 번째 브런치북 준비, 그리고 아들의 방학으로 정신도 영혼도 없이 바쁘던 그때였다. 원래 일은 한꺼번에 몰려온다더니 정말 그랬다.
브런치를 하면서 늘 설레는 알람이다. 지난 10개월 동안 5번의 제안 이메일을 받았다.
한 브런치 작가님께서 '죽음과 애도'를 주제로 공동 작업을 요청하셨다. 그때 올렸던 '딱 2번 뵈었던 장모님과 아내에 대한 글'을 보고 연락을 주셨다. 주제도 주제였지만 난 다른 사람과 같이 쓸 수 없는 사람이다. 불가능하다. 함께 쓰자고 하는 순간 난 쓰지 못할 것이다. 나와의 약속보다 남과의 약속이 어려워서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한참 아침에 글을 쓰고 있을 때 받았던 제안으로 기억한다. 지난 '나도 작가다' 공모전에 올렸던 글을 기억하시고 이웃 작가님 코뷩님께서 운영하셨던 '글 읽는 밤'에 초청해 주셨던 기분 좋은 제안이었다. 내 글을 다른 이가 나보다 더 열심히 읽어주시고 낭독해주셨던 신비로운 경험을 했다. 이 추억은 나를 브런치에 빠져들게 하기 충분했다.
어느 해외 송금 서비스에서 본격 홍보 글을 의뢰해왔다. 호주에서 지내면서 해외 송금했던 내용의 글을 보고 그랬다. 더 먼저 시작했던 블로그에서도 수천번도 넘게 제안받았지만 하지 않았다. 협찬이니 체험이니 뭐니 많았지만 그런 운영 목적이 아니었기에 모두 거절했다. 더 집중해서 내 글을 쓰기 위해 온 브런치에서는 더욱 택도 없는 이야기였다. 단칼에 거절했다
어느 재테크 사이트에서 글을 가져다 올리고 싶다고 했다. 따로 원고료 이야기는 없었지만 오히려 주고받는 게 없어서 수락했다. 근데 좀 이상했다. 해당 채널은 분명 재테크, 주식, 부동산에 대한 글들이 넘쳤는데 언급한 내 글은 ‘물욕이 없는 나'에 대한 글이었다. 완전 반대쪽에 있는 글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몇 번의 연락 끝에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다. 아마 글을 다시 보고 성격과 맞지 않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또는 상사에게 한 소리 들었을지도.
가장 최근에 들어온 제안이다. 무엇보다도 무려 제안 목적이 ‘출간•기고’였다. 설마 설마? 두근두근 메일을 읽어 내려갔다. ‘출간 제안’은 아니었지만 ‘기고 제안’이었다. (실망은 아주 조금) '한국사회보장 정보원'이라는 곳이었고 '웹진 아이사랑'을 펴내고 있었다. 고군분투하는 아빠의 육아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서 내게 제안해주셨다. (제대로 알고 오셨다!) 그즈음 썼던 호주 육아 일기 : 너의 지금 이 시절, 나의 그때 그 시절 사실 웹사이트에 올라가는 글을 써서 보낸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호주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1년 호주 살기를 마치고 인터뷰 형식으로 진행한 경험이 있었다. 나를 알아주는 반가운 마음에 3~4일 밖에 안 되는 급박한 마감 기간에도 불구하고 흔쾌히 수락했다. 처음으로 원고제출 동의서와 원고 집필진 프로필을 작성해서 보냈다.
솔직히 이 제안을 받아들이면서 아주 쉽게 생각했다. 글이야 원래 매일 쓰고 있었다. 심지어 주제도 그렇게도 많이 써댔던 ‘아빠 육아’니 껌도 이런 껌이 없었다. 쓰기로 마음먹은 전날 밤, 늘 그렇듯 이렇게 저렇게 대충 구상해보고 잠들었다. 새벽에 깨면 술술 쓰일 것을 믿으면서.
처음으로 글 쓰는 게 어려웠다. 남이 정해준 주제, 분량, 스타일, 마감 등. 이 모든 상황이 어려웠다. 역시나 남이 시키는 일은 그저 하기 싫은 본능 때문이었을까? 여느 날처럼 새벽에 앉아 쓰려고 했는데 괜히 막막했다. 쓰면서 쭉쭉 나가지 못하고 계속 뒤를 돌아보게 됐다. 앞으로 가면서도 이 방향이 맞나 갸웃거리도 했다. 글을 쓰기 시작한 지 처음으로 쓰고 난 뒤 바로 내보내질 못했다. 하루 이틀을 묵혀서 마음에 두고 퇴고도 해보았지만 썩 나아지지 않았다. 요청 의도를 깨끗하게 알 수 없었기에 계속 헷갈렸다. 쓴 글을 계속 읽다 보니 익숙해지는 바람에 그럭저럭 괜찮다는 착각이 드는 지경까지 왔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마감이 있는 글이기에 결국 처음 쓴 그대로 보냈다. 보내고 나서도 그 글이 머릿속에서 어찌나 계속 밟히던지... 남에게 요청받아 대가가 있는 글을 처음 써보았다. 뭔가 쉽게 놓기 어려운 느낌이었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나 어디가 어떻게 마음에 안 드는지 몰랐다. 이런 적은 처음이었다.
담당 편집자님께서 불과 몇 시간 만에 바로 회신을 보내주셨다. 도착한 메일을 열기도 전에 느낌이 싸했다. '아... 올게 왔구나. 도대체 어떻게 수정을 해야 할까 ㅡㅜ' 하지만 그곳엔 아주 짧은 내용이 적혀있었다. ‘너무나 공감되며 무엇보다 잘 읽힙니다.’ 이보다 더 좋은 감상평이 있을까? 단 한 글자의 수정 없이 문단 재배치로 소제목을 달아주시고 그대로 올라갔다. 며칠 동안 끙끙 앓았던 고민이 무색해지는 순간이었다. 처음으로 느껴보는 글 마감을 이겨낸 기쁨이었다.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마음을 먹었던 게 하나 있다. 앞으로 특별한 일(당장 먹고 살 돈이 정말 정말 없어서 지금 딱 죽을 것 같을 경우)만 아니라면 내가 써서 버는 돈은 모두 기부할 것이다. (다행히 나는 돈 욕심, 물욕이 없는 사람이다) 언젠가부터 어렴풋이 솔솔 솟아난 내 안의 고요한 의지이자 바람이다. 나에게 주는 희망과 선물 같은 나와의 약속이다. 지금 진행 중인 출간 도전도 당연히 포함된다. (책을 언제 낼 수 있을지 모르지만 ^^;;) 출판사는 내 글이 싫다고 하셨어 (응원이 필요합니다!) 인세 전액을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을 위해 사용할 것을 출간 기획서에도 넣어 두었다. 꼭 그런 어디에 적히는 글이 아니더라도 내 마음속에 제대로 새겨두었다.
드디어 이번에 그 다짐을 실천할 기회를 얻었다. 처음으로 글을 써서 번 돈을 기부할 수 있게 되었다. 이왕 마음먹은 김에 그 금액이 엄청 크면 좋겠지만 오히려 나 같은 보통사람이 괜히 욕심나지 않게 이렇게 작게 시작하는 게 다행인가 싶기도 하다. 견물생심이라고 숫자 보고 눈 돌아갈 수 있으니까. 하하. 브런치를 만나 마음껏 쓰면서 해보고 싶은 것들을 하나씩 해본다. 쓰지 않았더라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들. 신기하고 감사하다.
글에 있는 선한 영향력을 믿는다. 내가 쓰는 글이 있을 수 없던 이런 일을 만들어낸다. 지금은 내게만 아주 작게 일어나지만 언젠가는 다른 이에게도 불어가길 바란다. 말보다는 글이 오래 남기에 쉽게 사라지지 않기를 바란다. 굳이 밝히지 않고 몰래하면 더 멋졌겠지만 난 그런 위인은 못되고 이런 공개가 나를 강력히 옭아맬 것을 믿기에 남기고 나눈다. 이로 인해 앞으로 계속 지켜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러려면 뭐라도 계속 써야 할 것이다. 글에 있는 고요하고 굳센 힘을 믿으며. 글에는 정말 힘이 있다.
[출처] 육아 최전선에 선 아빠 육아 휴직자의 기쁨과 슬픔 - 웹진 아이사랑 61호
<브런치를 시작하며 읽으면 좋은 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