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초록Joon Dec 22. 2020

축제는 끝났다

벌써부터 걱정이다. 얼마나 더 떠날지.

올해 중순 브런치에 글을 쓰게 된 지 한 달쯤 되었을 때 공지글을 하나 읽었다.


<새로운 작가의 탄생을 알립니다!>


'... 이런 것도 있구나하면서 멍하니 바라봤던 기억이 있다. 이제 막 글을 하나씩 써보며 어리숙하게 어리둥절 거리던 때였다. (물론 지금도 그렇지만, 하하) 행여나 저렇게 되고 싶다거나 도전을 해보자는 생각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잡히지 않는 것은 진작에 바라지 않는 성격 탓에. 그저 ‘그래, 저 정도로 책을 써서 뽑힐 정도는 되어야 진짜 작가라고 할 수 있는 거지’라며 괜히 브런치 작가라고 이름 붙여진 자신을 많이 민망해했었다.


한 달쯤 지났을까. 올해 말 새로운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가 진행된다는 안내가 올라왔다. 그때도 별 생각이 없었다. 어차피 내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기에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러고 나서 다시 한 달 뒤, 정식 공지가 떴다. 브런치를 시작한 지 3개월이 지나가면서 마침 스스로 '브린이'를 좀 벗어나고자 새로운 매거진을 시작해 보려던 참이었다. 출판 프로젝트 마감 날짜를 따져보니 어떻게 어떻게 몰아 쓰면 대충 맞춰서 내볼 수 있겠다는 판단이 섰다. 마음의 결정이 끝난 후에는 데드라인만 보였다. (이런 목표 지향적인 단순한 사람 같으니...) 직접 정하진 못해도 남이 정해준 대로 해내는 건 자신 있기에 계획대로 일정에 맞춰 글을 쓰고 브런치북을 만들어 응모했다.






한동안 다른 응모자와 똑같은 생각을 하며 지냈다. ‘혹시 내가?’ 응모기간 내내 발간되는 새로운 브런치북들을 보며 ‘와... 장난 아니네’라는 생각을 계속하면서도 ‘그래도 혹시?’라는 마음은 사라지지 않고 계속 고개를 들었다. 12월로 넘어가고 날짜가 점점 흐르면서 마음은 평정을 되찾았다. 당선 연락이 올 시간이 이미 많이 지났기에 ‘혹시?’하던 높은 기대는 ‘그럼 그렇지’로 낮게 내려왔다. 마음이 비워지고 나니 발표날이 가까울수록 당선작에 대한 궁금함이 아쉬움을 앞섰다.


오늘도 여느 날처럼 새벽에 일어나서 글을 쓰기 위해 자리에 앉았다. 원래 같으면 글을 쓰고 브런치에 접속하겠지만 특별히 예외를 두고 브런치에 먼저 들어갔다. 발표 결과가 궁금했기 때문이다. (어제 확인해도 됐지만 하루 한번 아침에 접속하는 나만의 원칙이 더 중요했기에 하하. 독한 놈) 공지글은 어제 오전에 일찍 공개된 모양이었다. 당선작들의 면모에 고개를 끄덕이며 읽어 내려갔다. 그런데 분위기가 좀 이상했다. 1년에 한 번 있는 가장 큰 축제를 마감하는 글에 반응이 거의 없었다. 최소한 응모한 3,700편의 작가들은 모두 확인했을 텐데 라이킷이나 댓글이 적어도 정말 적었다.


잠시 그동안의 무르익었던 축제의 분위기를 떠올려보니 이해가 되었다. 그곳을 하루 동안 스쳐 갔던 보이지 않는 그 허탈함, 소외감, 허망함이 뚜렷하게 보였다. 난 나만의 걱정을 시작했다.






브런치를 시작하면서 ‘브런치’ 자체에 관련된 글을 종종 접했다. (이렇게 지금은 매거진으로 연재할 만큼 나도 할 말이 많아졌다) 그중에는 브런치에 정이 떨어지고 실망하는 내용도 있었다. 도대체 브런치에 왜 계속 글을 올려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떠난다는 글. 이곳에 쓰는 글이 돈도 안되고, 공모전도 계속 떨어지고, 출간 제의도 오지 않아서 그렇다는 이유였다.


그런 건 내 목적이나 목표가 아니기에 그들을 완벽히 이해할 수는 없다. 물론 나도 이곳에서 돈도 벌고, 당선도 되고, 책도 내면 당연히 기쁘고 좋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고 해서 그것이 내게 더 이상 글을 쓰지 않고 이곳을 떠나는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 그것들보다는 쓰는 것이 더 큰 의미이기 때문에.


별 요동 없이 이곳에 남아 있을 나는 이번의 충격으로 얼마나 많은 작가분들이 떠날지 벌써부터 걱정이다. 떠나고 떠나서 남는 사람 없이 쓰는 사람 없이 이곳이 휑해질까  걱정이다걱정도 팔자라고 하겠지만 정말이다. 나는 이제 막 이곳이 좋아졌는데 함께 하는 사람들이 마구마구 떠날까 봐 걱정이다.






당선 발표글에 실린 출판사 심사단의 감사 인사가 마음에 남았다. 표현은 모두 달랐지만 결국은 ‘쓰는 것에 대한 감사와 사랑, 그리고 힘’이었다.


브런치에 오고 싶어 했던 이유가 다시 떠올랐다. 그저 쓰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돈을 벌고 싶은 것도, 당선이 되어 뽐내고 싶은 것도,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고 싶은 것도 아니었다. 그런 원래 없던 욕심들은 모두 나중에 생긴 부차적인 것들이다. 말 그대로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것들이었다.


이번 브런치북 출간 프로젝트 덕분에 많은 것을 얻었다. 목적 없이 그때그때 쓰던 것을 책이라는 하나의 테두리에 엮어보는 좋은 경험을 했다. 내가 가장 먼저 쓰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그것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실제로 써보니 알게 되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엮은 그것을 많은 이들이, 그리고 출판 관계자분들이 읽어주었다. 누가 아는가. 그들이 끝까지 고민하다 내려놓았던 작품이 내 것이었을지. (이놈의 근자감. 하하)


난 왜 여기서 글을 쓰고 있는지 알기 위해, 처음 이곳에서 글을 쓸 때의 마음을 기억해 본다. 1년 만의 기적적인 작가 신청 통과를 기억한다. 첫 글 발행의 설렘을 기억한다. 첫 라이킷, 댓글, 구독자에 대한 감사를 기억한다. 글을 쓰던 매 순간순간의 흥분을 기억한다. 그리고 지금 이 글자들을 써 내려가는 동안의 기쁨을 모두 기억한다.


나는 아직 당분간은 더 쓰고 싶다. 당신도 아직 쓸게 남았다면 계속 쓰면 좋겠다. 그래서 우리가 계속 쓰면 좋겠다. 쓰는 우리가 이곳에 많이 남았으면 좋겠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




<브런치를 시작하며 읽으면 좋은 글 모음>


놀라운 정신승리 기술로 계속 쓰기

글쓰기에 진심인 사람들

구독자는 그저 과거의 영광이 누적된 것

글의 힘을 보여주는 이곳

다시 읽고 싶지 않은 작가와 글

독자로서 사랑하는 브런치

브런치 중독자라면 꼭 읽자

구독에 대한 입장 정리

댓글을 대하는 다른 생각

브런치 중독 탈출하기

나만의 브런치 이용법

라이킷, 댓글 그리고 구독에 대한 생각

이곳에 글을 쓰는 데 걸린 시간, 1년






이 브런치는 이런 곳입니다.

이 작가와 책을 만나보자!


매거진의 이전글 브런치는 넓고 읽고 싶은 글은 적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