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기는 것도 돌아서는 것도 모두 구독자의 자유
브런치에는 ‘구독’이라는 특별한 기능이 있다. 다른 서비스에도 ‘이웃’, ‘팔로워’, ‘친구’ 등의 다른 이름으로 존재한다. 사실 기능 자체는 특별한 것이 아니지만 그 독특한 네이밍이 그것을 특별하게 한다. 작가가 되길 바라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이곳에 ‘구독’이라는 그 이름은 아주 특별한 가치와 매력을 마구 뿜어댄다.
‘구독’이라 하면 아주 오래전 집집마다 매일 아침 받아보던 종이 신문이 생각난다. 언론사가 본인들의 입장을 찍어내는 인쇄물을 전달하게 위해 쌀도 주고 자전거도 주며 열심히 구독을 요청했었다. 그랬던 것이 요즘 기술이 끝없이 발달하는 이 시대에도 ‘구독 서비스’가 활기를 띠고 있다. 책, 영상, 음식, 의류 등 우리 생활에서 소비되는 모든 것이 ‘구독’되고 있다. 이렇게 '구독’의 세계는 필요한 무언가를 계속 사용하고 즐기고 싶어 하는 이용자의 편의를 맞추며 성장하고 있다.
예전의 신문 구독과 지금의 다양한 구독 서비스에는 절대 변하지 않는 공통점이 존재한다. 바로 구독은 구독자의 ‘자유로운 선택'에 의해 100% 결정된다는 점이다. 스스로 무엇을 구독할지 결정하고, 필요가 없으면 구독하지 않는다. 아주 단순하지만 명확하다. 한마디로 구독자의 마음대로인 것이다. 구독자의 마음에 들면 구독하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구독을 해지한다. 다른 설명은 필요 없다. 마음이 그렇다는데 어찌하랴. 그 마음이 그렇다는데. 신문을 구독해지하거나 다른 신문사로 바꿀 때 우리가 구구절절 우리의 변한 마음을 설명하지 않듯이.
이렇듯 브런치의 ‘구독’도 다른 곳의 ‘구독’과 다르지 않다. 마음에 드는 글을 쓰는 작가가 있으면 ‘구독’을 한다. 이 작가가 쓰는 글을 다시 읽어보고 싶다는 것이다. 이 모든 과정은 사실 일방적으로 판단되고 결정된다. 선택을 받는 작가가 구독이 되는 순간에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출발점에 설 수 있도록 글을 쓰는 것 말고는 없다. 경기 중에 손을 쓸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말이다. 그만큼 이용자에게 전적으로 달려있는 선택의 권리인 셈이다.
이는 ‘구독’이 이루어진 다음에도 마찬가지다. 글을 읽고 즐기는 것도 구독자 마음이다. 새로운 글이 올라올 때마다 알림이 떴을 때 바로 가서 읽을 수도 있고 정해진 시간에 찾아가서 읽을 수도 있다. 특정 주제, 특정 매거진의 글만 읽을 수도 있고, 하나도 빠짐없이 읽을 수도 있다. 언제 무엇을 얼마큼 읽느냐도 모두 구독자의 선택이다. 구독이 되고 있지만 이용되는 순간에도 작가는 여전히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구독’은 구독자의 즐길 권리에 의해 철저하게 이용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구독’을 했다는 이유로 꼭 모든 것을 빠짐없이 재밌게 즐겨야 할까? 우리가 넷플릭스를 구독한다고 모든 콘텐츠를 보는가? 꼭 보는 것도 있고 가끔 보는 것도 있다, 그리고 절대 보지 않는 것도 물론 있다. 브런치의 구독도 같다고 본다. 구독을 하면서도 내가 읽고 싶은 것만 골라 읽을 수도 있다. 구독을 했다고 모든 것이 마음에 들 수는 없기에 그 안에서 선택이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구독자가 원하는 만큼, 원하는 것들에 맞게끔 구독 안에서도 치열한 선택됨이 일어난다.
또한 우리는 구독 서비스를 해지하기도 한다. 비용 대비 가치를 따져서 가성비가 나오지 않는다고 판단이 들면 바로 해지한다. 누구도 의리나 의무감을 느끼며 주저하지 않는다. 브런치에도 ‘구독’을 위한 비용이 있다. 바로 글을 읽을 읽으려는 정성과 시간이다. 글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모두 공감할 것이다. 읽는 소비는 꽤나 많은 내 정신력을 소비한다. 즐기려면 제대로 집중해서 시간을 들여야만 한다. 그냥 글자만 의미 없이 읽으면 아무 재미도 없고 시간만 낭비다. 이러한 읽는 이의 정신력과 물리적인 시간을 쏟아붓는 것만큼의 가치가 없다고 판단되면... 브런치 작가들에게는 아주 뼈아픈 ‘구독해지’가 일어나게 된다.
가슴 아프지만 ‘구독’이 있는 곳에 벌어지는 이 모든 관계의 연결과 끊어짐은 모두 이용자가 결정하며 반대편은 이유 조차 알지 못하고 결과만 접하게 된다.
이런 ‘구독’이라는 매우 냉정한 세계에 브런치 작가와 이용자는 서로 함께 살아가고 있다. 모든 브런치 이용자에게는 ‘구독자’와 ‘관심작가’라는 두 가지 아주 성격이 다른 그룹을 소유하게 된다. 말 그대로 하나는 내가 쓰는 글을 좋아하는 사람이고, 다른 하나는 내가 좋아하는 글을 쓰는 사람이다.
‘구독자’와 ‘관심작가’가 가끔 일치하기도 하는데 이건 정말 확률이 아주 낮은 우연한 일이다. 우선 내가 좋아해서 구독하는 작가가 나를 좋아해서 구독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예전 글에서도 밝혔듯이 구독은 의리로 하는 것이 아니기에 굳이 맞구독을 억지로 하는 경우는 없다. 그렇기에 이건 반대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누군가 나를 구독했다고 내가 무조건 구독하지 않는다. 나의 구독됨과 무관하게 내가 그분의 글이 좋아하고 계속 보고 싶으면 구독을 하는 것이다. 이렇듯 '구독'은 한 사람이 오롯이 자신의 취향과 관심을 통해 일방향으로 정하는 것이다.
‘구독’을 한 이후에도 그것의 유지와 돌아섬은 구독자의 입장으로만 결정된다. 처음엔 좋다가도 여러 가지 이유로 구독을 해지할 수 있다. 더 이상 최신 글이 안 올라온다든지, 알고 봤더니 나와 생각이 달라 공감이 되지 않는다든지, 재미나 매력이 점점 떨어진다든지 등등. 이용자의 비용, 즉 글을 읽는 정성과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면 그 일방적인 관계는 거기까지 인 것이다. 나도 그럴 때가 있다. 어느 순간 괜한 찝찝함이 들어서 어설픈 의무감으로 글을 읽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판단해본다. '이 글을 꼭 읽고 싶은지? 읽지 않았을 때 아쉽지 않을지?' 이 질문들에 솔직해지면 답은 바로 나온다.
'구독'은 숙제가 아니다. 이용자의 특권이자 자유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선택해서 마음껏 즐기는 것이다. 혹시라도 숙제처럼 저를 구독하고 계시다면 바로 해지하셔도 좋다. 아니 꼭 부탁드린다. 그런 구독을 받는 것이 그리 유쾌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이렇게 심각하게 ‘구독’에 얽매이지 않고도 서로의 글을 즐길 수 있다. 나도 구독은 하지 않지만 우연히 마주치는 익숙한 작가님의 글을 읽고 라이킷을 누르고 댓글도 단다. 그게 구독으로 이어지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그러니 너무 구독에 얽매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가끔 구독에 스트레스를 받고 의무감을 느끼시는 분들이 계신 것 같다. 그럴 수 있다. 나도 처음엔 그랬다. 지금은 구독되는 입장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기에 마음을 비웠고, 구독하는 입장에서는 나만의 기준으로 열심히 즐기고 있다.
구독이 된다는 것은 누군가의 정성과 시간을 일정 부분 소유, 점유하는 것이다. 이는 유한한 세상에서 누릴 수 있는 무한한 영광이며 충분한 책임감을 느낀다. 하지만 여전히 구독이 결정되는 순간, 그리고 구독되어 이용되는 시간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모두 구독자의 선택과 자유에 의해 결정된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구독을 해주시는 분들이 후회하지 않도록 그에 맞는 글을 써나가는 일뿐이다. 내가 내 글을 쓰는 것이 아닌 내 밖에서 다른 이에 의해 일어나는 것은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영역이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범위의 한계 안에서 늘 나를 구독하는 분들을 생각한다. '오늘은 어떤 재미난 글을 썼을까?'라는 궁금증과 기대감을 주고 싶다.
그게 내가 가질 수 있는 '구독'에 대한 '유일한 예의'다.
<브런치를 시작하며 읽으면 좋은 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