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로서의 브런치
브런치가 생기고 난 뒤 쭈욱 난 계속 '독자'로서 존재했다. 작가 신청이 통과된 지 5개월이 막 지났으니 거의 대부분을 오로지 독자로 지낸 것이다. 이제는 글을 발행할 수 있게 되었지만 그것만 뺀다면 여전히 똑같은 독자로서 이용 중이다. 이곳에 올라오는 새 글을 바라고 있으면 경이로운 기분이 든다. 빠르게 변화하고 자극적인 영상들이 난무하는 이 시대에 꾹꾹 눌러쓴 글들이 꾸준히 탄생하는 모습은 언제나 놀랍다. 누군가는 답답함에, 누군가는 꿈을 위해, 누군가는 소통하기 위해. 이유가 무엇이 되었든 생겨나는 그 결정체는 ‘글’이다. 나는 브런치의 독자로서 ‘글'이 풍성한 이곳의 분위기를 사랑한다.
어떤 글을 마주하여 읽게 되면 그 글을 쓴 ‘작가’를 떠올리게 된다. 어떤 사람이 무슨 환경에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이런 상상을 하는 그 순간은 어떤 추리 소설의 예측보다 흥미롭다. 하지만 답도 없고 의미도 없기에 다시 그 글로 돌아가곤 한다. 그리고 다시 마음에 든 그 글을 읽어보고는 ‘브런치는 참 넓구나!’라고 여긴다.
나만의 기준으로 좋아하는 작가를 만나는 순간은 독자로서 가장 기쁜 순간이다. 이 ‘나만의 기준’은 설명하기 참 어렵다. 어떤 작가는 처음 마주한 순간 마음에 들기도 하고, 어떤 작가는 여러 번 보다 보니 매력을 느끼기도 한다. (이게 꼭 ‘구독’과 연결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구독은 또 다른 이야기다.)
내가 좋아하는 글을 쓰는 작가를 찾고, 그 작가의 요즘 글 그리고 지난 글을 내 마음대로 언제든 읽을 수 있다는 것은 브런치 독자로서 누릴 수 있는 커다란 즐거움이다.
이 독자로서 묘한 쾌감을 느끼는 나만의 순간들이 3가지 있다.
어떤 글을 읽고 난 뒤 ‘와! 이 작가는 구독해야겠다’라고 느끼는 순간이 있다. 스크롤을 아래로 내려 구독하기를 누르려고 하는데... 구독자 숫자가 ‘0’이다. ‘구독하기’를 누르게 되면 내가 첫 번째 구독자가 된다. 마치 좋아하는 가수의 첫 번째 공식 팬이 된 것과 같은 기분이다.
내가 주목하게 된 글을 발행한 지 얼마 안 되는 작가분들을 보다 보면 소위 말해 ‘잘 나가시는 분’이 계시다. 구독자가 마구 늘어난다든지, 공모전 수상을 하신다든지, 많은 이의 관심과 사랑을 받으신다든지. 그러면 괜히 초기에 주목한 스스로의 안목에 으쓱해진다. ‘그래! 내 눈이 틀리지 않았어!' 내가 콕 찍었던 신인 배우가 승승장구하는 모습을 보는 기분이랄까?
익히 알고 있는 작가의 경우에는 그만의 스타일이 존재한다. 문체, 단어, 구성 등 익숙한 그것들이 있다. 그러다 가끔 말도 안 되는 변화를 접한 뒤 정말 같은 작가인지 여러 번 살펴본다. 그 새로운 시도가 또 다른 매력을 발산하게 되면 그 작가에게는 헤어 나올 방도가 없다. 언제 다시 또 다른 모습을 보일지 기대하면서 곁에 꼭 붙어 있게 된다. 연기 변신을 거듭하는 대배우를 지켜보는 마음이 이러지 않을까 싶다.
이렇게 오롯이 독자로서 브런치를 꽤 오랫동안 즐겨왔었다. 그러던 중 얼마 전부터 내 글을 발행하면서 변화가 조금 생겼다. 괜히 내가 쓴 것처럼 너무 많이 비슷하면 오히려 찾지 않게 된다. ‘딱 이런 부분’이라고 설명하긴 어렵지만 ‘좀 뻔하다?’라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동질성을 느껴서 친숙할 법도 한데 괜히 얕고 좁은 내 글을 다른 곳에서 보는 느낌이어서 피하게 된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는 나와 다른 글을 쓰는 작가다. 내가 쓰지 못하는 글에 호기심이 생기고 그 글을 쓰는 이에게 호감이 간다. 스스로의 변화는 싫어하지만 새로움에 대한 자극은 즐기는 모양이다.
이렇게 독자로서의 내 브런치 생활을 돌아보고 나니 머쓱한 궁금함이 문득 생겨났다. 내 글을 읽는 브런치 독자분들에게 나는 어떨까?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에게 느끼는 즐거움과 쾌감을 주고 있을까? 지금까지 그런 생각보다는 그저 내가 쓰는 것에 더 집중했던 것 같다. 아마 앞으로도 내 밖에 있는 다른 이의 반응이나 생각은 내가 어찌할 수 없을 것이다. 그냥 갑자기 독자로서 이러니 저러니 생각을 적고 나니 궁금해졌을 뿐이다.
기본적인 이 명제는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
<브런치를 시작하며 읽으면 좋은 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