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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Joon Sep 09. 2020

글만 글인 줄 알았는데 댓글도 글이더라

글과 댓글

매일 쓴다. 그러기 위해 매일 집중한다. 글을 쓰는 시간에는 집중한 것을 모를 정도로 집중한다. 그렇게 내 생각을 뱉어낸 글자들이 내 글이 되어 누군가 모를 사람들에게 읽힌다. 난 그들이 사실 정확히 누구고 어떤 사람이 될지 전혀 알 수 없다.


하지만 글이라는 것이 누군가를 정해놓고 쓰인다면 그 사람에게 보내는 편지 정도이지 아닐까 싶다. 어떤 글쓴이도 본인만이 읽기 위해 쓰지 않는다. 그건 정말 일기장에 따로 적으면 된다. 오롯이 스스로 집중해서 쓴 글을 누군지 모를 이들에게 풀어놓는다는 것은 늘 어색하면서도 신기한 경험이다. 이렇게 신비로운 오늘의 글쓰기가 끝나면 개운하고 가뿐해진다.


그러고는 이제 읽기를 시작한다. 훨씬 마음이 편하다. 확실히 내 글을 쓰고 읽는 것보다는 남의 글을 읽기가 편하다. 누군가의 집중으로 쓰인 글을 그 집중의 노력을 직접 행하지 않고 읽는 것은 정말 편한 일이다. 맛있는 과자를 남이 껍질을 까주고 적당한 크기로 잘라서 가루가 묻지 않게 입에 넣어주는 기분이랄까? 편안하게 읽고 다음 글을 읽고, 또 다음 글을 읽는다.


아... 생각해보니 이렇게 꼭 읽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글에 대한 무언가가 생겨 나와 글쓴이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어김없이 자동적으로 ‘댓글’을 쓴다. 이때 쓰이는 ‘댓글’은 방금 읽은 글에 대한 느낌과 내가 평소 가지고 있던 생각을 버무려서 쓴다. 재밌고 잘 읽은 글임에도 둘 중 하나가 부족하거나 잘 버무려지지 않으면 ‘댓글’은 탄생하지 않는다.






이렇게 보니 읽는 순간에도 쓰기는 계속된다. 거의 무의식적으로 반응하기 때문에 이것이 ‘내 글’이라고는 인식하지 못한다. 하지만... ‘댓글’에 새로운 글이 달리면서 상황이 달라진다. 순간적으로 떠오른 것을 옮겨 놓은 내 짧은 글자들의 모임에 예상치 못한 반응이 따라온다. ‘생각지 못한 말씀 감사합니다.’,  ‘큰 힘을 얻었어요.’,  ‘울컥했습니다.’... 뭐지? 너무 놀라 남겨놓은 내가 쓴 댓글을 처음 보는 사람처럼 다시 확인한다. '아... 이 글을 읽고 이런 느낌과 생각으로 남겨 두었는데 글을 쓰신 분께 공감되는 부분이 있었구나.' 내가 남긴 글자들을 누군가 읽고 반응한다면 이것 또한 ‘글’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스로 생각해서 썼든 남의 글을 보고 반응해서 썼든 내 생각이 담기면 모두 글이었다. 그게 짧든 길든 간에 모두 글이었다.


그러고 보니 나도 그랬다. 내 글에 달리는 댓글에 대한 내 태도가 정말 그랬다. 그 댓글 하나하나가 써주신 분의 ‘글’로 다가왔다. ‘즐겁게 읽었습니다.’, ‘글이 좋았습니다.’, ‘이 표현 멋졌어요.’... 댓글을 쓴 사람의 감정과 느낌이 그대로 전해졌다. 이건 분명히 ‘글’이었다. 생각해보니 이런 적이 많았다. 어떤 이의 댓글이 인상 깊어서 그 사람을 기억하기도 했고, 어떤 이의 댓글이 나빠서 그 사람을 쳐다보지 않기도 했다. ‘댓글’은 분명 ‘글’로서 충분한 자격이 있었다.


내게서 시작된 글은 분명 소중하다. 다른 이의 글에서 시작된 댓글도 중요하다. 누군가 읽어줄 일이 있는 글은 모두 의미가 있다. 어쩌면 읽을 이가 정해져 있는 ‘댓글’은 불특정 다수가 읽을 ‘글’보다 훨씬 밀도가 높은 글이겠다. 


앞으로도 여전히 읽고 난 순간 떠오른 글자들의 조합으로 댓글을 남기겠지만 이 ‘댓글’의 무게를 생각할 필요는 있겠다. 그리고 내 글에 달리는 ‘댓글’에 담긴 다른 이의 정성도.


분명히 '댓글’도 ‘글’이다.



(덧붙이기) 원래는 이 글에 그동안 인상 깊었던 댓글들과 내 댓글에 대한 댓글을 기록해 두려고 했었다. 하지만 어떤 이유가 떠올라 혼자 간직하기로 했다. 이 모든 흔적을 남겨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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