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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Joon Aug 31. 2020

자신의 글을 얼마나 읽어보나요?

내 글을 내가 읽진 못했지만...

혹시 본인이 쓴 글을 자주 읽는가? 물론 쓰는 동안에는 쓰기 위해 읽을 수밖에 없다. 내가 묻는 것은 다 쓰고 나서를 말한다. 글을 다 썼다고 판단한 뒤에 얼마나 자신의 글을 읽는가? 사람마다 다를 텐데 내 경우는 다 썼다고 생각되면 가급적 다시 읽지 않는다. 다시 보면 볼수록 고치고 싶은 욕구가 끝없이 찾아와서 이를 외면하기 위해서다. 그때 그 순간의 생각과 느낌을 그대로 간직해 놓고 싶어서다. 글은 결국 생각을 언어로 잡아두는 행위인데 처음 떠오른 의식의 흐름대로 적어둔 최초의 글이 제일 마음에 든다. 물론 갓 태어난 글에는 생생한 날 것이 들어있는 만큼 기술적으로 엉망인 부분들도 많다. 모른 척하지 못하고 흐름이나 표현이 좀 어설프거나 뒤죽박죽인 것을 눈치채면 결국 손을 대게 된다. 신기하게 괜히 고치고 고치고 하다 보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오는 일도 많다. 마치 회사에서 까이고 까이다 보면 결국 보고서의 처음 버전으로 영원 회귀하듯이.


정해진 횟수와 시간만큼 읽고 고치고는 내버려 둔다. 이렇게 나 스스로도 다시 읽지 않는 내 글을 누군가 여러 번 읽어 준다면 어떨까? 심지어 속으로 빠르게 읽어 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소리를 내서 읽어 준다면? 더 나아가서 그렇게 내 글을 다른 이들에게 들려준다면? 이런 경험은 글을 적어나가는 사람이 평생에 한번 경험할까 말까 한 일이다. 누가 어떤 관심을 가져만 주어도 감사한 게 매일 쓰는 마음이다. 어느 날 이런 쉽지 않은 일이 실제로 내게 일어났다.




새벽 여느 때처럼 글을 쓰는 중이었다. 조금 집중이 잘 되지 않았던 날이었는데 그 당시 접한 익숙하지 않았던 실패 덕분이었다. 기대감이 가득 찼다가 사라지는 그 느낌은 늘 씁쓸하다. 그 실패에 대한 내 생각을 어떻게 올릴까 고민하고 있었다. 그때 그 새벽에 어디선가 ‘제안 메일’이 도착했다. 익숙한 이름이 보였다. 


“작가님의 글 <내게 취해 있던 그때>를 제 유튜브 채널에서 낭독해보고 싶습니다.”


난 정확히 기억해 냈다. 이 글에 달렸던 이 분의 첫 댓글을.


“감히 이 글이 이번 공모전에서 뽑힐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일개 백수이자 무명의 작가이지만 그런 저의 마음을 뜨겁게 울리는 글이었거든요. 더 많은 분들께 알려져서 더 많은 이들의 마음을 울릴 수 있겠다면 좋겠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아직도 그때를 잊지 못한다. 그 댓글을 확인한 날 하루 종일 떠 다녔던 기분을. 낙선 후기를 고민하는 순간 ‘글 읽는 밤’ 제안 메일을 받은 그때도 잊지 못한다. 내가 생각하고 있는 ‘내 글’을 같은 시간 다른 사람이 함께 생각했다는 그 우연은 절대 잊을 수 없는 경험이었다. 




몇 주가 지나 내 글이 ‘글 읽는 밤’에 업데이트되었다. 듣고 나서는 잠시 먹먹해졌다. 내 글이 듣기 좋아서? 내 인터뷰 내용이 잘 담겨서? 그런 종류의 기분이 아니었다. 이 분은 분명 내 글을 10번도 넘게 읽었다. 아니, 그 이상일지도 모른다. 정리 없이 마구 보냈던 내 소개도 여러 번 읽었다. 대충 이 정도면 되었다고 생각하면 나 스스로도 돌아보지 않는 내 글을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이렇게 집중해서 읽어주었다. 벅찬 느낌으로 잠시 멍해졌다.


이 분은 글을 쓰는 것에 대해 진실했다. 글 쓰는 사람을 향한 예의와 매너가 온몸에 넘쳐흘렀다. 내 글을 단 한 사람이라도 읽고 느껴주면 좋겠다며 써나가고 있는 나는 이 작가님께 영원히 갚지 못할 빚을 지었다. 감사하다는 말 이상으로 표현하고 싶지만 부족한 필력으로 다른 말을 찾지 못했다.


“첫 댓글을 확인하던 순간과 글 읽는 밤 제안을 받았던 순간을 영원히 간직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20.08.30) 글 읽는 밤 by 백수 라이터 코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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