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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Joon Feb 11. 2023

대화로 시작하는 함께하는 육아

[여성가족부 기고] 모두가 함께하는 육아 2.

부부가 가장 많이 나누는 대화는 아마도 이 질문으로 시작하지 않을까. "이따가 뭐 먹을래?" 다음 끼니를 챙기는 것보다 더 자주 찾아오거나 우선순위가 높은 일은 거의 없다. 그만큼 먹고사는 일은 바쁘다. 한 끼 한 끼를 전투적으로 해결하다 보면 옆 사람을 바라볼 기회를 놓친다. 함께 손을 잡고 막막한 안갯속을 걸어가지만 정작 눈을 보고 이야기를 나눈 적은 드물다. 어떤 생각과 마음으로 살아가는지 모른 채 그저 각자 앞만 보며 걷는다. 가장 가깝기에 제일 잘 알 것 같은 인생의 배우자를 전혀 모르고 살아가기 쉽다. 


결혼 생활을 마무리하는 이유로 자주 거론되는 단어가 있다. 바로 '성격차이'. 10년 넘게 다른 사람과 살아본 입장으로서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을 하지만 문득 다른 생각이 떠오른다. 전혀 차이가 없는 연인이, 그러니까 한 치의 다름이 없는 부부가 있을 수 있을까. 


완벽히 다른 사람과 살아가는 부부관계는 외줄 타기다. 함께하는 기쁨과 안정, 둘이라서 배가 되는 행복 등 수많은 장점이 있지만 너무도 다른 면을 발견할 때마다 발을 헛디딜 위기가 온다. 다른 게 확실한 두 사람이 앞으로 무언가를 같이 하려면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하나다. 서로를 알아가는 것. 그리고 알게 된 다름을 바탕으로 이해하는 것. 


어디 가서 뭐 하고 놀까라고는 자주 묻지만 너는 어떤 사람인지는 궁금해하지 않는다. 상대를 잘 몰라서 자꾸 부딪힌다면 알려고 노력을 해야 한다. 뭐니 뭐니 해도 뜨겁게 사랑했던 사이라면 언제든 서로의 다른 점을 감싸주고 배려할 수 있다. 시작은 상대방에 대한 호기심 가득한 질문으로 출발하면 좋다.


처음은 천천히 내 아내, 내 남편이라는 사람을 알아가자. 살면서 한 번쯤 해보고 싶고, 이루고 싶은 무언가가 각자 마음 한편에 담겨있다. 그걸 꺼내 보이는 것만으로도 대화의 첫 단추를 훌륭하게 맞출 수 있다. 바람, 희망, 꿈, 소망 무엇이 되었든지 본인이 바라는 바를 밝게 펼쳐 놓는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이 환하다. 소위 '버킷 리스트'를 열정 넘치는 목소리로 나누고 나면 한층 가까워진 느낌이 든다. 수없이 주고받은 '짜장 아니면 짬뽕?'보단 훨씬 더 깊게 옆지기를 알게 해 준다. 새삼 달라 보이는 그와 어쩐지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무르익은 분위기 속에서 좀 더 내밀한 속내를 이끌어 내 보자.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항상 궁금한 것이 있다. 상대방의 속마음. 이 사람은 나와 같은 미래를 그리고 있을까? 당연히 같은 곳을 바라본다고 믿기 쉽지만 사사건건 엇갈리는 의견은 의심을 증폭시킨다. 스스로 되고 싶고, 또 상대에게 바라는 부부와 부모로서의 지향점은 쉽게 다루는 소재가 아니기 때문에 평생 미뤄두고 사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언젠가는 부딪힐, 그리고 품고 지내지만 풀어놓기 어려운 질문을 꺼내면 결혼 생활의 판도를 바꿀 수 있다. 태어났거나 태어날 아이가 자라날 환경에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작지만 소중한 질문은 무궁무진하다. 아이를 원하는지부터 구체적인 자녀계획까지 끝이 없다. 아이를 키우면서 벌어질 상황을 그려보며 우리는 어떻게 할지 찬찬히 늘어놓아 보자. 다른 사람 손을 빌릴지, 기관은 언제부터 보낼지, 휴직은 언제 사용할지 같은, 마주하고 싶지 않은 현실적인 문제도 바라볼 필요가 있다. 그때 가서 어떻게 되겠지라며 피하면 나중엔 마음 급한 사람만 동동대다가 시간에 쫓긴 결정을 하고 만다. 좀 더 멀리 아이가 배우고 자랄 길을 그려봐도 좋다. 막막하지만 놓치지 말아야 할 소신을 부부가 함께 지니고 간다면 조금은 수월하지 않을지.


결국 두 사람이 앞으로 마주하게 될 피할 수 없는 질문인 셈이다. '아이가 어떤 사람으로 크길 원하는가? 우리 부부는 어떤 부모가 되고 싶은가? 우리 가족은 앞으로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 자녀에게도 아빠와 엄마에게도 어느 것 하나 무시하고 지내기엔 치명적인 주제다.


꼭 필요한 질문을 위한 대답은 쉽지만은 않다. 1년을 넘게 회사를 쉬며 아이를 돌본 아내가 나에게 3개월의 휴직을 부탁했지만 냉정하게 거절했다. 아무리 그래도 남자가 아이를 본다고 일을 쉬는 건 납득이 되질 않았다. 결정적인 순간이 오자 손에 쥐고 있는 걸 아까워하며 모른 척 뒤돌아섰다. 남은 건 아내의 실망과 내 죄책감뿐이었다. 놓인 질문을 보고도 당장 떠오르는 게 없다면 솔직하게 말하고 양해를 구하자. 지금은 잘 모르겠다고 좀 더 생각해 보겠다고. 


대화는 완벽한 답을 찾는 데 목적이 있지 않다. 고민의 시작을 함께 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 같이 헤매며 찾아낸 우리만의 대답을 지키려는 책임감이 핵심이다. 대화가 이어주는 끈끈한 부부는 자연스럽게 육아를 함께하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아이를 위하는 마음으로 서로의 생각을 충분히 나누고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점 조정이 끝난 셈이다.


제대로 된 출발점에 서자 의문이 떠올랐다. 화장실을 들락거리며 임신 테스트하는 아내를 보며 불현듯 '왜 아빠는 사전 테스트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아이가 태어나면 아빠가 되는 게 맞으나 그게 자신에게 어떤 의미인지 물어보고 답해 볼 필요가 있어 보였다. 그저 나와 상관없는 일인지, 마냥 걱정만 앞서서 두려운지, 자신이 넘쳐서 좋은 아빠는 떼어 놓은 당상인지. 가지고 있는 생각이 무엇이든 간에 미리 아내와 이야기를 나누면 도움이 된다. 제쳐두고 모른 척하기 쉬운 소재를 다루는 것만으로도 앞으로 벌어질 육아의 세계는 달라진다.


아빠 사전 테스트에서 모든 걸 해낼 수 있는, 무한한 자신감을 가졌다고 결과가 나왔으나 직접 마주한 현실은 차가웠다. 엉망진창과 실수 연발이라는 말로 표현이 가능했다. 나보다 먼저 한 몸처럼 지내온 아내와 아이 사이는 들어갈 틈이 없는 견고한 성 같았다. 그 틈에서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망설이며 잦은 헛손질을 했다. 솔직히 아이만 태어나면 저절로 아빠가 될 줄 알았다. 아이의 영유아 시절 가족을 집에 두고 일터에 나가는 아빠로서 깨달은, 중요하지만 놓치기 쉬운 경험을 나눠본다. 


퇴근 시간이 다가오면 야근 여부가 예상이 된다. 집에서 목을 빼고 기다리는 아내에게 미리 상황을 알려주자. 제시간에 와주면 좋을 테고, 혹시 늦더라도 알고서 기다리는 것과 마냥 현관문만 바라보는 건 다르다. 퇴근 후에는 일에 절어 힘들고 지치지만 하루 종일 밥 한 끼 제대로 못했을 아내를 위해 아이를 건네받자. 아이가 좀 더 커서 어린이집에 가게 되면 시간을 내어 등원과 하원을 아빠가 가끔이라도 하길 바란다. 처음으로 세상에 나간 아이가 어디에서 어떻게 지내는지 알아가는 것은 새로운 기쁨과 감동을 준다. 물론 각 가정마다 필요한 건 실제로 모두 다를 것이다. 이때 고개를 돌려 입과 귀를 열어야 할 곳은 정해져 있다. 서로에게 묻고 듣자. 


때로는 아는 것만으로는 변화가 없을 수 있다. 몸에 안 좋은 술, 담배를 끊지 못하고 몸에 좋은 운동을 시작하지 못하는 이치와 같다. 나만 해도 아내와의 수많은 대화를 통해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정보를 축적했으나 여전히 마음 한구석에는 '그래도...'가 남아 있었다. 그래도 아이는 엄마가 봐야지, 그래도 남자는 밖에서 일해야지, 그래도 다른 사람 눈이 있지 아빠가 육아휴직을 쓰나. 지금 돌아보면 '생각'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가지고 있던 고정관념을 깨부수지 못하니 늘어가는 지식만으로는 소용이 없었다. 내 생각의 잘못을 인정하고 나니 틈이 생겼다. 그 틈으로 새로운 생각을 집어넣기 위해 집중하니 조금씩 실천이 늘었다. 벌어져있던 아내와의 관계도 좁혀졌다. 함께하는 육아가 행동으로 이어지려면 부부가 생각을 맞춰야 한다. 같은 생각이 같은 행동을 만들어 낸다. 서로 다른 생각을 확인하고 차이를 줄이려면 이 또한 대화가 답이다.


부부는 다른 사람이다. 다행히 홀로 살아온 기간보다 같이 살아갈 날이 더 많다. 시간은 충분하다. 서로를 알려는 의지만 있다면 무엇이든 함께할 수 있다. 아이를 낳아 키우는 건 두 사람 모두에게 처음 접하는 새로운 세상이다. 너와 내가 생각을 나누고 이어져 있다면 그 어떤 상황도 모두를 위한 옳은 결정을 할 수 있다. 그게 최선이 아닐지라도 함께 내린 선택이라면 괜찮다. 최소한 누군가가 빠져있지 않으므로 원망하고 헐뜯을 일은 없으니. 어쩌면 '함께하는 육아'는 거창한 게 아닐지도 모른다. 오늘부터 옆 사람과 진지한 수다를 좀 떨자.



함께하는 육아를 만드는 책, <아빠 육아 업데이트> 저자 홍석준 

(*원고료는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에게 전액 기부합니다.)





작년 초 [여성가족부]의 연락을 받았습니다. 엄마 아빠 모두 '함께하는 육아'에 대한 이야기를 써달라는 원고 청탁이었습니다. 제가 외쳐왔던 생각에 강력한 편이 생긴 기분이라 날아갈 듯했습니다. <아빠 육아 업데이트>를 썼던 처음의 마음으로 돌아가 오래 구상하고 기획하고 쓰고 고쳐왔습니다. 주제에 걸맞은 의미가 큰 곳에 올라가는 글이니만큼 조율 과정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쉽지 않은 과정을 딛고 총 4편을 연재했습니다. 많은 관심과 응원 부탁드립니다. 세상에 필요하다고 믿는 이야기를 계속하겠습니다. 흔들리지 않고 옳다고 믿는 글을 쓰고 또 쓰겠습니다.


* 아래 여성가족부 블로그 글로 가셔서 '좋아요, 댓글, 공유' 많이 많이 부탁드립니다. 우리의 관심이 세상의 변화를 가져다줄 것을 믿습니다!


[출처] 여성가족부 블로그



믿을 수 없는 순간들






세상에 필요한 변화를 만드는 책

『아빠 육아 업데이트』

※2022 세종도서 교양부문 선정!

교보문고 https://bit.ly/3u91eg1 (해외 배송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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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제가 쓴 책이 나왔습니다. 애만 만들고 아빠인 척하던 제가 변해가는 이야기입니다. 아닌 척 모른 척했지만 저도 그저 엄마가 애를 키우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저 같은 사람이 많아져서 함께하는 육아가 당연해지는 날을 꿈 꿉니다. 책 표지에 적어 둔 것처럼 인세 수익은 모두 필요한 아이들에게 기부합니다. 다른 욕심 없이 오로지 더 많은 이들에게 전해져서 세상이 변하길 바랍니다. 아이가 있거나 아직 없거나 다 컸거나 심지어 없을 예정이어도 읽으면 좋습니다. 엄마 아빠가 함께하는 육아를 아이와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이해해야만 바뀌기 때문입니다. 관심과 사랑 부탁드립니다. 필요한 분들에게 전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 순간을 나눌 수 있어서 기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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