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가족부 기고] 모두가 함께하는 육아 3.
살면서 싫은 게 많다. 직장 상사의 온갖 잔소리, 수다쟁이의 끝없는 험담, 걸어가며 피는 앞사람의 담배 연기. 한없이 늘어놓을 수 있는 가짓수만큼이나 딸린 이유도 많다. 그때그때 제 기분에 따른 변덕 때문에, 알고 싶지 않은 남 이야기에 지쳐서, 맑은 공기 대신 마시는 발암물질을 피하고 싶어서. 싫어하는 명확한 근거를 빼곡하게 적어 낼 수 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반대로 좋아하는 것들엔 왜 그런지 말하기 힘들다. 마음이 끌리고 당기는 게 있지만 정작 좋은 것엔 딱히 이유가 없다. '그냥 좋다'라는 말이 민망하지만 먼저 드는 생각이 그렇다. 나중에야 이러니저러니 좋은 까닭이 따라붙지만 '그냥'이라는 말보단 무게감이 떨어진다. 뒤에 오는 여러 말이 군더더기 같다. 좋은 건 그저 좋은 거다.
뒤늦게 아빠로서 정체성을 찾기 위해 공동 양육자로 지내며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좋아.' 놓쳐왔던 나만의 역할을 수행하며 아이와 아내와 지내는 시간에 대한 소감으로 ‘좋아’ 만큼 적절한 건 없다. 주변에서 질문을 많이 받는다. 도대체 뭐가 그렇게 좋냐고. 여기엔 정말 궁금해하는 호기심과 그래 봤자 별거 있겠어라는 비꼼이 복잡하게 섞여있다. "그냥 다 좋아요!" 반사적으로 나가는 답변에는 주로 "겨우 그거야?"라는 실망이 돌아온다. 아무리 생각해도 좋은 것 밖에 없어서 그런 건데... 점점 지낼수록 좋아만 지는 상황을 마냥 좋다고만 하기에는 어쩐지 아쉬움이 남는다. 나만 좋고 말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이렇게 좋은 마음을 함께 느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고부터 고민이 생겼다. 갈팡질팡 고심하고 있을 누군가에게 내가 경험한 변화를 제대로 전달할 수 있다면? 그래서 그들도 나의 ‘좋아!’라는 외침을 함께 느낄 수 있다면? 우선 막연한 외침보다는 뭐가 좋은지 꼼꼼하게 알려야 한다. 함께하는 육아가 가족 전체에 가져오는 장점을 샅샅이 드러내어 밝힐 필요가 있다.
요즘 자기소개를 할 때 이렇게 한다. "‘아빠 나이’ 만 2세 홍석준입니다." 아이는 만 7세다. 벌어진 5년의 시간은 아빠로 지내지 못해 놓치고 살았던 기간이다. 나의 ‘아빠 나이’는 아내에게만 미루어 두고 빠져있기를 자처했던 아이와의 부족한 관계를 나타낸다. 우리의 모든 어제가 그렇듯 되돌릴 수 없는 과거를 이제야 깨닫고 오늘과 내일은 버려두지 않겠다며 애를 쓰고 있다. 가끔 잃어버린 지난날의 추억을 들여다보면 두드러지는 특징이 있다. 나와 함께 있는 사진 속 아이의 표정이 뚱하다. 어쩌다 같이 있는 아빠가 낯선 모양이다. 영상으로 만나면 더 확실해진다. 자꾸 엄마를 부르며 빠져나가려 한다. 평소엔 안 보이던 내가 괜히 친한 척하는 걸 바로 눈치챈 거다. 하지만 지금은 많이 달라졌다. 2년이라는 아빠와 아이로 붙어 지낸 시간이 우리의 관계를 바꾸었다. 더 이상 함께 있는 걸 불편해하지 않는다. 없으면 찾고, 있으면 좋아한다. 아이와의 편안하고 끈끈한 관계가 아빠로서 얻은 놀라운 장점이다.
누군가와 친해지길 원하면 답은 뻔하다. 같은 공간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면 된다. 수많은 CC(캠퍼스, 컴퍼니 커플)가 지금도 계속 탄생하는 이유다. 오래 자주 보면 정이 든다. 부모와 아이도 다르지 않다. 서로 잘 모르고 친하지 않다면 함께 지낸 경험이 부족해서 그럴 뿐이다. 무조건 오래 붙어있다고 다 좋은 관계로 발전하진 않지만 그 경험이 없다면 가까워지기 어렵다. 충분조건은 아니지만 필요조건이라는 말이다. 특히 세상 모든 게 다 처음이라 새롭고 낯선 아이에게는 적응하고 마음을 열 기간이 꼭 필요하다. 가장 가까운 관계로 이어진 부모도 마찬가지다. 처음 아이와 단둘이 시간을 보낼 땐 많이 어색했다. 정확히는 서로에 대해 아는 게 적었다. 그전엔 늘 엄마라는 완벽한 매개체를 통해 서로 이어져 있어서 부족함을 몰랐다. 직접 마주해보니 빈틈이 보였고 알아야 할 게 많았다. 시행착오를 겪으며 느슨했던 관계를 단단히 조여 갔다. 돌아보니 결국 어른이냐 아이냐를 빼고 나면 여느 인간관계와 같았다. 부대끼며 정성을 쏟을수록 단단하게 이어졌다. 아이가 나에게 정서적으로 기대고 내가 아이에게 사랑을 주는 우리 사이의 진한 경험은 잊을 수 없다.
몰랐다면 굳이 없어도 살았을 감정이다. 실제로 아내에게 맡겨둔 잃어버린 5년 동안 전혀 불편함이 없었으니까. 있어야 할 자리에 서고 보니 알았다. 아빠를 부를 때는 몰랐던 아빠라고 불릴 때의 유일함을. 세상엔 나를 대신할 수 있는 사람이 많다. 나 없으면 안 돌아갈 것 같은 회사도, 나 없인 행복할 수 없을 것 같던 과거의 인연도 사실은 그렇지 않다. 하지만 나는 아이에게 대체될 수 없다. 아이가 아빠라고 부를 사람은 나뿐이다. 엄마가 전부 키우든 기관에서 맡아 키우든 아빠라는 자리는 여전히 내 몫이다. 내가 채우지 못하면 계속 비어있다. 아이와 아빠 사이의 빈 공간을 두지 않는 게 함께하는 육아의 장점이라고 설명하려니 서글프기도 하다. 과거의 나처럼 모르고 지내면 단단한 믿음으로 이어질 수 있는 관계를 평생 놓치고 살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또 하나의 중심축인 옆 사람에게 주목해 보자. 얼마 전 아내와 시답지 않은 일로 말다툼을 하고 나서 깨달은 게 있다. 아무리 결혼을 한 부부라도 함께 하는 시간이 별로 많지 않았다. 주중에는 고작 퇴근 후 몇 시간이고, 주말에도 각종 경조사를 빼고 나면 며칠 없다. 여기서 씻고 자고 먹는 시간을 빼고 나면 정말 남는 게 거의 없다. 서로를 알아갈 시간이 부족하다. 내 휴직으로 마주할 시간이 많아지면서 왜 이렇게 부딪히는 게 많은지 따져보고 내린 결론이다. 그전엔 부딪힐 시간조차 없었던 셈이다. 이제야 삐걱거리며 맞춰가는 과정에 있었다. 무려 결혼 10년 차가 되어서야 비로소. 대부분의 부부는 서로 파악이 덜 된 상태로 허겁지겁 지내기 쉽다. 아직 상대를 잘 모르는 파트너 사이에 완전히 새로운 팀원이 생기면서 상황은 어지러워진다. 손발이 맞지 않는 엄마 아빠 사이에 손발을 쓸 수 없는 귀여운 생명체는 가족 전체를 새로운 갈림길로 이끈다. 바로 부부관계가 좋아지느냐 나빠지느냐로 나뉘는 지점으로.
아이가 태어나면 그야말로 정신이 없다.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걸 신경 쓰고 다 해줘야 한다. 어떻게 이렇게까지 무방비로 나올 수 있나 싶다. 자연스럽게 가족의 중심이 아이로 바뀐다. 육아 선배로서 아이를 우선 챙기는 건 아내다. 아빠에겐 중요한 선택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완전히 함께할 것인가 아니면 적당히 빠져있으면서 보조만 할 것인가. 인생극장의 중요한 결심처럼 여기서부터 부부의 세계는 완전히 달라진다. 눈치 보는 방관자를 5년간 해보니 별로 권하고 싶지 않다. 내 한 몸 잠깐 편한 것 말고는 나아진 게 없었다. 아이와도 아내와도 가까워지지 못했다. 외딴 섬처럼 떨어져서 남의 집 불구경하듯 보는 건 마음이 편치 않았다. 이대로 흘러가게 둘 수 없다는 생각에 늦었지만 선택을 번복했다. 곧 모든 게 변했다.
아내와 나는 애초에 공통점이 적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여느 부부도 같은 점보다는 다른 점이 더 많지 않을지. 종종 둘 사이가 급격히 가까워지는 계기는 관심사가 겹칠 때다. 우리 부부는 내가 육아의 세계로 들어오면서부터 관계가 달라졌다. 우리 아이의 '육아'라는 함께하는 영역을 가지게 되면서, 함께 알아가고 실천하는 경험은 놀라웠다. 서운하고 미안했던 감정은 서로를 향한 믿음으로 변하며 관계를 균형 있게 만들었고 서로를 바라보는 눈길을 따뜻하게 바꾸었다. 어떻게 하면 한 발 빼볼까 고민하던 나의 모습, 그런 나를 보던 그때의 차가운 눈빛은 이제 없다. 처음이라 겪을 수밖에 없었던 수많은 방황을 함께 헤쳐 나가며 우리의 어깨 높이도 같아졌다. 중요한 과제를 해내는 동료나 전우처럼 동등해졌다. 아이가 자라며 발맞춰 걸어온 자국이 길어질수록 관계는 좋아졌다. 가운데 있는 순수한 아이가 "아빠랑 엄마는 어떻게 이렇게 딱 맞는 사람을 만났어?"라고 할 만큼. 우리가 직접 같이 해보면서 얻어낸 진정한 공감과 이해 덕분이다.
지금까지 같이 육아하면 정말 좋다고 수도 없이 말해왔다. 갑자기 딴소리를 해야겠다. 미안하지만 사실 좋아지는 건 없다. 좋아진다는 건 평범함을 기준으로 보다 나아지는 상태다.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는 건 좋아지는 게 아니다. 아이의 아빠로서 아내의 남편으로서 마땅히 있어야 할 위치를 찾아가는 게 당연하다. 아이와 가까워지고 아내와 믿음이 깊어지는 관계가 특별하면 안 된다. 일상처럼 자연스러워야 한다. 결국 함께하는 육아가 가져오는 것은 가족 관계의 '회복'이다. 비어있던 상실감을 채우고 빠져있던 아쉬움을 달래며 정상으로 돌리는 과정일 뿐이다. 좋은 가족 관계는 그 지점에서 시작한다. 사회를 구성하는 가정은 거기서부터 나아질 수 있다. 우리는 더 나은 삶을 원한다. 아이도 어른도 이 사회도 모두. 그러려면 최소한의 노멀(Normal)한 수준을 갖춰야 한다. 이를 위한 중요한 열쇠가 '함께하는 육아'라고 믿는다.
함께하는 육아를 만드는 책, <아빠 육아 업데이트> 저자 홍석준
(*원고료는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에게 전액 기부합니다.)
작년 초 [여성가족부]의 연락을 받았습니다. 엄마 아빠 모두 '함께하는 육아'에 대한 이야기를 써달라는 원고 청탁이었습니다. 제가 외쳐왔던 생각에 강력한 편이 생긴 기분이라 날아갈 듯했습니다. <아빠 육아 업데이트>를 썼던 처음의 마음으로 돌아가 오래 구상하고 기획하고 쓰고 고쳐왔습니다. 주제에 걸맞은 의미가 큰 곳에 올라가는 글이니만큼 조율 과정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쉽지 않은 과정을 딛고 총 4편을 연재했습니다. 많은 관심과 응원 부탁드립니다. 세상에 필요하다고 믿는 이야기를 계속하겠습니다. 흔들리지 않고 옳다고 믿는 글을 쓰고 또 쓰겠습니다.
* 아래 여성가족부 블로그 글로 가셔서 '좋아요, 댓글, 공유' 많이 많이 부탁드립니다. 우리의 관심이 세상의 변화를 가져다줄 것을 믿습니다!
※2022 세종도서 교양부문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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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제가 쓴 책이 나왔습니다. 애만 만들고 아빠인 척하던 제가 변해가는 이야기입니다. 아닌 척 모른 척했지만 저도 그저 엄마가 애를 키우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저 같은 사람이 많아져서 함께하는 육아가 당연해지는 날을 꿈 꿉니다. 책 표지에 적어 둔 것처럼 인세 수익은 모두 필요한 아이들에게 기부합니다. 다른 욕심 없이 오로지 더 많은 이들에게 전해져서 세상이 변하길 바랍니다. 아이가 있거나 아직 없거나 다 컸거나 심지어 없을 예정이어도 읽으면 좋습니다. 엄마 아빠가 함께하는 육아를 아이와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이해해야만 바뀌기 때문입니다. 관심과 사랑 부탁드립니다. 필요한 분들에게 전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 순간을 나눌 수 있어서 기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