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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Joon Apr 14. 2023

축구가 뭐길래

"에이, 축구건 뭐건 네가 알아서 해!"


여유롭고 평화로운 브런치 자리에서 결국 불이 붙었다. 요즘 민감한 소재인 '꼬발슛' 때문에. 다른 말로는 코볼슛, 외래어로는 토킥(toe kick)이라고도 한다. 발끝으로 공을 냅다 찔러서 강하게 차는 슈팅 방식이다. 제대로 정확히 때리기보다는 빠르게 해결해야 하는 순간에 드물게 사용된다. 이 축구 기술이 왜 화두가 되었을까. 축구 입문자인 아들이 기본적인 발등 슈팅을 배우기 위해 어려서부터 버릇이 된 꼬발슛을 자제해야 했다. 발목힘이 강한 다른 친구들처럼 높게 차는 슛을 하고 싶어 했기에 습관이 되어 편하기만 한 기술은 접어두는 게 맞았다. 설득용으로 자주 쓰는 극단적 이분법을 활용했다. 꼬발슛은 무조건 공이 바닥으로 내리깔리니 띄워서 슛하기 위해서는 발등으로 차는 연습을 해야 한다고. 당분간 새로운 슈팅을 익히기 전까지는 절대 쓰지 말라고. 아주 머릿속에서 지우라고 했다. 공이 뜨지 않는다는 말을 철석같이 믿었던 아들은 잘 따라주었다. 내가 꼬발슛으로 공을 훌쩍 띄우기 전까진.


아들의 축구사랑에 지지 않는 열정을 풀기 위해 얼마 전부터 실내 축구, 풋살 모임에 나가고 있다. 한국에서 종종 즐겨오다가 호주에 오면서 한동안 잊고 살았다. 시간도 마음도 여유가 없었으니까. 혹시 모를 미련 때문에 챙겨온 축구화를 몇 년 만에 다시 신었다. 이렇다 저렇다 말이 필요 없이 좋아하는 운동을 같이 하는 순간은 그저 행복이다. 나의 모든 축구 활동이 궁금한 아들을 모임에 데리고 나갔다. 어른의 경기를 즐기며 한순간도 놓치지 않고 눈에 담던 아들. "슛만 하지 말고 기술 좀 써! 패스만 하지 말고 슛 좀 해!" 어쩌라는 건지 모를 잔소리도 가끔 했지만 귀여웠다. 최근 경기 중에 상대편 골문 앞에서 슈팅 자세를 제대로 잡을 시간이 없었으나 빈 곳이 보여 순간적으로 발끝으로 공을 찼다. 아쉽게도 휙 떠서 윗골대를 맞고 튕겨 나왔다. 아들의 눈은 휘둥그레졌고, 그때부터 잔소리와 불만이 시작되었다. "꼬발슛은 공이 절대 안 뜬다며!"


왜 거짓말을 했느냐고 물고 늘어지는 아들에게 천천히 해명했다. 더 나은 기술을 익히기 위해 몸에 익은 기술을 억제하기 위해서였다고. 풋살과 네가 하는 야외 축구는 공도 다르고 환경도 다르다고. 대부분 한 사람의 이기심으로 판명나는 모두 널 위한 거였다는 변명은 통하지 않았다. 점점 날 거짓말쟁이로 몰고 가는 아들에게 다 관두자고 소리를 질렀다. 작년부터 키워오고 주고받은 축구를 사랑하는 관계에 금이 간 순간. 분위기 망쳐서 속상한 아내 파랑의 중재로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푸는 데까지 시간이 꽤나 걸렸다. 나는 나대로 이유가 있었고, 아들은 아들대로 억울한 게 있었다. 결국에는 서로 더 잘해보기 위해 보다 상대를 이해하자며 화해했다. 이렇게 동등하게 적고 보니 어른인 내가 참 못났다. 아무튼 우리에겐 지금 축구가 무척이나 중요한 주제다. 하지만 모든 처음이 그렇듯 시작은 만만치 않았다.




정식으로 축구를 배우고 싶단 아들을 다니던 학원의 이름도 거창한 엘리트 클래스에 넣어 주었다. 공 좀 찬다는 아이들이 모여서 경기력 향상을 위해 기술과 전술을 배우는 과정. 적극적인 친구들이라서 다소 거칠기도 했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데 시간이 필요한 아들은 몇 번 해보더니 이런저런 이유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자기한테 패스를 안 해서 재미없고, 얼굴에 공이 맞은 날은 무서워서 못 하겠고, 막 밀고 팔로 쳐서 하기 싫다고. 본인이 하고 싶다고 해놓고 딴소리하는 아들의 말을 잠자코 들어주면서 조금 더 해보자 격려했다. 자신의 결정임을 아는 녀석은 꿋꿋하게 임했고 횟수가 거듭될수록 조금씩 나아졌다. 딱 하나, 슛이 땅에서 떨어지지 않아서 답답해했는데, 선생님에게 따로 지도를 받아도 어려워했다. 솔직히 나 같으면 뻥뻥 차는 다른 친구들 속에서 신경 쓰이고 주눅 들어서 도망가고 싶었을 것 같다. 아들은 묵묵히 계속 연습했다. 심지어 레슨마치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나는 10번 더 연습해야지 되는 사람이야."라며 인정하고 더 노력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집에 와서는 엄마 파랑의 기발한 아이디어, 간식을 벽에 붙여놓고 맞추는 추가 훈련에 참여했다. 시간과 정성을 들이면 상황은 변하기 마련이다. 공이 점점 땅과 멀어지며 떠올랐다. 


정식 경기 출전도 마음을 먹었다. 같이 배우는 친구들과 팀을 만들어 지역 리그에 참여하는 제안이 있어 혹시나 하고 아들에게 물었다. 실전보다 좋은 경험은 없으니 해보면 좋겠다고 덧붙이며. 의외로 하겠다고 바로 대답했다. 순순한 수락이 무색하게도 첫 경기가 다가올수록 긴장감은 높아졌는데, 팀 코치를 맡은 한 친구의 아빠가 다가와 아들에게 말을 걸며 잘해보자고 인사했다. 수준 높은 레슨에 적응하느라 신경이 쏠려있던 아들은 제대로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대답을 흘렸다. 민망해하는 코치에게 긴장해서 그렇다며 둘러대고는 아이에게 다른 사람이 말을 걸면 눈을 마주치고 말을 해야 한다며 몇 번을 했는지도 모를 똑같은 잔소리를 또 해버리고 말았다. 팀 친구들과 친해지며 아들의 어색한 시기는 금방 지나갔으나 오히려 내게 커다란 압박이 찾아왔다. 평소엔 말없이 조용히 참관만 해왔는데 자식이 같은 팀이 된 공통점 덕분에 자꾸 아빠들이 말을 걸었다. 활달하고 농담을 좋아하는 오지(호주 사람)와의 대화 몇 분이면 기력이 쇠했다. 정점을 찍은 건 팀원 부모가 모인 단체 채팅방으로의 초대. 한글을 쓰는 카톡이 아닌 영어를 쓰는 왓츠앱이었고 난 곧 벙어리가 되어버렸다. 살아있는 진짜 영어 앞에선 까막눈이 따로 없었다.




조금 불편한 나의 어려움은 아들의 성장으로 잊혔다. 주말이면 공을 들고 나가서 일대일 대결, 승부차기를 하며 실력을 갈고닦았다. 눈에 띌 정도로 달라지는 아이의 모습에 계속 놀란다. 각종 기술을 선보이고 붕 뜨는 멋진 슛까지. 겸손하게 운이 좋았다는 아들에게 연습하는 이유는 바로 성공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서라고 강조했다. 축구 수업에서도 꾸준하게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 선생님께도, 지켜보던 다른 아빠에게도 인상적이었다는 칭찬도 받았다. 첫 승부차기에 나서서 처음 몇 번은 마음대로 되지 않다가 마지막 차례에서 멋지게 쏘아 올렸다. 골로 연결되지 않았지만, 그동안의 답답함과 속앓이를 날려버리기 충분한 궤적을 그렸다. 듣기 지겨워할 때까지 칭찬을 해줬다.


축구선수로서 몸과 마음의 준비가 되어가던 중, 첫 리그 경기가 열렸다. 긴장과 흥분으로 새벽부터 깨서 기대를 한껏 했다. 생애 첫 공식 경기에 참가하는 아들을 위한 코치의 배려로 풀타임으로 출전했다. 초반에 몸이 덜 풀리긴 했지만 점점 흐름을 타며 제 몫을 해나갔다. 목소리 우렁찬 아빠들의 응원과 격려에 힘을 얻었을 테다. 두 번째 경기에서는 날아다녔다. 주어진 포지션을 제대로 소화했고, 슈팅도 제법 했다. 경기도 승리했으며 그 주의 선수상을 받는 데 이르렀다. 트로피를 받은 아이의 얼굴은 세상을 가진 것 이상이었다. 그동안 걸어온 길을 봐 왔기에 내게도 큰 감동이었고. 다시 반납할 때까지 축구화 모양의 기념품을 끼고 살았다. 자신감을 채운 녀석은 보다 당당해졌고 친구들과 더 잘 어울렸다. 쑥스러워하던 골 넣은 뒤의 하이 파이브와 포옹도 제법 자연스러워졌다. 녹아들어 가는 광경이 짠했다.





수비수를 선호하는 아들의 이유는 다소 황당하다. 다른 팀원이 제대로 수비를 못하면 본인이 답답해서란다. 길목을 차단하고 공을 빼앗는 기술에 자신 있는 녀석의 허세도 분명 깔려있으리라. 월드컵 경기에 한 번 나가보는 게 꿈이라며 프로축구팀에서 뛰어 보고 싶다고 한다. 나중에 보낼 중학교를 축구팀이 있는 곳을 알아봐야겠다며 파랑과 나는 고민한다. 일주일에 3번 하는 축구를 계속 유지하고 싶어 한다. 왔다 갔다 좀 피곤해서 하루라도 줄여보려다가 더 이상 안 늘어나기만 해도 다행이라는 깨달음을 얻고 후퇴한다. 걷지도 못하던 아기가 뛴다. 너겟 2조각도 겨우 먹더니, 치즈버거를 지나 쿼터파운더를 한 번에 해치운다. 제 몸보다 큰 공을 다루지 못하던 아이가 공과 한 몸처럼 지낸다. 좋아하는 걸 함께 좋아해 주고 지지해 줄 수 있다는 것. 가까이 붙어 살아가는 가족이라는 관계에서 정말 괜찮은 윤활유가 아닐지. 





* 매일 쓰는 진짜 일기도 아니고, 그렇다고 고급 정보가 있지도 않은 아이와 지내면서 겪는 온갖 후회와 반성의 잡생각 뭉탱이 '육아 생존기'를 애독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빠로서 기록하는 글을 쓰고 나면 자주 듣는 말이 있어요. 어떻게 아빠가 이런 육아 일기를 쓸 수 있냐고요. 부럽고 신기하다고요. 정말 그런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전혀 관심 없던 전과 달라진 건 사실입니다. 그 변화의 일대기는 제 책 <아빠 육아 업데이트>에 담겨있습니다. 변화를 원하신다면 권해봅니다. 또 누가 변할지 모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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