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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Joon Mar 07. 2023

겉모습은 바뀌었지만 달라진 게 없는 사이

휴대폰을 쳐다보는 시간을 가급적 줄이려 애쓴다. 아까운 시간을 잡아먹는 녀석이라 피해야 할 대상이다. 쉽게 당하지 않겠다며 꼭 필요할 때만 꺼내 드는데 요즘엔 좀 무기력하다. 꺼진 화면을 켜면 튀어나오는 사진에 눈을 떼지 못해서 그렇다. 얼마 전 소프트웨어 업데이트가 되면서 특정 인물이 포함된 과거를 랜덤하게 보여주는 설정이 가능해졌다. 고민 없이 아들을 골랐더니 줄줄이 추억을 소환하며 한동안 멈추게 만든다. 이게 누구야, 저게 언제지, 그땐 이랬구나, 저땐 정말 아기였네 하면서 한참을 들여다본다. 정신 차리고 잠금을 풀고 나면 뭐 하러 폰을 들었는지 까먹기 일쑤다. 일단 포기하고 멀어졌다가 나중에 떠올라 다시 켜면 또 달라진 새로운 추억에 온 신경을 빼앗기며 반복한다. 


스마트한 기기를 떠나서 현실로 돌아와도 지나버린 시간이 담긴 아이의 물건과 마주친다. 작아진 옷과 신발, 오래된 장난감과 책. 이제는 못 입고 신고, 안 가지고 노는 것 같은데 포기하지 않고 쟁여둔 것. 사진 속의 아기와 어울리며 등장하던 사물이 지금의 커버린 친구와는 그렇게도 어색하다. 커진 바깥의 몸만큼 자란 속의 생각으로 제쳐지는 대상도 있다. 다시 내 손안의 전자 기계로 시선을 옮기면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유아용 앱이 보인다. 틈만 나면 한번 해보고 싶어서 매달리던 유희가 이젠 유치찬란해진 건지 언젠가부터 찾질 않는다. 더 화려하고 자극적인 영상과 게임을 알아버린 탓도 있을 테지만. 마냥 어린아이 같다가도 지나온 흔적이 쌓인 걸 보면 비로소 성장을 실감한다.





방학 내내 못 보다 오랜만에 만난 주변에서 아들을 볼 때마다 컸다고 놀랐다. 겨울을 보내고 와서 얼굴이 하얘진 덕분인지, 정말로 쑥쑥 자라서인지 모르겠지만 옆에 붙어있느라 감이 없는 우리보단 정확하겠지. 폭풍 성장을 겪은 아이는 무려 3학년이 되어 새로운 선생님께 인사를 드렸다. 다 큰 줄로만 알았던 녀석은 여느 때의 처음처럼 눈도 잘 못 마주치고 돌아왔다. 긴장돼서 돌이 되어버렸다는 소감을 듣고 나니 내가 아는 사람이 맞는구나 싶었다. 정식 등교 첫날 아침에는 다리가 갑자기 아파서 못 걷겠다고 하는 걸 보니 확실히 내 아들이었다. 낯선 환경을 마주치면 온몸이 거부 반응을 일으켜서 힘들어하는 나와 꼭 닮은. 시간이란 만능약이 곧 치료해주었는데, 며칠 지나자 나름의 폭탄선언을 했다. "이제 교실 앞까지 안 데려다줘도 돼!" 혼자서 등교하겠다는 야심찬 요구에 하릴없이 끄덕이며 매일 아침 학교 울타리 밖에서 보이지 않는 곳으로 떠나는 아들의 뒷모습에 손을 흔들고 있다.


물어보지 않으면 혼자만의 학교생활을 잘 이야기해주는 스타일은 아닌데, 가끔 툭 튀어나오는 감상이 인상적일 때가 있다. 올해 선생님이 많이 안 혼내서 좋다는 말에 화들짝 놀라, 전에는 안 그랬냐고 물었다. 작년에는 자기가 혼난 건 아니고 친구들이 떠들거나 돌아다니면 자주 제재를 받았다더라. 이번엔 좀 더 자유롭고 유하게 풀어주시는 모양이다. 첫 반장 선거를 치르면서 입후보하지 않은 이유가 그럴싸했다. 반장이 되면 놀기도 모자란 쉬는 시간에 학생 회의에 참석해야 한다고. 그럼 누구에게 표를 주었냐고 하니, 가장 말을 길게 한 친구가 믿을만해 보여서 손을 들었다는 명쾌한 대답. 조금만 다치고 돌아오면 섬세한 친구라 엄살까진 아니어도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었는데, 요즘엔 넘어져서 무릎이 까지는 건 대수롭지 않게 군다. 분명히 학교에서 보고 배우며 자라는 게 따로 있다. 





어릴 적 아이에겐 어제나 내일은 없었다. 당장 눈앞의 순간에만 집중했고 그때만 기억했다. 나 혼자 청승맞게 옛날 일을 이야기해도 공감하지 못했고, 미래의 계획이나 일정은 소귀에 경 읽기와 같았다. 그랬던 친구가 시간의 흐름을 느끼면서 달라졌다. 학교에 가지 않는 여가 시간을 아끼기 시작했다. 일요일 저녁이 되면 종종 탄식을 뱉는다. “소중한 내 주말이 이렇게 빨리 지나가다니!” 물건을 사러 다녀오는 게 많은 시간을 잡아먹는다는 것도 깨달았다. "빵 하나 사 갔고 왔는데 저녁이라니!" 멈추지 않는 시간을 아는 건 긍정적이다. 귀중한 지금을 잘 사용하자는 말이 통하니까. 다만 그동안 따로 꺼내지 않았던 치명적인 과거를 꺼내면서 내 상황은 많이 어려워졌다. 나와 전혀 다른 방식으로 간직하는 아들의 기억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다.


아빠가 자신에게 하루에 딱 한 번 예쁘게 말해준단다. 학교 마치고 데리러 가서 마주칠 때만 오랜만에 만나는 반가움을 담아 기분 좋게 이름을 불러 준다고. 나머지는 모두 자기 이름에 힘이 들어가면서 무섭게 말한다는 고백. 내가 정말 그런가 싶은 표정으로 당황하자 멈추지 않고 덧붙였다. 아가 때는 무슨 잘못이나 실수를  해도 봐주고 기분 안 나쁘게 설명해 줬다는. 학교에 들어가면서 형님이 되었다는 판단으로 이것저것 알려준답시고 특유의 거친 정색으로 표현하던 걸 온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나한테나 말이 좋아 알려주는 거지 남겨오는 도시락부터 인사 예절, 학습 태도 등등 모두 강한 잔소리로 남아있을 뿐이었다. 힘 조절을 잘 못해서 아내나 아들을 쓰다듬거나 만져줄 때 아프게 하는 경우가 자주 있다. 이번엔 아들이 아빠는 목소리 조절도 필요하다고 했다. 혼나는 게 아닌데도 혼나는 것 같다고. 아무것도 모르고 지내던 잘못된 시간을 아이가 낱낱이 챙겨서 돌려줬다.





주 양육자가 되어 그저 아이와 붙어 있으면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여겼다. 이만큼 직접 아이의 성장을 지켜보며 돕는 게 어디냐며, 이 정도면 꽤 괜찮은 아빠로 살고 있다고. 모두 내 생각일 뿐이었고 당사자는 달랐다. 아이가 들려주지 않았다면 평생을 잘한 줄만 알고 살 뻔했다. 그러고 보니 최근엔 내가 예전 같지 않게 놀아준다고 털어놓기도 했었다. 더 어릴 적엔 맨날 붙어서 놀았는데 요즘엔 같이 길게 놀지 않는다고. 충분한 줄 알았건만 아쉬워하는 소리를 들으면 깜짝 놀란다. 모두 내 기준으로 좋은 쪽으로만 기울여 놓았었다. 따끔한 일침 덕분에 놀자는 사인이 들어오면 무조건 멈추고 같이 노는 노선을 타고 있다. 쿵짝이 잘 맞으니 서로 즐겁지만, 나는 나대로 겨우 만들어 놓은 혼자서 노는 습관이 무너질까 봐 조마조마하다. 


커버린 몸과 어울리지 않게 아기 적의 태도를 보면 헷갈린다. 어리광 부리고 귀여움을 발산하며 매력을 풍긴다. 부모의 눈엔 모두 그렇겠지만 굳이 오래된 사진과 비교하지 않으면 여전히 작고 어리기만 하다. 갓난아기 때부터 함께 하던 인형과 이불을 품고 자는 모습을 볼 때면, 아주 가끔 이불에 쉬야를 하고 민망해할 때면 여전히. 어쩌다 오늘은 학교 끝날 때 일찍 데리러 와달라는 특별 부탁을 받으면 더욱. 문득 사진첩을 펼치면 아이를 찍은 사진이 점점 줄어드는 게 느껴진다. 한순간이라도 놓칠까 봐 한 번에 수십장은 기본이던 베이비 시절이 아니라 나도 아이도 열정이 예전 같진 않다. 그럼에도 겉모습만 바뀌었지 우리의 관계는 달라진 게 없다. 사랑하는 사이, 아껴주는 사이, 기분 좋은 사이. 괜히 혼자서 지난 글과 사진을 보며 질질 짤 게 아니고 옆에 있는 아이에게 잘하자. 더 예쁘게 말하고 잘 들어주고 마음 살펴주고. 수많은 후회와 반성에 아이와의 지금이 들어가지 않도록.





* 매일 쓰는 진짜 일기도 아니고, 그렇다고 고급 정보가 있지도 않은 아이와 지내면서 겪는 온갖 후회와 반성의 잡생각 뭉탱이 '육아 생존기'를 애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빠로서 기록하는 글을 쓰고 나면 자주 듣는 말이 있어요. 어떻게 아빠가 이런 육아 일기를 쓸 수 있냐고요. 부럽고 신기하다고요. 정말 그런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전혀 관심 없던 전과 달라진 건 사실입니다. 그 변화의 일대기는 제 책 <아빠 육아 업데이트>에 담겨있습니다. 변화를 원하신다면 권해봅니다. 또 누가 변할지 모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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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제가 쓴 책이 나왔습니다. 애만 만들고 아빠인 척하던 제가 변해가는 이야기입니다. 아닌 척 모른 척했지만 저도 그저 엄마가 애를 키우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저 같은 사람이 많아져서 함께하는 육아가 당연해지는 날을 꿈 꿉니다. 책 표지에 적어 둔 것처럼 인세 수익은 모두 필요한 아이들에게 기부합니다. 다른 욕심 없이 오로지 더 많은 이들에게 전해져서 세상이 변하길 바랍니다. 아이가 있거나 아직 없거나 다 컸거나 심지어 없을 예정이어도 읽으면 좋습니다. 엄마 아빠가 함께하는 육아를 아이와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이해해야만 바뀌기 때문입니다. 관심과 사랑 부탁드립니다. 필요한 분들에게 전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 순간을 나눌 수 있어서 기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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