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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Joon Dec 04. 2023

가장 친한 여자 친구를 소개합니다

[전업 아빠 육아 생존기] 3화

결혼하고 나면 친구 한 번 만나기 어렵다. 알던 친구도 얼굴 보기 어려운 마당에 새로 사귀는 일은 흔치 않다. 이 와중에 새롭게 만난 뒤, 지난 십 년 동안 제일 오래 붙어 지내는 친구가 있다. 그것도 주변에 흔히 차이는 동성도 아닌 이성, ‘여사친’이다. 학창 시절부터 만나던 남자 사람 친구는 생김새나 성격보다는 그저 한 공간에서 시간을 보낸 추억으로 평생 알고 지낸다. 여자 사람 친구의 존재는 그리 단순하게 유지되지 않는다. 나의 취향에 그녀가, 그리고 그녀의 취향에 내가 서로 부합하기 때문에 당겨서 붙들어 놓는다. 내가 어떻게 호감을 주어 통했는지는 알 수 없는 영역이다. 모르니 말할 수도 없다. 반대로 나만이 이야기할 수 있는 건, 그녀가 충분히 나의 이상형이라는 점이다. 어느 정도 파악이 끝났다고 방심하는 순간, 예상 밖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포함해서.


그녀와 나는 큼직한 공통점을 가져서 공감대가 많다. 우선 나이가 같다. 노릇도 어려운 오빠가 아니라 다행이다. 똑같은 시기에 취업하며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유사한 산업 영역에 걸쳐있는 같은 기업 계열사에서 각각 일했다. 덕분에 일 이야기를 하면 쉽게 말이 통한다. 이게 전부면 참 좋겠지만, 다른 점도 만만치 않다. 나는 먹거리를 쫓지 않지만, 그녀는 먹는 데 진심이다. 나는 얇고 길게 집중하지만, 그녀는 굵고 짧게 열중한다. 나는 잠이 적지만, 그녀는 오래 눈을 감고 산다. 사실 오늘 그녀를 꺼내든 건 별로 재미없는 같은 점, 다른 점 찾기를 위해서가 아니다. 내게 진하게 남아있는 그녀라는 사람을 문득 있는 그대로 적어두고 싶었다.


곧바로 떠오르는 표현은 ‘있어 보임’이다. 주위에 그런 이가 한 명씩 있을 테다. 같은 것을 해도 좀 더 그럴듯하게 해내는 사람. 디테일에 뛰어나서일 수도, 애초에 발상이 남다를 수도, 태생이 아우라를 풍겨서 일 수도 있다. 정확한 이유는 잘 모르겠다. 안다면 이미 나도 따라 해서 있어 보이게 살 터이니. 그녀가 작든 크든 어떤 일을 하면 정말 있어 보인다. 한두 번 우연히 그러고 말았다면 이런 말을 꺼내지 않았다. 내가 보아온 오랜 시간 동안 항상 그래왔다. 와닿는 가까운 사례를 들어보겠다. 저렴한 패션 아이템을 그녀가 걸치면 원래의 가격이라 믿기 어렵다. 이를 위해 여러 까다로운 기준을 통과한 덕이다. 간단한 다과를 차려도 먹음직스럽고 제대로 차린 듯하다. 같은 음식을 내가 식탁에 올렸다면 절반의 가치도 채우지 못할 정도로. 이 정도면 무엇을 해도 근사하다는 설명이 전해졌으려나. 둘 사이에 ‘있어 보임’이 필요한 일은 그녀가 꼭 마무리한다.


다음은 비슷한 맥락으로 이어지는 ‘최고를 선택하는 자세’다. 뻔한 이야기가 되지 않게 정반대인 나를 먼저 그려보겠다. 대세에 지장이 없다고 판단하면 빠르게 아무거나 결정한다. 필요한 물건을 살 때도 최소한의 필수 기능을 갖췄다면 멈추고 만족한다. 추가로 시간과 정성을 투여하지 않는다. 더 좋게 만들 수도 있겠지만 원하지 않는다. 한 마디로 노력을 더 들이는 걸 귀찮아한다. 그녀는 완전히 다르다. 그녀의 기준에 걸맞은 걸 끊임없이 찾아 헤맨다. 몇 시간이든, 며칠이든 상관없이. 지나고 나서 나오는 결과는 옳다. 자신이 정한 수준에 맞춘 최선이자 최고의 선택을 해낸다. 내겐 다소 답답하지만, 한편으로는 편하기도 하다. 옆에서 애써주는 이가 따로 있으니. 그녀의 변함없이 놀라운 태도가 우리의 함께한 시간을 보다 낫게 채워왔다. 앞으로도 나는 변하지 않을 테니 그녀도 변하지 않았으면. 


자주 그녀를 '잔머리 대마왕'이라고 부르는데, 어쩜 그리 아이디어가 매번 폭발하는지. 내 경우라면 거기서 거기인 좁은 선택지 안에서 대충 정하고 말았을 테다. 빨리 끝내고 돌아보지 않는 방식을 선호하니. 그녀는 대강을 용납하지 않는다. 머리를 굴리기 시작하면 한정된 시간 안에 온갖 경우의 수와 방법을 고려한다. 밝아진 표정으로 꺼내는 최종 제시안은 언제나 놀랍다. 머리가 있다면 그걸 고를 수밖에 없다. 상대적으로 내가 너무 막사는 것 같아 민망한데, 대부분은 나와 같을 거라 우겨본다. 단지 그녀가 특별하다고 믿고 싶다. 고민거리가 있을 땐 그녀의 상황을 살펴서 적절할 때 요청한다.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있는 그녀라면 생각지 못한 결과를 들려줄 거라 확신하며.


또한 이 친구는 ‘하면 하는 녀석’이다. 안타까운 건 할 때가 많지 않다. 옆에서 하도록 만드는 건 불가능하다. 오히려 청개구리 심보가 튀어나와 상황을 어렵게 만든다. 그렇다고 가만히 내버려두면 스스로 마음먹는 게 하늘의 별 따기다. 집중만 하면 초인이 되지만, 그 순간은 순간이라는 말을 쓰기도 전에 끝날 만큼 짧다. 어찌 되었든 아주 드물지만, 시작만 하면 어떤 일이든 해내고 만다. 아름답게 포장해서 둘러대 보자면 천재과에 가깝다고 해야 할까. 안달이 나는 건 거의 모든 시간이 하지 않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결정적인 상황이 오면 움직인다는 것을 머리로는 기억한다. 진득하니 믿고 있으면 결국 엉덩이를 떼고 만다는 걸 경험으로 안다. 조급하게 태어난 나는 앉았다 일어났다 동동대길 멈추지 못한다. 알지만 눈으로 하는 모습을 볼 때까진 평온하기 쉽지 않다.


여태 줄줄이 늘어놓은 특징은 치명적인 부분까진 아니다. 그녀가 아니더라도 그 정도 매력을 갖춘 이는 여기저기 많다. 그녀와 십 년간 친구였고, 앞으로도 친구일 수 있는 까닭은 따로 있다. 바로 ‘착한 사람’이라서다. 처음에는 몰랐다. 어떤 남자가 여자 친구를 만날 때 마음이 착하다고 덥석 사귀기 시작할까. 나 역시 그녀의 외모가 착해서 끌리게 되었음을 인정한다. 모르던 또 다른 착함이 숨어있는 걸 그때부터 천천히 알게 되었다. 나와 다른 따뜻함이 처음엔 어색하기도 했지만, 보고 배우며 익숙해졌다. 잠깐의 보여주기식이 아닌 꾸준히 착한 심성에 요즘도 놀란다. 


가까이 지내는 나를 진심으로 위한다. 나만 바라보는 나 때문에 상처도 받지만, 그래도 착함을 놓치지 않는다. 곁에서 어울리는 사람을 배려하고 신경을 쓴다. 철철 넘치는 예의는 기본이며 주변을 챙기고 도움 주는 행동이 몸에 배어있다. 전혀 그렇지 못한 난 이해가 어려웠다. 어깨너머로 살펴보아 온 짧지 않은 시간은 날 감화시켰다. 그녀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분명 찬찬히 조금씩 변하고 있다. 날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사람. 그녀 곁에서 기꺼이 더 오래 가깝게 지내고 싶다.


여전히 지독하게 궁금하다. 달라도 너무 다른 우리가 어떤 인연으로 만나 함께하게 되었는지. 그녀의 사정은 모르겠지만, 내겐 전생의 덕이라고 풀이할 수밖에 없다. 흔들리고 위태로운 삶이 이제는 걱정이 되질 않는다. 내 옆에서 나를 옳은 길로 인도할 그녀가 있어서. 길고 긴 인생이란 여행의 동반자로서 지금까지 함께 잘 헤쳐왔다. 앞으로도 웃고 울며 잘 지내보자. 



홍석준 작가의 [전업 아빠 육아 생존기]

"옛날에는 아빠도 육아를 함께하자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었대."라며 마치 여성도 투표할 수 있게 해 달라 주장하던 옛사람처럼 잊히길 바란다. 내 바람이 지금 읽고 있는 당신으로부터 시작되길 바라며 글을 보낸다.

아빠도 함께하는 육아를 만드는 책, 『아빠 육아 업데이트』* 저자 홍석준
* 2022 세종도서 교양부문 선정
(원고료는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에게 전액 기부합니다.)



[전업 아빠 육아 생존기] 3화



<연재 배경>

작년 중순 네이버 연애 결혼 <썸랩>으로부터 원고를 요청받았다. <썸랩>은 네이버와 문화일보의 합작 회사로 네이버의  '연애 결혼' 주제판을 운영했었고, 현재는 연애 결혼과 관련된 컨텐츠를 네이버 내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제공하고 있다. 에디터님께서 우연히 내 책 『아빠 육아 업데이트』를 읽고 내용이 정말 좋아 연재를 부탁한다고 했다. 보내주신 칭찬을 괜히 덧붙이자면 '쉽게 읽히면서도 중심이 잡힌 글'이 참 좋다고 했다. 세상에 필요한 육아하는 아빠 이야기를 들려주며 꼭 같이 일할 수 있기를 바란다는 제안에 감동했다. 이 글은 그렇게 탄생했다. 






세상에 필요한 변화를 만드는 책

『아빠 육아 업데이트』

※2022 세종도서 교양부문 선정!

교보문고 https://bit.ly/3u91eg1 (해외 배송 가능)

예스24 https://bit.ly/3kBYZyT (해외 배송 가능)

알라딘 https://bit.ly/39w8xVt

인터파크 https://bit.ly/2XLYA3T

카톡 선물하기 https://bit.ly/2ZJLF3s (필요한 분이 떠올랐다면 바로 선물해 보세요!)

세상에 제가 쓴 책이 나왔습니다. 애만 만들고 아빠인 척하던 제가 변해가는 이야기입니다. 아닌 척 모른 척했지만 저도 그저 엄마가 애를 키우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저 같은 사람이 많아져서 함께하는 육아가 당연해지는 날을 꿈꿉니다. 책 표지에 적어 둔 것처럼 인세 수익은 모두 필요한 아이들에게 기부합니다. 다른 욕심 없이 오로지 더 많은 이들에게 전해져서 세상이 변하길 바랍니다. 아이가 있거나 아직 없거나 다 컸거나 심지어 없을 예정이어도 읽으면 좋습니다. 엄마 아빠가 함께하는 육아를 아이와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이해해야만 바뀌기 때문입니다. 관심과 사랑 부탁드립니다. 필요한 분들에게 전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 순간을 나눌 수 있어서 기쁩니다.






이 책의 탄생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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