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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Joon Jan 10. 2024

"언제 아빠랑 엄마랑 헤어져?"

[전업 아빠 육아생존기] 4화

"아빠, 나 혼자 했어!"


처음엔 놀랍고 반갑기만 하던 소리였다. 어제는 이것을, 오늘은 저것을 혼자서 했다는. 아이가 직접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지면 몸이 편해진다. 내 손이 닿지 않아도 되는 부분이 늘어나니까. 나의 등장이 필요한 순간이 적어지면 여유가 생긴다. 그러다가도 어설픈 게 보이면 본능적으로 손이 나간다. 뻗은 손으로 마무리해주고 나면 괜히 뿌듯하다. 하나도 빠짐없이 해줘야 할 때는 그렇게나 귀찮더니 이상하다. 매일 하나씩 쌓이는 혼자서도 잘해요 목록이 마냥 기쁘지만은 않다. 오히려 아쉬운 마음에 가깝다. 나 자신의 쓸모가 줄어든 느낌이랄까. 아이가 도움을 요청하면 내 가치가 더 빛나는 것처럼 부풀어 오른다. 쓸모가 사라졌던 물건이 어떤 이의 부름을 받듯이.


하루 세 번, 나와 아들이 나누는 우리만의 신호가 있다. 아들이 이를 닦을 때 외치며 주고받는다. "나? 아빠?" 양치질 마무리를 누가 할 거냐고 묻는 거다. 서툴게 닦던 초기에는 늘 내가 꼼꼼하게 구석구석 챙겨서 닦였다. 나중엔 혼자서 해내도록 가끔 기회를 주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내가 하면 아들로서는 강력하게 붙들려야 하니 혼자 하는 걸 선호한다. 아직 몰래 대충 닦고 끝내는 일은 없다. 그러면 어차피 다시 닦아야 하는 걸 아니까. 혹시 조금이나마 더 편하게 끝낼 수 있는지 기대 반 호기심 반으로 묻는 셈이다. 하루에 한두 번은 혼자서 끝내게 해준다. 그러면 엄청나게 좋아하며 신속하게 일을 마친다. 아직까진 내가 돕는 부분으로 남겨는 두었지만, 스스로 하길 바라는 아이를 보면 언젠가 이것도 놓아야 하는 영역임을 하릴없이 인정한다.


자라면서 제 몸 챙기는 것 말고도 할 수 있는 게 늘어난다. 몸이 커지면서 마음도 커지는 게 보인다. 어린 아기로만 여기던 녀석이 예상을 깰 때면 그렇다. 한 번은 학교가 평소보다 일찍 끝났다. 매번 하교 시간에 맞춰 교실 밖에서 기다리는데, 아이들이 우르르 먼저 나와서 놀라며 허겁지겁 아들 반으로 달려갔다. 다른 아이들처럼 아들도 밖에 나와 있었는데 울상이 아니었다. 당연히 당황한 얼굴로 나를 찾아 헤매고 있을 줄 알았건만. 헐레벌떡 다가가는 내게 웃으며 아이가 말했다. "나 멀리서 아빠가 들어오는 거 봤어~" 얼마 전까지만 해도 교실 문을 나서자마자 내가 보이지 않으면 울먹이던 녀석인데. 부쩍 자랐다는 걸 확인한 순간이었다. 어색한 깨달음의 장면과 점점 자주 마주친다. 


조르면 사주던 시기를 지나 용돈을 직접 모아 장난감을 장만한다. 서로 약속한 조건을 만족시키면 칭찬 코인이라는 명목으로 용돈을 받아 간다. 쓰는 대상은 자주 바뀌지만 한때는 '포켓몬 뽑기'에 열중했었다. 무분별한 도박이 되지 않도록 횟수는 정해놓고서. 옆에서 보기엔 불확실한 뽑기보다는 조금 참고 모아서 나은 걸 사면 좋겠다는 마음도 있다. 야금야금 쓰면서 느끼는 행복을 좋아하는 아들을 존중하며 내버려 둔다. 어렵게 모은 만큼 원하는 대로 쓰면서 스스로 깨우치도록. 처음으로 돈 모아 쓰는 재미를 느끼는 아들을 보는 재미로 지낸다.


차근차근 배워가는 한글과 음악도 잘 써먹는다. 교회 아동부에서 배워온 노래가 마음에 들었는지 요즘 자주 흥얼거린다. 나중엔 아예 악보를 받아와서 보고 읽으면서 노래를 불렀다. 자기 전까지 부르더니 갑자기 양가 할아버지, 할머니께 들려 드리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간밤에 영상 콘서트가 열렸다. 꼼꼼하게 가사와 음표에 맞춰가며 집중해서 입술을 움직여 이어가는 아들의 모습에 많이 놀랐다. 아이를 보면 어릴 적 나를 자주 떠올린다. 난 저 시절에 저 정도로 무언가를 스스로 즐긴 적이 있었나 싶다. 열중하는 광경을 신기하게 바라보는 이유다.


자신만의 통찰로 던지는 한 마디도 예사롭지 않다. 궁금한 게 많은 아들은 우리 부부에게 많은 것을 묻는다. 시간의 흐름을 느끼는 속도의 차이에 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나이가 들면 좀 더 빠르고, 즐거운 일을 할 땐 시간 가는 줄 모른다는 경험을 나누어 주었다. 눈을 동그랗게 뜬 아들이 제대로 알아들었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아하! 그래서 아빠가 내가 놀 때 몇 분 안 되었는데도 두 시간 동안 놀았다고 하는 거구나!" 날카롭게 간파하는 녀석을 느낄 때마다 정해진 그때가 다가오는 기분이다. 두 발로 서서 부모의 보살핌 없이 살아갈 능력을 갖춘 시기. 어린아이인 적이 없었던 것처럼 잊고 살아가는 나같이.


미리 그려둔 이별을 덤덤하게 준비하다가도 흔들린다. 어쩌다가 아이가 날 간절히 원하는 순간이 찾아올 때 더욱. 언제 눈물을 흘렸냐는 듯이 밝은 표정으로 한동안 학교로 떠났다. 부슬비가 내리던 어느 날 아침, 어쩐지 그날은 아들이 나와 떨어지기 힘들어했다. 내가 모르는 다른 이유가 있나 싶어 가만히 안고 물었다. "비가 와서 안 울고 헤어지기가 힘들어." 감성이 풍부한 아들에겐 어려운 순간이었던 모양이다. 조용히 선생님이 오는 시간까지 함께 있어 줬다. 오랜만에 내 품에 안긴 아이를 느끼는 시간이 나쁘지 않았다. 아직은 내 손길이 필요하다는 자각은 묘한 기쁨을 남긴다. 내 품을 완전히 떠나지 않았다는 즐거운 확신 때문에.


내일의 헤어짐은 머리가 커진 아들도 눈치챈다. 여느 때처럼 갑자기 훅 치고 들어온 질문. "나는 언제 아빠랑 엄마랑 헤어져?" 무슨 말인지 물어보니, 나와 아내가 할아버지 할머니와 헤어진 시기를 빗대 물어본 것이다. 난 고등학교 기숙사에 들어가면서, 아내는 나와 결혼하면서라고 알려주었다. 혹시 아들이 마음먹은 시기가 있나 싶어 물어보니, "난 헤어지면 무서울 것 같아서 계속 같이 있을 거야!"라고 했다. 어린아이다운 대답에 안도했다. 내심 바로 떠난다고 하면 어쩌나 불안했다. 돌아보면 나도 어릴 적에 부모님과 따로 지내는 상상을 했었다. 지금 따로 사는 내 모습은 너무도 자연스럽지만, 그땐 상상도 만만치 않을 정도로 이상했다. 우리와의 이별이 궁금한 아들을 보면 벌어지지도 않은 그때가 떠올라 괜스레 벌써 아쉬워진다.


육아는 결국 아이의 독립을 준비시키는 과정이라는 씁쓸한 말. 동의하지 않을 도리가 없어 슬프다. 평생 끼고 살 재간도 없고, 그럴 의지도 없으면서 종종 허전해진다. 꼭 붙어 지내는 지금을 지나 떨어져 지내는 시간은 어떨까. 옆에서 지켜보고 도와주던 빼곡한 관계는 느슨하게 변해가겠지. 내가 모르는 일이 아는 일보다 많아질 거고. 내게 기대기보다는 스스로 풀어내고 이겨내는 상황이 늘어날 테다. 계속 지금같이 아이와 어른의 관계를 유지할 수 없다는 걸 안다. 붙잡을 수 없는 아쉬움 대신 잡을 수 있는 지금을 잡아야겠다. 바로 여기 우리가 함께하는 순간에 충실하도록. 후회로 남길 못난 표현을 줄이고, 사랑으로 바라보며 한 번 더 안아주는 아빠로 살자.



홍석준 작가의 [전업 아빠 육아 생존기]

"옛날에는 아빠도 육아를 함께하자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었대."라며 마치 여성도 투표할 수 있게 해 달라 주장하던 옛사람처럼 잊히길 바란다. 내 바람이 지금 읽고 있는 당신으로부터 시작되길 바라며 글을 보낸다.

아빠도 함께하는 육아를 만드는 책, 『아빠 육아 업데이트』* 저자 홍석준
* 2022 세종도서 교양부문 선정
(원고료는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에게 전액 기부합니다.)



[전업 아빠 육아 생존기] 4화



<연재 배경>

네이버 연애 결혼 <썸랩>으로부터 원고를 요청받았다. <썸랩>은 네이버와 문화일보의 합작 회사로 네이버의  '연애 결혼' 주제판을 운영했었고, 현재는 연애 결혼과 관련된 컨텐츠를 네이버 내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제공하고 있다. 에디터님께서 우연히 내 책 『아빠 육아 업데이트』를 읽고 내용이 정말 좋아 연재를 부탁한다고 했다. 보내주신 칭찬을 괜히 덧붙이자면 '쉽게 읽히면서도 중심이 잡힌 글'이 참 좋다고 했다. 세상에 필요한 육아하는 아빠 이야기를 들려주며 꼭 같이 일할 수 있기를 바란다는 제안에 감동했다. 이 글은 그렇게 탄생했다. 






세상에 필요한 변화를 만드는 책

『아빠 육아 업데이트』

※2022 세종도서 교양부문 선정!

교보문고 https://bit.ly/3u91eg1 (해외 배송 가능)

예스24 https://bit.ly/3kBYZyT (해외 배송 가능)

알라딘 https://bit.ly/39w8xVt

인터파크 https://bit.ly/2XLYA3T

카톡 선물하기 https://bit.ly/2ZJLF3s (필요한 분이 떠올랐다면 바로 선물해 보세요!)

세상에 제가 쓴 책이 나왔습니다. 애만 만들고 아빠인 척하던 제가 변해가는 이야기입니다. 아닌 척 모른 척했지만 저도 그저 엄마가 애를 키우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저 같은 사람이 많아져서 함께하는 육아가 당연해지는 날을 꿈꿉니다. 책 표지에 적어 둔 것처럼 인세 수익은 모두 필요한 아이들에게 기부합니다. 다른 욕심 없이 오로지 더 많은 이들에게 전해져서 세상이 변하길 바랍니다. 아이가 있거나 아직 없거나 다 컸거나 심지어 없을 예정이어도 읽으면 좋습니다. 엄마 아빠가 함께하는 육아를 아이와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이해해야만 바뀌기 때문입니다. 관심과 사랑 부탁드립니다. 필요한 분들에게 전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 순간을 나눌 수 있어서 기쁩니다.






이 책의 탄생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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