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업 아빠 육아생존기] 6화
혼자 살아갈 때는 자신의 성격이나 취향에 덜 민감했다. 정확한 파악이 어렵기도 하고, 혹시 알아도 어쩔 도리가 없어서다. 사람은 제대로 알기도, 또 바뀌기도 쉽지 않은 존재란 걸 살아본 날이 늘수록 강하게 느낀다. 결정적으로 나를 향한 집중을 놓았던 건 정작 내겐 별 영향이 없기 때문이었다. 나로 인해 영향을 받는 건 내가 아닌 주변의 남이었다. 이러다 보니 어느 순간 변화할 결심보다는 마음을 놓는 편안함을 택했다. 내가 도대체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마음 가는 대로 살아도 된다고 여기면서. 내가 원래 이런데 어쩔 거냐며.
돌아보면 어린 시절엔 자주 혼자 웃고 울었다. 갑자기 우스운 기억이나 생각이 떠오르면 꽤 오랫동안 웃느라 혼났다. 때로는 일어나지 않을 법한 슬픈 일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머릿속으로 찾아와 눈물을 뚝뚝 흘리기도 했다. 온몸을 휘감는 감정을 감추지 않던 시기는 길지 않았다. 더 이상 키가 크지 않으면서 웃음과 울음은 더 이상 자주 나를 찾지 않았다. 이유를 찾아보면 잡다하게 늘어놓을 수 있겠지만 확 줄이면 먹고살기 바빠서겠다. 감정을 보이고 느낄 여유가 사라져갔다. 나에게 관대한 난 그저 변화무쌍한 흐름으로 여기고 별 손을 쓰지 않았다. 못했다는 게 더 맞는 표현일지 모르겠지만.
급격한 변화를 눈치챈 건 역시 남 때문이었다. 남이라고 딱 잘라 말하기엔 좀 아쉬운 사이라고 해야 할까. 내게도 절반의 지분이 있는 피를 나눈 관계, 바로 아이 덕분이다. 어린 친구는 요즘 감성이 부쩍 발달하는 시기다. 누구처럼 어른인 척하며 이성과 합리로 무장해서 판단하지 않는다. 그때그때 발견하는 기분과 느낌으로 본인의 마음 상태가 결정된다. 그렇지 않으려고 오히려 정신을 바짝 차리는 난 당황스럽다. 객관과 논리를 놓치지 않고 지내려는 처지라서 아이가 어색하기까지 하다. 나와는 거리가 먼 자식을 보면서 어디서 튀어나왔을까 싶은 적이 많다. 생경한 경험이 반복되다 결국엔 당연한 원인을 화들짝 깨닫고 말았다.
어느 날 아들이 잠자기 전에 눈물을 글썽이며 품에 안겼다. 한참을 고개를 파묻고 울더니 말했다. "헤어진 인형들이 보고 싶어." 갈수록 쌓여가서 감당할 수 없던 인형을 크게 한 번 정리한 적이 있었다. 함께 하나씩 천천히 골라가며 인사를 나누었지만, 문득 다시 떠올랐던 모양이다. 솔직한 마음을 말해줘서 고맙다며 오래 안아줬다. 다른 날엔 이를 열심히 닦은 뒤 달려와서 말했다. "아빠, 나 뭐 반짝이는 거 있어?" 무슨 소린가 싶어 빤히 쳐다보다 이가 보이게 활짝 웃는 아들을 보곤 깨달았다. "이가 보석처럼 반짝여! 열심히 잘 닦았네!" 하얀 치아보다 더 환하게 웃으며 기뻐했다. 봄을 맞이하여 겨우내 덮고 자던 침구류를 모두 빨고 새것으로 바꾸고 있었다. 갑자기 아들이 놀다 말고 와서는 말했다. "아빠, 맨날 혼자 하니까 오늘은 내가 꼭 도와줄게!" 놀라서 아내에게 물어보니 따로 옆구리를 찌른 적이 없다 했다. 순수하게 스스로 생각해서 도운 것이었다. 내 옆에서 본인 베갯잇을 끝까지 낑낑대며 처음으로 씌우기에 성공했다.
나도 한때는 그랬었다. 내 어머니와 아버지의 입을 통해 들었던 그때의 나는 감성이 넘쳤다. 지금의 아들처럼 느낀 바를 그대로 표현하고, 대놓고 자랑도 하고, 필요한 것 같으면 먼저 도왔다. 말과 행동을 하기 전에 머리로 재느라 버벅대는 지금과는 달랐다. 뜨거운 그때를 잊고 차가운 지금에 만족하던 나는 몰랐었다. 지나간 나를 닮은 내 아이를 보며 잊었던 나를 보고 있다. 이제야 나라는 사람의 성향에 관심이 높아졌다. 한때는 나만 보며 살면서 남이 무슨 상관이냐며 지냈는데 이제는 마냥 그렇지 못한다. 옆에서 날 보고 배울 새로운 생명체는 그냥 넘길 수 없다. 사랑스럽고 따뜻한 아들이 날카롭고 차가운 사람으로 변하는 장면을 내가 만들고 싶지 않다. 빼다 박는 순간을 마주하면서 상황은 심각해졌다.
아들이 갑자기 축구를 하고 싶다고 했다. 관심이 전혀 없던 녀석이 무슨 바람이 불어서일까. 태어나 처음이었기에 많이 놀랐다. 이미 해가 기운 뒤여서 우선 다음으로 미루었다. 다음날 해가 뜨자마자 잊지 않고 다시 하자고 졸랐다. 놀람 반 기쁨 반으로 둘이서 땀을 뻘뻘 흘리며 공을 가지고 놀았다. 난 평생 오로지 축구만 좋아했다. 유일한 내 사랑이 아들에게 알게 모르게 전해졌던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TV로 축구 중계를 볼 때 지나가듯 했던 아이의 말이 기억난다. "이거 아빠 좋아하는 거네." 나도 아버지에게 영향을 받은 기억이 있다. 학교 운동장에서 함께 공을 차며 놀던 기억이 몇 안 되는 유년의 선명한 추억이다. 정말로 축구 사랑이 피를 타고 전해지는 거라면 부모는 자식에게 커다란 영향을 주고 있는 게 맞다.
그 후로 아이와 축구를 함께 즐기면서 서로 닮아가는 걸 체감하고 있다. 같이 좋아하는 걸 자식에게 알려주는 놀라운 시간은 표현이 어려울 정도다. 공을 멀리 높게 차는 방법을 물어본 뒤, 내 말과 움직임에 숨죽이며 집중하는 아이의 눈동자는 무엇보다 짜릿했다. 내 것을 전해주는 시간이 쌓여가면서 닮는다는 책임의 무게도 늘어갔다. 좋은 것 나쁜 것 구분 없이 어린 시절을 보내는 아이는 부모의 모든 걸 흡수한다. 뒤늦게 나를 돌아보며 바꿀 건 바꿔야겠다는 어려운 길로 발길을 돌리게 된 이유다. 피하고 싶고 버리고 싶은 자신을 아이에게서 목격하면 더욱 간절해진다.
중요한 일정이 잡히면 아들은 전날 밤에 잠을 설친다. 흥분되고 걱정되면 신경 쓰느라 몸이 남아나지 않는 나와 판박이다. 붉은 눈으로 졸음 가득 아침을 맞이하는 녀석을 보면 안쓰럽다. 온종일 시험을 보고 온 날이면 살이 쭉쭉 빠지던 내가 그대로 들어있었다. 물려주고 싶지 않은 민감성에 애가 타는 까닭이다. 행여 정이 붙을까 날을 세우고 사는 나를 돌아보게 된다. 아이가 이런 나 때문에 온도가 가라앉아 미지근해지지 않을는지 걱정된다. 나와 다른 사람으로 살아갈 아들을 정해진 무언가로 만들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다만 나도 아이도 바라지 않는 나의 못난 점을 이어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놓아왔던 날 마주하며 빼내고 싶은 걸 찾아보는 요즘이다. 너무 낮지 않은 적정한 온도로 맞춰가며 데우려는 노력도 기울인다. 아들의 뜨끈한 감성이 날 울렁이게 만들듯 세상에도 가득 뿌려줄 수 있는 사람으로 자랄 수 있도록.
홍석준 작가의 [전업 아빠 육아 생존기]
"옛날에는 아빠도 육아를 함께하자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었대."라며 마치 여성도 투표할 수 있게 해 달라 주장하던 옛사람처럼 잊히길 바란다. 내 바람이 지금 읽고 있는 당신으로부터 시작되길 바라며 글을 보낸다.
아빠도 함께하는 육아를 만드는 책, 『아빠 육아 업데이트』* 저자 홍석준
* 2022 세종도서 교양부문 선정
(원고료는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에게 전액 기부합니다.)
네이버 연애 결혼 <썸랩>으로부터 원고를 요청받았다. <썸랩>은 네이버와 문화일보의 합작 회사로 네이버의 '연애 결혼' 주제판을 운영했었고, 현재는 연애 결혼과 관련된 컨텐츠를 네이버 내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제공하고 있다. 에디터님께서 우연히 내 책 『아빠 육아 업데이트』를 읽고 내용이 정말 좋아 연재를 부탁한다고 했다. 보내주신 칭찬을 괜히 덧붙이자면 '쉽게 읽히면서도 중심이 잡힌 글'이 참 좋다고 했다. 세상에 필요한 육아하는 아빠 이야기를 들려주며 꼭 같이 일할 수 있기를 바란다는 제안에 감동했다. 이 글은 그렇게 탄생했다.
※2022 세종도서 교양부문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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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제가 쓴 책이 나왔습니다. 애만 만들고 아빠인 척하던 제가 변해가는 이야기입니다. 아닌 척 모른 척했지만 저도 그저 엄마가 애를 키우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저 같은 사람이 많아져서 함께하는 육아가 당연해지는 날을 꿈꿉니다. 책 표지에 적어 둔 것처럼 인세 수익은 모두 필요한 아이들에게 기부합니다. 다른 욕심 없이 오로지 더 많은 이들에게 전해져서 세상이 변하길 바랍니다. 아이가 있거나 아직 없거나 다 컸거나 심지어 없을 예정이어도 읽으면 좋습니다. 엄마 아빠가 함께하는 육아를 아이와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이해해야만 바뀌기 때문입니다. 관심과 사랑 부탁드립니다. 필요한 분들에게 전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 순간을 나눌 수 있어서 기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