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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Joon Mar 13. 2024

다시 오지 않을 나의 어제와 너의 오늘, 우리의 지금

[전업 아빠 육아생존기] 8화

아들이 아팠다. 몸도 마음도 몽땅. 고열로 펄펄, 콧물은 줄줄. 가슴은 답답, 정신은 막막. 병원에 간다고 해도 아무 소용이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불치병이나 원인 모를 병은 아니었다. 오히려 이미 병의 원인과 처방을 잘 알고 있었다. 특별한 묘약이나 수술은 필요 없었다. 필요한 건 단지 시간이었다. 불안해하는 그 순간을 지나쳐 편안해지는 때가 오면 저절로 낫는 증상을 앓고 있었다. 부모로서 아이에게 해 줄 수 있는 게 딱히 없었다.


초등학교 1학년이 되는 바로 직전의 상황이다. 하룻밤만 자고 나면 학교로 떠나는 그날까지 계속. 새로운 환경을 앞두고 아들은 온몸과 마음으로 준비를 격하고 치르고 있었다. 다행히 나도 똑같다. 새로운 시작을 앞두면 긴장과 두려움이 크다. 그래서 확실하게 이해한다. 학교에 가기 며칠 전부터 날짜를 세면서 심각한 얼굴로 말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아빠, 나 마음이 답답해. 1학년으로 학교 가는 게 걱정돼." 어떤 심정인지 알아서 아빠도 그렇다며 위로했다. 내가 살며 겪은 수많은 시작과 그때마다 겪은 떨림의 고통을 솔직하게 들려줬다. 눈앞의 커다란 어른이 눈물까지 흘리며 힘들어했다는 이야기를 신기해하며 열심히 들었다. 정말 아빠도 처음에 그랬냐며 확인하고는 조금 안정을 찾았다. 나의 고백이 도움이 되었는지 상태는 조금씩 나아졌다. 불안함을 완전히 떨친 못했지만 스스로 이겨내는 과정을 통과해갔다.


결국 시간이 해결해줬다. 새로운 공간에서 담임 선생님을 만나고 친구들과 지내는 시간이 쌓일수록 아들의 걱정은 씻은 듯 나았다. 따로 묻진 않았지만 아마도 가기 전까지의 무서워했던 걸 떠올리지 못하는 것 같았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익숙한 지금을 즐기며 밝게 지내는 아들이 보기 좋았다. 삶의 한 단계를 넘어 본 아이에게 또렷하게 남은 건 할 수 있다는 용기였다. 하기 전엔 커 보이는 것도 해보면 별것 아니라고. 새로움이 가득할 앞길에도 스스로 터득한 진리를 키워나가며 살아갈 테다. 한 걸음을 뗀 아들이 대견했다. 작은 친구의 지금과 미래에 뜨겁게 응원을 보낸다.


어엿한 초등학생이 된 아들을 데리러 갔던 어느 하교 시간. 여느 때처럼 교실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아들 동네 친구가 내게 와서 아들을 찾았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하니 아들에게 할 이야기가 있다며 같이 기다렸다. 곧 마치고 나온 아들에게 친구가 먼저 달려 나갔다. 둘이 한참을 꽁냥거리더니 헤어졌다. 아들이 내게 다가오자 나눈 내용이 궁금해서 물었더니 곧장 털어놓았다. "쉬는 시간에 어디서 만나 같이 놀지 약속한 거야. 요즘 함께 포켓몬 놀이하거든." 귀여운 비밀 이야기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다음 날 함께 놀기 위해 미리 장소를 정하려고 기다렸던 셈이다. 문득 내가 어릴 적이 생각났다. 지금처럼 휴대전화가 없던 그 시절에는 직접 친구네 집에 가서 불러야 했다. 백이면 백 친구를 만날 수 있었고, 혹시 아니어도 실망하진 않았다. 그것부터가 놀이의 일부였기 때문에 기대를 안고 다음 친구한테 놀러 갔으니까. 아이의 놀이와 어울림을 보면서 마치 그때로 되돌아간 듯 상쾌했다.


전해 듣는 아들의 학교생활은 나의 그때와 크게 달라진 게 없다. 특히 장난치는 건 예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했다. 가끔 내게 '뽕'하고 기습적인 방귀를 뀔 때가 있다. 그러고 나면 민망해하긴커녕 열심히 손으로 바람을 만들어 내 쪽으로 향기를 날린다. 언제 장난인데 세월이 가도 변함이 없었다. 같은 반 장난꾸러기 친구의 행각도 놀라울 정도였다. 한 번은 그 친구가 급하게 화장실을 가겠다고 손을 들고 나가서 한참을 돌아오지 않았다고 한다. 걱정하던 선생님께서 교실 밖으로 찾아 나섰는데 놀이터에서 해맑게 놀고 있는 녀석을 발견했다고. 내가 다니던 시절에도 양호실, 도서실, 화장실 등에 간다고 둘러대고는 사라진 녀석이 꽤 많았다. 요 나이쯤 되면 나오는 엉뚱함과 해맑음은 시간이 흘러도 비슷했다. 아들 덕분에 괜히 하루하루를 장난으로 채우던 그때가 부쩍 그리워진다.


집에서 배울 수 없던 점도 밖에서 알아간다. 학교에서 선행을 베풀면 칭찬 티켓을 나눠주는 활동이 있었다고 했다. 아들은 친구가 어려움에 부닥치면 다가가서 도우면서 모으고 있다고 전했다. 다친 친구가 있으면 양호실을 데려다주고, 힘든 문제가 있으면 함께 풀면서. 어떤 친구는 꾀를 부려서 쉽게 받아 간다며 속상해했다. 선생님의 신발과 옷을 멋지다 말하거나, 최고의 선생님이라고 부르며 편하게 가져간다고. 선행에는 행동 말고도 칭찬하기도 포함되어서 그렇다며. 얄미워하는 아이의 표정에 웃음이 나왔다. 어쨌든 상대가 기분 좋은 말도 의미 있는 착한 일이라고 알려줬다. 지금처럼 직접 몸으로 도우면서 듣기 좋은 말까지 더하면 더 빨리 모을 수 있을 거라고 제안했다. 고개를 끄덕였으니 도움이 되었길 바라며.


나는 초등학교 때 정확히 무엇을 배웠고 어떤 마음을 만들어 갔는지 모른다. 그냥 지금의 이 모든 것이 원래부터 그랬던 것처럼 여겨질 뿐이다. 자라던 시절의 기억이 차곡차곡 담겨 있지 않아 온전치 않다. 아들이 나아가는 모습을 보며 나의 기억을 더듬어보는 게 상당히 즐겁다. 말 그대로 몸과 마음이 쑥쑥 자라는 아들을 지켜보는 일은 신비로움이나 경이로움 그 이상이다. 한 사람이 커가고 배워가는 것을 바로 현장에서 목격하는 자리. 그게 부모의 위치란 걸 알아간다. 굉장함을 즐기는 만큼 말로 할 수 없을 정도의 책임과 부담이 따르긴 하지만. 이렇게 요즘 아들과 같이 초등학교에 다니는 기분으로 지낸다. 아들은 지금 이 시절에서, 나는 그때 그 시절에서.


벌써 아쉽긴 하다. 함께 붙어서 지내는 이 기간이 영원하지는 않을 거라서. 이리저리 지지고 볶는 시간이 가끔 힘겹기도 하지만 정해진 헤어짐을 떠올리며 집중한다. 내 품을 떠나면 나대로 혼자의 여유를 지금보다 더 많이 가질 테다. 그때도 물론 함께할 수 있겠지만 분명히 다를 것이다. 지금 함께하는 시간은 다음에 함께하는 시간과는 차이가 있을 테니. 멈추지 않고 아이는 무럭무럭 자란다. 아쉽게도 그만큼 부모는 늙어간다. 함께 지내는 지금의 귀중함을 잊지 않기 위해 아무리 수없이 강조해도 부족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주 까먹기 때문이다. 이 순간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으면 우리에게 남는 건 아무것도 없는데 말이다.



홍석준 작가의 [전업 아빠 육아 생존기]

"옛날에는 아빠도 육아를 함께하자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었대."라며 마치 여성도 투표할 수 있게 해 달라 주장하던 옛사람처럼 잊히길 바란다. 내 바람이 지금 읽고 있는 당신으로부터 시작되길 바라며 글을 보낸다.

아빠도 함께하는 육아를 만드는 책, 『아빠 육아 업데이트』* 저자 홍석준
* 2022 세종도서 교양부문 선정
(원고료는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에게 전액 기부합니다.)



[전업 아빠 육아 생존기] 8화



<연재 배경>

네이버 연애 결혼 <썸랩>으로부터 원고를 요청받았다. <썸랩>은 네이버와 문화일보의 합작 회사로 네이버의  '연애 결혼' 주제판을 운영했었고, 현재는 연애 결혼과 관련된 컨텐츠를 네이버 내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제공하고 있다. 에디터님께서 우연히 내 책 『아빠 육아 업데이트』를 읽고 내용이 정말 좋아 연재를 부탁한다고 했다. 보내주신 칭찬을 괜히 덧붙이자면 '쉽게 읽히면서도 중심이 잡힌 글'이 참 좋다고 했다. 세상에 필요한 육아하는 아빠 이야기를 들려주며 꼭 같이 일할 수 있기를 바란다는 제안에 감동했다. 이 글은 그렇게 탄생했다. 






세상에 필요한 변화를 만드는 책

『아빠 육아 업데이트』

※2022 세종도서 교양부문 선정!

교보문고 https://bit.ly/3u91eg1 (해외 배송 가능)

예스24 https://bit.ly/3kBYZyT (해외 배송 가능)

알라딘 https://bit.ly/39w8xVt

인터파크 https://bit.ly/2XLYA3T

카톡 선물하기 https://bit.ly/2ZJLF3s (필요한 분이 떠올랐다면 바로 선물해 보세요!)

세상에 제가 쓴 책이 나왔습니다. 애만 만들고 아빠인 척하던 제가 변해가는 이야기입니다. 아닌 척 모른 척했지만 저도 그저 엄마가 애를 키우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저 같은 사람이 많아져서 함께하는 육아가 당연해지는 날을 꿈꿉니다. 책 표지에 적어 둔 것처럼 인세 수익은 모두 필요한 아이들에게 기부합니다. 다른 욕심 없이 오로지 더 많은 이들에게 전해져서 세상이 변하길 바랍니다. 아이가 있거나 아직 없거나 다 컸거나 심지어 없을 예정이어도 읽으면 좋습니다. 엄마 아빠가 함께하는 육아를 아이와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이해해야만 바뀌기 때문입니다. 관심과 사랑 부탁드립니다. 필요한 분들에게 전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 순간을 나눌 수 있어서 기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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