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신을 떠나보내다
9-10살즘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일 년에 두세 번 정도 방문하던 대구 외사촌 형이 살고 있는 집에 가면 당시 유행이던 바람의 검심, 슬램덩크, 럭키맨 같은 만화책들을 볼 수 있었다. 꽤 오래전 일이라 정확히 기억이 나진 않지만 단행본도 있었고 소년점프 같은 주간지도 있었던 것 같다. 남자 형제만 있던 집이라 갈 때마다 새로운 만화책, 장난감들이 많아서 늘 설레였다.
여러 만화를 재밌게 봤지만 내 가슴을 가장 두근거리게 만든 만화는 드래곤볼이었다. 마음에 뜨거운 불을 지피는듯한 드래곤볼의 서사와 이야기 들은 나를 끝없는 모험의 세계로 안내했다. 어린 나는 어디엔가 정말로 그런 세상이 존재할 거라고 믿었다. 어른이 되면 그런 세상에 살 수 있을 거라고도 생각했다.
부모 없이 외딴 지구에서 성장하는 소년 손오공의 이야기를 따라가며 울고 웃고 함께 싸우고 모험에 나서던 그 시절이 떠오른다. 드래곤볼은 단지 만화 속의 이야기가 아닌 눈앞에 펼쳐지는 현실과도 같았다. 그들의 슬픔이 나의 슬픔이었고 그들의 패배도 나의 패배였으며 승리는 함께 축하할 즐거운 일이었다. 어느덧 우리 집에는 드래곤볼 전권이 다 있었는데(아마 친척형에게 상당 부분 양도를 받았던 것 같다) 대망의 드래곤볼 Z 마지막 단행본 42권 마지막장에 손오공이 이별을 고했을 때 흘렸던 눈물도 기억난다. 마치 내 삶의 작은 챕터 하나가 마무리되는듯한 기분이었다. 이제 손오공 없이 나 혼자서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구나 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만큼 드래곤볼은 나뿐만 아니라 또래의 많은 소년 소녀의 마음에 깊이 자리 잡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나에게 만신이자 영웅 같은 존재였던 토리야마 아키라 선생이 작고했다. 사실 만신은 데즈카 오사무 선생의 타이틀이지만 내가 즐기기에는 세대의 차이도 있고 적어도 내게 만신은 토리야마 선생이었다.
선생은 3/1에 이미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나는 아직까지도 토리야마 선생의 SNS를 팔로우하며 일주일에도 몇 번씩 손오공과 베지터를 만나고 Dan-Dan과 Cha La Head Cha La는 지금도 이따금씩 듣곤 하는 음악들이다. 회사에서 쓰는 메신저 프로필도 베지터인데.. 선생의 작고 소식을 들으니 오늘 하루 기분이 참 묘했다. 55년생으로 그리 많지 않은 나이에 전해진 소식이 다소 황망하기도 했다.
https://youtu.be/uC8sc0cQa9M?si=rINRKbn2K5rcIp22
https://youtu.be/vLanxuRgnoI?si=WoWxCMUiTvLwjlFo
나는 선생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아픈 곳이 있었는지 개인사가 어땠는지는 잘 알지 못한다. 그저 내게는 드래곤볼의 아버지이자 창조자 같은 사람이었다. 이미지라고 하면 단행본에 방독면을 쓴 로봇 오너캐로 등장해서 마감이나 근황에 대한 잡담을 하던.. 그런 모습으로 남아있다. 또 연재를 한 번도 펑크 내지 않았다는 일화를 통해 그가 어떤 책임감을 가진 사람이었는지는 알 수 있었다.
토리야마 아키라(조산명)라는 이름도 참 좋아했다. 참으로 만화가 같은 이름이었으며 그 이름을 듣는 것만으로도 흥미로운 감정이 가득할 만큼 타고난 이야기 꾼이고 그림쟁이였다. 특히 섬세한 배경 묘사와 메카닉을 표현하는 그림 실력은, 여전히 그를 뛰어넘는 작가를 보지 못했다.
그의 머릿속에서 나온 캐릭터와 이야기들은 나의 유년시절을 완전히 장악했다. 나는 어린 시절 만화가를 꿈꿨었고 손오공과 베지터는 내 인생에 기준이 되는 캐릭터가 되었다. 그리고 내가 만화를 비롯한 IP산업에 관심을 갖게된 씨앗이기도 했다.
드래곤볼 이후에 등장한 소년만화, 왕도물은 모두 드래곤볼의 서사에 뿌리를 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만화이자 작가고 상업적으로도 가장 크게 성공한 작가 중 한 명이다. 특히 일본 만화가 세계적으로 사랑받는데 그 문을 열어젖힌 것이 토리야마 선생이라고 생각한다.
훌륭한 만화가를 떠나보내는 일은 생각보다 슬픈 일이다. 드래곤볼Z에서 손오공을 떠나보내었을 때 든 기분과 비슷하다. 마음 한편에 있던 기억들을 고이 정리해 보내는, 또 다른 내 삶의 작은 챕터가 마무리된다.
本当に本当にありがとうございました。もう体に気をつけてゆっくり休みましょ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