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은 어디로 움직이고 있나
최근 비상장 투자, 벤처 투자가 활성화되면서 언론을 통해 가장 자주 볼 수 있는 소식이 벤처투자가 몇 조를 돌파했다더라, 벤처투자가 최고치를 기록했다더라 이런 이야기들이죠. 그만큼 벤처투자 영역이 최근 가장 많이 각광받고 돈이 몰리는 투자 영역인데요, 유동성이 풍부한 시대에 고수익률 자산으로 돈이 몰리는 것이니 당연한 현상일 수 있겠습니다.
https://n.news.naver.com/article/018/0005073849
반면 부진한 시장도 있습니다. 주식형 공모 펀드 시장입니다. 뜨거운 벤처투자나 발행시장과는 다르게 상대적으로 온기가 덜 한 느낌이 강합니다. 유동성이 확대되는 상황에서 코스피 역시 한 단계 레벨 업된 수준에서 거래가 되고 있긴 합니다. 다만 이를 운용하는 기관은 그렇지 못한 상황입니다.
최근 그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두 개의 기사를 접했습니다.
'조 단위 펀드' 해외주식형 5개 vs 국내 1개
https://n.news.naver.com/article/015/0004595008
벤처펀드 운용자산 1조 VC 속출...올해 10여 개 육박 전망
https://n.news.naver.com/article/030/0002979331
주식형 펀드 이야기를 먼저 해볼까요. 일반적인 자산운용사 펀드의 유동성 공급주체는 일반 개인, 사모 개인, 기관 이 정도입니다. 그중에서 운용규모가 큰 펀드 주체가 일반 개인입니다. 공모펀드라고 불리고 우리가 잘 아는 대형 운용사들은 대부분이 공모펀드 중심으로 포트폴리오가 구성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이 공모펀드의 설정액을 보면 꾸준히 감소하여 과거(2012년) 120조 원 수준에서 현재는 80조 정도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40%가량 크게 줄어들었습니다. 당연히 펀드의 규모도 줄어들었는데요, 과거(2010년) 28개에 이르던 1조 단위 주식형 공모 펀드는 현재 9개 미만으로 줄어들었습니다. 위에 첨부드린 기사를 보면 5개 수준이고 그마저도 해외 투자펀드가 4개라고 하네요.
물론 사모펀드 시장은 커지고 있습니다. 같은 기간 주식형 사모펀드는 2배 가까이 성장하여 8~9조이던 것이 현재는 18조로 두배 가량 증가했습니다.
하지만 주식형 사모펀드 규모 자체가 상대적으로 작다 보니, 2배가량 성장해도 공모펀드에서 빠져나간 금액을 다 메우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결국 주식형 펀드 소계 기준으로도 2007년 135조 수준에서 2020년 90조로 하락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자산운용사의 주 수입원이던 주식형 공모펀드가 줄어들면서 당연히 운용사의 포트폴리오도 대체투자나 ETF 등으로 재편되었고 많은 펀드매니저, 애널리스트들도 주식형 펀드 시장을 떠났습니다.
벤처투자는 어떨까요. 벤처투자조합의 총 운용자산은 33조(2020년 기준) 수준으로 아직 주식형 펀드보다는 작은 규모지만 그 성장 속도가 매우 인상적입니다. 매년 꾸준하게 15~20%의 증가를 보이며 그 규모가 점점 커지고 있죠. 펀드당 결성 금액을 보면 과거에 적게는 50억 도 있었고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보통 250~500억 수준에서 결성되던 것이 최근에는 천억 단위도 자주 보입니다. 심지어는 에이티넘 인베스트먼트가 국내 단일 펀드로는 최대인 5천억 규모의 조합을 결성하기도 했죠. AUM이 조 단위를 기록한 곳도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조금 예전 자료지만, 참고가 될 것 같아서 첨부하였는데요, 대략적인 변화가 보이시죠? 2015년까지만 하더라도 국내에서 AUM 1조를 넘는 VC는 단 한 곳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2019년 한투파가 1.6조 를 기록했고 이게 현재는 10곳이 넘었습니다. 현재 한투파의 AUM은 2조가 넘습니다.
이러한 머니무브가 계속 이어진다면 국내 주식시장 상승/하락과는 무관하게 주식형 펀드가 성장하긴 더욱 어려운 시장이 될 것이고, VC 규모는 점점 더 커지게 되겠죠. 시대의 흐름이 이렇게 변하니 자연스럽게 인력의 이동도 이뤄지는 것 같습니다. 유통시장에서 발행시장으로, 또 발행시장에서 벤처캐피털 시장으로 말이죠.
처음 말씀드린 것처럼 이런 기조는 유동성과 수익률 때문에 발생합니다. 저금리와 유동성 공급으로 돈이 풀려있는 것은 이미 모두가 잘 알고 있는 사실이고, 이는 주식시장과 벤처시장 모두에게 플러스로 작용합니다.
하지만 수익률에서 그 차이가 벌어지죠. 펀드의 수익률은 보통 벤치마크를 따라가는데, 코스피를 BM이라고 보면 연간 수익률이 들쑥날쑥합니다. 경기에 민감하기도 하고 크게 오픈된 시장이다 보니 변동성도 크죠. 주식형 펀드는 BM을 이기면 됩니다. 코스피가 -20% 수익률을 기록할 때 펀드는 -5%만 해도 상당히 잘했다고 봅니다. 벤치마크를 크게 상회했으니까요. 반대로 코스피가 30% 오를 때 펀드는 20%가 올랐다면 벤치마크를 하회한 것이니 좋지 못한 실적입니다. 절대수익형이라고 하더라도 요구수익률이 그렇게 높지 않습니다. 시장 금리가 2~3% 수준이라면 주식형 펀드는 6~7%만 나와도 훌륭한 것이죠. 최근 몇 년 사이 부동산, 대체투자에 자금이 몰리던 시기가 있었는데 대체투자가 이 정도 IRR을 보여줬습니다. 이때 상당히 많은 자금이 주식형 펀드에서 대체투자로 이동했었습니다.
반면 벤처펀드의 평균적인 요구수익률은 보통 7~9% 수준입니다. 애초에 요구수익률 자체가 상당히 높은데, 상위권 VC들의 IRR은 15~20%를 기록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수익률 자체가 훨씬 높은 거죠. 이 정도 IRR을 기록하는 투자 자산은 많이 없습니다. 상당히 독보적이죠. 거기다 최근 들어 산업의 변화로 모바일, IT 서비스, 플랫폼 등이 산업의 트렌드로 자리 잡으며 스타기업들이 꾸준히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런 기업들은 아직 유통시장에서는 만나기가 어렵고 대부분 발행시장이나 벤처시장에 몰려있죠. 돈이 몰릴 수밖에 없습니다.
벤처투자는 지금보다 더욱 큰 트렌드가 되겠죠. 창업이 장려되고 스타트업에 돈이 몰리는 이 흐름이 쉽게 바뀌긴 어려울 겁니다. 유동성이나 수익률 외에도 창업 기업이 매년 창출하는 일자리나, 글로벌 산업 트렌드 등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죠.
다만 이런 흐름에도 아쉬운? 또는 우려되는 지점이 몇 가지 있는데 첫 번째는 아직까지는 일반 개인이 벤처 투자에 접근하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보통 정부나 민간 기관 펀드가 대부분이고 개인에게는 사모시장 중심으로 개방되어있습니다. 최근에는 개인 역시 비상장 거래로 일부 기업을 사고팔 수 있지만 이는 집합투자 기구 형태가 아니라 규모화에 한계가 있습니다. 비상장 기업 특성상 정보 비대칭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죠. 그래서 정부에서 준비하는게 '기업성장집합투자기구(BDC)'입니다. 상장된 비상장 투자 펀드인데 ETF랑 비슷한 개념이라고 보면 됩니다. 유통시장에서 사고팔 수 있는 벤처펀드인 거죠. 이 시장이 개화되면 아마 벤처투자 규모는 한 단계 레벨업 될 것입니다. 주식형 펀드가 공모펀드의 성장으로 황금기를 맞이했던 것처럼 벤처펀드 역시 이러한 시기를 만나게 되겠죠. 다만 이게 언제 될지, 구체적으로 어떤 형태로 될지는 아직 미정입니다.
두 번째는 창업 속도입니다. 벤처투자는 말 그대로 투자 주체죠. 돈은 무한하진 않지만 빠르게 조달할 수 있습니다. 마음먹으면 정부가 지금보다 훨씬 많은 금액을 투자할 수도 있겠죠. 문제는 기업의 창업 속도입니다. 코스피는 시가총액이 2천조가 넘고 시스템이 정착되어 새로운 기업을 받아들이고 이에 맞게 유동성이 공급되는 증권시장입니다. 산업과 기업이 주도하는 시장인 거죠. 반면 지금의 국내 벤처투자는 돈이 주도하는 형태입니다. 좀 더 자세히 말하면 정부의 돈이죠. 창업을 장려하고 더 많은 일자리와 유니콘을 만들기 위한 일종의 지원 산업 성격이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물론 스타트업 창업은 매해 증가하고 있고, 사회 분위기도 많이 달라졌습니다만 많은 사람들이 어쩌면 투자금액의 증가 속도가 이를 앞지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을지도 모릅니다. 빠른 속도로 국내 창업환경이 개선된 만큼 이 부분 역시 점차 개선될 수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더 다양하고 많은 기업들이 한국에서 나오게 되겠죠.
세 번째는 주식시장과 벤처시장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벤처투자와 스타트업은 소위 엑시트 계획을 잘 세워야 하는데요, 투자가 있으면 회수가 있듯이 언젠가는 차익을 실현해야 하는데 이걸 어떻게 하냐는 겁니다. 사실 방법이 그렇게 많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벤처투자의 목적 자체가 스타트업으로부터 꾸준한 배당을 받으며 yield로 IRR을 맞추는 콘셉트가 아니기 때문에 결국 capital gain, 즉 차익 실현이 필요한데요, 이를 위해서는 결국 회사를 상장해야 합니다. 회사를 매각하거나 보유 지분을 구주로 다른 투자사에게 더욱 비싼 가격으로 매각하는 옵션도 있겠지만, 가장 명확한 엑시트 방법은 그래도 여전히 상장입니다. 근데 주식 시장이 부진하면 벤처기업의 상장도 원활하진 않겠죠. 뭐 주식형 펀드가 줄어든다고 해서 주식시장이 망하거나 나쁜 것은 아닙니다. 다만 주식시장도 하나의 산업인데 발행시장에서 기업들을 제대로 감별하고 가격을 매기고, 또 그 물량을 받아낼 수 있는 기관들이 필요하기 마련이죠. 주식형 펀드가 줄어들면서 기관의 힘이 점점 약해지다 보니 발행시장에서 유통시장으로 넘어갈 때 검증 능력이나 소화 능력이 떨어질 수 있습니다. 시장의 변동성은 더욱 커지겠죠. 이 부분은 사실 개선되기 어려워 보입니다. 이로 인해 정확히 어떤 문제가 생겨날지는 좀 더 모니터링하면서 연구해보려고 합니다.
몇 가지 간단한 데이터와 기사들로 벤처 펀드와 주식형 펀드에 대한 이야기를 정리해봤습니다. 돈이라는 게 꼬리표가 있는 것도 아니고, 성격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매우 직관적이고 냉정하게 움직인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죠. 돈 앞에서는 정말 영원한 강자도 약자도 없습니다.
벤처 투자 산업은 정말 빠르게 커지는 것 같습니다. 유동성, 산업 트렌드, 정부지원 등 여러 요인들이 겹쳐 정말 폭발적인 성장을 보이고 있는데 우주의 기운이 한 곳으로 모이는 것 같습니다. 이 글이 '벤처투자의 성장을 한번 짚어보고', '그 성장을 둘러쌓고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머니무브에 따라 개인적인 커리어는 어떻게 쌓아야 하는지' 등 여러 고민들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적어봤습니다. 돈의 움직임은 늘 흥미롭고 많은 인사이트를 주네요.
*참고자료
http://m.thebell.co.kr/m/newsview.asp?svccode=00&newskey=202012290855199000104366
https://news.naver.com/main/read.naver?mode=LSD&mid=sec&sid1=101&oid=015&aid=0004545138
https://www.etoday.co.kr/news/view/2024689
http://www.kvca.or.kr/Program/board/list.html?a_gb=board&a_cd=15&a_item=0&sm=4_1
https://www.sedaily.com/NewsView/22Q91A60U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