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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ommyhslee Jul 24. 2022

인플레이션이 도려낸 소비의 다양성

선택적 소비에 인플레이션이 더해졌다.

영화를 보기 위해 예매 사이트에 들어가 결제를 하고 나니 티켓당 가격이 15,000원 정도. 보통 인원이 두 명이니 30,000원을 결제하고 현장에 도착해 함께 즐길 간단한 간식을 사고 나면 두 명이서 영화 한 편을 볼 때 4~5만원 정도의 비용이 나간다. 아이맥스나 4D 등 상영관에 가면 비용은 이보다 훨씬 더 커진다. 5~6년 전 조조영화가 6천원 정도, 일반 티켓이 9천원~1만원 정도였던 것과 비교하면 그 사이 티켓 가격이 50~60% 정도 인상된 셈이다. 코로나 사태도 있었고 40년 만에 찾아온 인플레이션도 있었으니 납득하기 어려운 수준은 아니다. 영화관과 영화 산업 모두 어려운 시기를 지나왔고 모두가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선택이었다. 하지만 늘 그렇듯 문제는 사후에 찾아온다. 특히 돈과 관련된 문제는 더욱 그렇다.


최근 개봉된 영화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흥행 성적을 매우 예측하기 어려울 정도로 셈법이 복잡해졌다. 나는 개인적으로 최근 개봉한 영화 중 범죄도시2, 헤어질결심, 탑건 등을 봤는데 모두 수작이었다. 돈이 아깝지 않을 만큼 재밌었고 범죄도시2와 탑건은 흥행에도 성공했다. 헤어질결심은 작품성을 인정받았으나 흥행에서는 다소 고전했다. 개인적으로는 굉장히 재밌게 보았으나 많은 사람들의 선택을 받지 못했다. 작품의 완성도나 재미로만 보면 지금의 스코어보다 최소 두 배 이상은 관객이 들었어야 하지 않나 싶다. 


나는 이게 인플레이션이 가져온 소비의 다양성 훼손이라고 생각한다. 비용 허들이 높아지며 더 이상 소비에 관대해질 수 없게 된 것이다. 


주변에 몇몇 지인들과 이야기를 해보면 어떤 작품이 재밌다는 것은 알겠지만 15,000원이라는 가격은 심리적으로 실패 없는 확실한 선택을 강요하도록 한다. 예전 같으면야 티켓 가격이 낮으니 새로운 컨셉이나 내용의 영화를 선택하고 즐길 수 있었지만 이제는 1) 대중이 증명할 수 있고(검증된 재미), 2) 제작비가 높고(인지도, 유명세), 3) 반드시 영화관에서 보아야 할 이유(고 퀄리티의 CG, 사운드 등) 등이 작품을 소비하는 것으로 그 기준이 바뀌었다. 더욱더 철저하게 상업성이 높은 영화로 관객의 선택이 몰리게 된 것이다. 사람이 소비를 할 때 선택지가 많고, 이에 따른 비용 허들이 낮다면 당연히 다양한 옵션을 선택하게 된다. 이것도 좋아 보이고 저것도 좋아 보이면 다 갖고 싶은 게 사람 심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택지가 많아도 비용 허들이 높아지는 순간 사람은 확실한 한 두 가지를 선택하게 되고 이는 결국 시장 구조를 단순화하게 된다. 


돈이 안되니 그런 제품을 만들 필요가 사라지는 것이고 돈이 되는 제품으로만 몰리는 것이다. 사실 이게 일반 산업이면 당연한 논리고 이치니 따라갈 수밖에 없지만 영화와 같은 문화 산업은 조금 이야기가 다르다. 다양성이 파괴되고 자본 중심으로 의사결정이 진행된다. 시간이 지나 이런 가격에 모두가 적응이 되고 다시 예전처럼 소비할 수 있다면 너무 다행이겠지만 이를 계기로 관객들의 소비성향이 변하기 시작하여 산업 구조가 단순화되면 그것은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전환점이 될 수 있다. 


나는 지금 이런 현상이 영화산업뿐만 아니라 모든 소비 산업 전반에 퍼져가고 있는 인식이 아닐까 생각 든다. 

수십만 원 파인다이닝이나 호캉스가 유행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자잘한 소비를 늘려가는 것보다 확실하게 효용가치가 높은 곳에 돈을 쓰는 패턴이 점차 강해지고 있다. 가격대로만 보면 결국 필수적인 저가 시장과 실패 없이 확실한 가치가 보장되는 고가 시장만 남게 되고 mid-price product의 궤멸이 온다. 취향으로는 창의성과 다양성이 배제되며 선택지가 사라져 소비의 다양성이 무너진다. 인플레이션은 이런 상황을 꽤나 부추긴다. 파인다이닝이나 호캉스를 즐기는 사람들의 소비 성향은 인플레이션 때문이 아니며 어제오늘 일도 아니다. 


'10억이 넘는 집은 살 수 없지만 작은 사치는 즐기겠다'라는 이런 소비형태는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강제적으로 비용 허들이 올라가 선택적인 소비를 즐길 수밖에 없다'라는 것과 과정만 약간 다를 뿐 같은 결과를 만들어낸다. 결국 우리는 선택적인 소비를 하도록 내몰리고 있다. 전자의 현상은 이미 우리 사회가 겪었고, 여기에 인플레이션이 찾아오며 이런 분위기가 급격하게 강화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어떤 행동을 해야 할까? 이걸 막아야 할까? 막을 수는 있을까?


나는 이게 우리가 바꿀 수 없는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집단 사회의식이 변화하는 것이나 거시경제 상황을 돌리는 것은 우리가 바꿀 수도, 강제할 수도 없는 일이다. 또 우리는 이미 많은 경험을 통해 이런 변화의 물결을 강제로 바꿀 수 없다는 걸 수없이 학습했다. 이건 결국 대비와 대응의 영역이다. 변화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것이다. 상황을 인지하는 것이 첫 번째고, 인지가 되었으면 그에 따른 생존 전략을 세워야 한다. 지금처럼 사회 흐름이 변화하는 와중에 발생한 인플레이션은 더욱 빠르게 있는 것을 없애고, 또 없는 것을 만들어내며 많은 변화를 수반하게 될 것이다. 산업마다, 조직마다, 개인마다 그 방식은 다르겠지만 상황에 대한 인식과 대응이 필요하다. 내가 없어지는 쪽일지, 살아남는 쪽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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