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과 진실이라는 감초

유시민의 「어떻게 살 것인가」

by 카인말러


고3 수험생 시절도 올해 7월만큼 바쁜 적은 없었다. 계절학기 과목을 두 과목 수강하며 어디 놀러 가거나 여유 부리기는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회계 원리와 독일어를 들었다. 유튜브에서 독일 뮤지컬 영상을 볼 때면 늘 한번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계 원리야 경제학이라는 내 전공과 어느 정도 상관이 있으니 배운 거지만, 독일어는 정말 관심이 많아 7월이 힘들어도 지루하지는 않았다.


8월의 무더위와 여유로움이 찾아오니 내 마음에는 따분함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일종의 매너리즘, 7월의 습관이 남아 계속 책상에 앉아 책을 읽고 공부는 했으나 공부하고 싶은 대상이 뚜렷하지 않았다.



8월 22일, 내 생일날 가족 여행 갈 채비를 하며 유시민 작가의 「어떻게 살 것인가」를 챙겼다. 삶이 고민이 된다기보다는 공부하고 싶은 게 없어서 아이디어가 생길까 하고 꺼내 본 것이다. 내가 책장을 못 넘기고 상념에 잡히게 된 몇 구절만 간추려 적어본다.


필요하고 옳은 일을 하는 것만 생각했을 뿐, 그 일을 친절하게 하지 않았다. 그래서 신뢰를 받지 못했고 일도 제대로 되지 않은 것이다. 좋은 혁신 아이디어와 제도 개선책을 만든다고 해서 혁신을 성공시킬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변화를 거부하는 기득권층의 저항을 극복할 수 있는 전략을 세우고 혁신의 동력을 확보하지 않으면 옳은 개혁도 실패한다.

유시민 지음, 「어떻게 살 것인가」, 182쪽


목표가 있는데 이루지 못한 적들이 있다. 학업이든 일이든 연애든, 간절하게 원할 때 도리어 실패한 적도 더러 있었다. 첫 문장, '그 일을 친절하게 하지 않았다.' 열심히 하는 것과 친절히 하는 것은 분명 다른 것이다. 내가 원하는 그 무엇도 타인의 도움 없이 얻을 수 있는 것은 없다. 심지어 공부도 교수님께 잘 보이고 질문도 잘해야 더 배울 게 많은 법이다. 지난 1학기는 공부는 정말 열심히 했지만, 교수님께 능동적으로 질문한 적이 거의 없었다. 성적이 잘 안 나오니 계절 학기에 나는 이번만큼은 교수님께 질문도 많이 하고 추가로 공부할 것들도 요청해보자고 결심했다. 이 책의 표현을 빌리자면, 조금 더 '친절하게' 접근해보려 한 것이다. 대화하고 질문하고 요청하는 것.


이 글을 쓰며 책을 다시 읽어보니 친절하게 대한다는 것의 의미를 알 것 같다. 친절하게 대하는 것은 그 일과 관련된 사람들의 시선에서 '나'를 보는 것이다. 나를 평가하는 사람의 관점에서 나는 노력하고 있는가? 모든 일들이 인간관계 속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들의 시선을 신경 쓸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맹자는 '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가 남을 사랑해도 남이 나를 가까이하지 않으면 인자한 마음(仁)이 넉넉했는지 되돌아보라. (이루 상)" 친절히 하라는 말과 일맥상통한 것 같다. 원하는 목표가 있어도 그 목표가 가까워지지 않으면 그것을 인자하게 대했는지, 그것에 대한 마음을 넉넉하게 가졌는지 고민하는 것. 유 작가님도 같은 뜻에서 친절히 하라고 일침을 가하는 게 아닐까 싶다.


정치는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이루어주는 사업이다. 스스로 좋은 것이라고 생각할지라도 사람들이 원하지 않는다면 강제할 수 없다. 그런데 그들(부정 경선을 모의한 통합진보당 당원들 - 블로그 필자)은 자기의 신념이 절재적으로 옳다는 확신의 바탕 위에서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어떤 수단도 쓸 수 있다고 믿는 것 같다. 소위 '진리의 정치'를 하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인생에도 정치에도 확정된 진리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유시민 지음, 「어떻게 살 것인가」, 280쪽



유시민 작가는 이 책에서 정치가 '본인의 몸에 안 맞는 옷'이라고 했지만, 그는 반평생을 정치해온 사람이다. 정치를 빼놓고 삶을 이야기할 수 없는 사람인 것이다. 달리 말하면, 그는 정치를 통해서 인생을 배운 사람이다. 많은 인문 사회 현상이 그렇듯이, 정치에 고정된 진리는 없다. 올바른 사회에 대한 생각은 사람마다 다르고 현실적으로는 정당마다 다르다.


그런데 여태껏 나는 그 사실을 알면서도 그런 사실 위에서 공부한 적이 없는 것 같다. 경제학에서도 어떤 것이 정답인지 배웠고, 뉴스를 볼 때도 옳고 그름을 따지기 바빴다. 요즘 나는 사람들의 생각을 살핀다. 이런 문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뉴스를 완전히 신뢰할 수는 없지만, 뉴스와 그 댓글에서 나타나는 사람들의 생각들, 소위 '여론'을 살핀다. 일을 친절하게 대하는 만큼 듣는 것도 열심히 하려고 노력한 것이다. '정치는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이루어주는 사업이다.' 인생도 주인이 '나'라는 사실은 변함없겠지만, 내 주변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 뭔지 들어주는 것도 마찬가지로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한다. 삶은 결국 나와 세상이 타고 있는 시소인 것이다. 한 번씩 차례로 타인을 내 위에 두기도 하고, 다시 남보다 나를 먼저 생각하기도 한다. 지금 나는 ‘타인’과 ‘나’라는 지렛대 위에서 적당히 균형을 찾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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